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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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집

m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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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바닥생활을 하며 바닥, 이라고 그곳을 불렀음에도 지수는 그게 신발 바닥 냄비 바닥 할 때의 그 바닥인지 서울 바닥 시장 바닥 할 때의 그 바닥인지 잘 몰랐다. 제대로 알고서 그 말을 쓰는 사람은 사실상 없을 것이다, 라는 것이 지수의 의견이었고 말하자면 중의적인 표현, 이라는 것은 정한의 의견이었다. 둘 다 맞는 소리였다. 결국에는 그 바닥이 그 바닥인 셈이니까. 정확히 어느 바닥에 빗대어 그곳을 부르느냐가 뭐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바닥식구들은 하나 같이 그들의 처지를 뭔가의 밑바닥 인생 같은 것이라 여겼고 바닥 생활 청산하고 사람답게 살아야지라든가 이놈의 바닥 순리라는 게 말이야라든가 하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다들 소매치기였다. 지수와 정한도 마찬가지였다. 시내버스나 지하철, 사람이 많은 시장이나 상가에서 저거다, 싶은 사람을 노려 지갑을 털었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하객이나 조문객인 척하고 들어가서 진짜 하객들 또는 조문객들의 현금 봉투를 훔치기도 했다. 누군가의 경조사는 무조건 우리의 경사. 그게 그들에게 행복이든 불행이든 돈 봉투가 함께하는 종류라면 덮어놓고 우리의 행복, 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수는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정한과 처음 만났다. 급한 작업을 위해 단발성으로 조직된 여섯 명짜리 회사에 막내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 정한이 있었다. 그때까지 서로 얼굴을 보고 통성명할 기회가 없었을 뿐 지수는 정한에 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정한도 그랬을 것이다. 좁은 바닥이라 한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는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정한은 그 무렵 이미 바닥에서 유명한 기계였다. 행동이 민첩하고 천부적인 기술을 지닌 데다가 머리까지 비상해서 일을 맡기면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하늘이 내린 재능과 빛나는 자질의…… 백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천재 소매치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수가 알기로 정한이 지닌 그 명성은 절반 정도만 사실이었다. 행동이 민첩하고 머리가 비상하다는 것은 절반의 사실에 해당했고 천부적인 기술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은 사실이 아닌 나머지 부분에 속했다.

 

윤정한이 그 새끼 그거 처음에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 네가 알아야 해라고 그 무렵 지수에게 말해준 선배가 있었다. 깝지 빼는 기술 평타, 안테나 촉 평타, 작업 중 운발 평타, 소매치기로서는 잘 쳐줘야 B급과 C급 사이를 오가는 바닥 선배였는데 인맥만큼은 특A급이어서 이쪽 구역부터 저쪽 구역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발이 넓었다. 그리고 그만큼 아는 것도 많았다. 적어도 본인의 이야기로는 그랬다. 전국 팔도 소식이 그 선배 전화 한 통이면 일제히 그 선배의 휴대폰으로 모여든다고…… 대충 그런 주장이었다. 그게 진짜든 진짜가 아니든 그 선배는 적어도 지수에 관해서라면 꽤 이것저것 지수가 자세히 말해주지 않은 것까지…… 예를 들어 지수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 열두 살이 되던 해에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것, 어머니는 죽었고 어머니의 묘지는 미국에 있으며 현재 서류상 주소지를 공유하고 있는 아버지와는 두어 달에 한 번 만날까말까 한 사이라는 것 따위의 시시콜콜한 사정들까지 속속들이 알았다. 그래서 지수는 우와 이 선배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내가 알려주지 않은 것까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 관해서도? 다 그런 노하우가 있어서? 라는 사고의 흐름으로 그가 하는 말이라면 덮어 놓고 믿게 되었다.

 

아무튼 그 선배가 지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수야 너 정한이 걔 아버지가 누군지 아냐. 걔 아버지가 누구냐면 전설의 소매치기인데 지금은 벌써 십 년 가까이 징역살이 중이고 걔네 어머니도 전설의…… 뭐더라 아무튼 전설인데 아쉽게도 그 재능이 아들에게는 이어지지 않은 거야. 내가 정한이 처음으로 본 게 걔 중학교 다닐 때였나. 그때 걔가 막 아는 형들 따라다니면서 바람 잡아라 하면 바람 잡고 안테나 시키면 또 그거 하고 그랬어. 그런데 보면 뭐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다. 빽을 딱 주고 이거 따 봐라 해도 제대로 못 해 째 봐라 해도 제대로 못 해 얘 이거 이대로 두면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디 빈 사무실 빌려다가 마네킹을 세워 놓고 연습을 하라고 했다. 필 한 자루 쥐여 주면서 이거 가지고 연습하라고…… 그랬더니 연습을 하데. 매일매일 진짜 야 이게 뭐라고 그렇게 열심히 하니……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하는 거다. 아무 데도 안 가고 그 사무실에서 내내 먹고 자고 학교도 안 가고 칼자루만 붙잡고서 종일 꾸준하게 그래서 이게 재밌냐, 했거든 내가 그렇게 물어봤어. 애가 너무 군말 없이 그걸 하니까 혹시 적성에 맞아서 그러나 싶어가지고 정한아 연습이 재밌냐? 했더니 당연히 재미는 없대. 그래서 그러면 너도 혹시 뭐…… 전설의 소매치기 같은 게…… 되고 싶은 거냐 했더니 네? 존나 그게 무슨? 이런 표정으로 날 봐. 머쓱해져서 더는 못 물어봤는데 하여간 그 뒤로도 애가 연습을…… 솔직히 그 열정으로 뭔가 합법적인 걸 했으면 대충 뭐라도 이뤘겠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연습을 하더니 어느새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이제는 윤정한 하면 바닥에서 잘 알잖아. 아 그 실력 좋은 기계, 이러면서 그 쥐방울만 한 게 나름 유명하잖아. 그런데도 애가 그렇게 유명해진 것 치고는 재수 없게 굴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좀 희한하게 싸가지는 없지만 재수가 없진 않다. 아버지가 전설의 소매치기고 어머니도 뭐 전설이고 이제는 자기도 좀 유명해졌고 그러면 사람이 가오를 잡고 다닐 법도 한데 말이야 그러지를 않네. 물론 싸가지는 없지만…… 웃는 얼굴로 쌍 짓을 좀 하긴 하지만 그래도 선배들한테는 나름 싹싹하고 후배들도 잘 챙기고…… 어쩌다가 얘기가 여기까지 왔지? 아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교훈은 즉, 연습만이 살길이라는 것이다…… 라면서 선배는 지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혼자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하하 웃었다.

 

그런 얘기를 듣고서 얼마 안 있어 회사 사람들과 회식이 있었다.

 

그간 준비했던 작업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나누는 뒤풀이 자리였다. 삼겹살을 불판에 올려놓고서 주위에 앉은 선배들 말씀을 듣다가 문득 고개를 든 참에 지수는 맞은편 자리의 정한과 눈이 마주쳤다. 몇 주 동안 함께 일하면서 자주 얼굴을 보았음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너도 고생했다, 라고 정한은 말했고 지수는 시선을 사선으로 내리깔며 아니 사실 나는 별로 한 게 없어서, 라고 답했다. 몇 주 동안 함께 일을 도모하며 자주 얼굴을 보았음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맡은 소임이 제각각이어서 사전 준비 중에나 작업 당일에나 길게 말을 섞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한은 아…… 그래…… 중얼거리며 불판 위의 고기를 괜히 한 번 뒤집었다가 사방팔방에서 이 먹을 줄 모르는 애새끼가 아직 익지도 않은 걸 건드린다, 는 요지의 욕을 잔뜩 얻어먹고 뻘쭘한 표정이 되어 집게를 내려놓았다. 정한이 고개를 숙이며 눈을 깜빡이자 촘촘하게 난 속눈썹이 팔락팔락 움직였다. 지수는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그걸 가만히 보다가 무심코 예쁘다…… 고 생각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종종 해 온 생각이었다.

 

불판에서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뒤집어요? 라고 정한이 딱히 누구 한 사람을 지목하지 않은 채 불쑥 묻자 근처에 있던 두 명인가가 어어 그래 어서 뒤집으라고 그에게 말했다. 이제 겨우 고기의 한쪽 면이 익었을 뿐인데 테이블 가장자리에는 벌써 술병이 쌓여가고 있었다. 대부분은 아직 가득 차 있었지만 두어 병 정도는 빈 병이었다. 지수는 그에게 권해지는 술잔을 거절하지 못하고 조금씩 마시는 척하다가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을 때 태연하게 쏟아버렸다. 그러다가 세 번째 술잔을 비울 때쯤 우연히 정한도 줄곧 같은 방식으로 술을 버리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 하고 무심코 입을 열자 정한이 고개를 돌려 지수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 순간 정한은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 것 같았다. 눈도 입도 웃는 모양이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렇게 보였다. 갑자기 무언가의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 눈 속에 감춰져 있던 반짝반짝한 무언가에 흰빛이 탁 비친 것처럼. 불판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두 모금 마신 소주의 기운인지 정한은 눈 밑이 조금 붉었다. 시멘트를 바른 고깃집 바닥은 두 사람이 쏟아버린 술로 흥건했고 이미 거나하게 취해서 얼굴이 불콰해진 선배들은 어린 후배들의 잔을 채우는 일에만 열성적일 뿐 그 잔이 어떤 식으로 비워지는가에 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불판 위의 고기를 집개로 뒤적이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차례대로 일어섰다. 먼저 정한이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탈출했고 그로부터 십오 분 정도 뒤에 지수가 비슷한 요령으로 가게를 나섰다.

 

미리 짠 것도 아닌데 정한은 가게 근처의 편의점에서 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판의 파리한 불빛을 등지고 혼자서 어슬렁어슬렁하다가 지수가 가게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쪽으로 달려왔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 그냥 먼저 가버릴 참이었다며 핀잔을 주는 정한의 양손에 아이스크림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왼쪽에 누가바 오른쪽에 수박바. 하나를 고르라고 하기에 큰 고민 없이 누가바를 택하고 택한 것을 건네받았다. 포장지를 벗겨서 한 입 베어 물자 겉면의 초콜릿 코팅이 빠작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걷기 시작했다. 모퉁이를 끼고 큰길 쪽으로 방향을 꺾으며 야 너, 집이 어디냐고 정한이 지수에게 물었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별 대수롭지 않은 어조였다.

 

?”

 

되묻자 정한이 눈을 깜박거리며 다시 물었다.

 

집 없어?”

 

…… 없진 않지?”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

 

어딘데?”

 

서구.”

 

서구 어디?”

 

알아서 뭐 해?”

 

그냥 궁금하잖아.”

 

…….”

 

…….”

 

…….”

 

? 내가 빈집 털러 갈까 봐 그러냐?”

 

그런 건 아닌데.”

 

어차피 구역이 달라서 서구는 내가 못 털잖아.”

 

…… 그런가?”

 

그렇다면야 뭐…… 말해줄 수도 있지, 라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정한을 보자 정한은 입매를 오묘하게 비틀었다. 내가 무슨 아는 사람 집까지 탈탈 털고 다닐 사람처럼 보이느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었다. 진짜 웃겨, 라고 지수는 생각했다. 소매치기로 벌어 먹고살면서 빈집 털이 취급이 모욕적일 건 또 뭐야? 정한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별다른 대꾸는 못 하고 얼굴 근육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본인의 결백함 혹은 진실함 따위를 토로하고 있는 걸 거였다. 농담이야, 라고 지수는 정한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사는 집이 서구에 있든 중구에 있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니. 정한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큰길을 따라 걷다가 사거리의 횡단보도 앞에 다다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목적지도 없이 그저 얘가 가는 대로 계속 따라가고 있었다는 걸 지수는 그제야 깨달았다. 집에는 어떻게 가, 라고 정한이 지수에게 물었다. 아직은 버스가 다닐 시간이었고 지수의…… 아버지의 집 가까이 가는 버스의 정거장이 길만 건너면 바로 있었다. 그 집으로 돌아가도 되지만 굳이 당장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 말을 정한에게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수는 고민이 되었다.

 

혹시 갈 데 없냐.”

 

정한이 물었다. 지수의 머뭇거림을 그런 식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나랑 사택 갈래?”

 

사택?”

 

.”

 

너 사택 살아?”

 

.”

 

…….”

 

…….”

 

가도 돼?”

 

가도 되지. 가도 되니까 갈 거냐고 묻지.”

 

때마침 보행자 신호등에 푸른 불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별다른 얘기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보도블록의 가장자리에 드문드문 늘어선 가로등을 따라 5분 정도 가다가 골목으로 접어들어 코너를 세 번 돌았다. 정한에게만 익숙한 길이었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들이 다닥다닥 늘어선 빌라촌의 끄트머리에 목적지가 있었다. 저쪽에 갈색 건물 보이냐, 라고 묻는 말에 지수가 목을 쭉 빼고 두리번거렸다.

 

저쪽에 봉고차 서 있는 거 맞은 편에…… 보여?”

 

보인다고 대답했다.

 

저기 꼭대기 층 옥탑방이 거긴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옥상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해.”

 

얘기하는 사이에 건물 앞에 당도했다. 4층 높이의 낡은 빌라였다. 옥상까지 치면 5층이었다. 고개를 위로 젖히자 옥탑에서 스며 나온 흰색 불빛이 보였다. 지수가 말했다.

 

누가 있나 봐.”

 

말하자마자 당연한 얘기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누구든 있지.”

 

짧게 수긍하며 정한은 건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계단의 폭이 좁은 탓에 나란히 가지는 못하고 둘이서 일렬을 이루어 올라가야 했다. 층계참의 센서 등이 죄다 고장 난 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전구를 달아두지 않은 건지 계단을 오르는 내내 사방이 온통 어둠이었다. 조용했다. 3층을 지나 4층에 절반쯤 다다랐을 때 난간을 붙잡고 터벅터벅 걷던 정한이 하아아 한숨을 쉬었다. 내가 진짜 조만간 여기 나간다 진짜…… 다른 건 몰라도 엘리베이터는 꼭 있는 데로 이사하고야 만다면서 곧 죽을 사람처럼 헐떡거리는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정한이는 집이 없나?

 

휘청거리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자기 집이 없으니까 여기에 사는 거겠지…… 아닌가? 직접 가본 적이 없을 뿐 사택에 관해서라면 지수도 어느 정도 아는 바가 있었다. 갈 데 없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머무르는 곳, 바닥식구라면 누구든 원하는 만큼 묵어갈 수 있는 곳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말하자면 모두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집. 그런 식으로 아무의 집도 아니게 된 집. 사택…… 또는 숙소라고 하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그런 곳이 여기저기에 몇 군데인가 있다고 들었다.

 

마지막 층계참으로 올라서자 철문이 보였다. 허리를 푹 숙이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문이었다. 닫혀있었고, 키패드도 자물쇠도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정한이 문고리를 돌리자 쉽게 열렸다. 머리가 문틀에 닿지 않도록 조심조심 문을 통과하자 옥상이었다. 써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고 지나갔다.

 

사택 있어 본 적 있어?”

 

정한이 물었다.

 

아니.”

 

미리 말해두는데 좀 좁아.”

 

지수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얼결에 따라오고 말았지만 오래 있을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정한이 아니었으면 와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 넓지 않은 옥상을 가로질러 척척 걸어가는 정한을 물끄러미 보며 지수는 좀 전 사거리의 횡단보도 앞에서 정 갈 데가 없으면 나랑 같이 가자는 요지의 권유를 받은 일과, 거기에다 대고 대뜸 가도 돼?”라고 되물었던 일에 관해 생각했다. 사실 지수는 갈 데가 없지는 않았다. 멀쩡한 집이 있었고…… 온전히 지수 혼자서 사용하는 지수만의 방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가 지수에게 있어 꼭 돌아가야만 하는 곳인 것도 아니었다.

 

뭐 해?”

 

어느새 현관 앞까지 간 정한이 문고리를 쥔 채로 지수를 불렀다. 문은 벌써 절반 정도 열린 상태였고 안쪽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어두운 바닥을 부채꼴 모양으로 밝히고 있었다. 짝다리를 짚은 자세로 살짝 비뚜름하게 선 정한의 오른쪽 절반을 그 불빛이 적셨다. 파리한 형광등 빛으로 희끗희끗하게 물든 정한의 뺨과 이마와 코끝을…… 조금 피곤한 듯 보이는 눈가와 일자로 다물린 입매 따위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안 와? 라고 재촉하는 소리에 퍼뜩 놀라 걸음을 옮겼다. 정한은 눈치를 살피는 기색으로 지수의 얼굴을 힐끔 한 번 본 뒤에 그렇게 했다는 걸 숨기려는 듯이 발밑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현관을 등진 정한의 어깨 너머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텔레비전 소리 같았다.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가.”

 

지수를 먼저 안쪽으로 들여보내며 정한이 말했다.

 

지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했다.

 

 

 

 

#

 

지수의 허벅지 언저리 높이로 설치된 옥상 난간에는 누가 가져다 두었는지 모를 화분이 몇 개 있었다. 가로가 길고 세로가 좁은 직사각형 모양의 하얀색 플라스틱 화분이 두 개, 그 옆에 십 대 남자애들 머리통쯤 되는 크기의 황토색 토분이 줄줄이 여러 개. 그중에 말라비틀어진 무언가의 잔해라도 심겨 있는 건 두엇뿐이고 나머지에는 버석버석한 혼합토와 꽁초만 가득해서 화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재떨이에 가까워 보였다. 지수는 그 옆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서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두 개를 사면 하나를 더 주는 행사 상품이었다며 정한이 편의점에서 사 온 것인데, 정작 돈을 쓴 사람은 단 게 별로라면서 몇 입 먹고 나가떨어져 버렸다. 결국 투 플러스 원 도합 세 개의 초콜릿이 전부 지수 차지가 되었다. 나도 사실 단 걸 그렇게까지 엄청나게 좋아하진 않아…… 웅얼거리며 은박지를 벗기는 지수에게 정한이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깔깔거린 것이 바로 전날 저녁의 일이었다.

 

한낮이라 사택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바닥생활을 하는 바닥식구들이어도 날이 밝으면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했고 출근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성실하지 않으면 벌어 먹고살 수 없다…… 아니 성실해도 벌어먹기 힘든 마당에 게으르기까지 하면 어떻게 되겠어? 온종일 돌아다녀봤자 치킨 한 마리 사 먹을 돈도 안 벌리는 날이 허다한 팍팍한 세상이라고 투덜투덜하면서도 다들 매일 아침 본인의 전공 분야에 알맞게 시내 곳곳으로…… 번화가로 시장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전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부터 선배들을 따라 역 근처에 나갔다가 별다른 소득도 없이 점심때가 되어 옥탑으로 돌아왔다. 멸치국수라도 한 그릇씩 먹으러 가자는 선배들의 제안을 사양하고 무리에서 빠져나온 건 정한이 보낸 문자 때문이었다. 국밥 사가면 먹을래? 라는 물음에 먹을래, 라고 지수는 주저 없이 썼다. 아무래도 끼니로는 국수보다 국밥이 낫지 싶어서였다.

 

그렇게 정한과 정한이 들고 올 점심을 기다린 지 삼십 분 정도가 지난 참이었다. 아침을 과자로 대충 때운 탓에 배가 몹시 고팠다. 지수는 작게 부순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고서 저 아래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날이 맑아서 하늘이 파랗고 정수리로 쏟아지는 볕이 투명했다. 곧 그 투명한 빛을 어깨에 잔뜩 얹고 모퉁이를 돌아 걸어오는 정한의 모습이 보였다. 한쪽 손목에 비닐봉지를 걸고 양손으로 휴대폰을 만지고 있기에 누구랑 문자라도 하는 건가, 생각한 순간에 지수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나 이제 다 와 가는데

 

라는 문장이 화면에 나타났다. 정한이었다. 집에 마실 거 있어? 라는 메시지가 이어서 도착했다.

 

있을걸

 

답한 다음

 

위에 봐

 

라고 지수는 썼다. 검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조그마한 정한이 퍼뜩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았다. 먼 거리였음에도 정한이 막 얼굴에 웃음을 걸었단 걸 알 수 있었다. 야아아 하고 정한이 지수를 불렀다. 지수는 어어어 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택 또는 숙소 또는 옥탑 내지는 그냥 그 방, 따위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그곳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었다. 서류상의 소유주는 존재하겠으나 아무도 그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가스와 수도를 사용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고 전기가 끊긴 적도 없으니 누군가는 꼬박꼬박 공과금을 내고 있다는 뜻인데 거참 희한하다고 지수는 생각했다. 생각했지만…… 곧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는 정한의 조언이 제법 그럴듯하게 들려서였다. 바닥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그중 누군가는 돈이 엄청 많고 부동산도 엄청 많고 거기에 정도 의리도 재산만큼 많고…… 대충 그러한 맥락으로 이런 집도 존재하고 뭐 그런 거 아니겠느냐는 말을 하며 정한은 딱히 대수롭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래 머무를 마음은 요만큼도 없다, 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지수는 벌써 보름 가까이 사택에 있었다. 빈말로도 쾌적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분리된 방 하나와 거실, 주방, 욕조가 없는 욕실과 다용도실이 달린 1.5룸 옥탑방은 하루도 텅 비는 일 없이 항상 누군가의 숙소였다.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대여섯 명쯤 되는 식구들이 방과 거실과 주방의 빈 곳을 오가며 함께 생활했는데 보통은 일이 주 정도의 주기로 구성원이 바뀌었다. 하루 이틀 사이에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장기간 머무르는 사람이 드물어서였다. 그런 집에 정한은 벌써 이 년 넘게 살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걸 정한이 직접 말해준 건 아니고 오다가다 알게 된 바닥 선배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온종일 실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끊이지 않고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형광등이 꺼지는 법이 없는 곳. 집주인은 없고 내내 손님들만 가득한 집. 거기에서 지내는 동안 지수는 머리 위로 지나다니는 발소리에 잠을 설치지 않은 밤이 없었는데…… 정한이는 어떨까. 정한이도 밤중에 혹은 새벽녘에 쾅 쿵쿵 퍽 그런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깨어나곤 할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두 달도 아니고 이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매일 어떤 밤을 보냈을까 어떤 아침을 맞았을까…… 라는 게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궁금했지만 그걸 구태여 본인에게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노후화가 진행 중인 낡은 건물은 예상할 수 있는 부분에서 딱 예상되는 만큼 열악했다. 옥상에 달랑 한 채 지어진 공간이라 바닥을 제외하고는 어디와도 맞닿은 부분이 없어 겨울에는 열을 가둬두지 못하고 여름에는 반대로 고인 열이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지수는 아직 네 가지 계절을 다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정한의 이야기로는 그랬다. 환절기에는 진정한 의미의 냉골과 진정한 의미의 찜통을 한나절 주기로 오간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결로와 습기로 인한 곰팡이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린다고…… 또 수압이 시원찮은 것도 문제였다. 변기 물을 한 번 내릴 때마다 이거 이거 잘못하면 막히는 거 아니냐 싶은 마음에 긴장이 되었는데 그러다가 정말로 막혀버리는 일도 왕왕 있었다.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사택의 선배들은 제일 어린 녀석들부터 찾았다. 어이 누구누구야 와서 이것 좀 뚫어봐라, 라는 식으로. 그럴 때 눈치를 보다가 일어나는 건 대부분의 경우 정한과 지수였다. 그건 그러니까 대부분의 경우 정한과 지수가 그 집 식구 중 막내였다는 뜻이다. 요 며칠 동안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는 후배 하나가 거실과 부엌 사이의 애매한 공간을 점령하고 드러누운 지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뭔가의 이유로 가족과 대판 싸우고 집을 나왔다는 녀석의 광대 언저리에 아직 노리끼리한 멍 자국이 길가의 물웅덩이 모양으로 남아있었다.

 

요새 안 보이는 선배들이 많은 거 같아요.”

 

정한이 사 온 소국밥 2인분을 셋이서 나눠 먹던 중에 후배 녀석이 말했다. 다들 돈 벌러 나가서 없는 거 아니냐고 정한이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고 했다.

 

그 누구더라 성찬이 형이었나 아무튼 그 형도 그렇고 승연 선배도 그렇고 못 본 지 한참 됐어요. 여기 옥탑에도 요즘 많아봤자 대여섯 명이잖아요.”

 

겨울이 다 가서 그런 거 아니야? 날도 따뜻해졌고.”

 

잠자코 듣고 있던 지수가 대충 가설을 내놓았다.

 

그거랑 선배들이 요즘 안 보이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상관이 있겠지…….”

 

우물우물 머릿고기를 씹으며 말꼬리를 흐리자 후배 녀석이 뭔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냐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날이 풀리면 오히려 바글바글해진다고요. 누가 한겨울에 굳이 이런 옥탑 들어와서 살아요? 사택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

 

…….”

 

그런 거야?”

 

지수가 정한을 향해 물었다.

 

어어? 글쎄…….”

 

그런 거 같기도…… 아닌 거 같기도…… 라면서 정한이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는 동안 지수는 내내 태연한 표정이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차분하게 경악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면 예전에는 이 손바닥만 한 집에 대체 몇 명까지 들어와서 살았단 말인가? 대여섯 명도 이미 감당 안 될 정도로 바글바글하다는 게 지수의 생각이었다. 지난밤에도 그 전날 밤에도 다섯 명이 옥탑방 사택에 묵었다. 정한과 지수가 이 말 많은 후배와 함께 거실에 이부자리를 깔았고 하나뿐인 방은 선배 두 명이 사용했다. 오늘 밤의 숙박 인원은 또 몇 명이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지수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다들 바닥생활 청산한 걸까요?”

 

후배가 다소 침울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해요. 요즘에는 어딜 가나 벌이가 시원치 않다잖아요. 정한이 형은 실력이 좋으니까 그리고 또 워낙 알아주는 기계니까 같이 작업하자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고 이렇게 우리 점심 사줄 돈도 벌고 그러는 거죠. 저 같은 건 선배들 따라 나가서 몇 시간을 쏘다녀도 지폐 한 장 볼까 말까란 말이에요. 근데 이런 존나게 절망적인 현실이 비단 저에게만 닥친 게 아니고요, 진짜 요즘 우리 바닥식구들 다…… 아니 막말로 지수 형은요? 형은 이번 주에 깝지 몇 개 털었어요?”

 

…….”

 

…….”

 

저 자식이 가만히 있는 사람을 막 때리네…… 라고 봄볕처럼 보송보송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지수는 이제 막 국물을 떠올린 정한의 숟가락에 고기를 한 점 놓아주었다.

 

 

 

점심 식사를 해결하고 다시 거리로 나갈까 선배들의 연락을 기다려 볼까 하다가 간만에 사우나나 하러 가자는 이야기가 되었다. 배부르고 뜨끈한 것을 먹었더니 졸려서 못 참겠다는 후배를 거실에 재워 두고 지수와 정한은 빌라촌을 벗어났다. 느긋한 걸음으로 이십 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정한이 종종 간다는 찜질방이 있었다. 지수도 몇 번인가 선배들을 따라가 본 적 있는 장소였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에서 무료한 얼굴로 수건을 개고 있던 직원이 정한에게 아는 체를 했다. 두 사람분의 이용료를 지불한 뒤 탈의실 사물함 열쇠와 수건을 받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몸을 씻고 나온 뒤에 뜨끈한 방에 들어가 앉았다. 그렇게 땀을 빼고 나니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속이 허전했다. 야 출출하지 않냐, 어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계란 하나씩 먹을래? 소시지도 먹을래? 하면서 둘은 나란히 더운 방을 나섰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신중한 손놀림으로 계란 껍질을 제거하기 시작한 지수의 옆에 정한은 모로 누웠다. 내용을 알 수 없는 연속극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일 이어서인지 애매한 시간대 때문인지 찜질방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

 

껍질을 다 벗고 매끈해진 캐러멜색 맥반석 계란을 정한에게 먼저 하나 건네주고 지수는 바로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그걸 골똘한 시선으로 지켜보다가 정한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근데…….”

 

.”

 

내가 생각해도 좀 그런 거 같아.”

 

뭐가, 라고 지수가 묻자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사람이 없는 거 같긴 해.”

 

대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하자마자 아까 그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거구나, 라고 지수는 알아차렸다. 날이 풀렸는데도 여전히 대여섯 명이라는 인구수를 유지 중인 옥상의 사택과 말없이 종적을 감춘 선배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지수는 한 손에 계란, 다른 손에 소시지를 들고 한 입씩 번갈아서 먹으며 자신이 알고 지내는 바닥식구들의 얼굴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정한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규모의 인맥일 거였으나 그래도 나름 여러 명 있었다. 그중 몇 명과는 얼마 전에도 마주쳤다. 또 다른 몇 명과는 이러저러한 용건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게 꽤 최근의 일이었고 그 몇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러게 잘 모르겠네. 누구누구 말마따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식구들이 지수의 주위에도 있기는 했다. 그들이 깨끗하게 손을 털고 이 바닥을 떠난 건지 그동안 지은 죗값을 치르러 교도소에라도 들어갔는지 아니면 다른 구역으로 옮겨 가서 아직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지 혹은 종목을 바꾸어 또 다른 바닥의 일원이 되었는지 지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정한이라면 나보다는 많이 알겠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심코 정한을 보았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을 옆에 두고 있으려니 어쩐지 입을 떼기 어려웠다. 너 지금 무슨 생각해? 라고 그럼에도 지수는 거의 물을 뻔했다. 바닥을 떠난 식구들이 죄다 어디로 갔는지 너도 궁금해? 아니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 라는 물음은 목소리가 되는 일 없이 혀 밑에 숨겨졌다. 정한은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수면실에서 눈을 붙인 뒤 한 번 더 몸을 씻고 바깥으로 나오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었다. 낮에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던 도중 대로변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재작년쯤 소매치기 현행범으로 검거되어 일 년 남짓 징역을 살고 돌아온 선배였는데 사실 지수보다는 정한에게 더 반가운 얼굴일 거였다. 간단하게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어디에 가느냐고 묻기에 사택으로 돌아간다, 고 정한이 답하자 선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는 어떻게 아직도 거기에 살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에 관해 아무런 부연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정한은 그저 웃는 낯으로 물었다.

 

누나는 요즘 어디 계세요? 이 근처 살아요?”

 

? ?”

 

그냥 궁금해서요.”

 

…….”

 

왜 그렇게 봐요?”

 

…….”

 

누나 진짜 그러지 마요. 저 상처 받아요.”

 

정한이 입꼬리를 내리며 섭섭한 말투를 하자 선배는 농담이야 농담 하면서 와하하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정한과 지수를 번갈아 보며 나는 지금 서구 쪽에 살고 있다고, 어찌어찌 연이 닿아 꽃집이면서 카페면서 인테리어 소품 샵이기도 한 작은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주소를 알려줄 테니 시간이 될 때 언제든 놀러 오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다음에는 셋이서 길 한복판에 선 채로 요즘 날씨가 어떻고 계절이 어떻고 세월이 참 빠르고 어쩌고저쩌고하며 뭐랄까 중요하고 핵심적인 무언가가 쏙 빠져나간 빈껍데기 같은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나누었다. 정한은 평소보다 목소리가 한 톤 높았고 유난히 많이 웃었다. 그건 지수나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 자리에서 벗어날 타이밍만을 가늠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에 지수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불편했지만…… 그게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정한을 보았다가 선배를 보았다가 다시 정한을 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손뼉을 마주치고 중간중간 아아오오와아따위의 추임새를 넣는 식으로 바쁘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결국 바닥이라거나 식구들이라거나 소매치기그리고 전과따위의 단어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서 그 대화는 끝이 났다. 선배와는 짧은 눈인사를 나눈 후에 헤어졌다.

 

먼저 뒤를 돌아 멀어지는 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큰길을 따라 걷는 내내 정한은 조용했다. 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진이 빠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옆에서 지수도 조용히 걸었다. 괜히 신경이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거리의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정한의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왔다. 조금 전에 헤어진 선배가 보낸 메시지였다. 두 사람은 보도블록의 가장자리에서 머리를 맞댄 자세로 그걸 함께 읽었다. 우연히 마주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고 선배는 썼다. 길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던 게 아쉬웠다면서 자신이 일하는 가게의 위치를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좀 더 느긋하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놀러 오라는 말이 아주 빈말은 아니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수는 조금 기뻤다.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메시지에 적힌 주소를 자세히 읽어 보니 지수에게 익숙한 동네였다.

 

 

나 여기 어딘지 대충 알 것 같아.”

 

말하자 답장을 적어서 보내던 정한이 눈썹을 올리며 지수를 보았다.

 

진짜?”

 

, 서구잖아…….”

 

해놓고서 전에 얘기했다시피 나도 실은 서구에 산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튼 다음에 같이 놀러 가면 되겠다, 가서 커피도 좀 팔아주고 수다도 좀 떨고 그러고 돌아오면 되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횡단보도를 건너 대로변을 지나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골목을 따라 드문드문 놓인 가로등 아래를 걷다 보니 갈색 벽돌로 외벽을 장식해 놓은 4층짜리 낡은 빌라가 보였다.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얼른 들어가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일찍 자자, 라고 정한이 지수에게 말한 참이었다. 머리 위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폭력적인 소음이었다. 지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어딘가에서 남자 몇 명이 욕지거리를 하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목소리는 곧 한 명의 것이 되었다. 무언가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게 옥상의 사택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걸 지수는 곧 알아차렸다. 정한도 같은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허겁지겁 입구를 통과하여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러다가 2층과 3층 사이의 층계참에 다다랐을 때 우당탕 소리를 내며 내려오던 사람들과 딱 마주쳤다. 거의 한 덩어리가 되어있었으나 두 명이었다. 몸집이 큰 남자가 씩씩거리며 다른 한 사람을 우악스럽게 잡아끌고 있었다. 목덜미를 붙잡힌 채로 아오 씨발 좀 놓으라고 욕을 하고 있는 쪽은 분명 낮에 옥탑의 거실에 재워두고 온 후배였다. 정한이 깜짝 놀라서 후배의 이름을 불렀다. 곧 지수도 합세해서 거의 비명처럼 이름을…… 그렇지만 그다지 큰 위력은 없는 목소리였다. 한 덩어리가 되어 옥상에서 내려온 그들은 여전히 한 덩어리인 채로 정한과 지수 앞을 지나쳐 순식간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수 혀엉 저 괜찮아요 저 괜찮은데 이 씹새끄악…… 외치는 후배의 목소리만이 메아리쳐서 들려왔다.

 

……뭐야?”

 

어안이 벙벙해져서 지수가 물었다.

 

쟤네 형.”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해 놓고서 정한은 터벅터벅 남은 계단을 마저 올라갔다. 마지막 층계참을 지나 옥상으로 나갔다. 옥탑방의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지수는 정한의 뒤를 따라서 걷다가 정한이 현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정한의 옆에 섰다. 열린 문 안쪽으로 거실이 훤히 보였고 그 옆으로 방문도 반쯤 보였다. 온갖 난리를 다 쳐놨는지 집안이 난장판이었다. 바닥에는 한쪽 다리가 처참하게 부러진 좌식 테이블이 나동그라져 있었고 그 근처에 텔레비전이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뭔가를 던졌는지 거뭇거뭇한 파편들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지수는 입을 조금 벌리고 그걸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정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정한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원래도 하얀색인 얼굴이지만 거의 푸른빛이 돌 정도로 더더욱 하얀색이 된 얼굴로 몇 걸음 안쪽의 아수라장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때 거실 옆에 달린 방문이 벌컥 열렸다. 회색 추리닝 차림의 남자가 방에서 나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그대로 화장실 쪽으로 사라졌다. 방 밖에서 무슨 사달이 났든 나지 않았든 일말의 관심조차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지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어서 누구야? 라고 정한에게 물으니 정한이 남자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누구누구 선배…… 라면서 어딘가 조금 맥이 풀린 목소리였다. 잠시 후 안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문을 벌컥 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이쪽으로 쿵쿵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 윤정한이.”

 

부른 다음 남자가 말했다.

 

변기 좀 어떻게 해라.”

 

그러더니 또 막혔다 또 막혔어 하이고 이놈의 거지 같은 옥탑방 성한 곳이 없네 어쩌고저쩌고 투덜거리면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

 

…….”

 

이런 씨발……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도. 지수는 한 손으로 허공을 더듬어 정한의 옷자락을 찾아 쥐었다. 정한이 고개를 돌려 지수를 보았다. 정한과 눈을 마주치며 지수가 차분하게 말했다.

 

정말 좆 같아서 안 되겠어.”

 

…….”

 

…….”

 

뭐라고?”

 

정한이 눈을 깜빡거리며 얼떨떨하게 물었다. 다시 한 번 말해줄래라면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지수는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다른 데 가자.”

 

다른 데 어디?”

 

…….”

 

…….”

 

우리 집 갈래?”

 

…….”

 

우리 집 가자.”

 

그런 다음 정한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정한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옥상을 가로질러 옥상 문을 통과하여 계단을 내려갔다. 조금 전에 지나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가는 형태로 정한과 함께 주택가의 어두운 골목을 벗어났다. 큰길가를 따라 얼마간 이동한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오 분 정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그걸 타고 또 이십 분 정도 말없이 앉아서 갔다. 버스는 정류장마다 멈추어 서며 그다지 빠르지 않은 속도로 전진했고 지수는 앞좌석의 등받이에 붙어 있는 한의원 광고를 읽으며 집 근처에서 본 곳이로군……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보름 가까이 돌아간 적 없는 집에 정한과 돌아간다, 라고 생각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왔다면 그래서 지수가 없는 빈집을 보았다면 분명 연락이 있었을 테니까. 보름 전 마지막으로 봤던 그대로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을 것이다. 지수는 정한에게 빌려줄 여분의 옷가지와 세면도구, 잠잘 때 사용할 침구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부족한 건 단지로 들어가는 길목의 편의점에서 고르면 될 것이고 그 김에 오늘내일 먹을 것도 같이 사면 좋을 것이다…… 계획을 세우는 사이에 버스는 부지런히 달려 목적지 근처에 다다랐다. 지수는 서둘러 정차 벨을 누르고 잠시 후 정한과 함께 내렸다.

 

편의점에 들러서 살 것을 사고 집을 향해 걸어갔다. 정한은 생필품과 먹을 것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었고 지수는 2리터짜리 생수 두 병을 품에 안았다. 너는 어떻게 여기 살면서 우리 구역까지 와서 작업을 했냐, 라고 정한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자가용이 없으면 이래저래 삼십 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다. 그러게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지수는 답했다. 언제부터 여기 살았냐, 모르겠어 한 육칠 년 됐나, 그럼 그전에는 어디에 살았냐, 그런 걸 왜 물어봐, 물어볼 수도 있지, 넌 맨날 그런 거 궁금해하더라, 그런 게 뭔데, 어디 사냐 어디 살았냐 어디 살 거냐, 내가 언제 그랬어, 너 그랬어, 안 그랬어, 그랬어, 안 그랬어……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 앞이었다.

 

지수가 사는 집은 완공 23년 차 복도식 주공 아파트의 3층 끄트머리였다. 15층짜리 건물이었으므로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별로 높은 층이 아니어서 계단을 이용해도 됐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집 앞에 도착해서는 키패드 커버를 위로 젖히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숫자 네 개를 하나하나 천천히 누른 다음 정한을 돌아보며 봤어? 외웠어? 라고 물었다. 정한은 왠지 석연하지 않은 표정으로 지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지수는 잠금이 해지된 문고리를 돌려서 열며 정한에게 비밀번호를 가르쳐주었다. 한 번으로는 부족할까 봐 두 번 일러주었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외웠냐, 외웠으면 한번 말해보라고 정한을 재촉했다.

 

고작 네 자리의 숫자였다. 집중해서 되뇔 필요도 없을 거였다. 정한은 잠시간 머뭇거린 끝에 지수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그대로 지수에게 읊었다. 그러자 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아 그거 까먹지 마, 라고 했다가 곧이어 아니야 까먹어도 돼, 까먹으면 나한테 다시 물어보라고 고쳐 말했다. 정한은 알았다고 대답했고 두 사람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거실을 바라본 방향으로 뒤축이 닳은 갈색 구두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지수는 아무렇지 않게 그 옆에 신발을 벗어두었는데 정한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수의 신발이라기에는 너무 컸고 또 너무 낡아 있었다. 거실 불을 켜고 베란다 쪽으로 향하던 지수가 아직 현관에 머물러 있는 정한을 보고 다시 현관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구두를…… 지금 이 집에 없는 사람의 낡고 헤어진 신발을 덥석 집어들어 신발장에 넣어버렸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들어와, 라고 지수는 말했다. 정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수가 하라는대로 했다.

 

집안은 고요했다. 지수는 거실과 베란다의 창문을 열었다. 초봄의 써늘한 밤 공기가 밀려 들어와 오랜 시간 고여있던 낡은 공기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지수는 정한과 편의점에서 사 온 라면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휴대폰을 만지다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정이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누가 어디에서 잘 것인가에 관해 소소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정한은 거실 소파에 누워 자도 괜찮다고 아니 오히려 소파에서 자고 싶다고 말했지만 지수가 극구 반대했다. 방이 두 개 있고 그러므로 침대도 두 개인데 왜 굳이 두 명 중 한 명이 소파에서 자야 한단 말인가? 손님을 그런 식으로 처량하게 재울 수 없다, 는 것이 지수의 입장이었다. 결국 정한은 지수의 방에서 지수는 아버지의 방에서 자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두 사람은 따로따로 잠잘 채비를 했다.

 

이전에 빨아 놓고 한 번도 쓰지 않은 커버를 베개에 씌워 내어 주며 지수는 정한에게 잘 자라고 인사했다. 정한은 어쩐지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고마워 지수야 너도 잘 자…… 라고 마주 인사해주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늦은 시간에 난데없이 문이 벌컥 열리는 일도, 머리 위로 누군가가 쿵쿵 소리를 내며 지다 다니는 일도 없이 평온하게 밤이 지나갔다. 캄캄하고 조용한 밤이었다.

 

 

 

이튿날 오후가 되어서야 지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천장이 보였고 다음으로 도넛 모양의 형광등 언저리에 창틀의 형태로 네모나게 묻은 흰색 햇빛이 보였다. 그곳이 평소 아버지가 사용하는 아버지의 방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자신이 지난밤에 정한을 데리고 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도. 커튼을 치지 않은 유리창을 통해 오후의 온화한 볕이 스며들고 있었다. 손을 뻗어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와 읽지 않은 문자의 알림이 여러 건 있었다. 두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자정 무렵에 누워서 거의 바로 잠들었으니 하루의 절반 이상을 내리 잔 셈이었다. 지수는 천장을 향한 자세로 멍하니 누워있다가 곧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나갔다.

 

거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혹시 정한이 벌써 일어나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방문을 열고 살짝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천장을 향한 자세로 얼굴만 이불 밖으로 빼꼼히 내놓고서 새근새근 자는 걸 보니 마음이 약간…… 그랬다.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다. 지수는 까치발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 옆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정한아, 정한아, 하고 두 번 이름을 부르자 정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얇은 눈꺼풀 아래로 동그란 눈동자가 도르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정한아, 이제 일어나.”

 

하며 어깨를 살살 흔들자 정한이 눈을 떴다. 잠시간 혼란스럽게 이곳저곳을 오가던 시선이 마지막에는 지수에게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에 지수는 정한의 두 눈이 거짓말처럼 투명해지는 걸 보았다. 막 잠에서 깨어난 정한은 덜컥 겁이 날 정도로 무구하고 무방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떤 잠은 혹은 어떤 꿈은 누군가를 그런 얼굴로 만들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지수는 난생처음 알게 되었다. 어째서인지 마음이 가라앉았다. 확실한 형태와 질량을 지닌 기묘한 온기가 뱃속 깊은 곳을 가만히 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수는 무심결에 두 손을 꽉 쥐었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조금 괴로웠다. 정한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지금 몇 시야?”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로 정한이 물었다. 지수는 시계를 확인한 다음 이제 세 시가 다 되어간다고 대답해주었다.

 

거의 열다섯 시간을 잤네.”

 

말한 다음 정한은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잘 잤어?”

 

여전히 조금 정신이 없어 보이는 정한에게 지수가 물었다. 그러자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있던 정한이 몸을 모로 돌려 이쪽을 향하더니 잘 잤어, 잘 잤는데…… 이상한 꿈을 꾸었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라진 식구들이 사는 동네에 갔다. 안 그래도 그런 동네가 있다는 얘기를 전에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데 누워 있다가 문득 그 생각이 나는 거야. 그래서 한 번 찾아가 봤어. 진짜로 그랬다는 말이 아니라 꿈속에서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그런 꿈을 꾼 거지. 사라진 식구들이 사는 동네가 있고 거길 찾아가는 꿈. 아무튼 그 동네에 가서 보니까 성찬이 형도 있고 승연이 누나도 있고 아 그 사람들이 누구냐면 너도 아나? 예전에 나랑 같이 사택에 꽤 오래 있었던 선배들인데 요즘에는 연락이 뚝 끊겨서 종적을 알 수가 없게 됐거든.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문자를 해도 답장이 없고 건너건너 소식을 들었다는 사람도 없고 말 그대로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감쪽같이…… 그랬는데 사실은 다들 그 동네에 모여 살고 있었다는 거야. 너무 반갑고 안심이 되고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그래서 대체 왜 아무도 나한테 연락을 안 하냐,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버리냐 그렇게 물어보니까 다들 뭐라 뭐라 대답을 해. 근데 전혀 안 들리는 거야. 소리가 안 들린다는 게 아니라 뭐랄까 언어가 달라. 한국말인 것 같긴 한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해서 그냥…… 알았다. 됐다. 잘 있는 거 봤으니 됐다 하고 되돌아 나왔어. 그러면서 알게 된 건데 그 동네에는 아무래도 바닥식구들만 모여서 사니까…… 온 주민들이 경력이 있는 소매치기니까 거기서도 남의 깝지를 털면서 살아. 다른 일은 안 해 그냥 깝지만 턴다. 그렇게 모두가 모두의 깝지를 털고 모두가 모두에게 깝지를 털리고웃기지 않냐. 다들 그렇게 웃기게 사는 동네였어. 나도 거기로 이사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이상하게 사람들이랑 말이 안 통해서…… 말이 안 통하면 거기 살아도 혼자 외로울 거 아니야. 그러니까 안 되겠다 진짜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면서 그 동네를 등지고 걷는데 또…… 너무 속상한 거야. 다들 어떻게 저렇게 자기 살 곳을 찾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어떻게 다들 그렇게 갈 데가 있지 가고 싶은 곳이 있고 살고 싶은 곳이 있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는 그런 거 하나도 없는데. 사실 어디로든 갈 준비는 되어 있거든 나는 되게 예전부터 그런 상태였고 당장 내일이라도 떠나려면 떠날 수 있어. 꼭 챙겨야만 하는 중요한 것도 별로 없고 짐이라고 해봤자 옷 몇 벌이랑…… 진짜 다 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뿐이거든 그런데 정작 가고 싶은 곳이 없어.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 그 제일 중요한 것이 없다 정말로 속상하다……

 

했는데 갑자기 어 그러고 보니 아까 거기서 지수를 못 봤네 그런 생각이 들어. 그럼 지수는 어딨지 그런 생각. 아마도 그때 네가 나를 불렀나? 꿈에서 말고 지금 이 방에서 네가 나를 불러서 그 목소리를 잠결에 듣고 그랬던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순간에 딱 네 생각이 났고 그래서 불현듯이 알았다 아 이거 다 꿈이구나. 참 그랬지 사실 나는 지금 지수네 와있고 지수 방에서 자고 있지……

 

그러면서 눈을 떴더니 네가 보였어.

 

그냥……

 

그랬다고.

 

……

 

얘기 끝.

 

 

 

 

#

 

점심 겸 저녁으로 뭔가 따뜻하고 든든한 것을 먹자는 말이 나와서 이것저것 후보를 꼽다가 결국에는 또 국밥을 먹기로 했다. 대신 어제 소국밥을 먹었으니 오늘은 돼지국밥으로. 빠르게 후루룩 한 끼를 해치우고 나서 두 사람은 사택으로 갔다. 두고 온 물건들을 챙겨오기 위해서였다. 혹시 지금 사택에 누가 있는 건 아닐까…… 있어도 뭐 상관은 없지만 이왕이면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갔다. 옥상에 도착해서 옥탑방 문을 열어보니 현관과 신발장에 신발이 몇 켤레 없고 집은 텅 비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후 여섯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다들 출근한 모양이었다. 꼭대기에서 떠드는 사람들이 없으니 건물 전체가 조용했다.

 

현관 안쪽으로 들어가자 얼추 정리되어 있는 거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완벽하게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바닥에 나뒹굴던 텔레비전이 제자리로 되돌아가 있었고 박살난 좌식 테이블도 대충 수습이 되어 벽면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지수가 거실에서 휴대폰 충전기와 읽다 만 소설책 몇 권, 벗어서 개켜두었던 옷가지들을 종이 가방에 넣는 동안 정한은 지수가 빌려준 백팩을 들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챙길 것들이 있었지만 주된 목적은 옷이었다. 이제 날이 푹해져서 입을 일 없는 두꺼운 패딩은 그대로 두고 간절기용 긴팔 티셔츠와 바지를 몇 장 골라 정한은 거실로 나왔다.

 

필요한 거 다 챙겼어?”

 

하자 정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는 정한의 가방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게 다야?”

 

그런 다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서 가서 옷장을 뒤적뒤적 헤쳤다. 두꺼운 겨울 니트가 걸려 있는 옷걸이와 얇은 반팔 상의가 포개어져 있는 서랍 안을 가리키며 이거 네 옷 아니야? 라고 정한에게 묻자 맞다고 내 옷이라고 정한은 대답했다.

 

겨울옷은 일단 두더라도 여름옷은 가지고 가지.”

 

아니야 됐어.”

 

몇 주 지나면 순식간에 더워질 텐데.”

 

괜찮아.”

 

…….”

 

?”

 

여름옷 가지러 다시 올 거야?”

 

그러지 뭐.”

 

…….”

 

너는 챙길 거 다 챙겼어?”

 

지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럼 가자.”

 

말한 다음 정한은 지퍼의 동그란 고리를 당겨 백팩을 닫았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조금씩 녹여 먹으며 지수의 집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어슴푸레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오늘 너무 많이 자서 이따 잠이 오려나, 라고 정한이 말하기에 당연히 오지, 라고 지수는 답해주었다. 가만히 누워서 눈 감고 있으면 어느 순간에는 잠이 와, 에이, 진짜야, 아닐 것 같은데, 진짜라고…… 그런 대화를 두런두런 나누면서 나란히 걸어갔다.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에는 보통 기승전결이라고 해야 할지 일관된 흐름 같은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밑도 끝도 없었다. 예를 들어 서로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너 그런데 샌드위치가 왜 샌드위치인 줄 아냐, 햄버거는 왜 햄버거인 줄 아냐,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햄버거 좀 비싸지 않아? 그런가? 비싼 데로 가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라는 주제로 한참 열을 올리다가 그건 그렇고 요즘 정말 어딜 가나 벌이가 시원치 않다고 하더라…… 다들 정말 힘들다고 하더라 햄버거 세트 하나 사 먹는 것도 부담이 될 정도로…… 라는 식으로 난데없이 숙연한 분위기가 되어 맥락 없는 대화 끝에 맥락 없는 침묵이 찾아오곤 했다. 큰길을 벗어나서 지수네 아파트 단지 안으로 접어들었을 때쯤 두 사람은 바로 그런 무맥락적 침묵에 빠져 있었다. 아직 새순을 틔우지 않은 앙상한 가로수 아래를 말없이 걸으며 지수는 정한의 가벼운 백팩에 관해 생각했다. 12일의 짧은 여행을 가더라도 그것보다는 짐이 많을 것 같았다. 오래 있어도 되는데…… 아니 오히려 오래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안 되겠지, 라고 지수는 생각했다. 정한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두 사람이 향하고 있는 그 집은 지수가 사는 지수의 집이지만 지수만의 집이 아니고 설령 지수만의 집이라고 해도 달라지는 건 그다지 없을 것이다. 슬프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생각하며 걷는 사이 두 사람은 지수네 아파트 건물의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랐다. 버튼을 누르고 1을 향해 하나씩 줄어드는 빨간색 숫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정한이 불쑥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

 

…….”

 

뭐가?”

 

탁한 알림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덜커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두 사람은 탔다. 3층의 버튼과 닫힘 버튼을 연달아서 누른 다음 뭐가, 라고 지수는 한 번 더 물었다. 뭐가 맞아? 그러자 정한이 말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잠이 온다고 했잖아.”

 

.”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

 

…….”

 

너희 집은 조용하고 따뜻하니까 그리고 침대는 푹신하니까 정말로 눈 감고 가만히 있으면 잠이 올지도…….”

 

3층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는 멈추었다. 정한이 한발 먼저 내려 앞서 걷기 시작했다. 신발 밑바닥이 바닥과 마찰하며 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지수는 그로부터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정한이 현관 앞에 당도하는 모습과 왠지 눈치를 살피듯 지수를 돌아보는 모습을 그리고 머뭇거리며 키패드의 커버를 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 다음 지수는 정한의 손끝이 움직이는 궤도를 시선으로 좇았다. 조금의 어색함도 주저함도 없이 정한은 지난 밤 지수가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일러준 네 개의 숫자를 차례차례 눌렀다.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

 

말하며 정한은 집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