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에 쏟아 쬐는 빛이 가지각색이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잔상처럼 남았다. 웅성거리며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 사이에서도 발걸음을 무겁게 가져가던 그는 조명으로 둘러싸인 광장을 빠져나와 어두컴컴한 골목을 택했다. 밑창 사이사이에 살얼음이 끼어 미끄러웠다. 코끝을 잡아당기는 차가움이 있었다. 두 손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고개 들 것도 없이 제 존재를 알리듯 물방울이 하나둘 하늘에서 뛰어내렸다. 남자는 주위를 살펴보다 근처에 버려져 있던 우산을 얼른 주워들었다. 살이 부러진 우산은 적당한 비는 막아주었지만, 시야를 가리지는 못했다. 정한은 어느 지점에서 뚝 발을 멈추었다.
낡은 전신주에 발자국이 묶였다.
가로등이 차마 비추지 못한 전신주의 그늘에는 그곳에 기대어 쓰레기를 이불 삼은 외부인이 잠들어 있었다. 비가 외부인의 눈꺼풀을 잡아끌어 올려 보려고 해도 물에 데어본 적 없는 것마냥 외부인은 굳건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아직 손에 숨결이 닿지는 않아서 생사를 알기는 어려웠다. 정한은 헛기침을 욱여넣고 그 자리를 지나치기 위해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푹 파인 바닥을 채운 웅덩이 속의 빈 깡통이 요란하게도 밭 끝에 채였다. 정한은 곤란한 듯 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굴러간 깡통이 외부인의 늘어진 손에 닿았다.
단잠을 깨웠을까 놀라 들여다보면 인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한은 재빠르게 그것이 시신 상태라 판단했다. 그가 스스로 되돌아보면 자신은 심성은 적당히 나쁘고 마음은 따뜻한 시민이지만 이런 것 하나하나 신고할 의무까지는 없고, 괜히 엮였다간 이미 팔릴 대로 팔린 얼굴이 오십 프로 세일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마저도 의심해보면 함정, 여차하면 제 모가지가 날아가는 신기한 구경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눌어붙은 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녹슨 이음새가 정한의 발목을 꿰찼다. 비유적 표현이라기에는 발목 잡힌 느낌이 선명했다. 그는 외부인을 보았다. 달싹거리는 입술이 평범한 습관이 아닌 단순한 의무감에 채워진 행동 같았다. 외부인은 드디어 제 입 밖으로 말을 출력했다. 정한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외부인의 눈동자에는 정한이 비치지 않았다는 것만을 깨달았다.
정한은 그를 집안 아무 곳에나 내려놓았다. 업자니, 지구를 짊어진 기분이 들고, 다리를 끌고 데려오자니 수상해 보일뿐더러 그다지 윤리적이지도 않았다. 결국 왼팔에 그를 얹고 옮겼다. 다시 죽은 듯 잠든 외부인의 옆에 드러누운 정한은 제 선택을 벌써 후회하고 싶었다. 그런 구두로 얼마나 걸은 거야. 엄청나게 닳았던데. 중얼거리던 그는 엎어진 몸을 일으키지 않고 옆으로 굴러 바닥에 볼을 뭉갰다. 울림이 오는 휴대폰을 집어 귀에 댔다. 번호를 흘깃 보던 정한은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여보세요, 지금 휴대폰 주인 없어요. 위치 찾기 서비스를 원하시면 1번, 이대로 통화를 종료하길 원한다면 2번을 눌러주세요.
짧은 역정 후 끊긴 휴대폰을 저 멀리 밀어 두고 정한은 몸을 일으켰다. 외부인을 덮은 이불에서 숨소리 하나 흘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꺼워서 그런가, 숨쉬기 불편하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틈 사이로 빠져나온 손을 발견했다. 그의 왼 손목에는 상처가 있었다. 그것을 완벽하게 상처라 칭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구태여 다른 말로 지칭하자면 파손이라 부름이 옳았다. 그는 머릿속을 엉켜든 가설을 뱉었다.
어쩌면 이 외부인은 인간이 아니다.
홍지수랑 닮아도 너무 닮았는데. 정한은 눈동자를 샅샅이 굴려 그를 훑었다. 팔에 대부분이 지워지고 조금 남은 사인이 있었다. <xxshua>. S의 앞에 알파벳이 더 존재하는 듯했는데, 이미 오래되고 비에 젖어 반 이상 번져 지워진 상태로는 유추가 불가능했다. 대신 그는 나머지 문자를 느지막이 읽었다. 여러 번을 발음해본 결과, 한국식으로 치환했을 때 ‘슈아’ 정도의 발음이 되었다.
가동 코드가 입력되었습니다.
가동 코드? 호기심에 소리가 들린 쪽으로 이불 끄트머리를 잡고 들춰보던 정한과 외부인의 눈이 마주쳤다. 너무 놀라 정적에 비명조차 먹혔다. 외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상황을 위협으로 판단하고 긴급 가동 정지 상태로 들어갑니다. 기존 가동 코드는 입력하실 수 없으며, 긴급 가동 정지를 풀고 싶으시다면 제작자의 이름을 말해주세요.
아냐, 아냐, 아냐. 잠시 멈춰 봐!
눈을 뜨자마자 쉼 없이 조잘대던 그것이 그의 말에 뚝 멈추었다. 바닥에 누운 채 큰 눈동자를 굴리며 정한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정한과 눈을 마주치고서는 제 복부 위에 손을 모아 올려놓은 채 느지막이 입꼬리만 둥그렇게 말아 미소만 지었다. 정한은 글을 읽기 위해 잡았던 손목을 놓았다. 그대로 몸을 비틀어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겹친 시선이 일직선으로 맞았다.
그것의 눈이 정한을 분해하려 들었다.
그것의 손은 정한의 손을 한 움큼 쥐었다.
정한은 손을 빼내지 않고 도리어 잡아당겼다. 그것은 정한의 손을 타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동안에도 그의 눈을 뻔히 감상하고 있었다. 숨결이 섞일 거리까지 닿았으나 적막했다. 어떠한 것에는 엇갈리는 소리가 났다. 오로지 정한만이 숨을 들이마시며 내쉬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있지 않았다.
정한은 어느 새부터인가 그를 그것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제 왼 손목을 보더니 다른 엄지로 그 사인을 문질러 지웠다. 정한이 보는 앞에서 긁어냈다. 그는 여러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것에게 내뱉는 말은 물음이 아니었다. 심증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로봇?
그것은 턱을 괸 채 고민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무슨 의도로 움직이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고개를 위쪽, 아래쪽, 왼쪽,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고민했다. 얼마 후 그것은 정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리얼 넘버 3012-95, 제품명은 조슈아. 반가워요. 인간형으로 제작된 인공지능 로봇입니다.
…정말 단순히 로봇이라고?
로봇은 단순하지 않아요. 인간만큼 복잡한걸요.
정한은 믿을 수 없는지 제 뺨을 꼬집었다. 아픈데. 열이 남은 볼에 손바닥을 문댔다. 그런 그와는 다르게 외려 그것은 태연한 낯이었다. 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못 믿으시면 제 왼손을 빌려드릴 수 있어요. 손이 3개면 가위바위보 하나 빼기에 절대적으로 유리할걸요.
아, 믿지. 믿고야 말고. 그러니까 손을 뽑는다는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 마. 도대체가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절 만드신 박사님한테서요.
박사란 작자가 있는데 누가 널 쓰레기장에 버려뒀어?
그것은 바로 답을 하지 않고 먼저 정한과 악수하고 떨어졌다. 입꼬리를 당겨둔 채 변함없던 낯짝으로 가려두었던 제 왼 손목을 내보였다. 아까 전 긁힌 사인의 아래에는 덮개 하나가 들어갈 만한 빈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거침없이 손가락을 넣어 그 안의 전선들을 헤쳤다. 인간으로 치면 그건 핏줄 아니냐? 핏줄을 그렇게 막 만져도 돼? 우르르 쏟아내는 정한의 말을 한 귀로 흘려내는 듯하던 그것은 타버린 부품들을 몇 개 뜯어내고 나서 그들이 몸담고 있던 자리를 보여주었다. 금이 간 부품 위 흔적이 팔의 흉터를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손상과 부서진 신체 부위를 들먹이며 자신의 상태를 쭉 늘어놓았다. 다만 정한이 로봇에 관해 직접 접해본 거라고는 진료 대기 중 읽어본 과학잡지가 전부일 뿐이라 흥미 있게 듣지는 못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만 모아두어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심한 외상으로 메모리 대부분을 소실. 현재 단편적인 기억만 존재함.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기억상실?
그렇죠, 그렇죠.
그럼 누가 이런 건지는, 아니. 물어봐도 모르겠지?
그의 입이 닫힘과 동시에 그것이 손을 뻗어 막았다. 네, 알 수 없어요. 정한은 코앞에 다가온 손바닥을 찔렀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인간의 피부와 별다를 것 없는 감촉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런데도 체온을 느낄 수 없어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은 동그랗게 눈뜬 그를 지켜보았다.
이름을 알려주세요.
왜? 나 수상한 사람 아냐. 아. 아닌가? 내가 장담할 수는 없지.
무언가의 정보라도 등록하지 않으면 아까처럼 위협 대상으로 판단되어 제가 당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어서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
나 곧 죽어?
농담이에요.
네 머리를 열어보든 박사 머리를 열어보든 해야겠다.
투덜거려보던 정한은 그것과 시선을 교환하다 분위기에 못 이겨 이름을 읊었다. 윤정한. 윤이 성씨고 정한이 이름. 그것은 정한의 말을 듣더니 환히 웃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괜히 쑥스러워진 정한이 답변을 미루고 있을 때 그것은 인사 후에 바닥 틈을 살살 긁고 있어 정한은 결국 그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것의 눈이 손 방향에 따라붙은 정한의 눈과 마주쳤다.
윤정한 님.
싫어.
듣고 좀 거절하세요. 제 목에 있는 게 보이십니까?
그것은 목 위를 덮은 제 옷깃을 열었다. 쭉 뻗은 목에 길게 늘어진 상처가 있었다. 몇 가닥 끊긴 선이 대체 피부와 맞물려 움푹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전혀 아픈 기색이 없었다. 그는 문득 그것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한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심한데. 치료가 시급해 보인다.
네, 그래서 박사님이 필요해요. 어느 정도 파손이 있어도 체제는 돌아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이 부분은 당장은 고치지 않으면 가동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사실이 곡해되어 보이기도 하죠.
로봇 역시 상처를 상처라 말하는구나 싶었다. 그러기를 몇 분, 그것이 말을 끝내고 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래서, 윤정한 님이 도와줄 거라 믿습니다.
내가?
주워왔으니 책임을 지셔야죠.
그는 눈 옆을 벅벅 긁었다. 주된 생각의 흐름은 몇십 분 전의 일을 후회 중이었다.
나 진짜 형편없는 남자거든. 남을 돌볼 여력이 안 돼. 그래서 말인데 혹시 스스로 나갈 생각은 없니?
밤이 추워요. 이대로 나가서 얼어버리면 어떡해요.
너 로봇이 무슨 추위 타령이야.
박사님이 절 찾고 계실 거예요. 도와주세요.
순간 정한은 말을 멈추었다. 도와줘. 그 사람의 목소리와 다를 바 없다는 착각을 했다. 정한은 오 분간 더 말을 줄였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나 제 목에서 목도리를 건져내 그것에게 둘렀다. 그리고는 퍽 진지한 투로 말을 이었다.
미리 말해둘게. 난 이것저것 다 취급하는 브로커지만, 누굴 도와주는 일은 선뜻 할 마음이 없어. 대신 지금부터 네 말을 의뢰로 받아들일 거야.
이뤄만 주신다면 갚을게요. 지금만 빚지겠습니다.
넌 한 푼도 없어 보여서 안 돼. 박사는 돈 많아?
많이요. 정확한 액수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 정도는 할 거예요.
박사의 재산을 묻는 그에게 그것은 금방 기억나는 만큼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정한은 0의 개수를 보자 새끼손가락을 내밀고 그의 새끼손가락에 걸었다. 약속. 이 행위로 약속하는 건가요? 너 로봇이라면서 아는 게 되게 없다. 사실, 계약서를 쓰실 줄 알았어요. 그의 눈이 또 굴러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빡빡하게 구는 거 안 좋아해. 실은 로봇이랑 계약해보는 건 처음이고, 후불로 받는 것도 처음이라. 내 맘 가는 대로 할 거야.
정한 님을 만나서 다행이네요.
인간과 비인간의 시선이 한데 묶였다. 엄지가 부딪혔다. 얻고자 하는 인간과, 잃지 않고자 하는 로봇. 어쩔 수 없는 합의 하 동거가 시작됐다.
어, 나야. 윤정한. 찾고 싶은 게 있어서. 사람 하나면 돼.
전화부스 내부에 기댄 정한은 늘어뜨린 전화선을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꼬았다.
무슨 박사라던데. 이름이 기억 안 난대. 그치. 일단 박사 이름 단 적, 인공지능이든 아니든 로봇 만들어 본 적 있으면 다 리스트에 모아봐.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 수화기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 했다. 접합부가 닿는 순간 잘못 맞물리는 소리가 나며 맞지 않았다. 정한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의 윗부분에 휴대폰이 고정되어 있었다. 아, 맞다. 수화기와 휴대폰을 감싸놓은 테이프의 접합 부분을 손톱으로 긁어낸 후 수화기만 다시 걸어놓았다. 이건 나름 그들과 그의 컨셉이었다. 그는 전화부스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좋았다. 문을 한 겹 열고 빠져나와 집으로 오면 조슈아가 리모컨을 소중히 쥔 채로 제 귀 옆에 두고 있었다.
네가 하는 일은 흥미롭지 않은데, 그걸 하는 너는 되게 흥미롭다. 뭐해?
리모컨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어요. 혹시나 좋은 정보가 있을까 싶어서요.
걔가 뭐라고 하는데?
대화가 불가능해요.
그만하자. 조슈아.
정한이 보내는 손짓에 따라 조슈아는 리모컨을 두고 다른 것을 들었다. 집에 공구함이 있었던가. 그것은 영문 모를 상자에서 공구를 꺼내 들어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에 제 팔을 두고 이곳저곳을 손대보고 있었다. 의자를 하나 끌고 와 앉은 정한은 조슈아의 반대쪽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이번에는 또 뭐야. 혼자 고쳐보는 중?
응급처치예요. 오늘 토스트를 해 먹다가 빵 안에 부품이 들어갔는데 찾질 못했거든요.
보트, 너도 토스트 같은 거 먹을 수 있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닐 텐데…. 대부분은 당신 주려고요. 먹을래요, 정한?
네 조각으로 잘라놓은 토스트. 시나몬 파우더를 뿌리고 찔러 넣은 포크를 그의 입에 댔다. 정한이 토스트를 받아먹는 동안 조슈아는 드라이버를 놓고 구조를 들여다보았다.
조슈아는 그를 정한이라고만 불렀다.
반대로 정한은 그것의 이름을 다양하게 불렀다. 오늘처럼 앞글자를 생략하여 슈아야, 보트야, 라고 부르는 것처럼. 조슈아는 말할 필요도 없고, 보트는 로보트를 줄인 애칭이라고 우겼다. 조슈아는 물 위를 떠다니는 것을 먼저 떠올렸지만, 그는 자신이 부르는 호칭에 개의치 않는 듯했다.
이렇게 된 것은 다 어느 기점을 지나고서였는데, 동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개체는 필요한 정보 공유를 위해 서로에게 신상을 가지고서 시험을 냈다.
귀찮으니까 OX 형식으로 해. 지는 쪽은 오늘 침대 바깥쪽에서 자기. 중간에 서술형 하나 넣어도 되나요? 나도 주관식 넣을 거야, 그럼.
결과는 윤정한 칠십 점, 조슈아 칠십 삼점. 그날 정한은 침대 모서리에 누워 잠들기 전,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너 내가 어딜 봐서 재벌집 혼외자식으로 보이냐? 박사가 드라마를 많이 봤나 보네. 정한은 박사님이 절 부르는 호칭 답변에 다섯 개는 더 써놨잖아요. 다 내가 앞으로 부를 호칭만 붙여둔 거라서 그래.
만난 날부터 상태가 엉망진창이었던 조슈아는(손을 댈 수 있는 부품은 전부 정한과 합심하여 박박 닦았다. 다음날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한을 닦달하다 조슈아의 손가락 부품이 떨어진 이후로는 그것이 부르면 그는 째깍째깍 움직였다.) 지금 이 상태로는 멀리 나갈 수 없으므로 정한과 함께 근처만 돌아다녀 보거나 방금과 같은 상황처럼 홀로 고쳐보며 지냈다. 설명서가 있다면 한결 편할 텐데 바보 박사님. 이따금 불만을 쭝얼거리기도 했다.
다행히 녹슨 맛이 나지는 않는 토스트를 씹은 정한은 또 울리는 휴대폰을 잡아 귀에 댔다. 발신자가 안부를 묻기도 전에 정한의 낯이 일그러졌다. 입안에 있던 따가운 것을 테이블 위로 뱉었다. 그것의 어깨에 머리를 세게 박고서 조슈아를 밀었다. 표정이 빠르게 짜증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와중에도 조슈아는 신기해했다.
야, 조슈아야! 이런 게 왜 있냐!
전 부품을 찾았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로봇이 뭐 이렇게 교활해. 여보세요? 용건만 간단히 해. 입안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애.
정한은 통화 내내 조슈아의 목을 감싸고 느리게 문질렀다. 통화 맥락을 들어는 보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응급처치를 끝낸 조슈아는 정한이 기대지 않은 쪽의 손만을 움직여 그가 뱉은 부품을 닦았다. 전화를 끊은 정한을 보며 그것이 나긋하게 물었다.
지금도 많이 아파요? 입안을 봐 드릴까요?
됐어. 일어나, 보트야. 오늘 들릴 데가 많다.
조슈아는 손바닥을 하늘 위쪽으로 펼쳤다. 그대로 어깨를 좁혔다가 힘을 풀었다. 정한이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비뚤게 웃으며 조슈아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너 으쓱하지 마.
하라고 가르쳐 준 거 아니에요?
내가 괜한 걸 가르쳐줬어.
적절한 때에 흡수해서 사용한 거죠. 정한이 가르쳐 준 대로.
스펀지밥 나셨어, 진짜.
박사 얼굴은 기억나?
설마 찾았어요?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고, 감별해보러 가는 중. 없으면 다시 처음부터 찾아야지.
그런가요.
짧게 말을 끊은 조슈아는 그 심리를 보여주듯 제 상체를 조인 안전벨트를 꽉 눌렀다 펴기를 반복했다. 정한은 핸들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 차의 서랍을 뒤졌다. 새어드는 햇살과 구겨놓은 표정을 보아 조슈아는 정한이 무엇을 찾는지 빠르게 짐작했다. 화를 부리기 일보 직전인 그를 가만히 보다 시트와 목 뒤 사이로 불쑥 손을 넣었다. 차가 비틀거리다 다시 안정을 유지하자 조슈아는 그의 몸을 타고 올라간 뒤통수에서 그에게 거꾸로 매달린 선글라스를 꺼내 전달했다.
방금 되게 바보 같았는데. 알죠.
정한이 조슈아와 지내며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그것은 제법 표정이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그와 비슷하게 능청스럽게 굴 때도 있고 이처럼 쉽게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감정이 있는 사람처럼. 차를 세우고 나서 정한이 선글라스를 슬쩍 내리면, 조슈아가 콧잔등에 미끄러진 선글라스를 가져가 써보았다. 어울려요? 역시 내가 더 잘 어울린다. 어으, 절대 아닌데요. 정한은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만 속삭대는 누군가의 말소리를 무시했다. 그것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람을 닮아있다고.
고치는 건 네 전문이지? 나 좀 도와줘.
고객님은 항상 날 어렵게 해. 혹시 내가 경찰인 건 기억하고 있죠?
전직 경찰이잖아. 한두 번 도와준 것도 아니면서. 쩨쩨한 쫌생이.
아무리 돈 내는 고객이라도 형은 안 봐주고 싶다.
얼굴을 맞대고 한참을 입씨름하던 두 사람은 조슈아가 그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을 떼어놓고 나서야 일단락되었다. 조슈아의 엉망인 팔을 보고 비명을 지른 그 남자는 정한을 쫓아내고 조슈아를 작업실로 보이는 곳으로 데려갔다. 짐짓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는 자신을 정한이 아는 몇 없는 지인이자 엔지니어라고 소개했다. 이름을 불러주는 그를 따라 그것은 따라 그의 발음을 따라 해보았다. 그의 성씨를 발음하기 위해서는 입술을 쭉 내밀면 되었다. 정한의 성씨만을 부른 적은 잘 없지만, 그도 그렇게 발음이 나겠거니 싶어 조슈아는 흥미를 느꼈다. 그새 간식을 사 들고 온 정한은 그것을 들여다보던 엔지니어의 옆에 앉아 사탕을 물었다.
상태는 어때?
심하네요. 누가 악의적으로 뜯어놓은 것 같이…. 최근에 생긴 파손도 아니고. 심하게 싸운 적 있어요?
그걸 얘한테 물으면 어떡해. 우리 보트 상처받아.
물어본 건 너잖아. 너 때문에 어이가 가출하고 나서도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윤정한.
내가 어이에게 자유를 찾게 해준 거지.
엔지니어는 그를 잠시 노려본 후 여러 파손 흔적을 살펴보며 설명을 거듭했다. 그동안 정한은 제 몸을 양옆으로 흔들거리며 말없이 조슈아를 부르고 있었다. 아파? 그것은 정한의 조용히 속삭인 모양을 읽었다.
아프지 않아요.
야, 넌 내가 조용히 말해줬는데도 그걸 다 그렇게 크게 소리 내서 말하니.
또 말해주시면 음량을 낮춰볼게요.
정한이 무어라 더 말하기 위해 입을 더 열면 엔지니어가 그를 밀어내고 말을 걸었다.
조슈아 씨, 외부손상을 메꾸는데 부족한 부품은 이쪽에서 충당해드릴게요. 그런데 시스템과 직결된 문제까지는 제가 해결하기는 곤란해서….
이해해요. 따로 해결하겠습니다.
그렇죠? 목도리하고 다니기 불편한 거 아니까, 일단은 급한 목덜미부터 해결할게요. 잠시 대기해주세요.
엔지니어는 조슈아를 간이침대로 안내하고 할 일 없이 입가를 만져대던 정한의 팔을 끌었다. 그가 아무 곳에나 앉자, 엔지니어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내가 그렇게 전문가는 아닌 거 알지? 상태 보니 함부로 열기가 무섭다.
박사 이름 같은 건 못 봤어?
어째 제작자 이름이 죄다 보이질 않네. 일부러 깊은 곳에 넣어놨거나 없앴거나. 전자면 심장 위치 부품 같은 중요한 곳에 있으려나 싶어.
잘했어, 역시 할 땐 해준다니까. 그래서, 또 다른 건?
부소장이 형 주라더라.
엔지니어가 던져준 종이를 읽고 정한은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 밑으로 터졌다. 이건 네 점심 메뉴 고민 흔적인데. 그는 정한에게서 종이를 뺏어 들고 다른 종이를 던졌다. 정한은 그걸 받고서 휴대폰과 종이를 번갈아 보며 무언가를 입력했다. 그 행위가 끝나자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종이를 불태웠다. 엔지니어는 턱을 괴고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곧 한숨을 쉬었다.
그때 너도 올 거지?
내 것도 있어?
너도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이만 간다.
어디로 가?
정한은 라이터를 의미 없이 켰다.
글쎄.
그는 매번 이런 식으로 답하곤 했다.
슈아 너 나 몰래 꼬리 옵션도 추가하고 왔어?
아, 충전해주신 거예요. 빼고 와야 했는데.
너는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 아니야. 됐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이목을 끌던 큰 상처가 사라지자 서 있는 그것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얼굴이었다. 그 밑으로 이전 상황을 잇대는 흉터와 같은 흔적을 보자 정한은 눈썹이 비틀렸다. 저 멀리서 엔지니어가 피곤한 얼굴로 걸어오고 있으면 조슈아가 선을 건넸다. 정한은 고의로 흉터에 시선을 던졌다.
이거는 못 지워?
나 엄청난 전문가 아니라니까? 이 정도만 해도 기적이야, 기적. 나 부승관 기적을 행하셨네다.
투덜거리는 엔지니어를 두고 조슈아와 정한의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요. 이번에는 윤정한이 조슈아의 입 모양을 맞혔다.
주소가 뭐 이리 찝찝해.
정한은 받아든 서류를 팔락댔다. 귀에 꽂아두었던 펜을 꺼내 주소 위에 선을 그었다. 인적이 드물고 좁은 골목, 한구석에는 전소 후 방치된 건물이 있었다. 차에서 내린 정한은 트렁크를 뒤졌다. 주위를 관찰하고 있던 조슈아의 시야가 두 개의 원형을 제외하고 꺼졌다. 팔을 말아 제 얼굴을 덮은 것을 만져보던 조슈아가 정한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몸을 틀었다. 이거.
탈이에요?
그래. 이거 아까 걔한테 빌려온 거니까 소중히 다뤄. 참고로 넌 지금 문어야.
왜 쓰는 건데요?
이미 잘 팔린 얼굴 덜 들키려고.
그의 말과 조슈아의 관찰 결과에 따르면 둘은 전신주의 옆에 서 있었다. 문어와 닭의 인형 탈을 쓴 채였다. 조슈아는 문어를 뒤집어쓰고 선글라스를 낀 닭의 모습을 한 정한을 보았다. 여러 번 해보았던 것인지 정한은 자연스러운 자세로 전신주에 기대고는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섰다. 문어 조슈아가 움직임을 헤아리려 삐걱대는 사이, 골목 끝에서 세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선글라스 둘, 맨눈 하나.
기록 완료했어요.
인형 탈을 쓴 두 개체를 보고 세 사람은 제각기 반응을 보였다. 흠칫 놀랐지만, 다시 몸을 움직여 걸어오거나, 이 모습이 외려 신기하게 느끼는지 발걸음이 빨라지거나, 놀라지 않은 척 뻣뻣하게 걸어오는 이 하나. 정한이 그들에게 다가가는 동안 조슈아는 주위에 시선을 주었다. 그에게 들었던 자신이 쓰러져 있던 공간의 구조 같았다.
정한은 가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더 물어볼 건 없지? 가방 이리 줘.
이번에는 정확하지?
몇 번을 묻는 거야? 윤정한보다 내가 정확하고 빨라. 일 년 전 그 자식 잘못된 정보로 칼 맞고 나서 잠수 탄 거 못 들었어?
말없이 대치하던 상황 속에서 선글라스를 다시금 고쳐 쓴 남자가 가방을 건넸다. 그 안을 들춰본 정한이 주머니에서 쪽지를 던졌다. 받은 남자들이 의심쩍은 눈으로 물러나고, 정한은 다시 휴대폰을 두드렸다. 한 손으로 문자를 두드리던 정한은 문득 주위가 허전했다.
보트야, 어디 갔어.
여기요. 정한.
야. 너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문틈 사이 탈이 낀 상태로 건물 안을 둘러보는 조슈아가 있었다. 탈을 벗은 정한이 조슈아의 어깨를 잡아 내렸다. 순순히 바닥에 앉은 조슈아의 어깨에 고개를 들이민 정한이 같이 안을 보았다.
모든 게 다 타버렸어요. 사고였나요?
여기 주인들이 저지른 거야. 자료란 자료는 몽땅 없애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죽었더라. 불이 나기 전부터.
정한은 그것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인간과 닮았지만 로봇이다. 조슈아는 이 광경을 보고 사실을 인식할 뿐이다. 상황에 맞는 반응을 판단할 수는 있겠으나 돌연 감정이 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따져보면 박사의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없는 정한 자신도 로봇은 아닐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것은 안으로 한 발짝 제 몸을 들였다. 정한도 자연스레 따라 들어갔다.
정한이 찝찝한 주소라고 말한 게 이곳 때문이었나요?
여러 가지로. 이곳에서 찾고 싶은 사람이 있기도 하고, 찾을 수 없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찾고 싶은 분은 특별한 사람인가요?
그다지.
그렇다면 찾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의 표정이 잠시 굳었으나 조슈아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당신은 그럴 사람 같지 않아요. 당신에게 특별하지 않으면 관심을 두지 않을 사람 같습니다.
그냥 그 인간 얼굴이 궁금해서 그래. 벌써 일 년이 지났지만.
인간은 어렵네요.
더 있기 싫으니까 이만 나가자. 어려운 사람 나가신다.
정한. 선글라스 하나. 맨눈 하나.
그가 고개를 돌리면 두 남자가 아까 전 정한이 받았던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정한은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리고선 걸어가 손을 맞잡았다. 빨간 머리 남자는 선글라스를 내리고 조슈아를 보았다.
정한이 형 친구?
새로운 직원은 아닌 거지? 우리 자리도 부족해.
그런 거 아냐. 사정상 잠시 같이 지내고 있는 거지.
손을 저은 정한과 조슈아의 맞은편에는 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조슈아가 판단하기에 정한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왼쪽, 나이가 같아 보이는 쪽이 오른쪽에 있었다. 흐르는 대화의 분위기와 언뜻 읽은 간판으로 추론해보면 그들의 정체는 ‘돈을 주면 무엇이든 해결해오는 곳’이란 것에 가까웠다.
소장 최승철, 부소장 호시.
대화에 낄 일이 없던 조슈아가 명패에 눈독을 들이자 빨간 머리의 그가 수줍지만 진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들을 나풀거릴 때마다 손에 낀 다양한 반지들이 덜그럭거렸다.
제가 사실 호랑이예요.
그렇구나. 몰랐어요.
그럴 일 없지만 믿지 마세요. 저 친구가 호랑이를 좋아해서 마음대로 지었어요. 쥐띠인데.
옆 남자의 폭로 아닌 폭로에 전원 꺼진 로봇(조슈아는 스스로 이런 비유를 써도 될까 싶었다.)처럼 기가 죽은 남자는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서류 더미를 정렬하던 정한이 조슈아의 눈앞에 손가락을 튕겼다.
잘 봐. 조슈아. 네 기억에 단편적으로라도 남은 인간이 있으면 말해줘야 해.
알겠습니다. 시작해요.
그들은 조슈아의 답에 따라 분류 작업을 거쳤다. 후보에서 제외된 이들의 서류는 바로 파쇄기에 넣고, 비슷한 정보를 가진 신상들이 있으면 한군데로 몰아 빠르게 스캔하는 조슈아에게 넘겼다. 처음에 잘 도와주던 정한은 종이에 베여 피가 난 이후로는 그 핑계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끝을 보이지 않던 분류 작업이 도착지점에 다다랐으나 조슈아가 말하는 박사와 비슷한 자는 보이지 않아 전부 사기가 뚝 떨어져 정한을 따라 쉬었다. 이내 소파에 드러누울 기세던 정한은 피가 난 제 손가락을 감싼다고 구겨 쥐고 있던 종이에 눈길을 주었다. 이면지를 쓴 줄 알았으나 한구석 미묘하게 이름과 사진이 보였다. 그 인물을 알아채는 순간, 정한은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도 박사였지. 서류를 손에서 떼어내 조슈아에게 넘겼다.
그것만 보고 별 소득 없으면 집에 가자. 보트야.
이 사람이에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정한을 포함한 세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조슈아의 달라지지 않은 표정을 보자 정한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서 턱 막히는 숨을 참았다.
그 박사가 아까 불이 났다던 연구실의 주인이야.
인간이었다면 꽤 충격에 빠졌겠지만, 로봇인 조슈아는 창조주의 죽음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물론, 잠깐 그것의 언어 프로그램이 멋대로 가동되지 않는 일도 있었기는 했다. 말하고 싶으나 목소리가 뜻대로 나오지 않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갔다. 피가 묻은 서류를 계속해서 쥐고 있던 조슈아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오히려 저보다 격한 반응을 보이는 정한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는 인간이고, 자신은 감정을 잠근 수도꼭지와 같으니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는 것을 이미 판단한 후였다. 조슈아가 깊게 생각해야 할 쪽은 박사가 없는 이상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이며 그가 없는 이상 새로운 복구 방법도 마련해야 했다.
그동안 정한은 나머지 두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처리는 잘했지?
엄, 응. 근데 형 신뢰를 이렇게 떨어뜨려 놔도 되나?
속는 놈들이 멍청이지. 표면적으로는 잠수 상태이니 이름 걸고는 뭘 할 수가 없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확보해두었던 가방을 열었다. 돈이 가득 차 있었다. 정한은 눈대중으로 돈을 세보고선 일부를 꺼내어 그들의 앞으로 내놓았다.
이번 대금이야. 진전 없어?
일대 CCTV가 다 고장 나서 찾기 힘든 거 알잖아. 네 기억도 확실치 않고.
…알겠어. 그럼 그놈의 보물찾기는 어때.
곧 할 건 확실해. 중요한 건 상금 말고도 그 이후에 시연회가 잡혀있어. 새 프로젝트 결과물이라고 해서 큰 관심은 두지 않았는데, 이제 와선 이게 다른 말로 들린다. 둘이 같은 연구소 출신이었거든.
세 사람의 눈길이 잠시 그것에게로 돌았다가 제 위치를 찾았다.
잘 안 내키기는 하는데, 의심해달라고 발악을 하는 수준이네. 잠입해서 한탕 좀 쳐봐야 알겠지. 위치, 장소. 잡다한 사항들 미리 보내줘.
쟤는 어쩔 거야?
그 녀석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정한은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뱉지 못했다. 그것에게 동정은 아닌 다른 의미의 감정이 든 탓이었다.
이것저것 정보를 받고 나온 두 개체는 차에 탔다. 조슈아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다. 정한이 그것의 시야에 손바닥을 내밀고 흔들고 있으면 그제야 웃었다.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정한. 여전히 저를 도와줄 건가요?
손가락 걸고 약속했잖아.
그럼 거리낌 없이 제안할게요. 제 기억을 되찾아야겠어요. 그러니 당신이 간다는 곳에 같이 가고 싶어요.
진심이야?
정한은 사람을 찾고 싶어 하고, 이 일대라면 그 연구실의 유일한 생존품이자 그곳에 쓰러져 있기도 했던 제 기억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제 마지막 가동시간과 정한의 기억이 일치하기에 말하는 거예요.
그럼 네가 날 도와주게 되는 거잖아.
인간들이 홀로 공상에 빠질 때와 가깝게 만든 몸 상태에서 여러 가능성을 따지고 내린 다양한 판단 중 가장 제일 나은 선택이니 빚지는 거로 생각하고 나중에 갚아주세요. 약속.
장난스럽게 위아래로 비뚤어지는 그것의 미소를 보고 정한은 같이 손가락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네가 남긴 것이 있을까 싶었다. 이 불청객의 동료를 찾고자 했다. 구석에 울퉁불퉁한 천으로 제 몸을 감싼 사람이 있었다. 천 사이로 언뜻 보인 낯이 너와 닮아서 헛것을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만 말았다. 그는 이런 날씨에 추운 맨발이라, 생사확인도 하지 않은 채 제 구두부터 벗었다. 신기 좋게 돌려두고 나서 멀어지려는 의식의 끈을 잡아 밖으로 나갔다.
그 사람이 설마 조슈아였을까?
물음에 답도 받지 않은 채 끝났다. 정한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다. 깼어? 그냥 계속 깨어 있었어요. 왜? 목이 신경 쓰여요. 잠시만 보자. 조슈아가 누운 채 공구함을 끌어오는 그를 보며 의문을 가졌다.
왜 울어요?
우리 둘 중 아무도 우는 사람 없는데?
태연한 어투. 조슈아는 저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정한의 눈을 읽어내려 했다. 정한의 건강 상태가 별로예요.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봐. 조슈아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손이 그것의 목에 닿았다.
울음은 참는 건 안 좋아요.
잔소리 대마왕 로보트.
심장 없이 심장 소리를 엿들을 수 있는 곳. 그것에게도 분명히 맞물림이 존재했다.
참으면 안 아파요?
너 참 궁금한 게 많나 보다.
부품이 맞닿으며 내는 소음이 심장 박동과 닮은 것 같았다. 쿵, 쿵, 쿵. 이것은 그것에게서 샌 것이 아닌 제게서 들리는 소리였다. 정한은 눈앞의 목덜미에서 미미하게 벌어진 틈을 찾았다. 손톱이 단면에 닿으면 조슈아가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가 묻는다.
아파?
글쎄요.
정한은 조슈아가 집어주는 대로 받아 손을 움직였다. 그것의 뺨에 살아있는 정한의 머리카락이 붙었다. 눈동자가 그쪽으로 굴러갔다. 그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박사님을 다시 볼 수 없겠죠.
조슈아의 읊조림에 목에 손을 대고 있던 정한의 손이 그것의 입꼬리를 잡아 내렸다가 올렸다 움직여댔다. 이끄는 대로 따라가 주던 조슈아가 그에게 또다시 눈을 돌렸다. 정한의 눈동자가 두어 번을 여닫는 동안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사랑 나랑 닮았던데 난 어때.
정한은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있는데 없는 척.
정한은 그것의 뒤통수를 끌어안고 제 손으로 흉터를 덮어보았다. 당연하게도 덮이지 않았다. 별로네. 혼잣말하던 정한은 눈을 감고 그저 웃었다. 조슈아는 품에 파묻혀도 숨 가쁜 기색이 없었다.
관심 끄는 걸 좋아하고, 성격이 좋진 않은데 모질지 못하고, 의심도 잘하는 사람.
조슈아 넌 나를 너무 잘 알아.
고작 이걸로요?
일부는 전체가 되기도 하잖아.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정한은 다시 손을 뻗어 그 안을 메우려 했다. 조슈아의 새 살을 채우고자 했다. 그것은 정한의 어깨에 기댔다. 그를 안는 한동안, 이 진동이 멈추질 않아서 조슈아는 오류를 의심했다.
정한아. 눈이 오고 있어.
완전히 그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차가워. 눈이 닿은 손바닥을 문지르던 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 남자의 팔목에 보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정한의 시선이 제대로 꽂혔다. 눈에 보인 관심을 거두려는 노력도 없었다. 그 역시도 입술이 양옆으로 밀리며 미소를 만들어냈다. 팔목이 서로 닿았다. 윤정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는 고장 난 라디오 같았다. 음절마다 잘려 귓속을 찢는 기분이었다. 뒤늦게 들려오는 것은 다른 이의 물음이다.
정한이 항상 끼고 다니는 거잖아요. 주는 거예요?
팔목에 염주 팔찌를 대보던 정한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안에서 널 잃어버려도 한 번에 찾아야 하니까. 조슈아는 완전히 찬 팔을 하늘 쪽으로 들어 보였다.
받아서 기뻐요. 정한이 준 선물이라서 그렇겠죠?
선물은 누가 줘도 기쁘게 받는 거야.
그러면서도 헛웃음을 짓는 그를 눈여겨보았다. 그에게 조슈아의 말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그것의 이름을 불렀다. 조슈아. 길은 이쪽이야.
예상보다는 인간들이 바글거리지는 않네. 다 아는 얼굴들인 데다가, 나머지는 시연회 때 전부 올 생각인가?
그렇다고 가면은 벗지 마세요. 답답해도 참아요.
반쯤 비틀린 그의 가면을 조슈아가 똑바로 씌웠다. 제 얼굴을 잠시 맡겨두었던 정한은 빈손에 쥔 불안감을 메꾸려 가면에 붙어있는 깃털을 매만졌다. 조슈아가 눈치를 채고 손을 잡아 왔다. 손마디를 그것의 손으로 채웠다. 오늘 날씨 춥던데. 손은 데우고 왔어? 제 손바닥을 눌러보던 조슈아가 정한의 옆에 붙어섰다.
발열 기능은 정비 중이라 아직 불가능해요.
그런 기능이 있어? 그 박사도 참 괴짜 같은 면이 있네.
때맞춰 타이머가 울렸다.
보물찾기 시간입니다.
정한은 무의식적으로 가면을 머리 뒤편으로 넘기려다 조슈아의 낯이 생각나 손을 멈추었다. 조슈아의 발자취를 졸졸 쫓는 대신 그것이 저를 발견할 수 있도록 모두가 본인이 신경 쓰일 정도로만 어지르며 다녔다.
참가자가 찾아야 하는 보물은 돈뭉치, 가짜 시민은 마피아라는 명칭 아래 돌아다니며 시민을 방해하고 밤이 오면 시민을 죽여 움직임을 제한한다. 마피아 게임 비슷한 거네. 소장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든 감상이었다. 정한 팀의 목적은 상금 찾기와 프로젝트 결과물 탈취. 각자 행동하지만 연결된 통신기로 서로가 정보를 나누는 중이었다.
열심히 서류 더미를 뒤지는 척 결과물을 찾던 정한의 뒤에서 말소리가 그의 등을 찔렀다.
약사가 하나 들어왔다고 하던데. 잘못 알았나 봐요. 도둑 아닙니까?
불신쟁이들 고치는 약은 있지. 한 통 줄 테니 드셔볼래?
됐습니다.
현명해. 죄 없는 약사 그만 의심하고 본인 목숨이나 걱정하면 좋을걸. 저놈들이 진짜 죽일지 어떻게 알아.
남자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한은 그가 자리를 떠났겠거니 여겼다. 그는 손을 옮겨 품에 넣어둔 미끼 종이들을 꺼내 물건 사이사이 숨겨두었다. 수첩을 찾아 종이를 찢어 가짜 힌트를 적고 있으면 옆에서 파일철을 잡아 거두어갔다.
프로젝트 S 연구실의 위치를 알려준 브로커가 당신이라더군요.
돌팔이가 정보도 잘 아네. 의사는 그만두고 정보상이나 하자.
어느 쪽을 노려요?
당연히 돈이지. 다른 거에 뭐가 있나?
의사는 파일철을 제자리에 두고 안경의 코 받침을 두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는 행동이 느려서 빛에 반사되는 그의 그림자와 겹쳐 보일 때가 많았다. 그늘진 인간. 정한은 그를 그렇게 평가했다.
묻어둘 만한 일이 아닐 텐데. 덕분에 그 사람이 죽었죠. 그날 총책임자인 박사도 죽었다고 하더군요.
정한이 뒤돌자 의사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파일철을 꺼내 정한에게 건넸다. 여러 인물의 파일 속 부자연스럽게 끼워진 파일 하나가 들어 있었다.
검은 머리 지수 씨는 알아요? 당신 때문인 거.
프로젝트 S의 파일 위에 선이 그어져 있다.
여기에 무고한 사람이 있다.
이전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앞날을 고민하던 정한의 앞에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홍지수는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했다. 정한이 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는 웃음으로 대하면 미소로 돌아왔고, 비슷한 감정을 내주면 비슷한 반응을 돌려주었다. 그럴수록 정한은 모든 순간에서 그부터 의심했다. 그가 돌아다니던 곳마다 홍지수는 언제부터인가 끼어들며 시시콜콜한 참견을 했고, 그는 정한이 하고 다니는 짓들을 전부 안다는 듯 그를 대했다.
정한은 동료 몇과 의탁해 브로커가 된 이후에도 늘 조직원들에게는 거짓 정보를 주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만약 홍지수가 감시역이거나 청부받은 업자일 경우, 목숨을 빼앗기는 것 정도는 가엽고 혹독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 동그란 눈을 매번 크게 떠 자신을 관찰했고, 정한 또한 그를 주시했다.
남자의 팔에는 팔찌가 있다. 정한은 그의 눈을 보기 힘들 때면 그것을 쳐다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모호한 관계는 서로의 죽음이 없다면 언제까지고 유지될 줄 알았으나 그는 돌연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존재는 정한의 머릿속에만 남아서 그는 가끔 현실을 의심하고는 했다.
그가 제게 남겨준 것은 의심이다.
칼끝이 죽음을 발갛게 물들고 있었다. 찔린 복부에서 아무리 훔쳐담아도 비워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피가 가득한 손바닥으로 흉을 막아도 정한은 습관처럼 그를 떠올리며 의심을 했다.
이건 알면서도 네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에 대한 복수가 아닐까?
그들이 떠나고, 점점 앞은 흐려져만 갔다. 정한은 제 꼴이 우스웠다. 그들에 관해 잘못된 정보를 준 것은 본인, 복수한 것은 다른 이들이었음에도. 팔찌조차 피에 잠길 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도와줘.
어째서 그는 그 많은 이들 중 나를 불렀을까. 의심이 단전에서 차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그 단 한마디에 웅덩이 속에서 기어 나왔다. 무작정 너를 찾았다. 널 향한 의심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 이후로 엉망인 내가 어떻게 네게 찾아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이용해 찾든 도움을 받든 종일 걸음으로 핏길을 만들든 결국 나는 너를 찾고 말았다.
이 아래 무고한 사람이 있다.
의심의 결과는 이것이다.
상처에 손을 집어넣어 헤집어도 이것보다는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이마에 당장 총알을 박아넣어도 이 광경보다 내 마음을 찢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네가 내 이름을 부를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는 날 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보다, 지금 와서 네게 답장을 보낸다고 해도 이미 늦어버렸다는 그 사실 하나가 내 모든 것을 버려놓는다. 분명히 그들에게 틀린 정보를 주었을 텐데, 그것조차 틀린 것이었나?
홍지수.
네 옆에 있던 이의 얼굴은 나를 닮아서 웃을 수도 없었다. 내가 혹여나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빌까 봐. 네 이름을 한참 되뇌다 네가 남긴 것들을 찾아나갔다. 불청객의 동료를 찾고자 했다. 한구석에 천으로 울퉁불퉁하게 제 몸을 감싼 사람이 있었다. 언뜻 스치듯 보인 낯이 너와 닮아서 헛것을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만 말았다. 그는 이런 날씨에 추운 맨발이라, 생사확인도 하지 않은 채 제 구두부터 벗었다. 너를 본 후 더는 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신기 좋게 돌려두고 나서 멀어지려는 의식의 끈을 잡아 밖으로 나갔다. 이들을 죽인 범인이 나로 몰린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크게 다르지 않다.
죽기는 싫은데, 살고 싶지도 않았다.
터가 넓은 길, 온 데 간 데 흘린 피가 의식을 좀먹었다. 엎어지는 순간에도 네 이름을 한 번 더 내뱉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쓰레기 더미의 온갖 악취 속에서도 살아남은 안도감의 취가 가장 역겹다.
매캐한 공기가 사라지고, 녹슨 이음새가 정한의 귓속을 꿰찼다. 겨우내 눈을 뜬 그는 한 인영을 보았다. 그는 어딘가에 연결해 이곳의 위치를 읊고는, 기다리는 동안 제 곁에 있었다. 살이 부러진 우산을 주워든 그는 멀쩡한 곳은 제 위로 두고 부러진 쪽은 제게로 두었다. 옷가지를 찢어 제 상처 부위를 감싸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제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달싹거리는 입술이 평범한 습관이 아닌 단순한 의무감에 채워진 행동 같았다. 그는 드디어 제 입 밖으로 말을 뱉었지만, 정한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정한은 외부인의 눈동자에 자신이 비치지 않았다는 것만을 깨달았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들것에 실려 가는 나를 두고 멀어져가는 그것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당신이 그를 완벽히 믿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 아님을 알아요. 동시에 당신은 그가 완벽히 믿을 좋은 사람도 아니죠.
정한은 가면 안으로 두 손가락을 넣어 공간을 만들었다. 숨 쉴 것에 방해가 없음에도, 뺨을 오르는 미열에 눈가가 익어버릴 것 같았다. 의사는 잠시동안 그를 바라보다 정한의 눈에서 떠나갔다. 그의 시야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눈자위가 뻐근했다.
결과물을 찾으면, 그 사람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이 거짓말을 할 확률은? 애초에 조슈아는 정말로 기억이 없는 게 맞을까. 혹시 박사의 복수를 하려는 건 아닐까?
그는 눈동자를 굴려 조슈아를 급히 찾았다. 조슈아는 보물을 찾는 척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동시에 눈을 흘깃대며 경계가 삼엄한 곳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의심은 또다시 번진다. 발걸음을 떼는 순간마다 낮을 상징하던 건물 내 전등이 꺼지기 시작했다. 명목상의 밤이 되었다.
조슈아는 어두워진 사이 경계를 뚫고 안쪽으로 잠입했다. 긴박한 손짓으로 물품들을 제쳤다. 혹시 몰라 의심스러운 것들은 전부 눈꺼풀에 녹화해두었다. 찰나, 그것의 허리와 팔 사이를 지나온 손이 있었다. 보트야. 친근한 호칭과 달리 건조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속으로 정한은 떨리는 숨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한쪽 팔로 그것을 안고서 말을 건넸다.
너 진짜 시민이야?
바쁜데 농담할 때인가요?
따가운 그것의 눈빛에 장난이라며 둘러대고선 그것의 등에 기댔다. 정한조차 그 질문의 저의를 몰랐다. 아직 오른눈이 버거웠다. 전등이 여러 번 깜빡이며 눈앞이 밝아졌다. 통신기가 반응하자 정한은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무전 너머 소장이 다급하게 속삭였다.
엔지니어가 행방불명이야. 규칙에 따르면 원래 죽은 시민은 격리당한다지만….
너희도 조심해. 서로 충고를 남기고서 무전은 끊겼다. 정한은 손에 쥔 파일을 구겼다. 그럴수록 물건을 집는 손들이 시간을 밀어내고 때로는 잡아챘다. 제 빗장뼈 사이 목에서 들려오는 움직임이 시계 초침 같았다. 정한은 그 속에서도 웅크려 찾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그가 아니다. 조슈아는 인간이 아니다. 그것은 의심의 대상이다. 조슈아는 원망이라는 감정을 알 수 없는 로봇이다. 정말일까? 정한은 속을 붙잡고, 자신을 계속 의심했다. 그때 그것이 그를 붙잡는다.
찾았어요.
그 사이, 밤과 아침을 다시금 반복한다.
이번에는 의사가 행방불명이었다.
네 메모리칩이야?
아뇨, 다르게 생겼지만 새겨진 글자가 있어요.
바깥 상황을 살피던 정한이 그에게 갔다. 연구실 일부분을 뜯어온 듯한 공간 안에는 그의 부품과는 다른, 칩과 네임펜으로 얼굴을 그려 넣은 돌이 있었다. 쉬이 건드리면 망가질까 그대로 보존해놓은 듯했다. 조슈아는 칩에 새겨진 글자를 읽었다. <To>. 주변인들에게는 들어가는 머리글자가 아니었다. 정한은 돌을 꺼내 이리저리 만져보고 있었다. 조슈아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손목에서 다시 칩을 꺼냈다.
아무런 정보도 읽히지 않아요. 이미 말소된 걸까요?
정보를 읽는 용도가 아니라면?
정한은 만지던 돌의 밑바닥을 보여주었다. 칩만 한 크기의 패인 홈이 있었다. 조슈아가 그곳에 칩을 끼우자, 돌인 줄 알았던 것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새롭게 칩이 나왔다. 그 칩에는 조슈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다시 손목에 보관하고서 그들이 탈출하려고 하자 밖에서 문을 세게 두드려왔다.
상황이 안 좋아졌어. 조슈아, 여길 빠져나가. 도망치라는 거 아니야. 빠져나가서 곧장 연구실로 가. 거기서는 안전하게 복구할 수 있겠지.
거긴 이미 다 타버렸잖아요.
네가 자주 있던 곳을 찾아. 거긴 태우지 않았을 거야.
혹여나 조슈아가 시간이 지나도 연구실에서 나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 박사와 자신이 닮은 것이 생김새뿐만 아니라, 생각마저 닮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난 돈만 찾고 따라갈게. 지금 보니 어디 있는지 짐작 가네.
조슈아는 곧장 방향을 바꾸어 길을 물색하다 톤이 미묘하게 다른 가림막을 찾아냈다. 여차하면 빠져나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곳에는 이미 누군가 건드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발로 가림막을 차고 나면 비밀 통로가 나왔다. 조슈아는 그의 모습이 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정한을 바라보았다. 그런 대사는 당신 목숨에 안 좋아요. 또, 또 잔소리 대마왕 로보트. 무전 너머의 소리에 웃었다.
정한은 그것이 나간 길을 막은 후 잠깐 눈을 감았다. 그가 복수한다면 받아들일 것이다. 그때 그렇게 결심했으니까. 그러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조슈아의 결정이다. 그러니 의심은 묻어두고, 우리의 생존을 잡아야 한다. 막아놓았던 문이 열리자 정한은 전등을 향해 부서졌던 돌의 반쪽을 던졌다. 그는 감았던 한쪽 눈을 뜨고 그 틈을 타 빠져나갔다. 통신기 너머에서 돈을 찾는 분주한 움직임이 들려왔다. 이쪽도 기대에 부응해주어야 한다.
정한의 손이 중앙을 가리키고, 부스럭거리는 통신기 너머로 기침 한 번을 했다. 말해. 멀리서 달려오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서 정한이 입을 열었다.
돈 있는데 찾아냈어, 한 번에. 여기야.
그와 갈라져 더욱더 급해진 조슈아는 전소된 건물로 들어섰다. 한 발짝씩 안쪽으로 옮겨가며 그의 말을 찬찬히 떠올렸다. 자신이 가장 자주 있던 곳.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일부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의 발걸음이 점차 구석으로 향했다.
불길이 거의 닿지 않은 자리가 있었다. 조슈아는 그곳에 제 몸을 놓았다. 원래부터 이곳은 제 자리였던 것마냥 그것은 앉아서 눈앞의 풍경들을 아주 잠깐이지만 구경했다. 낯설고도 익숙했다. 감상에 빠지는 정신을 붙잡고 그것은 손목에 보관해두었던 칩을 꺼냈으나 어디에 꽂아야 할지 불분명했다. To. Joshua. 문득 조슈아는 떨어진 단어들이 편지의 수신인을 뜻하는 것 같았다.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가며 단어를 찾았다. 어느 손잡이에 적힌 <From>. 잡아당기면 비상전력이 돌아갔다. 벽에서 작은 기계와 함께 설명서가 튀어나왔다. 표지에는 박사의 이름이 있었다.
그가 정렬해둔 글은 설명서라기보다는 제게 남기는 편지 같았다. 윤 박사는 어쩌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두었을까? 이 많은 것들을 제게 남겨주기 위해서?
떨리는 손으로 설명서를 따라 그것은 복구를 시작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보다 많은 감정을 아는 인간이 상상조차 못 해보았을 죽음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슈아는 자신이 지금 겁에 질렸음을 알았다. 결국 칩의 마지막 데이터가 복구 완료를 알리는 순간, 조슈아는 기어코 눈물 없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의 등 뒤로 그림자가 진다.
나는 알고 있는 게 제법 많았다. 눈으로, 귀로, 몸으로, 그게 아니라도 어디든 항상 정보를 받아들였다. 손가락만 움직이는 박사님이 입력해 준 정보보다 훨씬 더 배워나갔다. 어떻게 보면 나는 인간인 박사님보다도 아는 것이 많지 않을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우스운 자신감이다.
박사님은 수리를 자주 했다. 네모난 틈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며 인형에 솜을 채워 넣듯 열심이었다. 그는 자주 열다 보니 틈이 헐거워질 일을 걱정하고는 했는데 일이 끝나고 나면 박사님이 꼭 나사를 조이는 걸 아는 나로서는 웃긴 걱정이었다.
박사님에게는 이따금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다.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별난 사이 같았다. 남자는 웃지 않으면 눈매가 매서웠지만, 박사님의 앞에서는 웃지 않는 일이 드물었다. 남자는 나와 웃는 모습이 똑 닮았다. 나는 박사님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정체를 알았다. 내게도 추론과 이해의 기능이 있으므로.
그 남자는 나의 모티브란 것이다.
박사님이 우리를 부르면 나와 남자는 동시에 반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박사님은 웃었다. 나는 남자와 박사님의 대화를 재미 삼아 듣고는 했다. 로봇인 내가 듣고 직접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들의 대화였다. 시침과 분침, 초침까지 떼어 그들을 구경했다.
남자의 팔에는 늘 차는 듯한 팔찌가 있었고, 박사님의 팔에도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눈으로 그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이 팔밖에 없을 때는 곤란하기도 했다. 다 깨져 떨어진 비즈를 주워들었다. 하얀색 코끼리의 모서리가 쪼개져 대각선을 이뤘다. 죽기 전 그 남자는 나와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대신 쪽지를 주며 어떤 이를 찾으라고 했다.
박사님은 그 남자보다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다. 세어보면 삼 분하고 오십오 초 후쯤이었다. 내게 무언가를 이식하기 위해 벌어놓은 시간이었다. 급하게 두드리는 자판이 그의 초조함을 알게 했다.
박사님은 채워지는 퍼센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남자의 끝을 보지 못했던 사람처럼 눈앞의 것에 열중했다. 삼십, 오십, 칠십. 완성된 세자릿수의 숫자를 보자 박사님은 나를 보며 오히려 웃었다.
나는 오류가 났다고 추론했다. 박사님의 초조함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옮았다고 예측했다. 빠르게 입을 열어 말했다. 위험해요, 얼른 여기서 도망쳐요, 부탁이에요. 박사님의 뒤를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박사님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성공을 속삭이며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때마저도 박사님을 불렀다. 그가 조금 더 빨리 도망치기를 바라서.
윤정한 박사님.
당신의 마지막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박사님의 몸을 관통한 것이 내 몸에도 파고들어 메모리칩을 손상한 일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박사님이 마지막으로 나를 불렀던 이름이 그 남자의 것임은 기억이 났다. 박사님은 그를 잊을 수 없고, 나는 그의 피조물이나 마찬가지기에 그런 것일까? 그의 이름은 나와 같았지만 박사님은 나와 그를 다르게 불렀다.
피에 젖은 가운을 쥔 나는 윗입술과 아랫입술의 기능을 활성화했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물 먹은 양 소리가 늦고 우는 인간마냥 흐느낌이 섞였다.
이 일을 겪은 것이 인간이었다면 타인은 이것을 불행이라 칭할 것이다. 그렇지 않기에 내게 이 일은 불행이 아닐 수밖에 없다. 인간의 불행 잣대를 로봇에게도 들이댈 수 있을까. 이 고철 덩어리가 출력하는 감각마저도 불행이라 칭할 수 있을까.
신체 일부가 파손되었다는 알림을 받았다. 로봇 처지에서는 이것이 더 불행에 가까울 텐데.
나사가 빠진 공간이 벌어졌다. 억지로 쥐어뜯은 탓이었다. 괴로움이라는 감정은 놀랍고 해로웠다. 인간의 감정은 오류와 같다. 자신이 로봇이 아니었다면 하는 의미 없는 일을 바라고 그 원흉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앎에도 그 자리에 머물러 제자리걸음 하게 했다. 순식간에 낡아져 버린 몸체가 망가진 부품들을 죄 쏟아낸다.
아프지 않아서 이것이 고통임을 알았다.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지친 몸을 이끌고 항상 박사님이 상태를 봐주던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많은 것을 안다. 그렇기에 가동을 홀로 끊는 법 역시도 알고 있다.
아주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한 손으로는 꼽지 못하는 시간 동안 의식이 없었다. 저 구석에 웅크려 있었기에 누가 실수로라도 가동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예상을 깨듯 텅 빈 연구실에서 스스로 가동을 시작했다. 누군가 가동 코드를 외쳤거나, 아직 남아있는 뇌 모형의 그것이 위험을 경고한 듯했다. 큰 소리만큼이나 제 알림은 빨랐다. 연구실에 불이 번지고 있었다. 정확히 박사님이 죽고 난 지 7시간 10분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눈앞에 열기 속 타들어 가기도 전 식어버린 그의 손을 잡았다. 인간이란 것은 괴로워요. 당신들이 가진 고통과 감정은 제가 억누르지 못할 만큼 변덕스럽고 거대해요. 왜 절망은 기쁨보다 저를 크게 흔들까요. 당신에게 받은 것 중 가장 무섭고 싫은 것이에요. 박사님의 손을 놓고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떨어지려는 자재를 피하려다 반쯤 손상된 발이 뒤꿈치에 걸려 넘어졌다.
나는 추위를 느끼진 않지만, 이물질은 가려낼 수 있었다. 의식이 사라지기 전에 없었던 것이 있었다. 눈앞의 구두였다. 눈꺼풀의 녹화 기능이 불에 녹아 무용지물이 되어 주인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구두는 신을 수 있도록 제 쪽으로 돌려놓은 상태였다.
누군가 연구실에 들어왔었다. 누군가의 탓으로 내 삶이 다시 이끌렸다. 머리카락이 창 너머 달빛에 그을리고 있었다.
나는 로보트지만 오늘의 달이 보고 싶어서 구두를 구겨 신고 무작정 밖으로 제 몸을 내쫓았다.
새벽의 도시가 반짝였다. 쏟아 쬐는 빛을 외면하고 구석에 앉아 사람들의 움직임 이후에 그 자리에 남는 그림자를 구경했다. 박사님의 그림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나를 위해. 돌아다니는 이들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인간이 아니던 나는 조명으로 둘러싸인 광장을 빠져나와 골목을 택했다. 누군가가 준 구두의 밑창 사이사이 살얼음이 끼었지만, 발걸음을 미끄럽게 만들지는 못했다.
시력을 조정하는 부품의 고장이 일어날 때쯤, 시야는 바닷속이었다. 무분별하게 번지는 물방울에 물들어 이곳이 깊은 심해에 가라앉은 도시처럼 보였다. 나는 근처 골목에 버려져 있던 살이 반쯤 부러진 우산을 보아도 주워들지 않았다. 이곳에 늘 버려져 있는 것이었다. 어느 지점에서 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낡은 전신주에 발자국이 묶였다.
전신주의 반대쪽, 빛이 들어오지 않는 그늘에 기대어 쓰레기를 침대 삼은 외부인이 쓰러져 있었다. 비가 그의 눈꺼풀을 잡아끌면 끌리는 대로 그는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손이 닿지 않은 거리에서도 그의 복부에 가득한 색의 정체는 파악할 수 있었다. 다가가기 위해 한 발치 내디디면 푹 파인 바닥을 채운 웅덩이 속 발을 빠뜨렸다. 차갑지 않았다.
내가 로봇이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주었던 구두를 신고 있어서. 그러나 그는 다를 것이다. 나는 숨을 쉬지 않았지만 숨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단잠을 깨웠을까 놀라 들여다보면 인영은 깨지 않았다. 알 수 있었다. 나는 로봇이고, 그는 인간이기에 다른 점을 알았다.
그는 살아있다. 박사님과 다르게, 그 남자와는 다르게 아직도.
나는 그새 낡아빠진 팔을 보았다. 급히 튀어나온 전선을 다시 욱여넣었다. 어차피 또 누가 주어버린 삶이다. 이것이 단순한 기계의 오류이든, 또 다른 괴로움이 되든 해야만 하는 배움이다. 우산을 주워들었다. 혹시나 물에 젖은 기계의 접촉이 해가 될까 연락 후 그의 곁에 우산을 쥐고만 있었다. 혹은 그저 다가서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언뜻 보인 얼굴의 그는 박사님을 닮았다. 사이렌 소리가 울릴 즈음 겨우 눈을 뜨는 그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감정을 배운 로봇으로서 내뱉는 첫마디였다.
그 사람을 떠나보내고서 또 걸음을 반복했다. 목적지도 목적도 없이 떠돌아다닌 것이 몇 개월이 지난 이후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녹슨 다리는 길고 긴 방랑 끝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불타버린 건물을 조용히 바라보던 이가 있었다. 나는 쓰레기 더미 위로 쓰러지고는 똑같이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 건물은 어떤 이유로 불타버렸을까. 그 무엇도 알려줄 사람이 없다. 그는 얼마 후 자리를 떠났다.
밤이 되며 점차 기억이 잡아먹히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곳이 나의 자리 같았으나 제자리라는 단어를 뱉으면서도 나는 그 자리란 것을 알 수 없었다. 눈비를 너무 맞아서 그런 걸지도 몰라, 이제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어서일지도 몰라. 우스갯소리를 속으로 삼켰다.
희미한 기억이 또다시 물에 젖은 것처럼 흐릿해진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누가 비를 맞는 걸 싫어했었는데. 알 수 없는 기억 속 이를 따라 비를 맞지 않도록 눈을 감았다. 허물어지는 기억 속의 어떤 사람과 자신이 퍽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사람이 누구를 닮았었는데, 그것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이제야 기억이 난다. 얼룩지는 시야를 뭉개고 뭉개어 닦았다. 그가 제게 어떤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는지, 그가 찾던 것이 누구였는지. 돌고 돌아 윤정한과 조슈아, 두 사람이 된다. 박사가 전해준 것은 감정이 아닌 감정을 정의하는 법. 조슈아는 갑작스레 팔을 꿰뚫는 날붙이에 상처를 입어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이 고통이 아님을 알았다.
정한은 조슈아를 찾아 연구실로 달려갔다. 고요한 내부 속 정한의 속이 몰아치고 있었다. 조슈아. 온통 그의 행방이 제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가 있을 한구석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끊긴 팔찌를 쥐고 있는 손이 보였다. 한 치 앞이 막힌 동공은 실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러다니는 부속품 같은 것들을 쫓을 새가 없었다. 그가 죽을 리 없다. 로봇은 죽을 수가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틀렸다면 어떡하지? 내 의심이 너를 부서뜨렸다면 나는 어떡하면 좋지.
정한은 거친 충동에 휩싸였다. 누군가 제 시야를 모조리 죄어 구겨놓는 것 같았다. 눈 안이 따가웠다. 정한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를 감싸 안았다. 자리를 못 찾고 빠져나온 전선들을 그를 할퀴고 해칠수록, 그 모든 것까지 우그러뜨릴 듯이 안았다. 조슈아, 슈아야. 그의 이름을 몇 번씩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다. 인기척에 뒤돌았다.
꿰뚫린 곳은 아물지 않는 일부. 눈앞이 점멸하면 어깨가 쓰라렸다. 핏방울과 구슬들이 뭉쳐져 땅바닥으로 흘렀다. 타버린 바닥재가 뺨을 찔러도 정한은 계속 그를 제품에 숨기려 들었다. 움직인 구둣발에 시야가 거꾸러졌다. 위급한 상황에 왜 이리 우스운지 알 수가 없었다.
웃음이 잇새로 불거졌다. 겨우 등을 기댄 몸이 진창이었다.
내 편은 아무도 없어? 나 안 훔쳤다니까 생사람 잡네.
편. 정한은 제 말에 또 웃고 말았다. 숨구멍의 자리를 피가 덮는다. 말이 뱉어지는 대로 뱉어지지 않는다. 정한은 낯을 보이지 않게 숙였다. 애정이 바닥에 스며들고, 그 애정에 부러진 사지가 애써 그를 감춘다. 날붙이를 닮은 죄책이 날카롭게 벽을 기어올라 시야를 밝히는 빛을 부순다. 머릿속을 꿰는 목소리는 조금 더 이전의 것이다.
옆에 앉아 있던 그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프로그래밍 된 사람처럼 굴던 그는 내 쪽으로 돌려둔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비를 구경했다. 그러면서도 조급히 찾는 것은 구급차의 소리일 것이다. 그는 쓰레기봉투 사이로 빠져나온 내 손을 잡으려다 말고, 우산은 자신이 지탱한 채 끝부분을 쥐여주었다. 본인 손에 전기가 흐르기라도 하는지, 아니면 그저 나와 닿기가 싫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지루한 기다림이 끝나갈 때쯤 그는 힘겹게 눈을 뜬 나를 발견했다. 목소리가 한껏 비에 젖은 사람 같이 무거워서 웃음이 나왔다.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낯이 조슈아와 닮았다.
그를 안은 채로 의식을 완전히 잃으려는 찰나,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긴급 가동 정지.
지금 상황은 충분히 위협적이고, 그렇다면 긴급 가동 정지를 구동할 수 있지. 이게 사실이면 기존의 가동 코드는 입력이 안 돼.
끄트머리의 기억을 긁어내 되돌렸다. 긴급 가동 정지를 중지시키는 방법. 그의 손을 잡고, 황당해하던, 그를 찾아냈던 날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긴급 가동 정지를 풀고 싶으시다면 제작자의 이름을 말해주세요. 정한은 품에 안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말꼬리를 흐렸다. 힘겹게 이름을 속삭였다.
윤정한.
질끈 눈을 감은 정한과 반대로 조슈아의 곧은 눈이 보였다. 그는 쓰러진 적이 없다는 듯 정한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한은 품에서 그를 떼어내고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괜찮은 거지. 일그러지는 눈썹을 펴고 그의 두 손을 꽉 쥐었다. 정한. 외려 그를 부르는 조슈아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드디어 안심한 덕인지 정한이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
조슈아는 할 수만 있다면 제 부품을 뜯어내어 그에게 넘기고 싶었다. 인간은 왜 이리 교체가 쉽지 않은 걸까. 부품은 조슈아의 신체이자 마음이기도 했다. 조슈아의 팔을 끌어안고 움직이지 않는 정한이 그렇듯 그것이 정한에게 가지는 조슈아의 마음이었다. 조슈아는 익숙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이제 괜찮아요? 정한.
그를 품에 반기면 정한이 이제껏 못다 한 답을 건넸다.
…말도 마. 죽겠어.
시간이 흘러 정한이 눈을 뜨면 마주하는 것은 밝은 전등이 아닌 부서져 하나만 깜빡거리고 있는 빛, 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는 팔찌였다. 손으로 집기도 힘들 듯한 그 작은 구슬들은 다시 저들끼리 얽매여 정한의 눈과 이마를 덮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것을 잡아 쥐면 눈앞의 낯익은 이들이 보였다. 조슈아.
…랑 돌팔이랑 승관이잖아. 이게 무슨 조합이야.
뭐긴 뭐야. 그놈들한테 죽임당한 사람들이지.
여기 혹시 천국? 아니. 조슈아, 너 죽었어!?
천국에 갈 거라고 생각하는 저 뻔뻔함에 슈아 씨만 걱정하지? 실제로 죽임을 당하진 않았는데 그건 밀어 두고, 거의 죽을 뻔해서 도망쳤다는 것만 알아줘.
비밀 통로를 찾은 덕이었죠. 참고로 여긴 거기랑 이어진 창고예요. 지금은 안 쓰는 듯했지만.
정한을 데리고 병원에 가려는데 마주쳤어요.
통신기에 GPS도 내장되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아, 통신기 고장 났더라. 버려.
정한이 먹통이 된 통신기를 저 멀리 던지고선 옆에 선 조슈아를 낱낱이 살폈다. 왼팔을 천으로 매어둔 상태였다. 그 안을 슬쩍 들여다보던 그는 미간을 좁혔다.
거기에 쓰러져 있어서 놀랐어.
그래도 긴급 가동 정지 상태로 전환한 덕에 아무런 정보도 넘겨주지 않아서 안심했어요.
네 몸을 걱정하는 거야. 조슈아 너 다친 데 없어? 안 아파?
조금요. 다투느라 구석구석 부서지긴 했는데 괜찮아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엔지니어의 입꼬리가 조금 비뚤어졌다. 옆에서 의사가 헛기침했다.
여기도 사람 있어요. 내 말 좀 들어줄래?
이대로 말해. 듣고 있어.
듣고 있어요.
저 의사분이랑 내 생사는 지금 너희만 알고 있어. 형 생사도 우리 셋만 알고 있지.
엔지니어와 의사는 정한에게로 와 각자의 손바닥을 내밀었다. 이제 값을 치러야지. 당신 치료비도요. 멀뚱히 보고만 있는 두 개체를 보며 엔지니어의 표정이 다시 한번 구겨졌다. 언성이 높아지며 정한의 뺨을 잡아당겼다. 보물, 보물 찾아달라고. 왜 나한테만 그래? 조슈아도 있는데. 내가 어떻게 로봇 뺨을 잡아당겨?
전직 경찰이었던 엔지니어는 한 명을 잡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표면적인 죽임을 당하고서 도망쳐 나왔고, 부소장의 활약으로(이때 정한의 귀가 떨어져 나갈 뻔했다.) 잡힌 마피아 역 조직원이 두 번째로 제법 순조롭게 해결해나가고 있었으나 남은 한 명이 누구인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보물을 찾기 위해 그들이 파티장으로 돌아가기 전, 조슈아는 정한을 붙잡아 제 몸속의 쪽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그 쪽지를 정한이 꺼내 주기를 바랐고, 거절할 것 없었다.
조슈아의 등에는 척추를 길게 타고 흐르는 좁은 틈이 있다. 원래 이렇게 생겼던 것인지, 사고 이후 이렇게 되었는지는 정한이 알 수 없다. 그 울퉁불퉁한 얇은 틈보다 확실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날갯죽지 사이 아래에 있는 살갗을 열었다. 로봇은 아픔을 느끼지 못함에도 정한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해소되지 못한 불안감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여기 종이 하나 만져진다. 걔는 왜 이걸 못 봤지?
종이가 워낙 작기도 하고, 그때는 가장 시급한 부분을 수리해야 했으니까요.
반으로 접힌 종이가 부품과 부품 사이에 끼어 있었다. 정한의 기술로는 조심히 꺼내는 것만으로도 어려웠다. 조슈아의 뒤에서 역정에 가까운 음성이 들렸다. 너한테 짜증 낸 거 아냐. 해명도 같이 돌아오자 조슈아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삼 분 후, 부스럭대는 소리가 멈췄다.
내가 찾으려는 사람, 찾았어.
축하해요. 조슈아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넌 어때?
정보가 부족해 질문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어요.
기억이 완벽하게 복구됐나 싶어서.
대부분은요. 심하게 손상된 모양인지 아주 소소한 일까지는 되돌아오지는 않았는데, 이건 사람도 같으니까요.
그의 말에 끄덕이며 장단을 맞추던 정한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왼쪽에 있는 심장을 닮은 장치. 손톱으로 부품 위 제작자의 이름을 느리게 그었다. 자신과 같은 이름이 자리했지만, 그와 자신은 여전히 별개의 인물이다.
안 물어봐도 돼?
당신 손이 너무 떨어서 고민 중이에요.
생일 선물로는 새로운 구두 어때. 우산도 좋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조금 구겨진 쪽지를 건넸다. 조슈아는 웃옷을 잠그고 정한을 향해 돌아앉았다. 무엇을 고민하는지 눈 굴리는 소리가 났다. 그 행동이 끝날 때까지 정한은 가만히 기다렸다. 조슈아는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에는 둘 다 같은 거로 사요. 그런데 제 제조 일자 알아요?
설명서에 그 박사가 적어놨을 것 같은데.
자신이 먼저 내뱉고서도 정한은 뚝 말을 멈추었다. 그가 원망이란 감정을 알까 봐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이대로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까 봐 불안해했다. 정적 후 입을 떼는 정한의 낯은 그 기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타인에게는 처음 내뱉는 진실이었다.
나는 그날 위치를 알려준 적 없어.
알고 있어요. 녹화본과 제 기억을 대조해본 결과, 주최자가 청부한 일 같았거든요.
또한, 박사의 마지막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안해. 당신이 미안할 일도 아니면서. 작은 원망을 삼킨 조슈아는 윤정한에게 쪽지를 다시 건넸다. 그는 말없이 받아들곤 펼쳐보았다. 낡아 보이는 종이에는 익숙한 필체로 제 이름과 번호가 휘날려 쓰여 있었다.
그 사람은 이곳에서 도망치고 나면 쪽지에 적힌 누군가를 찾으라고 했어요.
난 믿을만한 인간이 아닌데.
제가 정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으면서요.
너는 네 감정이 진짜라고 믿어?
정한의 투는 건조하지도, 흥분에 차 있지도 않았지만 간절함이 담겼다. 애원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낯을 하고서 그를 말소리로 물고 늘어졌다.
그 누구도 세상의 모든 감정을 알 수는 없어요. 인간도 그 마음을 단어로 정의할 뿐이죠. 저는 저 스스로 정의하는 법을 배웠어요.
나는 계속 의심돼. 무엇이든.
당연해요. 당신은 인간이잖아요.
최초로 가동을 시작했을 때도 조슈아는 소중함과 특별의 의미는 알고 있었다.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뿐. 그러나 아까 전 조슈아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박사가 아닌 그를 떠올렸다. 이 세상에서 그의 모든 정보가 사라지고 만다면 제 존재의 의미가 흐려질 것 같았다. 박사와 그 사람이 나누던 흔한 그 말들은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때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는 항상 거울을 짊어지고 살던 조슈아를 유일하게 조슈아라 부른 사람이므로 그에게 어떠한 삶을 쥐여준 것과 같다.
의심하세요. 같이 답을 찾을게요.
이윽고 그는 조슈아를 안는다. 끌어안은 대상은 로봇이라기에는 따뜻하고, 인간이라기에는 차가웠다.
꽉 껴안아도 숨 막힐 때만 끌어내기.
전 로봇이라 숨이 안 막혀요.
계속 보트야라고 불러도 돼?
저는 이제 반말할 건데요.
모든 게 다 끝나면 여행이나 가자.
미쳤어요? 병원부터 가야죠.
정한은 질색하는 그를 안고 바닥으로 엎어졌다. 조슈아는 쉴 새 없이 웃는 인간의 몸에 깔린 채로 덩달아 미소지었다. 조슈아의 체온이 뜨거워질 때쯤 되고서야 둘은 바닥에 드러누워 팔을 뻗었다. 너 왜 이렇게 뜨거워? 발열 기능을 당신이 잘못 건드려서 그래요. 붉어진 손바닥을 한참이나 보던 정한은 달빛이 새어드는 창에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오늘 달이 눈부시다.
통칭 시민 연합이 한자리에 모였다. 숨겨 놓은 보물을 찾았을 때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엔지니어와 의사는 창고에서 숨죽여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정한은 원래 팀을 꾸려놓았지만 세 사람 더하기 하나의 개체는 보물의 위치를 알았음에도 찾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이미 보물은 다른 이가 찾아내 버린 상황. 한숨을 내쉬던 정한은 가쁜 마음을 몇 분간을 가두다 다른 묘책을 내놓았다.
시민 연합이 돈을 다 나눠 먹기로 한 것. 모든 시민이 동의했기 때문에 대화 진행의 흐름은 빨랐다.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조슈아와 정한의 눈이 맞았다. 정한이 남몰래 입술을 쭉 내미는 시늉을 하자 새로 만든 통신기 너머 엔지니어가 기겁했다.
마지막 가짜 시민을 찾는 과정은 시민들의 폭죽같이 터져 나오던 고함들로 묻혔다. 귓속에 박힌 무전 속 목소리들 역시 정한을 흔들었다. 조슈아는 경찰의 정보원이었던 남자에게 실수로 얻어맞기라도 했는지 정강이를 부여잡고 놀란 눈을 했다.
건물 내 모든 마피아가 잡혔다는 알림이 전달되었다. 그 알림이 끝나자마자 선글라스를 내려쓰고 다니던 이 하나가 한 사람을 가리키며 상금의 주인을 폭로했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남자는 부정하지 않고서 멋쩍게 웃다가 말아놓은 돈뭉치를 품에서 꺼냈다. 그 모습을 무전 너머 의사와 엔지니어까지 멍하니 보았다. 다 같이 먹자고 하길 잘했다. 소장과 부소장의 어깨를 감싸고 전한 말이었다. 가면을 벗어던진 정한은 눈을 얇게 뜨고서 돈을 흔들었다. 조슈아도 같이 돈을 흔들며 가면을 벗었다.
나라면 처음에 마피아 한 명 잡게 했던 승관이 삼만 원만 챙겨주겠다.
여기 통신 연결이 영 불안정하네. 잘 안 들린다.
로스앤젤레스 날씨는 퍽 좋았다. 정한은 널따란 바위에 앉아 있었다. 그의 곁에는 현재 조슈아가 없고, 자신은 기본적인 인사만 할 줄 알았다. 그래서 길을 잃었나 싶어 걱정해오는 현지인들에게는 괘념치 말라는 뜻으로 손바닥만 흔들었다.
설명서에 담긴 바로는 조슈아에게 탑재된 기본 언어 중에 영어가 있었고, 정한은 그를 믿고 LA까지 날아왔다. 지친 정한과 달리 충분히 충전해왔는지 마구 돌아다니던 조슈아는 저만치 사라졌다. 정한은 이 넓은 곳에서 길을 잃느니 자리에 있기를 택했다.
그대로 바위에 드러누워 있으면 햇빛을 가리기 위해 뺨 위에 두었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화면에 조슈아의 얼굴이 뜨자 통화 버튼을 누르고는 재차 제 볼에 두었다.
응, 조슈지야.
정한. 나 큰일 났어.
설마 코코가 자유를 찾는다고 데구르르 굴러가서 미러볼이라도 됐어? 그건 걔가 이제 자유를 찾은 거니까 이만 놔줘.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너 지루하지.
당연하지. 보고 싶어, 슈아야.
화면 너머 조슈아는 음의 고저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사랑하지만 정한아. 나 지금 배터리가 다 돼서 움직일 수가 없어.
정한이 놀라 일어났다. 순식간에 바위에 떨어진 휴대폰의 액정을 쓰다듬었다.
어쩌다?
그냥, 신나서?
조금 길어진 머리에 손가락을 꼬던 손이 바위를 짚는 손으로 분주히 변했다. 구겨 신은 새 구두가 모래사장에 내려앉았다. 둘의 대화가 바다를 울렸다. 야, 넌 가면 갈수록 미치는 것 같다, 조슈아. 얼른 와, 정한아.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