
그 애가 처음으로 대학교에 간 날 아침, 숙소에 남은 애들은 빈틈이 생길 때마다 그 애 이야기를 했다. 아직 대학이라면 한참 남은 막내부터 애초부터 대학에 뜻을 두지 않았다는 승철이까지. 학교에 가야 하는 애들은 잠이 덜 깨 밥은 고사하고 물도 제대로 못 넘기는 와중에도 불쑥. 대학교도 첫 날부터 수업해? 아니 이젠 수업 말고 강의라고 불러야 돼? 입학식은 안 해? 입학식은 지난주에 했는데 안 갔대. 대학교 입학식은 막 그렇게 제껴도 되는 거야?
“대학 가서 연애 못 하면 병신이래.”
누군가 들뜬 투로 꺼낸 말에 야유가 쏟아진다. 윤정한 얼굴에 퍽이나 걱정이라는 말, 연애는 무슨 연애냐는 말. 연습실 규칙은 필요 이상으로 융통성이 결여되어 있었으나 대놓고 연애를 금지하진 않았다. ‘할 거면 해라, 근데 나중에 책잡힐 일 없게 처신 잘 해라’가 기본 신조였기에 각자의 연애사는 터치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다들 들떠있는 건, 윤정한이 cc를 할 것인지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 보단 그저 대학이란 환상 탓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연습 몇 번 빠지면 형도 힘들 텐데.”
“그래서 들어야 하는 강의만 넣고 다 뺐대.”
“오늘도 선배들이 오라고 해서 갔다더라.”
“그럼 오늘 술 마셔? 개강총회 그런 거?”
조슈지 신발 좀
나 너 신발 빌렸당
이미 빌려 갔으면서 이제 와 연락하는 이유가 뭘까. 무슨 신발일지 대충 감이 잡혔다. 며칠 전부터 슬쩍슬쩍 예쁘다, 잘 어울린다 하며 건드리던 그 신발이겠지. 이미 학교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면서 이제야 허락을 구하는 말이 괘씸해 가만히 두고 있으니, 오타를 다수 포함한 알림이 뜬다.
빌린다?
왜대답ㅇㄴ해
자? 아직아닐어낫서?
“근데 진짜 대학 가면 다 연애해?”
조슈지 나한테
삐진 거 있지
핸드폰 내려놓는 소리가 크게 나버렸다. 순간 놀란 눈동자 여럿이 나를 향해 돌았다. 본의 아니게 눈치를 준 것만 같아 어색하게 웃다가,
“글쎄, 모르지.”
모르지. 대학 가면 다들 연애를 하는지. 윤정한이 진짜 연애를 할지 말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분이 언짢은지. 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 투성이인 아침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
정상궤도를 벗어나는 모험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우연한 불시착 정도로 치부하기엔 다운타운 마그넷 하이스쿨과 강남구 숙소 이층침대 사이의 거리는 멀고도 멀었으니, 궤도이탈은 순전히 나의 의지라 할 수 있었다. 교회 아이들이 원디렉션의 데뷔곡을 따라 부를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보이밴드 데뷔를 그것도 한국에서 준비하게 될 줄이야.
“내일부터 연습 나올 친구래. 인사 해둬.”
LA와 서울을 오가는 비행기 티켓을 지원해주겠다고 선뜻 나선 회사 치고는 열악한 연습실임에도 연습생들은 물밀 듯 들어왔다. 물론 밀려온 만큼 썰물처럼 다시 빠져나가기도 했지만. 적응에 여념이 없던 3개월이 흐른 시점에서 나는 막내 포지션을 탈출한지 오래였고,
“윤정한이라고 합니다.”
그 애가 들어왔다.
“저 사람이랑 형, 닮은 것 같아.”
승철이 뒤를 쭈뼛거리며 따르는 애를 손짓하며 속닥이던 게 누구였더라. 이미 나가고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정작 그 말을 해준 게 누군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윤정한과 내가 닮았다는 말은 머물 곳 모르고 떠도는 그 애 눈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좋아하는 초콜릿 있어?”
“...초콜릿 이름을, 외우고 다녀?”
일부러 말을 붙이고, 원우가 가져온 노트북으로 몰래 딴짓을 할 땐 슬쩍 옆에 앉기도 하고, 은근히 낯을 가려 보컬룸으로 쏙 숨어버릴 땐 눈치 없는 척 끼어들기도 하고.
“...너는 학교 안 가?”
“졸업하고 온 건데.”
있잖아 미국은 9월에 학기가 시작해서 여기랑 달라. 겨울에 졸업하는 게 아니라 여름에 졸업을 해서... 구석에서 기본기를 연습하던 그 애가 나한테 관심 한 자락을 보일 땐 그게 너무 좋아서, 묻지도 않은 말들을 길게 늘어놓으며 모른 척 붙잡으려 했다. 나랑 들어온 시기도, 생긴 것도, 목소리도 비슷한 애. 순영이가 같이 연습을 하자고 했다며 흔치 않게 들뜬 기색을 보이던 그 애는, 보컬룸에서 몰래 이프로를 나눠 마시다가 불쑥 내 귓가에 속삭여왔다.
있지, 나도 너네랑 같이 연습하고 싶었거든. 순영이가 너 가르쳐주는 게 부러워서. 나 혼자 연습하다가 너 훔쳐보고 그랬어.
그러니까 그 애는 연습에 진심이었던 건데. 날 그냥 훔쳐봤다는 게 아니라 내가 순영이랑 연습하는 걸 훔쳐봤다는 게 맞을 텐데.
그래서 너무 좋아.
한국에는 이렇게 예쁜 애도 있구나. 좋다고, 그렇게 말하는 윤정한 눈이 너무 반짝거려서 그 날 이후로는 세상이 너를 중심으로 도는 것만 같았다.
변화한 감정의 결을 감지하기에 연습실 환경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덥고 습한, 문 하나 사이에 두고 넘어오는 시끌벅적한 기운이 방금 스쳐간 느낌보다 강렬해서, 열아홉은 그런 대수롭지 않은 것들로도 사랑을 덮어버리곤 한다고.
“그럼 이제 매일매일 나랑 놀면 되겠네.”
눈발이 날리던 밤 슬쩍 빠져나와 아이스크림을 먹던 와중에도 나는 졸업을 앞둔 너랑 함께 있을 생각을 했는데.
“나 광고제작과 지원하려고.”
학교 그거 다녀봤자 얼마나 다니겠어. 인생 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대학 등록은 해두고, 뭐 데뷔하면 자퇴하면 되는 거지. 데뷔 못하면 그대로 대학 다니면 되는 거고. 윤정한이 들어온 이래로 열 명 남짓한 연습생들이 나갔는데, 그중엔 대학에 갈 거라며 저렇게 말하던 애도 있었다. 도망칠 곳을 만들 계획부터 짜던 애는 내가 보기에도 간절함이 결여된 상태였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버티지 못하고 숙소에서 짐을 챙겼다.
너도 도망칠 곳을 만드는 걸까. 나는 네가 들어온 뒤로 한 번도 네가 없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열아홉 십이월을 기점으로 우리는 사이를 벌린 묘한 균열에 어찌할 바 모른 채 멀어져버렸다. 자꾸만 그 애를 향해 돌아가는 몸은, 거울 너머 마주치는 시선의 빈도는 분명 무언가를 말해 주고 있었다. 별 것 아닌 이유로 감정을 넘기는 것도 미성년의 특권일 뿐이었고. 나는 여전히 숙소와 연습실에 틀어박힌 채, 윤정한을 대학에 빼앗기며 더 이상 무지를 무기로 들 수 없는 스무 살이 되었다.
*
홍지수는 좋아하는 게 많았다. 불쑥 좋아하는 초콜릿이 뭔지를 물어보질 않나.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는 연습생 프로그램 프로필 설문지도 쉽게 채우지 못하는 애였다. 봄은 따뜻해서 좋고 여름은 더워서 좋고, 가을은 날씨가 좋아서 좋고 겨울은 찬바람 느낌이 좋다는 홍지수는 분명 내가 처음 겪는 인류였다. 현대무용 수업이 끝난 뒤 덥고 환기도 안 되는 연습실 바닥에 널브러지는 애들 틈에서 눈이 없어져라 웃고 있는 애는 홍지수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홍지수를 봤다. 홍지수만 봤다. 그 애만 보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결국 보고 있는 건 그 애밖에 없었다. 나는 고작 지하철 타고 소속사 찾아오는 것도 그렇게 긴장을 했는데 저 애는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기타도 지훈이만큼 잘 다뤘고, 보컬 연습을 하다보면 타고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닮고 싶었다. 그 애가 좋아하는 많은 것 중에 언젠가는 나도 들어갈 수 있길 바랐다. 나는, 보이는 게 홍지수밖에 없었으니까.
“홍지수.”
“...”
“지수야.”
“...”
“지수야아.”
“...”
“이거 봐봐. 어? 이거 같이 봐.”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걔 등에 매달리고, 홍지수 시선 한 번 받아보겠다고 걔 하는 일을 방해하고. 그러다 한 번 걔가 내 옆에 앉아주는 게 그렇게 좋았고, 아직도 서울에서 가 본 곳이라곤 소속사나 그 주변이 전부인 걔가 어딜 같이 가달라며 나에게 부탁하는 게 반가웠다. 연습실엔 그 나잇대 남자애들이 스무 명 덜 되도록 있었는데도 그 애를 대할 때만큼은 내가 매달리는 쪽이 되었다.
“슈아랑 싸웠어?”
그러니 지금 상황이 더 답답한 쪽도 나겠지. 싸웠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들어찬 거리감이 다른 애들에게까지 닿은 모양이었다. 대충 고개를 저으며 눈앞에 늘어지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머리를 기르라는 컨셉에 억하심정은 없었지만, 이렇게 답답할 때면 긴 머리칼마저 거슬려 짜증이 치밀었다.
“다른 애들도 걱정하더라.”
“...”
“잘 지내다가 왜 그러냐.”
“걔한테도 가서 그렇게 말해봐.”
나도 답답해서 뒤질 것 같으니까. 소소한 장난에도 홍지수는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핸드폰을 슬쩍 숨겼다가 돌려줘도, 밤에 아이스크림 먹으러 나가자고 꼬셔도, 새로 산 신발이 예쁘다고 툭툭 건드려도 웃기만 했다. 그 웃는 얼굴에 화가 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근데 너 내일 개강이네.”
“어. 개강이나 개학이나 둘 다 싫긴 마찬가지네.”
“전공 공부는 그래도 재밌을 거 아냐.”
최승철은 개론 책 두께를 못 본 모양이다. 광고제작과라면서 무슨 이론 강의가 그렇게 많은 건지. 대학 진학은 그 전부터 가려고 생각했던 문제였으니 이왕 나중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쪽을 고르면 좋을 것 같아 단순하게 정한 학과였다. 데뷔하고 나면 광고도 찍고 그럴 수 있을 테니까. 연습에 방해 안 되는 선에서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책 두께만 보면 냄비 받침으로 부엌에 가져다 놔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설렘은 하나도 없고, 현대무용 수업은 몇 달을 해도 어렵기나 하고. 와중에 거울 너머로 마주친 눈을 피하던 홍지수가 생각나서, 다음 날 숙소를 나서다 괜히 든 서운함에 걔 신발을 뺏어 신고 나왔다.
카톡에는 여전히 답이 없다. 나는 네 관심 한 번 끌어 보겠답시고 잘 맞지도 않는 신발만 질질 끌고 다니고 있는데.
*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간신히 지각을 면할 시각에 우르르 빠져나가고 나면 숙소는 조용하기만 했다. 똑같은 교복을 입은 세 명이 택시를 잡을지 말지 모의하는 말소리가 멀어진다. 글쎄, 집에 있을 땐 빨리 학교를 졸업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민규가 알려준 대로 색을 구분해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덜덜거리던 소음만큼이나 무거운 정적이 집 안을 채운다.
데뷔할 수 있겠지. 윤정한 손을 잡고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확답이 혹여 헛된 희망을 줄까 전전긍긍하던 사무실 분들은 이미 정해진 멤버이니 보낼 수 없단 뜻을 에둘러 전하셨다. 그럼 성실하게만 한다면 잘리진 않겠지. 근데 데뷔할 수 있을까.
혼자 있으니 우울한 생각은 쳇바퀴 돌 듯 시작과 끝을 맞물린다. 우울의 깊이만 더해질 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윤정한이라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슈지
너 신발 젖었ㅅ어
콜라
ㅠㅜㅜㅜㅠㅜㅜㅜㅠㅠㅠ
아, 윤정한 진짜. 콜라 웅덩이를 밟고 선 사진을 또 고이고이 보내주는 모습에 헛웃음이 다 나왔다. 얘는 진짜 일부러 이러나.
정한아
머야
대답개빨리하네
읽고있었어?
그거자국다지우고말릴때까지
들어오지마
1이 지워져도 답이 없더니 곧장 화면이 전화로 넘어갔다.
“여보세요.”
-나 진짜 집에 못 들어가?!
“내가 언제 들어오지 말라 그랬어. 다 지우고 말리고 오라고.”
-그거나그거나, 아! 아 또 밟을 뻔 했어.
“정한아.”
-아니, 같은 과 애들이랑 과방에 갔는데. 그니까 우리 과가 쓰는 방 말이야. 갔는데 선배들이 먹을 거 많다고 먹고 가라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애들이랑 콜라 마시려다가,
낯도 많이 가리면서 꽤나 신이 난 모양이지. 윤정한이 말하는 애들은 우리 애들밖에 없었는데. 그새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들에 무어라 대꾸해주는 윤정한이 짜증이 나서,
“야.”
-어, 어?
“아까 아침에 애들이 그러던데.”
-어, 지수야 잠깐만 나 지금 다른 애가,
“너 대학 가서 연애할 거야?”
순간 정적이 흐른다. 윤정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한 소란만 타고 넘어오길 몇 초, 몇십 초...
-어.
“...”
-할래.
“...”
-할 것 같, 아니, 할 거야.
“...누구랑.”
-지수야 화났어?
“누구랑 할 거냐고. 왜.”
-화났네 너. 그치.
“...”
-근데 대학에서 하는 건 아니고.
“...”
-연습실에서 할 거야. 연애.
“...”
-이번엔 누구랑 할 거냐고 왜 안 물어봐?
“...”
-너도 알 것 같아?
“...모르겠는데.”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지. 나 없어서.
“원래 없었잖아.”
-그래도. 나 갈 때까지 내가 누구랑 연애 할 건지 생각하고 있어.
“안 해 그런 거.”
-그럼 내 생각 하고 있어.
“...”
-알았지?
“...몰라.”
-누군지는 내가 가서 알려줄게.
“...정한아.”
-응.
...빨리 와. 나 심심해. 그렇게 속삭이는 말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