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곳에 온 뒤로 정한은 자주 잠에서 깼다. 원래도 잠귀가 밝은 편이었지만, 잠자리가 바뀐 뒤로는 더 그랬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깔린 매트리스 위에서 몇 번 뒤척이던 정한은 포기하고 몸을 일으켰다. 따뜻한 물이라도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찌뿌둥한 목을 돌리다 보니 비어 있는 매트리스가 눈에 띄었다. 오늘은 늦게까지 할 일이 있다고 하긴 했는데, 아직까지 안 돌아온 건지 아니면 돌아왔다가 다시 나간 건지. 정한이 자주 잠에서 깨느라 수면이 부족하다면, 지수는 아예 잠을 잊은 사람처럼 구는데도 멀쩡했다. 정한은 지수를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갈망과 열망, 지수의 모든 행동은 절실하고도 맹렬한 바람에서 비롯한다.
복도 맨 끝에 위치한 방의 문 아래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정한은 잠시 그 앞에 멈추어 섰다.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빠르게 오가다가, 누군가가 언성을 높였다. 난 그 사람 못 믿겠어. 정한은 ‘그 사람’이 가리키는 대상을 금세 알아차렸다. 이곳 사람들에게 윤정한은 홍지수가 데려온 사람, 정도였다. 홍지수라는 보증이 없었더라면 진작 쫓겨나거나 아예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한 역시 지수가 없었다면 이곳에 발 들일 일 없었겠지만.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이 재차 말했다. 형 마음은 이해해, 그런데 그 사람이 만약 우리를……
“그럴 일 없어.”
지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로 됐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의심받더라도 홍지수 하나만 제 편을 들어준다면 충분했다. 정한은 미련 없이 문 앞에서 떠났다.
빛을 향해 나란히
군인들은 도시를 철저히 짓밟았다. 일종의 진화 작업이었다, 저항의 불길이 다른 지역까지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한. 한때 시위대가 거리를 가득 메운 적이 있었으나 군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죽음만이 남았다. 거리에서 시신이 발견된 경우는 차라리 사정이 나았다. 끌려간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누군가의 가족을, 친구를, 연인을 묵묵히 광장으로 실어날랐다. 고대의 사람들은 자유로운 토론을 위해 광장에 모였다고 했었나. 이제 이곳에는 자유를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이 모였다.
추도사는 젊은 야학 교사가 맡았다. 수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동안 정한은 사람들을 도와 관을 옮겼다. 하도 죽은 사람이 많다 보니 관이 모자랄 지경이라, 나무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은 모조리 달라붙어 새로 관을 짜내고 있었다. 관 주인의 신원이 확인되면 관뚜껑에 이름을 크게 써붙여야 했다. 사방팔방에서 곡소리가 들렸으나 정한은 의도적으로 생각을 차단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몇 개의 관을 옮겼는지도 기억나지 않았고 손은 어느새 피와 잉크로 더럽혀졌다. 빈 관은 죽음의 무게를 아는 것처럼 무거웠다. 어깨의 통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어느 쪽으로 돌아누워도 어깨가 아파 잠들지 못하고 있던 정한에게 지수가 말했다.
“난 수도로 갈 거야.”
“……어떻게?”
‘왜?’와 ‘어떻게?’ 중 무엇을 먼저 물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현실적인 문제가 앞섰다. 군인들은 도시를 봉쇄했다. 도시를 나가려면 지나야 하는 길마다 군인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누가 차를 타고 밤중에 빠져나가려다가 총 맞고 죽었다더라, 하는 말이 심심치 않게 떠돌았다. 그 말을 의식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밤이 되면 먼 곳에서 어렴풋이 총성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애초에 큰 도시가 아니었으므로 봉쇄는 쉬웠다. 죽음은 밖으로 나가지 못해 이 안에서만 머물렀다. 길에 스며든 핏자국은 쉽게 지워지지도 않았다.
“산 넘어서 가야지. 길은 알아.”
“너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상관없어.”
숨이 턱 막혔다. 지수가 공부 때문에 수도에서 살던 시절을 제하더라도 둘은 십 년 넘게 알고 지냈다. 눈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이였다. 정한은 지수가 절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을 알았다. 더불어 왜 가려고 하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는 것도.
사람들은 지수가 경찰에게 쫓겨 고향으로 도망쳐 온 거라고 수군거렸다. 지수는 한 번도 자신이 고향에 돌아온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지수가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 정한도 묻지 않았다. 오고 싶으면 오는 거지. 지수는 종종 정한을 불러 시집을 내밀었다. 글씨가 잘 안 읽혀, 어두운 데서 책 읽었더니 눈이 나빠졌나 봐. 변명하듯 말하는 지수를 앞에 두고 정한은 몇 번이고 읽어 너덜너덜해진 책장을 넘겼다. 왜 어두운 데서 읽었냐고도 묻지 않고, 다만 지수가 읽어달라 한 시를 조용히 읽었다.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는 너의 이름을…….
“그냥 나랑,”
지수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그냥 나랑 여기서 살면 안 돼?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한은 지수에게 미움받는 것이 죽기보다 더 두려웠다.
“그냥 나랑 같이 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 내내, 지수는 정한의 양 손을 잡고 있었다. 손을 아무리 씻어도 피와 잉크가 지워지지 않아 정한의 손은 여전히 지저분했다. 지수의 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한은 지수가 고향으로 내려온 날, 오랜만이라며 악수하는 손목에 보랏빛 멍이 들어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정한이 손목을 내려다보자 지수는 셔츠 소매를 내려 멍을 가리더니, 이미 봤으니 어쩔 수 없이 날 도와야겠다면서 아이들 가르칠 교재 필사를 맡겼다. 뭘 어쩌다 다친 건지 물컵 하나 들면서도 힘들어하는 애한테 생색 낼 수도 없어 정한은 묵묵히 교본을 베껴 적었다. 지수는 그 책을 들고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군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들려오고부터는 야학당 문을 아예 닫아 버렸다.
정한과 지수는 해 뜨기 전 새벽에 산을 넘었다. 닦인 길로 갈 수 없으니 험한 곳을 골라서 가야 했다. 짐이라고는 둘러멘 가방 하나씩이 전부였다. 정한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챙겼고 지수는 책 몇 권과 약과 옷을 챙겼다. 지수는 앞만 보고 걸었는데 정한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오더라도 내가 아는 그곳이 맞을까. 뒤처지려는 정한을 지수가 잡아끌었다. 지수는 어둠 속에서도 자신이 갈 길을 아는 것 같았다. 정한은 지수만 믿고 따라가기로 헀다.
총성이 들릴 때마다 정한은 깜짝깜짝 놀랐다. 지수는 자주 정한을 돌아보며 걱정스러운 낯을 했다. 지수가 너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어, 내가 다시 데려다줄게, 따위의 말을 할까봐 정한은 억지로 비명을 참고 제 입을 틀어막았다. 덕분에 산을 빠져나올 즈음엔 손이 온통 잇자국으로 가득했다. 입안에도 피와 잉크 맛이 뒤섞여 구역질이 났지만 정한은 꾹 참았다. 앞으로 지수와 함께 있기 위해 감당해야 할 수많은 것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자리를 구하려고요.”
수도로 가는 표를 두 장 달라고 하자 역무원은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험한 산길을 걷고, 산을 빠져나와 또 역까지 계속 걷다 보니 둘 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옷을 한 번 갈아입었다 해도 지친 기색은 숨길 수 없었다. 지수는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기 가면 공장이 많다면서요. 차표 살 돈밖에 없어서 역까지 걸어왔어요. 역무원은 정한과 지수를 돈 벌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불쌍한 청년들쯤으로 생각했는지 더 이상 의심의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요즘 수도 애들은 대학을 가니 공부를 하니 하면서 편하게 살려고만 해서 공장에 일할 사람이 적어졌으니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나름의 덕담까지 했다. 수도 애는 아니었지만 대학에서 공부한 이력이 있는 지수는 그냥 웃고만 있었다.
기차에 타자마자 정한은 쓰러지듯 앉아 눈을 감았다. 사람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떠들어 대고 있었다. 복도를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의 발소리와, 어린아이를 말리려 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고함과 울음소리, 총소리로 가득 찼던 고향과는 지나치게 대조적이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정한의 옆에 앉은 지수가 정한의 가방을 열어 빵 두 개를 꺼냈다.
“먹고 자.”
난 잠이나 자겠다고 거절하려다가, 배가 고팠던 건 사실이라 정한은 군말없이 빵을 받아들었다. 비닐을 뜯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빵을 보고 있었다. 지수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빵을 조금 떼어 주었다. 크림이 하얗게 비져나왔다.
“어머니께는 비밀이에요.”
여자아이는 빵을 입에 넣고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가족을 찾아서 가 버렸다. 정한은 지수를 곁눈질했다. 지수는 그 아이가 혹시 가다가 넘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뒷모습을 한참 보다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자세를 바로 했다. 그걸 보니 입맛이 영 돌지 않아 정한은 자기 몫의 빵을 지수에게 넘겼다.
“포장 뜯었으니까 이건 그냥 너 먹어.”
너는 길가에 핀 이름 없는 꽃 한 송이에게도 사랑을 줄 사람이지. 나는 네게 어떤 이름으로 남고 싶고.
잠깐 잠들었던 정한이 눈을 뜬 것은 소란 때문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우는 소리와 윽박지르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정한은 제대로 잠에서 깨지도 못하고 지수를 찾았다. 무슨 일이야? 지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군인이 기차칸에 들이닥쳤다. 그제야 정한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지수가 가져온 책 중에는 발견된다면 큰일날 책들도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며 손끝이 차가워졌다. 지수가 정한의 손을 잠깐 잡았다가 놓았다.
“가방 열어서 쏟아!”
군인이 명령했다. 정한은 그렇게 했다. 어차피 가방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해봤자 생필품뿐이었다. 그러나 지수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가방 지퍼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에서 곤란함이 묻어났다. 군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숨통이 틀어막히다 못해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워질 때, 다른 군인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기차칸에 들어왔다.
“왜 안 나오고 있어?”
“아니, 이 새끼가 하라는 대로 안 해서…….”
새로 들어온 군인이 난폭하게 지수의 가방을 잡아챘다. 정한은 반사적으로 일어나려 했다.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으니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지수가 정한의 손을 다시금 잡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지수의 가방을 빼앗아 간 군인은 주저 없이 가방 지퍼를 열고 거꾸로 뒤집었다. 와르르, 쏟아지는 그저 그런 물건들 위로 검은 가죽 표지의 두꺼운 책이 떨어졌다.
성경이었다.
군인들은 재빨리 시선을 주고받았다.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명이 지수를 흘끔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압수해 갈까요?”
“미쳤냐? 김 대위 밤마다 기도하는 거 니도 알지. 압수해 가면 그 새끼가 게거품 물 걸.”
군인은 내팽개쳐진 성경을 자기 손으로 툭툭 털어 지수에게 도로 주었다. 성경을 돌려받은 지수는 검지를 세워 표지 위에 십자가를 그리고는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성자의 그것마냥 한없이 온화해 보이는 미소였지만 정한은 그 뒤에 숨겨진 서늘함을 알아차렸다.
가방 바닥에 만들어 둔 비밀 공간이 너무 좁아서 책은 기껏해야 세 권 가져올 수 있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 중 하나는 정한이 읽어주고는 하던 시집이었다.
지수는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본부’를 찾아갔다. 뭘 하는 곳이냐고 물었을 때 지수는 간단하게만 말했다. 싸우는 곳. 구 할의 의심과 일 할의 적개심으로 찬 십수 개의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 정한은 자신의 존재,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불안요소가 될 수 있음을 눈치챘다. 알아서 물러나 주는 것이 지수에게 더 도움이 될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쳐 입을 열려는 순간 지수가 정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얘 없으면 나도 없어.”
정한은 지수가 그토록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 없었다. 어쨌든 그들은 윤정한이 안고 있는 불안과 홍지수의 필요성을 저울질하여 후자가 더 무겁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고, 정한과 지수는 한 방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창문에는 커튼을 쳐 둬야 하고 발걸음도 조심히 옮겨야 하는 방이었다. 처음 매트리스에 누운 날, 정한은 지수에게 말했다.
“내가 비밀 지켜야 하는 거지?”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고 정한은 이렇게 될 거 알았으면서 왜 날 데려오기로 한 거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정한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뭇결의 개수를 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어디 끌려가면.”
“…….”
“그냥 혀 깨물고 죽을게.”
“정한아.”
“난 아픈 거 잘 못 참으니까…… 그게 나을 것 같아.”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왜 그런 말을 해. 나직한 목소리가 꼭 비명처럼 들렸다. 정한의 매트리스로 옮겨 온 지수가 팔을 한껏 벌렸다. 한 명 눕기에도 좁은 곳이라 자연스럽게 몸이 겹쳐졌다. 자기가 안아줄 것처럼 팔을 벌렸으면서 결국 정한에게 안기게 된 지수가 정한의 뺨에 제 뺨을 기댔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을 때마다 맞닿은 살갗이 희미하게 떨렸다.
결국 둘 다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정한은 지수를 안은 채 커튼 너머가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보았다. 슬슬 하루가 시작되려는지 아래층에서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눈가를 대충 문지른 지수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야 매트리스 하나를 혼자 쓸 수 있게 되었는데도 편안함이 느껴지기는커녕 빈 자리가 허전하기만 했다. 지수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구겨진 채 걸려 있던 티셔츠를 탁탁 털어 폈다. 정한은 한결 말끔해진 지수가 청자켓을 걸치는 것까지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나갔다 올게.”
정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이별을 준비한다. 위안이 되는 점은 아직 함께 있다는 것, 하나가 전부였다.
고향에서처럼 정한은 지수의 손이 되어 주었다. 이번에는 책이 아니라 지수의 머릿속에서 쏟아져나오는 말을 베껴 적었다. 커다란 종이에 글씨를 써야 할 때면 종이를 가로로 여러 번 접어 줄을 만드는 게 편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바닥에 종이를 펼쳐 놓을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매트리스를 세워서 한편으로 치워 놓아야 했다. 크기에 비해 얇디 얇은 종이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죽 찢어질 수 있었고, 펜의 잉크는 손날로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번지기 쉬워 한껏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모른다. 빨간 펜으로 크게 써 둔 제목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기차에서 군인들을 마주쳤을 때와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지수는 담담한 어투로 고향에서 벌어진 일을 읊었고 정한은 그걸 빠짐없이 옮겼다. 정제된 분노는 금세 종이를 채웠다. 빼곡하게 들어찬 글자를 바라보던 지수가 정한을 돌아보았다.
“약해 보이지?”
“응?”
“종이는 쉽게 찢어지고 잉크는 쉽게 번지잖아.”
지수는 자주 정한의 머릿속을 읽는 것처럼 말했다. 정한은 펜촉을 너무 세게 누르는 바람에 보기 흉하게 번진 마침표가 신경 쓰였다. 그러나 지수의 신경은 다른 데 가 있었다.
“그래도 글이 가장 강하다는 걸, 언젠가는 모두가 알게 될 거야.”
더 먼 곳, 더 높은 곳에.
정한은 지수를 따라 하숙집 지하로 내려갔다.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는 등사기 두 대가 놓여 있었다. 대자보 말고도 여기저기 뿌릴 유인물이 필요했다. 고향에서 하던 것처럼 등사지에 철필로 글자를 새겼다. 그동안 다른 사람과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지수가 청자켓을 허리에 둘러맸다. 정한은 철필 뒷부분으로 왁스를 조심스럽게 긁어내 잘못 쓰인 글자를 고치며 물었다.
“어디 가?”
지하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건 정한과 지수 둘뿐인 것 같았다. 지수는 벽에 걸린 모자를 눌러쓰고는 대꾸했다.
“교회.”
“거긴 왜?”
“지하에 등사기가 있거든.”
그러니 어차피 내 머리에서 나온 글, 머릿속에 그대로 담아 가서 교회 지하에서도 찍어내겠단 의미였다. 정한은 더 묻지 않고 갔다 와, 하고 짧게 말했다. 와중에 획이 하나 더 틀어졌지만 읽는 데는 무리 없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여기서는 질보다도 양이 우선이었다. 찬송가 부르는 아래에서 지수가 등사판을 미는 동안 정한은 하숙집 지하에서 등사원고를 만들어냈다. 다들 요령이 있는지 찍어내는 속도가 꽤 빨랐는데, 세 장쯤 만들고 나니 정한도 속도가 붙었다. 밤늦게 돌아온 지수는 녹초가 된 얼굴로 할당량은 다 채웠다고 말했다.
잠든 지수를 뒤로 한 채 새카맣고 끈끈한 잉크를 손에서 닦아내며 정한은 관에 이름을 쓸 때를 떠올렸다. 그런데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왜 어떤 죽음은 기록될 권리조차 갖지 못합니까? 정한은 고향에서는 발이 넓은 축에 속했다. 듬성듬성 빈 자리가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이름으로도 남지 않은 사람들. 언젠가 그들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와야만 했다. 손이 깨끗해지고 나서도 정한은 한참 동안 세면대 앞에 서 있었다. 거울 안에는 낯선 표정이 보였다.
다음 날 새벽, 지수가 졸업한 대학 정문에 대자보가 걸렸다. 골목마다 똑같은 내용을 적은 갱지가 뿌려졌다. 경찰들이 대자보를 찢기 전, 정한은 그 광경을 보고 왔다. 멈춰 서서 종이에 쓰인 글을 읽는 대학생들을 보며 몇 년 전의 지수도 그랬을지 상상했다. 무자비하게 휘둘러지는 곤봉을 피해 조금 뛰어야 했고, 집에 들어가기 전 멈춰 서서 숨을 골랐지만 지수는 정한의 얼굴을 보더니 말없이 찬물 한 잔을 건넸다.
정한은 지수의 유서를 본 적이 있다. 누런 봉투 안에 두 번 접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읽은 건 첫 문장뿐이었다.
나는 내가 곱게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수는 끝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정한은 점차 지수와 함께 외출하기 시작했다. 지수가 내키지 않아 하는 게 보여도 뻔뻔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지수를 따라갔다. 핑계야 찾으면 된다지만 요는 정한이 지수 혼자 내보내는 게 두려워졌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그 두려움이 실체화됐다는 것이다.
정한은 종종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꿨다. 끝도 없이 늘어선 것처럼 보이는 관들 사이를 걷다가 맞다, 이름을 써야 하지, 하고 뚜껑을 열면 그 안에 지수가 누워 있었다. 발작적으로 깨는 바람에 지수까지 깨운 적도 있었다. 보다 끔찍한 꿈도 있었다. 관 뚜껑이란 뚜껑은 죄 열어 보았는데도 지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꿈이었다.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 죽더라도 곱게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 곱게 죽지 않더라도 내게 다시 돌아오기만 했으면 좋겠어 내가 거기서도 너 따라갈 수 있게……. 그런 꿈을 깨고 난 새벽엔 지수가 고향에서 가져온 시집을 몰래 꺼내어 읽었다. 엷은 연필 자국을 손끝으로 더듬노라면 흐린 불빛에 의지해 몰래 시를 읽는 지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인은 사람이란 서로 귀 기울이고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썼고 지수는 가장 약해 보이는 것이 가장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한은 사람의 몸이 얼마나 연약한지, 그러나 그 연약한 몸 안에 얼마나 강인한 정신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사실 끝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건 이곳 사람들이 다 그랬다. 책 한 권, 종이 한 장에 목숨을 위협당할 수 있는 상황에도 그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냈고 입에서 입으로 말이 옮겨지는 건 세간의 인식보다 속도가 빨랐다. 경찰이 대학 정문을 지키고 서 있으면 후문에, 후문도 지키고 서 있으면 담장에, 담장에도 둘러서고 사복 차림으로 학생들 사이에 숨어들어가 있으면 화장실에라도 자보를 붙였다. 달리기야 일상이었고 담 넘는 실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딘가에 모일 때면 도망칠 곳부터 확보해 두었다. 지하실에 숨든 쪽문으로 몰래 나가든 다시 모일 수 있어야 했다. 지수도 정한에게 몇 개를 알려 주었다.
“병원 말인데.”
못마땅하다는 듯이 미간을 좁힌 지수가 마지못해 입 여는 기색이 뚝뚝 묻어나는 투로 말했다.
“갈 일 없으면 좋겠지만……, 만약 크게 다치면 거기로 가. 뒷길로 가야 해.”
지수는 삐뚤빼뚤한 약도나마 그려 주며 최선을 다해 정한에게 길을 설명했다. 정한은,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나중에 혼자 가 볼 생각 하며 일단 고개만 끄덕였는데, 지수는 그걸 다 눈치챘는지 한숨 한 번 푹 내쉬고는 정한을 데리고 나왔다.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는 것치고 지수의 얼굴은 덜 팔린 편이라 가능했다.
간신히 길을 익히고, 먼발치에서 병원을 바라보며 정한은 또다시 고향을 떠올렸다. 그날, 광장에도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었다. 죽은 사람도 있었고 산 사람도 있었다. 피로 물들어 흰색이라기보다 붉은색이라고 해야 할 법한 가운을 입고 있던 얼굴을 정한은 십 년쯤 전의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중학생 때부터 그렇게 의사가 될 거라고 떠들고 다니더니 진짜 된 거냐고 축하해 주기에는 너무 늦은 재회였다. 군인들의 난동으로 병원에 있던 의료용품 대부분은 못 쓰게 되어 버린 탓에 어떤 의사들은 집집마다 돌면서 가정에서 상비하고 있는 연고나 붕대가 있다면 내어 달라 호소했고 어떤 간호사들은 마포자루를 가져와 부목 대신 동여맸다.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더라도 산 사람은 살려야 했다.
“넌 저기 가 본 적 있어?”
정한은 문득, 자신이 모르는 지수의 시간이 못 견딜 만치 궁금해졌다. 정한의 옆에 서 있던 지수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몸을 기댔다. 손질할 새가 없어 뒷목을 덮으며 길어난 머리카락이 정한의 목을 간지럽혔다. 그럴 때가 아닌데 덩달아 마음까지 간질거렸다.
“있지.”
하긴 지수는 아직도 손목을 잘 쓰지 못했다. 정한은 이제 지수가 어쩌다 다친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애써 알려 하지 않아도 보고 듣는 게 있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정한은 가만히 지수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지수는 잠깐 손가락을 움찔거리다가 이내 정한의 손을 마주 잡았다. 둘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오래오래 병원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함께 돌아왔다. 자기 전에는 지수가 다시 중얼거렸다. 갈 일 없어야 할 텐데, 하고. 정한은 차라리 병원에라도 갈 수 있으면 나은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갈 일, 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생겨났다.
상황 자체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긴 했다. 대학가 주변의 분위기는 날이 바뀔수록 험악해지고 있었다. 경찰들뿐만이 아니라 기자들도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러나 아침에 신문을 받아 보면, 처음 몇 장의 기사는 뒷장의 글자까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맣게 칠해져 있거나 급조하여 끼워넣은 티가 역력히 드러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부풀어오르는 풍선처럼 불만과 적개심은 자꾸만 커져 가는데 바람을 빼 주기는커녕 계속 펌프질만 해 대니 터지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지수는 몇 번이고 정한에게 몸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고 정한은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우리가 헤어지게 되거든 저번의 그 교회에 가 있겠다고 약속했다. 등사기 쓰느라고 지수 따라가서 눈도장 찍은 곳이니 숨어 있는 데는 최적이었다.
그래서 정한은 마침내 풍선이 큰 소리를 내며 터져 버렸을 때도 교회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쏟아지는 비명과 고함 틈에서도 교회로 향하는 길만 찾으면서, 옷자락을 붙드는 경찰의 손을 있는 힘껏 뿌리치고 곤봉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달렸다. 별로 달리지도 않았는데 숨이 가쁘고 귀가 멍했다. 먹은 것도 없는데 구역질이 올라와 속이 울렁거렸지만 괜히 숨 돌리게답시고 멈춰 섰다가 잡혀서 후환을 남기느니 혼자 심장 터져 죽는 게 나았다. 한달음에 담을 훌쩍 뛰어넘었는데 다행히 경찰이 깔려 있지 않은 쪽 길이었다. 조금 더 달리니 익숙한 길이 나왔고 이제 목적지까지의 경로가 명확해진 덕에 정한은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편의 시나리오로 치면 간단했다. 시간, 오후 세 시 경. 장소, 어느 길. 등장인물, 남학생과 경찰.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게 문제였다. 하도 소란스러워 아무도 그들에게 주목하고 있지 않았는데 하필 정한이 그걸 봤다. 남학생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곤봉에 맞은 건지 아니면 어딘가에 걸려 찢어진 건지, 피가 줄줄 흘러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순간, 눈이 마주쳤다. 정한은 저 눈을 알았다. 홍지수의 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눈이었다. 생각보다 몸이 앞섰다. 정한은 남학생을 감싸듯 그 앞을 가로막고 섰다. 경찰이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정한은 숨가쁘게 말했다.
“제 동생이에요.”
거짓말이다. 정한에게는 여동생밖에 없었고 그 여동생은 길거리에서 죽었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또 거짓말이다. 정한의 어머니는 여동생을 찾으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자신이 갔다오겠다는 정한에게 어머니가 말했다. 군인들이 젊은 남자들을 제일 먼저 끌고 간다더라. 그런데 나이 든 여자였던 당신은 죽고 나는 살았다. 이제야 기억났다.
고향에 야학당 세우고 애들이나 가르치며 정한과 함께 살려던 홍지수가 수도행을 결심한 계기. 지수는 정한을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발견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다리를 온통 적시고 있는데도 정한은 그 앞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덩달아 지수의 목소리도 다급해졌다. 야, 정한아, 윤정한. 몇 번을 부르고서야 정한이 지수를 돌아보았다. 사실 ‘보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초점 잃은 눈은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수는 그런 눈을 많이 보았다. 불의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세 종류로 나뉘었다. 꺾이거나, 투사가 되거나, 아니면……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예 잊거나. 지수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수배령이 내려질 뻔한 위험을 피해 고향으로 향하면서 한구석에 묻어 두었던, 어떤 의문이.
지수는 정한을 집에 데려다 주고 그 자리로 돌아왔다. 어려서 부모 잃은 자신을 친자식처럼 챙겨주신 분을 등에 업었다.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여동생의 시신을 보았다. 그 애는 교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손목에 지수가 만들어 주었던 실팔찌를 하고 있어서 알아볼 수 있었다. 두 명을 한꺼번에 업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지수는 광장에 들렀다가도 쉬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왔을 땐, 여동생의 시신은 사라져 있었다. 누군가가 이미 수습했을까, 아니면 설마 군인들이……. 밀려오는 두통에 지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눈을 감았다. 자신의 것이 아닌 피가 땀과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움직여야 한다는 건 아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지수를 움직이게 해 준 건 정한의 목소리였다.
“왜 그러고 서 있어?”
뛰어왔는지, 정한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사람 있는지 확인한다고 문 두드리며 다니던데 너희 집이 비어 있다고 하잖아. 관 옮길 사람이 필요하대. 지수는 그건 네 어머니와 여동생의 관이기도 하다고 말하기보다 침묵하는 편을 택하고 정한과 함께 광장으로 갔다. 사람들이 지수가 추도사를 읊어 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받아들였다. 지수는 관 사이를 오랫동안 걸어다녔고, 마침내 정한의 여동생을 발견했다. 저 멀리서 부지런히 관을 나르고 있는 정한을 잠깐 보았다가,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정한의 어머니가 누운 관 옆으로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지수처럼 관 사이를 유령처럼 걸어다녔다. 혹시 자신이 아는 얼굴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 줄기 바람을 붙잡고서. 회장은 지수를 고향으로 내려보내면서 당부했다. 거기서는 제발 여기 일 잊고 지내라고, 부디 네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살라고, 그래야 안전할 수 있다고. 때가 되면 자신을 다시 부를 걸 알았기 때문에 지수는 회장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수는 고향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당분간은 떠올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의문을 끄집어내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장례를 마치고, 지수는 올초에 야학당을 졸업한 한 여학생을 찾아갔다. 여자애까지 공부시킬 돈은 없다는 부모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다가 지수가 야학당을 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온 학생이었다. 하루 열 시간 넘게 일하느라 졸음에 겨워 눈을 비비면서도 언제나 지수의 수업을 잘 따라오고, 미싱 바늘에 찔려 피멍 든 손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지수는 그녀의 부모를 설득해 대학을 보내달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때문에 그 여학생은 지금도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수가 불러내자 그녀는 피곤한 얼굴로도 반가운 기색을 띠었다.
“선생님.”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지수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존댓말을 썼다. 지수의 학생들 대부분은 공장에서 일하며 야, 너, 이새끼, 저새끼로 불리고는 했고 그들은 처음에는 지수의 말투를 어려워하다가도 곧잘 적응했다. 지수는 그들이 존중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이라면.
“학교를 맡아주세요. 상황이 진정되고 나서, 다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를 했나. 무엇을 얻으려고 정든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까지 왔나. 돈을 벌기 위해 부잣집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수는 고향의 공장을 떠올렸다. 비단 고향의 일뿐만은 아니었다. 과외 한 시간보다도 사람 목숨값이 더 싸게 거래되는 곳은 수도에도 많았다. 셔터 내린 신문사를 보며, 곤봉을 들고 수시로 캠퍼스를 헤집는 경찰들을 보며, 찢겨진 대자보를 보며 지수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럼…… 선생님은요?”
“해야 할 것이 있어서요.”
가르치는 것도 물론 좋았다. 변화란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 앞에서 끌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들보다 몇 살 많지도 않은 교사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지수는 희망의 씨앗을 하나하나 심어 나갔다. 우리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한 명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고, 다른 사람이 변절하면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고, 그렇게 끊임없이 나아갈 것이다. 멀리 내다보며 인내심을 가져야 했다. 언젠가 가장 기본적인 인식부터가 바뀌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홍지수로 하여금 수도행을 결심하게 만든 건 결국 윤정한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윤정한은 홍지수 인내심 갉아먹는 데는 도가 텄었다. 홍지수를 약하게 만드는 것도, 또한 강하게 만드는 것도, 전부 다 윤정한이었다.
갈 일 없으면 좋겠지만, 만약 크게 다치면 거기로 가. 지수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한 번 와 본 적 있는 길인 게 다행이었다. 정한은 교회가 아닌 병원을 향해 뛰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고 목구멍에서는 피 맛이 났지만 목덜미에 닿는 숨결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아 멈출 수 없었다. 제발 살아만 있으라고, 정한은 지수의 신앙을 빌려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마침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다리를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쳐 있었다. 간호사에게 남학생을 넘기고 숨 좀 고르려는데 누군가 정한을 붙잡았다. 돌아보니 하숙집에서 몇 번 보았던 얼굴이었다.
“지수 형 지금 아래층에 있어요.”
그는 자기 할 말만 하고 급하게 어디론가 뛰어갔다. 정한은 잠시 멈춰 서 있다가, 몸을 돌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층 하나 내려왔을 뿐인데 복도에는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정확하게 몰라 무작정 걷고 있으니 또 아는 얼굴이 나왔다. 지수 형 친구, 라면서 소근거리는 말들이 오가고 몇 차례의 인계를 거쳐 정한은 지수를 볼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릴 뻔한 건 비단 병원까지 뛰어오느라 지쳐서만은 아니었다. 지수는 침대에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환자복도 아니고 오늘 아침 입고 나갔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얼굴엔 핏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다가, 닦는다고 닦은 것 같은데도 상처에는 피가 엉겨붙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정한도 이해했다. 감시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다친 사람은 너무나 많았다. 정한은 의자를 끌어다가 지수의 옆에 앉았다. 습관적으로 지수의 손을 잡으려다가 멈칫하고, 천천히 이불을 걷었다. 붕대가 둘둘 감겨 있는 오른손이 보였다. 거기에 손을 얹자 온기 대신 까슬까슬한 촉감만 느껴졌다.
정말 우리가 이겨?
지수의 위로 관들이 늘어선 모습이 겹쳐졌다. 그 관 어딘가에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었는지 정한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모르기 때문에. 정한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지수에게 묻고 싶었다.
정말 우리가 이기는 거지?
정한은 지수의 옆을 지켰다. 의사가 몰래 진료를 보러 올 때면 의자 채로 자리를 옮겨 구석에 가 앉아 있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하숙집에서 본 사람들, 혹은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오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앉아 지수의 얼굴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들은 물론 지수를 보러 온 것이었다. 정한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얘기가 돌았는지 다들 그러려니 하면서 지수의 옆에서 말을 나누었다. 정한은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귀담아들었다.
사흘째 되던 날엔 병실에 새로운 방문객이 찾아왔다. 놀랍게도 지수가 아니라 정한 때문에 온 거였다. 자신을 부승관이라고 소개한 남학생은 그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말갛게 웃었다. 이마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얼굴 여기저기에 타박상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겉보기로는 괜찮아 보였다.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정한은 크게 안도했다. 인사만 전하고 갈 줄 알았는데, 승관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여분의 의자를 발견하고 냉큼 가져와 정한의 옆에 앉았다.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만남이고 사실 지난번의 것은 만남이라고 치긴 애매한 수준이었지만, 승관의 싹싹함이 싫지 않아 정한은 자리를 조금 더 내어 주었다. 지수를 보는 승관의 눈에는 착잡함이 담겨 있었다. 정한은 불쑥 물었다.
“너도 지수랑 아는 사이야?”
“네? 뭐 그렇죠, 저희끼리는 다 알아요.”
“어떻게 아는데?”
“저 그렇게 안 보여도 나름 학생회 서기예요. 지수 형이랑 같은 과.”
승관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정한은 가만히 지수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시집을 읽어 주고 교본을 베껴 주던 때가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탓이다. 지난 날에는 그 모든 일들이 별개인 것으로만 여겨졌다. 이제는 아니다. 정한은 보고 들은 것들을 실로 삼아 사건들을 이어 붙였다. 수도에서 대학을 다니지 못했더라도 정한은 충분히 기민했다. 지수의 확언을 받지 않아도 이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럼 나 좀 도와 줘.”
“어떻게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싶어.”
나는 왜 걔랑 마주보고 있을 생각만 했을까. 정한은 비로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깨달았다. 맞은편에 서서 지수의 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옆에 서서 지수와 같은 곳을 보고 있어야 했다.
고향에 가고 싶었다. 좋은 시절이었으면 평범하게 대학 다니다가 평범하게 대학 졸업하고, 수도에서 직장 얻어서 몇 년쯤 살다가 역시 사람은 태어난 곳에서 사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 품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텐데, 전제조건이 충족되질 않으니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책 읽고 글 쓰고, 낮 되면 발품 팔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상이 당연해졌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쉴 새가 없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뒤의 계획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들어찼다.
내가 없으면 앞으로의 일은 어떡하지. 연락책을 맡기로 했는데. 연설문을 아직 다 완성하지 못했는데. 고향에 학생들을 두고 왔는데.
“지수야.”
내가 없으면……
“제발 눈 좀 떠 봐.”
너는 어떡하지, 정한아.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진짜로 깨진 거 아닌가 싶어 손으로 만져 보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을뿐더러 한쪽 손은 감각도 없었다. 들썩일 만큼은 힘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정한이 호들갑떠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기별도 안 간 모양이었다. 지수는 손을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 아예 온몸의 힘을 빼 버렸다. 코는 무언가에 막혀 있는 것 같고 목구멍은 말라붙었고 눈꺼풀 하나 들어올릴 힘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짙은 안개로 가득 차 있는 것마냥 무겁고 축축했다. 그 안개 속을, 정한이 헤치고 걸어왔다.
“연락책은 내가 하기로 했어.”
정한아, 너는 아마 몰랐겠지만, 난 널 데리고 수도로 온 걸 가끔 후회했어. 고향에 너 혼자 두었다가 무슨 얘길 듣고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몰라서라고 스스로 정당화하긴 했지만, 여긴 너무 위험하잖아. 너는 거기서 살아남았는데 내가 여기서 널 죽이게 되면 어떡해. 집에만 꽁꽁 숨겨둘까 했는데 네가 날 따라오겠다고 했을 때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 하긴 넌 날 혼자 내버려둘 사람은 아니지. 정한아, 난 죽는 건 안 무서워. 그런데 네가 나 죽은 줄도 모르고 있을까봐, 그래서 날 평생 기다리게 될까봐, 그게 너무 무서웠어. 그렇게 된 사람들을 많이 봐 왔거든. 너까지 여기 데려온 건 내 욕심이야. 그래도…… 이해해 줄 거지? 나한테는 이제 너밖에 안 남았는데, 너 없으면 나는 어떡해.
“괜찮아, 지수야. 우리가 이길 거야.”
정한이 시처럼 말했다. 가장 부드럽지만 절대 꺾이지 않을 목소리로.
네가 와서 고독은 극복되었다
나는 지상의 안내자를 갖게 되었고 내 갈 길을 알게 되고
끝없이 나아갈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나아가게 되자 공간과 시간을 얻게 되었다
나는 너를 향해 나아갔다 끝없이 빛을 향해 나아갔다
* 인용된 시: 폴 엘뤼아르, 자유 Liberte
폴 엘뤼아르, 죽음, 사랑, 인생 La mort, l’amour, la v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