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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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화성까지

익명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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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가 Y-19에 탑승하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여태껏 해왔던 것처럼 우주복을 점검하고,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여 매고,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면 끝이었다. 다시는 밟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지구의 땅을 눈에 찬찬히 담은 지수는 마침내 문을 영구히 폐쇄하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초록색으로 환히 빛나는 또 다른 버튼을 바라보았다. 발사를 위한 버튼이었다. 단 일주일이면 화성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Y-19는 기존 Y 시리즈와는 다르게 완전히 차별화된 모델입니다. 화성까지의 소요 시간은 단 84시간, 즉 일주일입니다. 지금까지의 실패 요인을 토대로 문제점을 분석했고......”

 

뉴스에서는 연일 그렇게 떠들어댔다. Y-1936년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 Y의 열아홉 번째 결과물이었다. 화성으로의 이주. 지구인이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는 소망이었다. 지구는 점점 낡아가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항공우주개발부를 신설해 화성 탐사를 직접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2086년 창설된 항공우주개발부는 그 즉시 ‘Y’라는 이름의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그동안 열여덟 개의 ‘Y’가 나왔고, 열여덟 명이 화성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 되었지만 결국 모두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서 그 끝을 맞게 되었다.

 

 

 

 

 

 

 

조슈아 지수 홍. 2095년 출생.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우주비행사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지수는 5년에 걸친 시험에도 우주비행사의 자격을 얻지 못했다. 자책과 노력을 번갈아 하던 그는 결국 조금 편안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한국으로의 귀화. 여기엔 몇 가지 조건이 따라붙었다.

 

자신을 항공우주개발부의 장관이라고 소개한 이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한식집에서 프로젝트 Y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놨다. 안타깝게도 한국어가 미숙했던 지수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긍정의 대답을 뱉는 것뿐이었다. 입에 맞지도 않는 음식을 꾸역꾸역 삼키며 지수는 먼 훗날 드디어 우주선을 탄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어린 시절 뭣도 모르고 계약서에 무작정 서명부터 한 자신을 지수는 결코 자책하지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혹시 우주에서 끝을 맞게 된 열여덟 명의 사람도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 5년 전을 생각하면 그때 마셨던 차의 향이 코끝에서 맴돈다. 이름이 궁금해서 묻고 싶어도 대답해줄 장관을 만나보긴 힘들 것이다. 윤태산이라고 했던가. 지수는 버튼을 누르기 전 이제는 흐릿해져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그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 사람의 꿈은 뭐였을까. 가만히 생각하다 이번엔 다른 이름을 떠올려 본다. 윤정한.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었던 Y-18. 그런 것 따위를 생각하면 절로 눈앞이 흐려졌다. 발사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5. 지수는 본부의 지령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윤정한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 미국인인 자신보다 화려했던, 은색에 가까운 탈색모. 종종 쓰고 다니던 동그란 철테 안경. 눈을 감고 들어도 구분할 수 있었던 독특한 걸음걸이. 유일하게 자신을 조슈아라고 불러줬던 사람. 떠오르는 것들이 죄다 이런 것들뿐이라 지수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입안의 살을 잔뜩 짓씹어야 했다.

 

어느새 본부로부터 발사 허가가 떨어지고, 지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눈앞의 버튼을 눌렀다. 씨발. 급박한 상황에서 먼저 나온 욕은 모국어인 영어도, 질리도록 배웠던 스페인어도 아닌 한국어였다. 언젠가 정한의 입에서 종종 튀어나왔던. 지수는 발사 버튼을 누르자마자 무언갈 직감한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그동안의 시간이 눈앞에 스쳐 지나간다.

 

 

 

 

 

 

 

합숙을 시작한 후 받기 시작한 훈련은 지수가 기대했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매일 똑같이 이어지는 고강도의 훈련에 밤이 되면 어김없이 곯아떨어지길 반복했고 그건 그의 동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쟤들은 무슨 사연으로 여기에 있는 걸까. 수없이 많은 의문들이 생기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러다 눈에 띄는 애를 봤다. 피곤한 동기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죽어있는 동공. 어느 날은 바로 옆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 내 이름은 조슈아 지수 홍이야. 한국에선 다들 그냥 홍지수라고 불러.

 

오기인지 뭔지 그 애는 끝까지 혼자 지수를 슈아라고 불렀다. 통성명을 한 후 친해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 슈아야,

- 여기선 다들 지수라고 부른다니까.

- 그럼 슈아 지수 합쳐서 슈지? 이건 어때?

 

인생이 무료해 보이던 걔는 지수의 옆에선 잘 웃었고 또 잘 울었다. 그 애는 훈련 얘기를 제외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얘기를 모두 지수에게 쏟아냈다. 지수야 너 곱창 먹어봤어? 곱창? 그게 뭔데? 있어. 소나 돼지 내장인데 소주랑 잘 어울리거든. 아 너 소주는 마셔봤다고 했나? 어쩐지 진부한 주제였지만 정한과 함께라면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작 하루에 두 시간 남짓 주어지는 식사 시간이 전부였지만.

 

 

 

 

 

 

 

- 나 이제 이거 그만두고 싶어.

 

정한이 그런 소리를 처음으로 입 밖에 낸 건 지수와 말을 트고 고작 한 달 후가 지난 시점이었다. 모든 훈련에서 늘 좋은 성적을 거두던 정한이었기에 지수로선 의문이었다.

 

- 나는 종종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상상을 해. 그럼 견딜 수 있어. 아무리 지구가 낡더라도... 우주에서 보는 지구는 영원히 푸른색일 거야.

 

지수의 말을 조용히 듣던 정한은 내내 말이 없다 한마디를 던졌다.

 

- 넌 정말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 성공해야지. 성공할 거야.

- 난 잘 모르겠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한에게 해줄 만한 적당한 말을 고르려 가만히 생각하는 사이 정한은 일어날 채비를 했다. 어디 가? 나 이제 훈련받으러 가야지. 정한이 받는 훈련은 지수의 몇 배는 더 되어 보였다.

 

- 유독 바빠 보이네. .

 

아무렴. 바빠야지. 난 부족하잖아. 자조적인 몇 마디를 남기고 정한은 금세 사라졌다. 왜 어딘가 찜찜한 걸까. 지수도 곧 손을 털고 일어났다. 찝찝한 기분은 어느새 사라지고 훈련을 간 정한이 보고 싶었다. 정한이는 어떤 훈련을 받고 있기에 매번 지쳐 보이는 걸까.

 

 

 

 

 

 

 

여느 때와 같이 고강도의 훈련을 마치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한 뒤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소등까지는 한 시간 남짓의 자유 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지수는 보통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책을 읽거나, 그것도 영 지루하면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봤다. 센터는 소위 말하는 깡촌에 있었기에 별이 아주 잘 보였다. 물론 지수는 정한에게 물어본 뒤에야 깡촌의 뜻을 알게 되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그 누구도 몰랐다. 국가 기밀로 간주되어 어디로도 새어나가지 않았다. 미국에 두고 온 가족이 있는 지수는 가끔 심란했다. 처음으로 한 반항이었다. 한국으로 귀화한 건. 우주비행사의 꿈을 포기하고 한의원을 물려받는 건 어떻겠냐는 어머니의 제안에 지수는 한국으로의 귀화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마무리가 영 좋지 않았기에 지수는 고향에 대한 미련이 짙었다. 우주로 나가면, 꼭 고향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야지.

 

별별 상념들이 지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가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지수가 밖을 내다보니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정한이었다.

 

- 잠깐 나갈까?

 

맥주 두 캔이 들어 있는 비닐을 손에 쥔 채였다. 지수로선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정한은 산책로를 따라 걷는 대신, 지금은 쓰지 않는 훈련소 C동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프로젝트였던 Y-1이 실패한 이후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다시는 쓰이지 않는 건물이었다. C? 정한아 여긴 출입 금지 구역인데. 물론 정한은 들은 체도 안 했다. 어딘가 덜컹거리는, 꼬불꼬불한 계단을 계속해서 오르면 어느새 옥상이었다. 정한은 굳게 닫힌 철문을 열쇠로 금방 열어냈다. 지수는 굳이 열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모르는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정한이 보여준 옥상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별들이 수놓아진 하늘은 훈련소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커튼 같았다. 정한은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보다 한 군데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수야 저기가 우리의 목적지야. 화성인 듯했다.

 

- 되게 작네.

- 그치. 생각보다 별거 아냐.

- 우린 별 거 아닌 거에 이렇게 목 매달고 있다 그치.

 

정한은 다시 한참 동안 말이 없다 지수에게 캔맥주를 건넸다. 우리 딱 한 캔씩만 마시자.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곳에서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선명했다. 이윽고 시선이 얽혔고, 입술이 맞물렸다.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변명하기엔 맥주 한 캔 가지고는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 나 떠나게 됐어.

 

나 훈련 마쳤어. 혹은 오늘 점심은 영 별로네. 같은 말을 내뱉듯 정한이 떠난다는 소식을 툭 던졌다. 지수가 짧은 문장 사이에서 그 의미를 유추하기도 전에 정한이 먼저 선수를 쳤다.

 

- 나 화성으로 가.

 

지수는 문득 그 문장 사이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지 영원히 알게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한이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지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동안 한 대화라고는 온통 시시콜콜한 것들뿐이어서 영양가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정한이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지. 별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 정한에게는 딱 한 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그렇니. 조심해서 갔다 와. 조심해서 가, 도 아니고 조심해서 갔다 와. 지수 나름의 표현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제발 돌아와달라고 무릎이라도 꿇고 빌고 싶은데. 그건 정한의 뜻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날 밤 지수는 아주 오래간만에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정한이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세요.

 

 

 

 

 

 

 

정한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Y-18의 발사를 한 달 정도 남겨 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날 밤, 정한은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맥주가 들어 있는 비닐을 달랑달랑 흔들며 지수의 방으로 찾아왔다. 정한이 안내한 곳은 이번에도 역시나 훈련소 C. 정한은 말이 없었다.

 

- 오늘은 화성이 잘 안 보이네. 그래도 너는 곧 가까이서 보겠다. 화성에 도착하면 나한테 손 흔들어줘. 나도 손 흔들게.

 

지수가 툭 던진 말에도 정한은 여전히 말없이 맥주를 마실 뿐이었다. 텅 빈 맥주캔을 구기고 정한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 지수야 너 정말 화성으로 가고 싶어? 지구가 좋다며. 그럼 지구에서 사는 게 맞잖아.

 

지수는 몇 초간 뜸을 들이고 나서야 대답할 수 있었다.

 

- 사실 나도 이제 잘 모르겠어.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훈련하는지. 뭘 위해서 한국에 왔는지. 우주에 정말 나가고 싶은 건 맞는지......

 

한참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 우리 이제 들어갈까? 시간 다 됐겠,

- 오늘이 나 가기 전에 만나는 마지막일지도 몰라.

 

기숙사 통금 시간은 다 되어 가고, 지수의 마음도 점점 급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한의 한 마디엔 질 수밖에 없었다. 찬 바닥에 그대로 누워서 하늘을 쳐다봤다. 정한도 곧장 지수를 따라 누웠다.

 

- 좀만 누워 있다 가자.

 

누워 있다 가자고 했으면서. 역시나 정한의 말은 거짓이었다. 눈이 마주치고 입술이 부딪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수의 바람은 주로 실현되지 못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통금 시간을 어겼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의아했다. 혹시 정한에겐 무슨 일이 생겼을까 싶어 잠시 여유가 있는 틈을 타 정한을 찾으러 센터 이곳저곳을 누비던 참이었다.

 

- 정한아. 성공해야 한다.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문틈 새로 들리는 목소리가 어쩐지 익숙했다. 언젠가 한식집에서 들었던 목소리. 윤태산이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복도 끝 늘 잠겨 있던 방의 주인이구나. 정한이 수도 없이 들락날락하던 복도였다. 너 어디 갔다 와? 하고 물으면 화장실~ 하고 답했던 정한이 떠올랐다. 그 복도엔 커다란 방 하나뿐이었는데도. 어디까지 모르는 척 해줘야 하나 싶어서 그냥 넘어갔던 날들.

 

- 네 아버지.

 

그랬던 거였구나. 지수는 담담히 받아들이곤 자리를 떠났다. 윤태산에게도 아들이 있었구나. Y-18은 성공하겠구나. 장관의 아들이 탑승하는 건데 실패할 리가 있나. 혼란스러웠으나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건 정한이 돌아올 거라는 것.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정한에게 따지는 것도 몇 주 미루기로 했다. 돌아오면 물어봐야지. 인터뷰하러 다니느라 바쁘겠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잠깐은 시간을 내주겠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꼭 정한의 독특한 걸음걸이를 닮아서. 며칠 전의 키스가 떠올랐다. 정한이 다녀오면 이번엔 먼저 맥주를 들고 찾아가야겠다.

 

 

 

 

 

 

 

발사 전 일주일 동안 정한과는 가벼운 인사만 나눌 수 있었다. 정한은 바쁘게 센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발사 직전인 만큼 훈련의 강도도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높은 듯했다. 고작 몇 주를 기다리는 건 지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한이 무사히 다녀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발사 당일, 지수의 머리맡에는 우유 한 팩이 있었다. 맥주 대신이라고 쓰여 있는 포스트잇과 함께.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너무 분명해서 웃음이 나왔다.

 

- 3, 2, 1, 발사.

 

발사 당일엔 훈련이 없었다. 센터의 모든 예비 우주비행사들이 발사를 지켜봤다. 전 세계에 생중계 되고 있는 정한의 얼굴은 평온하고 담담했다. 마음의 준비를 모두 마친 얼굴이었다. 지수는 마지막으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뒤 기도했다. 정한이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세요. 긴 기도였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발사를 지켜보았고 지수는 계속해서 기도할 뿐이었다. 10분이 되고, 15분이 될 때까지. 그리고 지수가 눈을 떴을 때 모니터에 보이는 건... 작은 섬광이었다. 그리고 암전.

 

 

 

 

 

 

지수는 눈을 뜨자마자 날짜를 확인했다. 하루가 지나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했다. 작은 섬광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정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의사를 호출했더니 병실 안으로 들어온 건 장관이었다.

 

- 정한이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네를 부탁했네. 자네를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했어. 계약은 없던 일로 해줄 테니 그곳에 돌아가서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도록 돕겠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지수가 감당하기는 힘든 충격이었다. 한국에서의 일은 모두 잊으면 된다. 모두 잊고 미국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면 된다. 지금까지 받은 훈련의 강도라면 미국에 가서도 충분히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꿈도, 가족도, 그 이상도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 순간만 잊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수는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자꾸 결정을 미루고 싶어졌다.

 

- ... 하루만 생각해봐도 될까요? 지금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자려고 눈을 감으면 눈앞에 반짝이는 섬광이 아른거렸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갔던 정한의 말과 행동들이 지수의 머릿속을 유영해 다녔다. 걜 잊고 미국으로 도망칠 수 있을까? 어쩌면 한국에 끝까지 남아 언젠가 완성될 Y-19에 탑승하는 게 그 애를 이해할 유일한 방법이 될지도 몰랐다.

 

 

 

 

 

 

3년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 1년은 더더욱 그랬다. 어딜 가나 정한의 생각이 났다. 지수는 하늘을 보기가 두려워 애써 땅만 보고 걸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미친 듯이 훈련을 받는 것밖엔 없었다. 어중간하던 석차가 맨 위에 찍히기까지 고된 훈련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정한의 덕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옥상에서 만나던 날, 손에 쥐여준 옥상 열쇠 덕분에 지수는 원한다면 언제든 옥상에 출입할 수 있었다. 지수는 이제 맥주 대신 우유를 마셨다. 하늘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거면서 옥상에 올라와서는 우유 한 팩을 마시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갔다.

 

30년 같은 3년이 지나고, 지수는 마침내 완성된 Y-19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센터에서 그를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발사 두 달 전, 지수에게는 휴가가 주어졌다. 연락을 할 수 없었던 가족들과도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다.

 

- 지수야. 3년 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었다. 너 이제 곧 돌아갈 거라고 그러더라. 미국에서도 우주비행사를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전화가 왔었어. 딱 이맘때쯤이었는데. 엄마는 언제든 좋으니 네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날은 Y-18의 발사 이후로 처음 지수가 눈물을 흘린 날이었다.

 

 

 

 

 

 

발사 전날, 장관은 마지막 점검을 마친 지수를 호출하고는 접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 정한이가 자네에게 쓴 편지라네. 자네가 어디로든 떠나기 직전에 쥐여주라고 전했어.

 

지수는 발사 직후, 궤도에 진입하자마자 아주 작게 접어두었던 편지를 꺼냈다. 지금이야말로 편지를 읽을 타이밍인 것 같았다.

 

슈아에게

슈아야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네 옆에 나는 없겠지.

근데 이제 슬픈 생각은 하기 싫어

나중에 우리 다시 태어나면

그건 꼭 지구가 아니라 화성이었으면 좋겠어

그럼 우리 더 오래 행복했을 텐데 그치 ㅎㅎ

너는 유독 지구를 사랑했어

그래서 지구에 별 미련이 없는 내가 먼저 떠난 건가 봐

너도 이제 슬픈 생각은 하지 마

있지,

마지막으로 단 하나의 소원을 빈다면

너는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한의 편지는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쓰여 있었다. 정한은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 걸 알았을 것이다. 언제 써놨던 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봤자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지수는 정한의 곁으로 가고 있는 중이니까. 지수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수는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지구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아주 느리게. 지수는 비로소 정한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난 36년간 진행됐던 프로젝트 Y는 올해 발사된 Y-19를 마지막으로 종료합니다. 우리 항공우주개발부는 열아홉 명의 젊은이를 떠나보낸 것에 대해 큰 유감을 표하며 유가족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장관 윤태산은 오늘부로 항공우주개발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