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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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helion

대지 1+산.jpg

 

 

 

01.

 

 윤정한이 사라졌다.

 우리는 여전히 연인이고,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Aphelion ::

원일점 | 태양을 공전하는 천체가 태양과 가장 멀어지는 지점

 

 

 

02.

 

 홍지수는 후드집업 하나를 걸쳐 입고 한강 변을 힘껏 달렸다. 한강뷰 끝내주는 노른자 땅에 사는 건 아니었고 지하철 환승 한 번 해야하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 그냥 한강까지 오는 거였다. 기초체력이 중요하다면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운동화를 꿰어신는 홍지수를 보고 윤정한은 항상 넌 성실이 과해, 라고 중얼거리고는 했다. 그러면서 꼬박꼬박 쫓아와 계획했던 운동 시간을 반절로 뚝뚝 끊어 먹었다. 힘들면 안 따라와도 되는데. 처음에 그렇게 말했을 때 정한의 표정을 지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싫으면 따라오지도 않아. 어쩐지 핀트가 어긋났지만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던 문장도.

 

 한강은 그 폭이 정말 많이 넓어서, 눈을 가늘게 뜨면 꼭 좁은 바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길이도 엄청나게 길어서 아무리 걸어도 똑같은 풍경이 계속해서 나온다. 한강공원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사각 종이냄비 라면과 텐트로 복작이지만 그 반대편 강변은 늘상 자전거로 그득하다. 예전에는 홍지수도 자전거를 타고 길을 따라 달리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정한과 함께 자전거를 탄 날 거리 감각을 잊고 내달려서 둘 다 집에 못 들어갈 뻔했기 때문이다.

 지수는 눈을 부릅뜨고 달리다 꺾어 들어가는 지점에서 걸음을 늦췄다. 아직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보다 벤치 하나에 털썩 주저앉아 검은 강물을 바라봤다. 그러다 주머니를 뒤져서, 700원짜리 포카리스웨트 캔 하나를 뽑아 마셨다. 트레이닝복 바지 주머니에는 딱 700원이 남았다. 한 캔을 더 사서 마실 수 있는 돈. 500원짜리 동전 하나와 1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그대로 자판기에 집어넣었다. 꾸역꾸역 한 캔을 더 마시고 나니 입안이 끈덕했다.

 

 홍지수는 옷장 옆에 나란히 있던 똑같은 두 캐리어 중 사라진 하나를 생각한다. 눌린 자국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베개 하나도. 다 식은 토스트 사이에 처량하게 끼어있던 살짝 탄 계란프라이도. 그리고 주인과 함께 도망간 캔버스 한 켤레도. 돌아가서 뭐 하지. 일단 샤워를 하고, 토스트를 먹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달렸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정한과 함께 자전거 두 대를 창고에 고이 쑤셔 넣으면서 알게 된 점이 있다면 하나뿐이었다.

 뭐든지 돌아갈 체력을 남겨놔야 한다. 정한도 알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예고도 없이 떠난 것처럼 예고도 없이 돌아오겠지. 몇 번을 반복했으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오늘따라 날이 좋았다. 하잘것없는 사실을 핑계로 대자 그제서야 기분이 손 쓸새 없이 먹먹해졌다. 가빠지는 숨을 몰아쉬면서 입술을 꾹꾹 씹었다. 강바람에 그새 얼어붙은 피부는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보통 이러고 있으면 슈지야 나중에 입술 따갑다, 아니면 너 그 딱풀립밤 너무 빨리 쓰는 거 아냐? 하면서 잇새 사이에 제 손가락을 냉큼 밀어 넣는 윤정한이 있었는데. 지금 강변에는 저 혼자뿐이다. 아마 짧아도 일주일 동안은 내내 혼자일 것이다. 그 무던한 진실이 홍지수를 외롭게 했다.

 지수는, 정한을 믿었다. 걔의 시선에는 매사 신중하게 덧바르는 모든 가정을 단숨에 뚫고 심지를 세우는 힘이 있으니까. 느리게 밥을 먹는 습관 탓에 오래 앉아 있어도 맞은편에서 자릴 지키는 시간을 아니까. 문득 돌아보면 항상 맞닿던 눈빛을 알고 있으니까. 그게 사랑이 아니라면 난 평생 사랑 같은 건 모르고 살래.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새빨개진 귀로 더듬더듬 말을 잇던 윤정한을 홍지수는 믿는다. 제 사랑과 똑같은 무게의 믿음으로.

 

 반드시 돌아온다는 믿음과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네가 돌아오다 지치면 어쩌지? 돌아오다가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지수는 이런 걸로 바닥치지 않는 제 마음의 체력을 아는 만큼 쉽게 지치는 정한을 안다. 그걸 본인이 제일 속상해한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걱정하게 된다. 걔가 자신도 모르게 방전해 버리는 상상을 그만둘 수 없어서 그랬다.

 달리다 보니 집이 금방이었다. 홍지수는 태연한 낯으로 현관문을 열며 겁을 집어먹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방 안의 침대 위 베개가 하나밖에 없을까 봐. 혹은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토스트가 사라졌을까봐. 윤정한의 흔적이 없어졌을까 싶어서. 다행스럽게도 베개는 가지런히 두 개가 있었고 토스트는 더 식고 맛없어졌지만 홍지수의 입 안으로 얌전히 들어갔다. 종이를 씹는 것처럼 아무 맛이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꼭꼭 씹어서 다 먹고 커피를 내렸다. 오랜 연인이 냅다 도망쳤다고 해서 다 던지고 헤맬 만큼 지수는 치기 어린 성격이 아니었고 책임지고 있는 것도 많았다. 그러면 다만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기다려야지. 무뎌지지 않는 외로움이 돌아올 윤정한의 체온에 이번에도 녹아내리길 바라면서.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홍지수가 스스로에게 건 약속이었다. 걔의 부재는 절대 익숙해지면 안 되니까. 걔가 없는 한국은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운동화 안에서 구른 발이 아팠다. 자꾸 무릎이 꺾였다. 불안과 외로움을 견디는 요령은 몇 번을 연습해도 체력처럼 늘지는 않는 탓이었다.

 

 

 

03.

 

 윤정한의 방랑벽. 이라는 말은 사실 거짓말이다. 떠나는 게 아니다. 홍지수를 두고 빙빙 도는 걸 떠난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디에 홀리듯 홀연히 사라졌다가 2주가 지나기 전에 몸을 구기며 함께 사는 집에 돌아오고는 하니까, 꼭 어린애가 아침 댓바람부터 가방 하나 들쳐메고 나갔다가 늦저녁에 들어오면서 “나 가출한 거야!” 하고 우기는 모양새를 닮기도 했다. 보통 1주에서 2주, 홍지수에게 알리지 않고 윤정한 혼자 어디론가 다녀오는 여행. 평소엔 침대에서 잘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대체 어느 새벽에 일어나는지 아침에 눈을 뜨면 빈자리만 남겨두고 사라지는 윤정한. 그럴 때마다 홍지수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능숙하게 일상을 살고 정한의 등짝을 조금 더 아프게 때릴 방법을 연구하는 것밖에 없었다. 속이 싹 타들어도 태평양을 건너온 그 체력으로 이를 물고 버텼다. 이번에 오면 진짜 아프게 때려야지. 꼭 멱살을 잡아야지. 이번엔 진짜 머리털이라도 다 쥐어뜯어야지. 허술한 핑계라는 건 제가 제일 잘 알았다.

 1인분의 빈자리가 생긴 집을 청소하고, 한쪽에만 수저를 놓고 식사를 하다 보면 어느 날 밤엔가 정한이 돌아오고는 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까먹은 것도 아닐 거면서 캐리어를 끼고 현관문 앞에 청승맞게 쪼그려 앉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던진 것처럼 불쌍한 낯으로 무릎을 모으고 등을 말아 고개를 쳐들고 한다는 말은, 지수야 기다렸어.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 네가 날 기다린 게 아니라 내가 널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뻔뻔하게 돌아와서 멀쩡하게 살다가 또 끌려가듯 캐리어 하나를 들고 사라지고. 홍지수는 윤정한이 제 수족처럼 챙겨가는 그 노란색 캐리어를 망치로 모조리 깨부수고 싶었는데, 그건 둘이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갔을 때 커플로 맞췄던 거라 항상 상상만 하고 말았다.

 

 너 진짜 왜 그래? 그렇게 물어도 빌어먹을 윤정한은 그냥 히히 웃고 만다. 딱 돌겠다. 돌고 싶은 건지 돌리고 싶은 건지. 돌아가고 싶은 건지. 그나마 여러 번 겪어 눈물샘 붙잡고 말할 수 있는 거였다. 홍지수는 아직도 윤정한의 첫 번째 도피를 떠올리면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그렇게 한 번 힘이 들어가면 정한이 알아채고 양손으로 포개어 와도 힘이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그 지독한 2주일은 이젠 눌러도 아프지 않은 흉이 되어 심장 밑바닥 어딘가에 두껍게 쌓여 있었다. 

 

 

 

00. 

 

 정한아, 나 안 깨우고 어디….

 정한아.

 윤정한?

 

 어제 피곤하다고 자정도 되기 전에 뻗었으면서 어딜 갔대.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쥐고 오만상을 쓰며 시간을 확인한 홍지수가 부스스한 머리를 털었다. 오전 여섯 시 십 분. 아침의 여파로 더 두꺼워진 애굣살을 꾹꾹 누르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사위에 천천히 손을 내렸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도 선험적으로 얻게 되는 직감들이 있다. 그건 아주 본능적인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윤정한에게 착실하게 길들여진 채 축적된 세월이 만들어낸 경고 신호이기도 했다. 뭐든 신중한 홍지수의 몸에 밴 습관. 지수는 숨마저 참은 채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범행 현장을 찾은 형사처럼 온기가 사라진 베개나 뒷축이 구겨진 캔버스화가 있었어야 할 현관 따위를 살피면서 홍지수는 물증도 있고 심증도 있는 결론으로 다가섰다. 납득할 수 없었을 뿐이다. 둘이 함께 쓰던 큰 옷장에서 옷가지가 뭉텅이로 사라졌고, 그 옆에 나란히 세워 둔 노란색 캐리어 하나가 사라졌고, 생일 선물로 사 줬던 캔버스화가 사라졌다. 휴대전화의 전원이 꺼져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바르르 떨리는 손 안에서 핸드폰이 차게 식었다. 머리 위의 전등이 꺼진 현관 한가운데에 맨발로 서서 지수는 어떤 생각도 길게 잇지 못하고 망연하게 섰다.

 

 석민아 혹시 정한이한테 연락 받은 거 있어?

 정한이 형? 아니? 형이 더 잘 알지 않아?

 

 승철아. 정한이가 너한테 연락 안 했어?

 윤정한? 저번에 우리 셋이서 술 먹고 그 뒤로 뭐 없었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아….

 

 아냐. 아무것도.

 

 쏟아지는 물음표 속에 표류한 홍지수는 새빨갛게 실핏줄이 돋은 눈을 문지르면서 보일러를 돌려도 더워지지 않는 집 안에 틀어박혔다. 윤정한이 사라졌다. 캐리어와 지갑과 여권과 핸드폰을 들고서. 너가 모르면 누가 아느냐는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제껏 당연하던 모든 일들이 당연하지 않아졌다. 걔가 어디에 있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는 거였는데 이젠 아니게 되어서. 지금껏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모든 모습이 걷잡을 새 없이 휘발되고 있었다. 지금껏 알아 온 윤정한은 정말 윤정한이 맞는지. 내가 딛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바닥이 있었는지. 그 대답을 들을 사람조차 곁에 없었다. 

 

 정한아. 

 어디 갔어?

 

 홍지수는 주변에 전화를 돌리며 필사적으로 그를 찾는 걸 그만두었다. 내가 모르면 누가 알아. 네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거야. 그렇게 곱씹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다. 3일째부터는 다른 사람들도 정한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지수 형. 정한이 형 어디로 갔어? 질문의 끝이 당연하게 저를 표적 삼을 때마다 혀끝을 와득 씹고 대답했다. 나도 몰라. 단순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들리게 하느라 목소리에서 피 냄새가 났다. 정한의 부재와 별개로 지수의 일상은 당연하게 영위되므로 홍지수는 아무렇지 않게 외출하고 약속을 잡고 밥을 먹는 동안 모든 비참함을 속으로 삭였다. 나한테도 말하지 않고 떠나야 했던 윤정한의 속마음을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어서. 나만은 알 거라는 허약한 믿음에 구멍이 뚫려서.

 매일같이 몸싸움을 해 가며 잠들었던 침대는 혼자 눕기엔 너무 넓었다. 정한이 사라지고 일주일째 지수는 잠들기 전 관성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원이 꺼져있다는 소리를 듣고 수마에 쓰러지면 짧은 꿈을 꿨다. 정한이 사라지던 날의 새벽이 제 머릿속에서 마구잡이로 만들어진 상상과 뒤섞여 진창처럼 늘어졌다. 현관문을 나서는 얼굴은 블러칠을 한 것처럼 흐릿해서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홍지수는 잠에서 깨면 이를 바득바득 갈아가며 몸을 말았다. 나는 네가 떠난 이유를 몰라. 그 사실에 밤새 두들겨 맞아서 온몸이 저렸다.

 

 그리고 이 주째 되던 날. 온갖 분노와 불가해와 무력감과 외로움이 곤죽이 되어 끝내 홍지수의 몸 안을 마구 긁고 어울리지도 않는 늦여름 감기가 되었을 때. 두통약 하나를 삼키고 이부자리를 정돈하던 그는 승철의 연락을 받고 핸드폰을 쥔 채 멍청하게 고개를 숙였다. 지수는 자가진단에 탁월한 재주가 있어서, 제 상태를 확신할 수 있었다. 야 지수야. 윤정한 이번 학기 등록금 냈다는데? 휴학 신청 안 했대. 나 지금 많이 화났구나. 네가 이곳으로 돌아올 근거를 하나라도 찾아내고서야. 공중을 배회하던 손가락이 이내 자판 위로 올라섰다.

 

 > 민규야 저녁에 약속 있어?

 > 없으면 형이랑 술 먹을래?

 

 홍지수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소주를 앞에 두고 민규는 오만 인상을 구겼다. 정한이 지수에게도 말하지 않고 사라졌다는 것과, 캐리어에 여권까지 살뜰하게 챙겨 집을 나갔다는 것과, 핸드폰 전원은 꺼놓고 와중에 학기 등록은 하고 갔다는 것까지 다 말한 직후였다. 말하지 않은 건 그래서 지금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같은 감정이었지만 지수 눈에는 민규가 그것까지 대충 읽어내고 화를 삭히는 게 보였다. 기본적으로 정이 많고 사람을 아끼고 섬세하기까지 해서 지수의 성정을 잘 아는 그라서 벌컥 화내지 않는 거였다. 내가 웃어 버리니까 앞담을 하지는 못하는 거겠지. 지수는 살짝 풀린 눈을 깜빡이며 초록색 소주병을 들었다. 민규야 너무 열 내지 마. 이마에 주름 생긴다. 떨어진 컨디션에 알코올이 들어가니 안 그래도 술고래가 아닌 몸이 크게 반응했다.

 

 “형.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미안하면 하지 마.”

 “…아냐. 안 미안한 걸로 하고, 걍 말할게. 윤정한 미친거 아냐?”

 “개강까지 일주일 남았잖아. 오겠지.”

 “형은 대체 뭘 믿고― 아니, 그만 먹어.”

 

 민규야 일어나자. 같이 술 먹어줘서 고마워.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가며 몸을 일으키는 지수에게 민규가 물었다. 왜 이렇게 급하게 일어나? 형 혼자 갈 수 있어? 그러면 지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하고. 정한이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민규는 말을 잃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홍지수도 마찬가지였다. 

 

 홍지수는 걷다가 점차 보폭을 넓혔다. 발을 감싼 운동화가 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떴다. 숨이 턱 끝까지 닿고 온 세상이 저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데도 뛰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생애 처음으로 저를 뒤흔드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너는 사라진걸까. 아니면 나를 떠난걸까. 나는 대체 무슨 근거를 가지고 네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동시에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하는걸까. 너가 뭐라고. 민규의 물음이 고막을 둥둥 두드렸다. 형 윤정한이랑 같이 캘리포니아도 다녀왔었잖아. 일렬로 늘어선 등이 환하게 켜져 있는 복도에 이르러서야 걸음이 멎었다. 그러게. 나는 너랑 고향에 가서 행복했었는데. 너랑 가서 행복했는데. 너는 뭐에 밀려난 걸까. 현관문 앞에 쪼그려 앉은 인영이 있었다.

 

 “….”

 “지수야. 기다렸어.”

 “진짜 윤정한이네.”

 “술 냄새 엄청 심하다. 누구랑 마셨어? 석민이? 승철이인가? 아니면 민규?”

 “진짜 돌아왔네.”

 “홍지수 술 마신다고 하면 또 내가 잔 빼줘야 하는데.”

 

 시선을 때가 탄 캔버스화와 노란 캐리어에 고정한 채 비밀번호를 천천히 눌렀다. 10041230#. 두 사람의 생일을 단순하게 이어붙인 여덟 글자. 정한은 번호 하나하나를 씹어먹을 것처럼 키패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경쾌한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정한이 먼저 캐리어를 끌고 현관으로 들어갔다.

 나 돌아왔어. 그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는지 벼락같은 비명소리 하나 없이 정한이 나동그라지고 그 위를 지수가 덮쳤다. 신발도 못 벗은 채였다. 손가락에 빗맞았는지 마디가 욱신거렸다. 정한의 오른쪽 광대가 분장한 것처럼 붉게 달기 시작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지수가 정한을 깔아뭉개고 멱살을 쥐었다. 썩 로맨틱한 재회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저를 알게 모르게 안쓰럽게 지켜보는 동기와 후배들의 시선 속에서도 그가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홍지수의 확신이 증명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살이 왜 이렇게 내렸어. 이유를 다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꼴에 지수는 모든 원망의 말들을 잊고 입술을 뻐끔거렸다. 왜 살이 내렸냐니. 나한테 말하지 못한 너의 도피를 추측하느라 밤을 다 써서 그렇지. 네가 어디론가 가야 했던 이유를 앞으로도 난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느라 소리지를 체력을 다 써버렸잖아. 넌 왜 떠났는지 말 안해줄 거잖아.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거야?”

 

 “혹시 지쳤어?”

 

 내가 물어보면.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불쌍하게 날 쳐다볼 거잖아. 힘들면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그래, 지금처럼.

 

 무서워서 그래, 다른 곳으로 가고 싶냐는 말 하지 마, 나 속상해... 속상하다며 깜빡이는 눈동자 앞. 소리가 되지 못한 문장들이 목 안에서 끅끅대며 끓었다. 정한아 뭐가 무서워? 나 너무 무서웠어. 너가 나한테 말하지 못 하는 일이 생겼다는 게 너무 외로웠어. 너랑 나 사이에 거리가 생겼단 말이야. 그게 너무 무서워. 그런데 너는 대체 뭐가 무서워? 발음하면 현실이 될까 말하지 못하는 것들. 홍지수는 제가 후려친 뺨을 손으로 꾹 눌렀다. 주인을 잃어버린 동물처럼 뺨을 비벼 온다. 열이 오른 손바닥 안에서 심장이 아프게 뛰었다. 

 지수는 그때 막연하게 미래를 예측했다. 혀를 굴려 묵음으로 속삭여 버렸으므로 예언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몰랐다. 정한은 앞으로도 예고 없이 어디론가 떠나리라는 것. 예고 없이 떠났다가 예고 없이 돌아오리라는 것. 그 계획적인 충동을 지수는 절대 막을 수 없을 것이고, 사랑이 멈추지 않는 한 계속 괜찮지 않으리라는 것까지. 그리고 지수가 익숙해진다면 가장 고통스러울 사람은 먼 곳에서부터 돌아오고 있을 정한이라는 것마저. 홍지수는 멱살을 쥔 채로 입술을 내렸다. 쩍쩍 갈라져서 마른 도톰한 입술이 건조하게 닿았다 떨어졌다. 이유를 모르면서도 캐묻는 걸 포기했다. 우습게도 정한은 지수가 가장 외로울 때 기다렸단 듯 돌아왔고 그리움이 불가해를 압도했기 때문에.

 

 “정한아.”

 “으응.”

 “돌아온 걸 환영한다고 하면 돼?”

 

 윤정한이 돌아왔다. 우리는 여전히 연인이었지만 더 이상 이전의 연인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

 

 

 

04.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사라지나. 대충 그렇게 셈하고 있으니 반대편에서 민규가 술잔을 내밀었다. 처음 윤정한이 토꼈던 그때, 제가 먼저 술을 먹자고 했을 때의 표정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서 홍지수는 푸슬푸슬 웃고 말았다. 나 진짜 형들이 이해가 안 되네. 툴툴대는 목소리로 과거에서 가볍게 건져진 지수가 테이블 위에 놓인 나베를 휘적였다. 대체 왜 그러냐. 거진 푸념에 가까운 말에 숟가락을 입에서 빼며 말을 붙였다. 첫 번째 도피 이후로 내내 똑같은 말을 했었는데, 그걸 듣고서도 똑같이 묻는 걸 보면 민규는 납득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돌아올 자리가 있어야지.”

 “걔는 멀어지면 돌아와. 내가 가장 외로워할 때 어떻게 알고 돌아오기 시작하니까.”

 “내가 이곳에 있으면 올 거야.”

 

 “형 그렇게 말하니까 해탈한 것 같다.”

 “해탈했다니.”

 

 나야말로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 사람인데. 민규가 안주로 시킨 닭다리를 뜯는 동안 지수는 턱을 괴고 검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도 확 떠나버릴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캐리어를 싸다가 중력에 끌려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원점으로 돌아갔다. 네가 사라졌을 때 얼마나 막막했는지. 그리고 네가 곳곳에 남겨둔 돌아오겠다는 단서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그따위 감정들을 너까지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자는 널 두고 현관문을 여는 느낌을 알고 싶지도 않아서.

 그렇게 갈팡질팡하다 어느 때부터는 캐리어를 싸 볼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옷을 싹 집어넣고 보란 듯 방 한켠에 노란 캐리어를 펼쳐놨을 때 다음날 그 위에 머플러가 곱게 말려 올라가 있는 걸 봐버렸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윤정한의 생일선물이었다. 그걸 가지고 가면 걔 팔다리가 다 뜯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상상할 수도 없는 비참한 방식으로 땅바닥을 구를 것 같았다. 옷을 다시 옷장에 쑤셔 넣는 동안 정한이는, 걔는 무릎을 모으고 기대어 앉아있었다. 정한아. 너 때문에 머리가 망가진 것 같아. 걔는 그 말을 듣고 싶어 해서 미안하다는 소리를 했고 나는 대꾸하는 대신 마른 몸을 끌어안았다. 어쩌겠어. 너는 둘도 없을 멍청이고 우린 끼리끼리 만났잖아.

 

 나의 세계는 윤정한의 것과는 다르게 회전축을 품어야 유지가 되는 형태라서, 걔를 두고 떠나려고 해도 도저히 떠나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윤정한이 돌아올 때마다 화내고 소리지르고 때리는 것으로 합리화를 끝냈다. 걔도 내가 그러길 원하니까. 평소에는 뭐만 하면 나 아프다며 온갖 엄살은 다 떨면서 그럴 때만 입술 꽉 물고 가만히 몸을 내어주는 윤정한 탓에 알게 된 게 많았다. 걔 등은 척추뼈가 날개뼈보다 더 많이 튀어나와 있다는 거라던가, 등을 잘못 때리면 ‘짝’이 아니라 ‘빡’ 소리가 나게 된다는 것 등등. 아직도 윤정한이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모른다는 것과 그런데도 도저히 포기가 안 된다는 것. 기다리는 일은 너무 쉽고 너무 힘들다는 것. 이런 게 사랑이라면 평생 사랑같은 건 모르고 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것마저 그 애가 가르친 것들이라 잊을 수 없어서.

 

 민규야, 내가 꼭 해탈한 것 같다고 했지.

 

 “하나도 안 당연해.”

 “엉?”

 “하나도. 안 괜찮아.”

 

 괜찮지 않아서 우리가 아직까지도 사랑하고 있는 거야.

 

 

 

05.

 

 파도가 내는 굉음에 맞추어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해변을 뛰었다. 붉은 노을이 모래사장을 황금색으로 빛내고 있었다. 그림자가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서 길게 늘어졌다. 불안도 걱정도 없이 완전하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이곳에서는 두꺼운 외투를 입거나 머플러를 두르고 추위에 떨 필요가 없었다. 얇은 티를 입어도 매사가 따뜻했다. 고개를 치켜들면 자로 잰 듯 나눠진 수평선 위에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물드는 하늘이 있었다. 해가 져도 밤이 오지 않을것만 같은 곳.

 

 정한은 파라솔 아래 앉아 있었다. 건조한 모래알이 신발 안에서 굴러다니는 소리를 냈다. 해가 제일 높게 떴을 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더니 피부가 소금기에 절은 것 같았다. 입술을 축이며 바람에 쓸려 바지 위로 달라붙은 모래알을 털어내는 동안 곁에 누군가 털썩 앉았다. 내일 돌아가는 거야? 작은 룸쉐어 하우스에서 만난 나츠였다. 잡지에서 본 천사의 도시라는 로스엔젤레스가 너무 좋아서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여행을 왔다고. 내내 손에 쥐고 있었던 비행기표를 만지작거리며 정한이 고개를 주억댔다. 하도 만져서 글자가 군데군데 닳아 있었다.

 하늘과 파도와 태양을 번갈아 본 눈이 피곤했다. 느릿하게 깜빡이면 뒤섞여 뛰어노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벼운 체크무늬 셔츠를 걸치고 맨발로 선 홍지수가 보일 것도 같았다. 끝도 없이 넓은 하늘을 덮고 감기를 불러오지 않는 바람을 맞으며 살아왔던 사람이라 그런가. 홍지수는 허상의 모습일 때조차 로스엔젤레스의 해변에 기막히게 잘 어울렸다. 걔의 다정이 기원한 곳에 서 있으면 고개를 제 쪽으로 돌리고 곤히 잠에 들었던 얼굴이 생각났다. 소리 없이 캐리어를 끌고 맞이한 바람은 전날과 똑같았지만 등 뒤에 걔를 두고 나온 탓에 유독 시렸다. 복도를 걸어 내려가면서 혹시 창문을 열고 나오진 않았는지, 토스트 사이에 끼워 둔 계란프라이가 입에 맞을지, 오늘도 한강변을 달리고 자판기 앞에서 동전을 꺼낼지 곱씹었던 생각은 열흘을 이곳에 머무르면서도 한 치도 희미해지지 않았다.

 보고 싶었다.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 온도로 애정을 발음할 줄 아는 홍지수가. 다시 안 볼 사람에게조차 다정하면서 내 앞에서는 화도 내고 주먹도 휘두를 줄 아는 홍지수가 너무 보고 싶었다. 외롭고 그리워서 숨이 턱턱 막히는 감각은 신기하게 돌아가기 전날부터 몸을 휩쓸고는 했다. 그러니까 나는 가장 외로워질 때 너한테 돌아가는 거야. 지수야. 나야말로 너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졌어. 

 

 지수와 함께 사는 집의 비밀번호는 10041230#. 정한은 다른 모든 걸 잊어도 그것 하나만은 기억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로스엔젤레스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날 도어락 커버를 몇 번이고 여닫다, 자판을 하나도 누르지 못하고 그 앞에 주저앉았다. 숫자 여덟 개가 눈앞을 둥둥 떠다녔다. 돌아왔는데. 분명 홍지수를 혼자 내버려 두고 사라졌다가 돌아온 게 맞는데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마지막 자판까지 누르면 틀렸다는 경고음이 날 것만 같았다. 그걸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차갑게 식은 복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면서 정한은 제 여행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문을 직접 열고 들어갈 수 없었으니까. 언젠가 나는 또 끌려가듯 이곳에서 멀어졌다가 그리워하면서 돌아오겠구나. 헛웃음이 났다. 지수가 보고 싶었다. 나 하나를 사랑하느라 로스엔젤레스의 해변에 심어져 있던 심지를 뜯어 한국으로 온 홍지수. 너는 너무 다정하고 나는 네가 너무 간절해서. 가지고 있던 모든 용기를 긁어 비행기를 탔지만 문 하나를 열지 못했다.

 굳은 낯을 한 지수가 복도를 걸어오고 입술을 꾹 붙인 채 누른 숫자의 나열은 제 기억과 똑같아서 정한은 그제서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뺨이 새빨갛게 부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정말이었다. 홍지수가 울지 않았으므로 윤정한도 아프지 않았다. 달콤한 벌처럼 내려앉는 입술을 약하게 물면서 정한은 공항에서 보안관과 나눈 대화를 짧게 복기했었다.

 

 무슨 목적으로 로스엔젤레스에 오셨나요?

 돌아가려고 왔어요.

 

 넌 이제 돌아가지 않는 캘리포니아를 고향 삼고 있으니까. 내가 마음을 둔 곳은 한국이 아니라 네가 있는 곳이라서. 너에게 돌아가려고 떠나왔다고 하면 넌 무슨 말을 할 거야? 아주 이전, 최초의 도피를 더듬던 정한의 상념은 제 눈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손에 뚝 끊겼다. 어느 틈인지 음료수 두병을 사 온 나츠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한. 너는 놀러온 것 같지가 않네.”

 “그렇게 보여?”

 “아무것도 안 하잖아. 맨날 여기 해변에만 앉아 있고.”

 “그건 그렇지.”

 “애인이 있다며. 걱정하는 거 아냐?”

 “걱정할 것 같아. 아냐. 걱정하겠지.”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여긴 애인이랑 놀러오기 좋은 곳이잖아. 나츠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은 채 정한이 다시 파도를 응시했다. 음료수 겉에 묻어나온 차가운 물방울이 손목을 타고 흘렀다. 

 윤정한은 홍지수를 안다. 바닥이 없는 마음과 올곧고 정직한 사랑을. 너 진짜 이상한 것 같다면서도 팔을 벌리고 몸을 끌어안는 나긋한 애정, 나고 자란 곳을 똑 닮은 여유롭고 사랑스러운 눈빛도. 그래서 지수가 바보처럼 스스로보다 저를 걱정할 것도 알았다. 속상해하고 외로워 할 것이다. 그것도 나에게만 보여주던 걔의 방식으로. 싸구려 스티커가 붙어있는 노란색 캐리어를 생각하면 감기에 걸린 것처럼 코끝이 쓰렸다. 만약에 돌아갔는데 걔가 지쳐서 사라져버리면 어떡할거야? 자문하면 퍽 멍청하고 로맨틱한 대답이 떠올랐다. 지수가 그러길 원했으면 그러는 게 맞지.

 

 정한. 울 것 같은 표정이네. 나츠의 목소리가 저릿하게 뛰는 심장을 갈랐다.

 

 “이제 돌아가자.”

 “어?”

 “내일 공항으로 간다며.”

 

 솔직히 너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잖아. 오늘 일찍 자야 내일 제때 나가지 않아? 아침에 공항까지 데려다줄게. 나츠의 다정은 넓게 번져 있다는 점에서 지수의 것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로스엔젤레스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닮게 되는 건가. 심장이 이상한 박자로 뛰어서, 정한은 나는 조금 더 있다가 가겠다는 말로 나츠를 먼저 보냈다. 이제 돌아가자. 지수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 자리에서 노을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웃었던 홍지수가.

 

 

 

-1. Perihelion

근일점 | 태양을 공전하는 천체가 태양과 가장 가까워지는 지점

 

 

 

 정한아 우리 여행갈까? 

 여행?

 응. 여행.

 

 좋지. 그리고 다음 날 홍지수는 노란 캐리어 두 개를 당당하게 안고 들어왔다. 너 일단 사 놓고 나한테 물어본 거지? 그 말에는 뻔뻔하게 웃었다. 당연하지 정한아, 하면서. 제가 하자는 건 거절하지 못하는 정한을 진작 알아낸 것처럼. 나 노란색 별로 안 좋아하는데? 거짓말하지 마. 노란 에나멜 캐리어 두 개가 옷장 옆에 가지런히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 윤정한은 홍지수 허리를 잡아 침대로 뛰어들었다. 맞지. 좋아하지. 곱슬한 머리를 마구 비비자 정수리 위에서 웃음이 터졌다. 

 다음 날 밤에 불쑥 핸드폰 화면을 들이대는 지수에 잠깐 호흡을 잃은 건 정한이었다. 지수는 정한과만 있을 때 종종 충동적으로 굴고는 했지만 이 정도로 계획을 밀어붙이는 건 처음이었다. 내일 아침 인천공항 8시 반. 도착지는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 왜 이렇게 급해, 꿀단지 숨겨놨어? 곧장 대꾸해 오는 설레는 목소리. 내가 태어난 곳이잖아! 콧노래를 부르며 옷장을 열고 셔츠를 끄집어내던 지수는 정한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날 밤 기억이 몰려오는 대로 종알대다 잠든 지수를 끌어안고 정한은 한참 눈을 깜빡였다. 홍지수가 한국에 온 지가 얼마나 되었더라. 나 군대 갔을 때 돌아갈 줄 알았더니 그대로 휴학해서는 이제 5년째인가. 그러고 보니 네가 한 번이라도 태어난 곳의 얘기를 한 적이 있었나? 왜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구는걸까, 너는. 

 돌아가고 싶은 걸까. 잠이 오지 않았다.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 홍지수는 생기가 넘치다 못해 밖으로 줄줄 흘렀다. 해도 안 졌는데 눈동자에 별이 떠 있었다. 시차 적응을 하느라 정한이 호텔 침대에서 뻗어있는 동안 밖을 나가 각종 간식을 털어 왔다.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가 도로를 헤집고 온 몸에서는 햇살 냄새가 났다. 나 깨워서 같이 가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턱을 따끈한 손가락이 두어 번 두드렸다. 바닐라 쉐이크 빨대를 물고서 말하는 걔 입술에서는 낭만과 어울리는 달달한 냄새가 났다. 너 힘들어 보이는 걸 내가 모를까봐? 햇빛을 빼닮은 다정이 눈을 찔러와서 정한은 눈꺼풀을 닫았다. 나중에 저녁 즈음에, 너 좀 쌩쌩해지면, 바다 보러 가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팔을 뻗자 침대 위로 올라와 끌어안는 몸의 무게가 느껴졌다. 먹자마자 바로 누우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도 머리를 쓰다듬어 온다. 

 

 “미안. 갑자기 오자고 해서 정신없었지.”

 “괜찮아. 그렇게 오고 싶었어?”

 “응.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사실 오늘 아니어도 괜찮아. 체크아웃하기 전에만 보면 상관없으니까…. 목소리가 멀어지고 몸이 무거워진다. 따뜻한 향이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홍지수에게 어울리는 온도였다. 한국의 겨울과 정 반대편에 자리 잡은 로스엔젤레스의 여름. 모든 게 다정하고 낭만적이고 완벽했다.

 그날 바다를 보러 가지는 못했다.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나니 밤이었고 지수는 뭐라 하는 잔소리 하나 없이 스티커 봉지를 불쑥 내밀었다. 뭐야? 근처 잡화점에서 사온 거. 그걸 캐리어 위에 붙이는 동안 걔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음을 내내 걸고 있었다. 원래도 올라간 입꼬리가 더 급하게 뺨을 가르는 모양새가 예뻤다. 그걸 보면서 혹시 돌아오고 싶었느냐고는, 묻지 못했다. 맨날 홍지수 너무 컸다고, 아무것도 모르던 때로 돌아가야 한다고 시답잖은 소리를 해댔으면서 그 간단한 질문이 무거워져서. 네가 정말 돌아오고 싶었을까봐. 너가 보냈을 신호를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까봐. 네가 나 모르게 다른 곳을 생각하던 시간이 있었을까, 내게 말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있었을까…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심장이 덜컹거렸다. 

 그 다음날도, 바다를 보러 가지는 못했다. 호텔에서 나와 10분만 걸으면 해변이 나왔지만 하늘에 구름이 엉망으로 엉켜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체력과 생기가 넘치는 홍지수를 붙들고 침대 안에만 파묻혀 있었다. 단단하고, 다정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홍지수. 세상의 온갖 낭만과 로맨스를 한데 뭉쳐 만든 것 같은 시선은 천사들의 도시라는 로스엔젤레스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걔가 너무 행복하게 웃어서 걷잡을 수 없이 행복해진다. 동시에 한국의 겨울을 더 닮은 마음이 같은 크기로 자랐다. 네가 이곳의 여름을 떠나온 이유는 오직 나 때문이라서.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애초에 길게 계획한 여행이 아니기도 했다. 홍지수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게 먹혔는지 하늘 위엔 구름 몇 조각만 구름처럼 걸려 있었다. 쨍하게 새파랗던 하늘이 너머에서부터 단풍처럼 물들면서 모습을 바꿨다. 붉은빛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신발 벗고 걸을래? 그 말에 지수는 망설임 없이 신발과 양말을 손가락에 걸었고 황금빛으로 물드는 모래사장에 발을 디뎠다.

 파도의 굉음에 맞추어 달리는 사람들의 함성이 아득하게 흐려졌다. 눈부시게 타오르는 노을을 등지고 선 홍지수. 이게 내가 매일같이 보면서 살았던 장면이야.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더 예쁜 것 같아. 어때 정한아, 예쁘지. 보여주고 싶었어. 

 

 “너 지금 엄청 예뻐.”

 태양을 닮은 미소.

 “원래 별 생각 없었는데,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너는 나를 사랑해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오길 잘한 것 같아.”

 너의 중심은 이미 나를 쫓아 한국에 뿌리내렸으니까.

 “이제 돌아가도 괜찮아.”

 

 나는 그 순간 너에게 영원히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06. Revolutional Orbit

 

 구름이 하늘 위에 엉망으로 엉겨 있었다. 아침보단 새벽에 더 가까운 바다 위에는 축축한 해무가 깔렸다. 공항과 연결된 도로로 나서던 나츠가 정한을 불렀다. 정한. 왜? 돌아본 얼굴은 살이 내려 푹 꺼진 모양새였다. 마음은 이미 비행기를 탄 것 같은데 몸이 그러질 못해서인지 여권과 비행기표를 부서져라 쥐고 있었다.

 

 “스티커 하나 떨어졌어.”

 “아…. 고마워. 이리 줘.”

 “완전 낡아서 안 붙을 것 같은데?”

 “애인이 붙여 준 거야.”

 

 걔 캐리어는 아직도 새것 같으니까 하나도 잃어버리면 안 돼. 굳이 그렇게 덧붙이지 않아도 나츠는 더 묻지 않고 주워든 스티커를 건넸다. 정말로 접착면이 거의 종이처럼 반질해져 있었다. 손바닥 절반 크기의 스마일 스티커. 떨어진 자리가 선명했다. 색이 닳고 채도가 낮아진 캐리어 위에 동그랗게 밝은 노란색 자국이 남았다. 그걸 주머니에 조심히 넣고 옷을 여몄다. 세상에 그걸 다시 붙일 수 있는 사람은 홍지수밖에 없다. 걔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바다에 잠기지만 않는다면 그냥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넌 몇 시 비행기야?”

 “나는 오후 1시 반. 여기서 점심 먹고 가려고.”

 “나츠.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했지.”

 “그랬지. 너는 한국으로?”

 “나는 지수한테 돌아가는 거야.”

 “지수는… 애인 이름?”

 “응. 다시 올거야?”

 “그럴 것 같아.”

 

 여기서 내내 살았던 거면 또 모르겠는데, 놀러와서 휴양하기는 진짜 좋은 것 같아. 나도 정한처럼 애인 생기면 같이 와볼까 봐.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은 아침부터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공항은 떠나는 사람과 돌아가는 사람이 쏟아내는 감정들로 넘실대는 곳. 안내 방송이 소란을 뚫고 울렸다. 한국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탑승 수속이 시작되었다고. 

 정한. 솔직하게 한마디만 해도 괜찮아? 등을 보인 정한이 고개만 돌려 나츠를 쳐다보았다. 그 지수라는 사람 있잖아. 네 애인. 언젠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눈썹을 들어 올리며 이유를 묻는 정한에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한이 얼마나 바보같은지 알아야 할 것 같아.”

 “지수는 이미 다 알고 있을걸.”

 “너는 다시 올 거야?”

 

 대답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린다. 나츠도 딱히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는지 손을 짧게 흔들어 주었다. 캐리어 바퀴가 대리석 바닥 위를 드르륵 굴렀다. 등 뒤로 날개가 돋친 것 같았다. 드디어 너에게로 돌아간다. 나는 또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이곳으로 오게 될지도 모르지만. 당장 너에게로 가면 또 현관문을 열지 못하고 너를 기다리겠지만 이번엔 변명거리라도 만들 수 있으니까. 캐리어에서 떨어져 나간 스티커를 사러 가느라 그랬다고, 붙여 달라고 말해볼 수라도 있으니까. 그럼 상한 얼굴로 접착제 따위를 가져오는 널 붙들고 입술을 내려야지. 그렇게 거리를 좁히다, 내 기분까지 살피느라 침묵이 잦은 네가 함께 가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는 날 너의 손을 잡고 공항으로 내달려야지. 손바닥 안에 힘이 들어갔다. 종이가 와삭 구겨졌다. 이 모든 건 너에게 되돌아가기 위한 과정이었으니까.

 

 시끄러운 가속음이 난다. 비행기가 비스듬하게 이륙하기 시작한다. 가장 멀어진 곳에서부터 돌아가기 위한 비행을 시작하는 순간 정한은 미처 하지 못한 대답을 건넸다. 소리가 되지 못한 문장이 순식간에 멀어지는 건물들 위를 날아 바다를 건넜다. 한강변과는 조금 떨어진 동네, 지금은 자고 있을 지수에게로 향한다.

 

조만간 다시 올 거야. 몇 번을 더 와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언젠가의 여름에는. 내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너에게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같이 돌아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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