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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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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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이름은 언젠가 타버리겠지만

 

 

 

 

 

 

 

 

 

*

 

 

 

 

 

 

 

 

 

지수는 바짝 마른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입술 표면이 뜯어진 자리를 혀로 핥아올렸더니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실제로 피가 나진 않았는데. 비행기 시간이 됐음을 문득 알아차린 지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난히 맑은 날씨. 창밖엔 비행기들이, 비행기와 연결된 게이트 앞은 여행의 설렘으로 잔뜩 들뜬 가족단위의 승객들로 북적였다. 모두 각자의 설렘으로 표정이 빛났다. 지수는 코트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티켓을 꺼내 4번 게이트 위로 표시 된 것과 번갈아 쳐다보며 같은 지 확인했다. 지수는 10년 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그러니까, 10년 만에 한국에 간다. 

 

 

 

 

 

-

 

 

 

 

 

 10년 전의 한국. 지수가 열일곱 무렵의 일이었다. 부모님의 직장이 미국이었던 탓에 미국에서 나고 자란 지수에게 한국은 그의 친숙한 한국식 이름과는 다르게 낯선 타국이었다. 지수의 부모님은 지수의 손을 붙잡고 한국으로 향했다. 급하게 한국에 볼일이 생겼다는 이유에서였다. 

 

 

 

 하루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고,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좁은 시골길을 구불구불 달려서 지수의 삼촌이 사는 이층짜리 주택에 도착했다. 듬성듬성 자리한 조용한 주택들을 빼면 온통 밭과 길, 야트막한 언덕이나 야산뿐인 동네였다. 길을 따라 조금 빠져나오면 오래된 정겨운 동네 미용실이나 식당들로 찬 1층짜리 상가들이 즐비해있었다. 지수는 삼촌 집에서의 석 달을 제법 즐겁게 지낸 뒤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지수의 유년시절 한 조각이 거기에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지수의 유년시절 한 조각 거기엔 지수의 인생을 어지럽게 흩어놓은 금발머리 동갑내기 남자애도 있었다. 

 

 

 

  “엄마 혹시 기억 나? 나 전에 한국에 잠깐 있을 때 친했던,"

 

“기억나지. 네가 무슨 별명으로 부르면서 한동안 재잘거렸잖아."

 

 

 

  다시 한국에 가기 일주일 전, 지수는 모처럼 엄마와 단둘이 식사자리에서 한국에서 만났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에서 돌아온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지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도 절대로 흐려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면 그 애에 관한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색하게도 그 애의 이름은 유일하게 흐릿해졌다. 그 애를 부르던 별명이자 애칭은 한이였는데... 본명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수는 '한이'의 발음을 몇번이고 곱씹었다. 한이, 한이, 하니, 하니... 두 글자가 지수의 목구멍 너머로 소리 없이 부드럽게 부서져 사라졌다. 밝은 금발머리, 유난히 흰 피부의 남자아이. 잦은 탈색으로 머릿결이 좋지 않았던 아이. 지수가 '한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아이. 

 

 

 

 그 애는 지수의 인생을 흩어놓았다. 지수의 인생을 동째로 흩어놓은 그 애는 미국으로 돌아온 지수와 다시 만나지도,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았다. 너무 빠른 세상은 열일곱 홍지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좌절이 있었다. 정성을 쏟은 것들이 좌절이란 이름으로 시들어 갈 때마다 그 애와 짧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도리어 열병이 되어서 지수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의 기억은 향수 같은 게 됐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향수병. 

 

 

 

그러나 지수가 한국에 10년만에 다시 가려는 이유는 불분명했다. 10년이면 사계절이 열 번 지나간다. 강산도 변한다. 하물며 그 깡시골이 그 때 그대로 있을거란 보장이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에 가면 수많은 좌절마다 끓었던 지독한 열병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먼 궤도를 돌아 일정한 주기로 같은 밤 하늘에 나타나는 혜성처럼 또 다시 스쳐야만 하는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 나 다음 주에 한국 가. 아마 한달은 더 있다가 올거야. "

 

"한국엔 왜? "

 

 

 

한참동안 혼자 생각에 잠겨 숟가락을 깨작거리던 지수가 말을 이었다. 

 

 

 

"거기에 놓고온게 있어. "

 

 

 

 한국행 비행기는 한참을 날아갔다. 비행기는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든 지수를 싣고 밤하늘을 가로질러갔다. 지수는 어린시절의 꿈을 꿨다. 한이가 늘 타고다니던 하늘색 자전거 뒤에 앉아서 시골길을 가로질러 달리는 꿈을. 여름이 끝나가던 그해 9월 초의 어느날, 저수지 산책길 풀숲에 앉아서 함께 꼬리별이 떨어지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꿈을 꿨다. 

 

 

 

 

 

 

 

 

 

 

 

*

 

 

 

 

 

 

 

 

 

 

 

 "너 이름이 뭐야?" 

 

 "한국이름은 홍지수."

 

 "나는 윤정한이야, 잘부탁해." 

 

 

 

 응 나도 잘부탁해. 지수는 특유의 눈꼬리가 휘어지는 웃음을 지으며 정한이 내민 손을 맞잡아 악수했다. 정한도 지수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한국에 와서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지수에게 처음 말을 걸어준 사람이 정한이었다. 망설임 없이 먼저 다가와준 정한이, 지수는 정말로 좋았다. 갑자기 혼자 뚝 떨어져버린 타국에 의지할만한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기뻤다. 잘 부탁해. 악수를 하고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넨 뒤 윤정한은 자기가 타고 온 파란색 자전거를 타고 지나왔던 길로 사라졌다. 

 

 

 

 정한은 매일 지수를 만나러 왔다. 지수가 동네에 온 다음날은 동네 구경 시켜주겠다며 파란색 자전거 뒤에 지수를 태우고 온 동네를 달렸다. 그 다음날은 동네 아이들을 소개시켜주겠다며 지수의 손을 잡고 이 집 저 집을 다 들쑤시고 다녔다. 얘들아 인사해 얘가 지수야!! 하고 우스꽝스럽게 쩌렁쩌렁 소리치며 소개시켜주어 지수와 동네 아이들 모두 웃음을 터뜨린 덕에 지수가 더 이상 낯을 가리지 않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정한은 매일매일 지수를 만나러 왔다. 

 

 

 

 

 

 

 

-

 

 

 

 

 

 

 

 

 

 정한의 집에 지수가 처음 놀러 간 날이었다. 지수와 정한은 선풍기 하나 틀어놓고 만화책을 꺼내 읽고 있었다. 유난히 더운 날이었기에 선풍기 하나로는 더위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매미 소리가 거실 가득 메우고 있었고 지수는 만화책만 들여다보고 있었고 정한은 만화책을 보는 지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너 내 얼굴 왜 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정한이 자신을 보고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수가 화들짝 놀라 만화책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그 때 탈탈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에 지수의 앞머리가 흩날렸다. 정한은 부끄러워하는 지수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잘생겨서."

 

 "무슨 소리야..."

 

 

 

 윤정한은 사람 당황스럽게 하는 소릴 잘 했다. 잘생겼다거나 귀엽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지수는 한국에서는 원래 친구끼리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정한은 의아해하는 지수를 보며 킬킬 웃더니 손에 쥐고있던 만화책을 펼쳐 얼굴에다가 덮고 눈을 감았다. 열린 창문으로 눅눅한 여름 냄새가 한가득 쏟아졌다. 

 

 

 

 "지수야, 네가 나 부를 때 너 말고 다른 말로 불러주면 안돼?"

 

 "응?"

 

 "나한테 별명 같은 거, 지어주라."

 

 

 

 그러면 너랑 내가 특별해질 거 같아. 너만 불러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진다는게 말야. 얼굴에 덮었던 만화를 턱 밑으로 끌어내리며 정한이 말했다. 너랑 내가 특별해진다는게 무슨 뜻일까. 지수는 정한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지수에게 한국말은 어려웠다.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도 특히 정한이 하는 말은 그 숨은 뜻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너한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면 너랑 내가 어떻게 특별해지는데?"

 

 "물론 지금도 특별하지만 이름을 붙여주는 건 다르지. 만약 네가 강아지를 처음 키우게 된다면 그 때 이름을 지어주고 '너는 이제부터 흰둥이야!' 라고 하는 것 처럼. 내가 강아지라고 생각하고 한 번 지어봐."

 

 

 

 그 때 지수는 정한이 정말 강아지 처럼 보였다. 어중간하게 길어진 정한의 밝은 금발이 보드라운 강아지의 털 처럼 보였다. 검정보다 조금 밝은 눈동자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아."

 

 "한이? 그거 좋다! 그럼 앞으로 나 한이라고 불러 지수야!"

 

 

 

 무슨 소리야? 나 정한이라고 했는데? 넋을 놓고 있던 지수가 '정' 발음을 제대로 하지 않고 부르자 정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낚아챘다. 정한은 따지려고 달려드는 지수를 따돌리고 2층으로 뛰어올라갔고 지수도 정한을 붙잡기 위해 따라서 뛰어갔다. 어이없게도 뛰어가는 와중에 누가 먼저랄것 없이 웃음이 터졌고 매미소리만 가득했던 집이 한순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웃다가 숨이 찬 나머지 둘은 계단 중간에 걸터앉아서 서로를 마주보고 웃었다. 장난기 어린 정한의 눈이 이 여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지수는 정한이 말한 특별한 사이라는 게 어렴풋이 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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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 근데 내 별명은 안 지어줄거야?"

 

 

 

 

 

 정한의 자전거 뒤에 타 함께 시내로 나가는 중에 지수가 정한에게 물었다. 함께 만화책을 보던 날에 정한의 별명은 어찌저찌 지었지만 정한은 여전히 지수라고 불렀다. 지수는 그게 나름 서운했다. 지수는 정한도 자신의 별명을 지어줄거라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별명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수는 정한을 계속 한이라고 불렀다. 정말 그게 정한과 특별한 사이가 되는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듯이.  

 

 

 

 

 

 "너 이담에 한국에 다시 오면 지어줄게."

 

 "그런 게 어디있어."

 

 

 

 

 

 너한테는 멋진 별명 지어주고싶단 말이야. 근데 당장 생각이 안 나서. 너 다시 미국 갔다가 언제 다시 한국 와서 나 보러 와. 그러면 지어줄게. 약속할게. 자기 별명은 멋대로 못박아놓고는 정작 지수의 별명은 다음번을 기약하는 정한이 내심 미웠다. 한국에 언제쯤 다시 오게 될까. 이제는 미국으로 돌아갈 날이 열 손가락 안에 세어지게 되었다. 아쉬웠다. 그리고 정한의 약속 덕분에 다시 한국에 돌아올 열 손가락 보다 더 먼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정한의 자전거 뒤에 앉아 꼭 감고있는 정한의 허리가 평소보다 포근하게 느껴졌다. 

 

 

 

 

 

 "지수야 무서워? 너 심장 빨리 뛰는 거 내 등에 다 느껴지는 거 같아."

 

 "아니, 무섭지는 않아."

 

 

 

 

 

 한아, 너 다른 친구들도 자전거 뒤에 태워줘? 앞으로도 아무도 태워주지 마. 그리고 나 다시 올 때 까지 내 별명 뭐라고 붙여줄지 열심히 고민해 둬. 하루에 한번씩 고민해보고 그래야 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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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렸다. 지수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사흘 전이었다. 지수와 정한은 영화를 보고 막 나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우산을 갖고있지 않았다. 다행히 멀리 구름 너머로 맑은 하늘이 보이는 걸로 보아 곧 그칠 것 같았다. 어떡해 우산 없는데. 자전거도 다 젖었겠다. 정한의 말 이후로 둘은 아무 말 없이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만 쳐다보고 있었다. 지수가 떠나게 될 날이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다가오자 서로는 직감하고 있었다. 앞으로 오래 보지 못할 것을. 

 

 

 

 

 

"지수야 비가 언제 그치지."

 

"......"

 

"내일 밤에 혜성이 떨어진대. 우리 그거 보러가자. 내가 별이 잘 보이는 곳을 알아."

 

 

 

 

 

 정한은 지수가 한국에 있는 동안 많은 걸 보여줬다. 정한이 사는 동네, 정한의 친구들, 여름을 담고있는 정한의 눈동자, 특별한 사이. 그리고 그 애가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몇십년 주기를 거쳐 같은 궤도를 돌아서 같은 하늘에 긴 꼬리를 내리며 떨어지는 별을. 지수는 정한을 바라보았다. 여름을 담은 눈동자가 하늘빛에 비쳐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곧 날씨가 추워지고 완연한 가을이 올 테다. 지수는 가을의 정한의 눈동자가 궁금해졌다. 겨울의 눈동자도, 봄도. 그의 눈동자는 여름 말고도 다른 계절을 담아낼까. 궁금하지만 당장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당장 세 밤을 자고나면 더는 정한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슬펐다. 

 

 

 

 

 

 "너 별똥별에다 소원 빌어본 적 있어?"

 

 "아니. 한아,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질까?"

 

 

 

 소원 빌어보고 이루어지나 한번 보자 우리. 정한이 제안했다. 소원을 빌어보고 누구 소원이 먼저 이루어지나 내기를 하자는 거였다. 지수는 웃으며 흔쾌히 수락했다. 내가 나중에 다시 한국 오면 네가 지어주는 별명 먼저 듣고 그 다음에 소원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자. 지수가 덧붙였다. 나중을 기약하면 덜 슬퍼졌다. 나중에 한국에 오면, 그 때는 짧은 여름이 아닌 사계절을 정한의 옆에서 보낼 수 있을까. 

 

 

 

 

 

 

 

-

 

 

 

 

 

 

 

 

 

 "별이 열한 시에 떨어진대. 그럼 우리 지금 나가야 돼."

 

 

 

 

 

 혜성이 떨어지는 날, 늦은 밤 지수를 집 밖으로 불러낸 정한이 얇은 후드집업을 건내며 말했다. 이제 날이 조금 풀려서 추울지도 몰라. 이거 입어. 지수는 정한의 체향이 벤 후드집업을 걸쳐입고 익숙하게 정한의 파란 자전거 뒤에 올라탔다.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니 정말 바람이 찼다. 처음 정한의 자전거 뒤에 탔던 날에는 이 바람도 적당히 시원한 정도였는데. 정말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꽤 오래 달렸다. 좁게 난 시골길을 지나, 큰 길에 다다르고 다시 축사 옆, 논두렁 옆을 달려 저수지에 다다랐다. 늦은 밤이라 지나다니는 사람 없이 한적했다. 정한이 말한대로 별이 정말 잘 보일 것 같았다. 정한은 아무곳에나 자전거를 세워놓고 지수의 손을 잡아 끌었다. 저수지 물가가 바로 앞에 보이는 수풀 사이에 누가 자주 앉았던 것 처럼 살짝 비워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자주 왔었어?"

 

 "응, 여기서 노래 들으면서 혼자 별 보는게 좋아서."

 

 

 

 

 

 나란히 앉아서 밤 하늘을 바라봤다. 흔한 인공 불빛 하나 없는 곳의 하늘은 별이 촘촘했다. 지수는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국에 있으며 자주 본 밤하늘이었지만 특별한 날이었다. 

 

 

 

 

 

 "지수야, 다시 올거지?"

 

 "응."

 

 "나는 말이야, 네가 오늘 떨어질 혜성 같다는 생각을 했어."

 

 

 

 

 

 네가 멀리 돌아도 다시 올거라는 예감이 들어. 나는 이 자리에 있을거고. 우리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지구랑 혜성 쯤 되지 않을까. 너는 먼 궤도를 돌아서도 다시 올거야.  이건 내 바람이 아니라 확신이야. 다시 돌아오면 그 때는 네가 사는 세상의 얘기를 해 줘. 네 별명 매일 열심히 고민하고 있을게. 

 

 

 

 평범한 이별멘트 치곤 꽤나 절절했다. 그러나 평범한 사이가 아니었으니 할 수 있던 말이라고 생각했다. 혜성이 떨어졌다. 정한과 지수는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각자의 소원을 담은 혜성이 하늘의 끝에서 끝으로 꼬리를 뻗으며 사라졌다. 

 

 

 

 눈이 마주쳤다. 미국에 갈 날을 애태우며 손가락으로 세던 일을 이제 그만 두어야했다.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을 맞췄으니까. 한동안 입맞춤이 이어졌다. 우리 정말 특별한 사이네. 정한이 말했다. 지수는 아무 말 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말에 동의했다. 정한의 눈에 별이 담겼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그 여름이 담겨있었다. 

 

 

 

 

 

 

 

 

 

 

 

*

 

 

 

 

 

 

 

 

 

 

 

 그 때 우리가 사랑을 했던걸까. 지수는 한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밟으며 생각했다. 그게 사랑이었던건지를 너무 늦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 때 불렀던 우리라는 이름은 지수가 미국으로 가면서 타들어갔다. 그런데도 정말 그 애의 말 대로 돌고 돌아서 다시 한국으로 향했다. 이젠 정말 한국이었다. 10월의 한국, 완연한 가을의 풍경이었다. 공항을 나서는 순간 그런 가을의 냄새가 났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한국은 지금 가을인데, 가을의 냄새가 나는데 눈동자가 여름을 담고있는 사람의 얼굴이. 잦은 탈색으로 인해 상한 머릿결의 금발이 지수의 눈 앞에 나부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댔다. 근데 너는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네 눈동자 까지도. 

 

 

 

 

 

보고싶었어, 한아. 그 때 빌었던 내 소원이 이루어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