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한이 돌아왔다. 홍지수가 눈을 떠 거실로 나오자마자 시야에 잡힌 것은 소파에 드러누워 아침마당을 보고 있는 윤정한이었다. 홍지수를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좋은 아침, 건네는 꼴이 어제 만난 인간 같았다. 새삼스러운 풍경이었다. 홍지수는 그 광경을 눈에 담지 못한 마냥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화장실로 향했다. 문제는 잡념을 떨쳐내기 위한 긴 샤워 후에도 소파 위의 윤정한이 사라지지 않았단 것이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신경 쓰이는 일이라곤 몸을 말리는 것밖에 없는 것처럼 눈앞을 애써 모른 척한 홍지수가 옷을 갈아입고 식사 준비를 해도 윤정한은 그 자리에 여전히 존재했다. 어느덧 아침마당이 끝나고 뉴스 오프닝 음악이 들린다. 홍지수가 그 모든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식사를 시작하려 할 때, 또박또박한 앵커의 목소리와 반대되는 소리가 귀에 꽂힌다.
조슈지야 베이글 같은 거 먹지 말고 밥을 먹어야 힘이 나지.
전체적으로 둥글게 뭉개진 소리. 그런데 그 목소리가 수많은 트레이닝을 거쳐 자리에 앉은 앵커의 것보다 또렷이 들렸다. 저도 모르게 움찔한 것을 느꼈는지 조형물마냥 소파 위에 놓여 있던 인영이 거리낄 것 없다는 듯 다가왔다. 멋대로 아일랜드 식탁의 반대편에 허락하지 않은 합석이 이뤄지고, 필요 없는 말이 이어진다. 아니이 나는 아침부터 빵 먹기 싫은데. 말도 안 되는 투정에 홍지수가 휴지를 던지자 그대로 매끄럽게 잡아챘다. 어이없다는 얼굴에 먹으려고 집어 든 빵을 내려치자 그대로 짝, 소리가 울렸다.
야 뭐 하는 거야! 소리를 제대로 지르지 못해 삑사리만 나는 발성. 홍지수가 정한아, 그럼 너는 먹지 마. 입을 떼자 그제야 만족한 듯 동그랗게 광대가 올라갔다. 그 꼴을 바라보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애초에 관심을 주는 게 아니었는데. 언제나처럼 또 윤정한이 바라는 대로 일이 풀려나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이 일이 풀리는 것인지 오히려 엉키는 쪽인지 모르겠지만. 곧 눈썹과 입꼬리 한쪽이 위로 당겨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즐거움이 아니라 기가 차다는 감정에 의한 근육의 경련. 무딘 척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이어가려 해도 앞에서 빤히 자신만 쳐다보는 커다란 두 눈이 부담스러웠다. 시선을 맞추자 일방적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간다. 요즘은 빵 먹네. 너 한동안 관리한다고 탄수화물 안 먹었잖아. 아저씨가 됐으면 더 관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아. 요즘도 운동 열심히 해? 또 가슴만 발달 되는 거 아냐? 어깨랑 등을 열심히 하라니깐. 으휴 홍지수 진짜 말 드럽게 안 들어요. 잔소리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줄곧 들어와서 귀에 익은 것. 그 익숙함에 휩쓸려 아무렇지 않게 조용히 하고 밥이나 처먹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홍지수는 애써 삼켜냈다. 달그락달그락 산만하게 굴던 불청객 또한 어느 순간 침묵을 택해 집은 적막했다. 안 그래도 잠이 덜 깬 아침, 머리는 삐걱대며 돌아가지 않고 입에 무언가 넣자마자 체할 것이 분명해 다 식은 커피만 홀짝인다. 홍지수는 한 시간이 넘게 어딘가 멍한 상태로 식탁에 앉아 깊어진 상념 속에서 허우적댔다.
분명 제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어딘가 현실감이 없는 일들. 뜬구름 마냥 막연하게 허공에 흩뿌려져서는 주워 담아 정리하기가 힘든 생각들. 그런 홍지수는 알 바 아니라는 듯 집안을 밝히는 온화한 햇살, 평화롭기만 한 창밖의 새소리, 들뜬 목소리로 한 달도 더 지난 후에 찾아올 백 년만의 혜성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속의 사람. 그리고 결정적으로 옆에서 필요 없이 총기가 도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관심을 갈구하는 남자. 그 속에서 마침내 홍지수는 깨달았다.
윤정한이 돌아왔다. 2년, 정확하게 2년 그리고 하루만의 일이었다. 죽은 윤정한이 돌아온 것은.
칠칠:사십구
갑작스럽게 아침에 들이닥친 죽은 남자친구를 강제로 맞이하는 소감. 어떠한 선택권도 없이 이 상황 속에 놓인 홍지수는 대학 교양에서의 죽음의 5단계를 떠올렸다. 부정-분노-공포-흥정-수긍의 궤도는 작금의 홍지수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차이라고 하면
첫째. 홍지수는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고,
둘째. 홍지수의 분노가 망자 윤정한에게로 향한다.
딱 그 정도. 그래서 홍지수는 시작했다. 뭐든 열심히 하는 FM 기질 어디 가지 않아서 이 단계 또한 착실히 밟기를.
1단계 부정.
아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 헛것이 보이네. 믿어본 적도 없는 오행을 떠올리며 기가 허해졌다 생각한다. 최근 들어 잠을 제대로 이룬 밤이 드물어 피로가 누적되긴 했다. 홍지수는 보약이라도 지어 먹어야지 하는 쪽으로 의식적으로 사고를 몰아갔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 했다고 당장 폰을 찾는 홍지수 앞에서 윤정한이 입 열었다. 지수야 제정신이니 너. 뭔 헛것이냐는 말투와 뚱한 표정. 누가 할 말을 자기가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요즘 세상엔 헛것이 말도 잘하네. 그러고 넘기려는데 잠들기 전 유튜브에서 본 온갖 강연이며 정신의학 콘텐츠며 하는 동영상들이 떠오른다. 이거 환시에 환청 단계까지 왔으면 큰일 난 거 아닌가. 나 지금 뇌가 얼마나 망가진 거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당장 소파에 털썩 쓰러지듯 앉아 심각하게 환각이니 정신증이니 서치하는데 정작 그 원인은 앞에서 팔짱을 끼고 홍지수를 내려다보기나 했다. 못마땅한 표정. 한쪽 얼굴로만 빛을 받아 묘하게 그림자가 진 얼굴은 더욱더 현실감이라고는 없어 홍지수의 마음을 심란하게만 했다. 와중에 전등을 등지고 서 홍지수 위로 그림자가 쏟아진다. 고개 들면 보이는 한참이나 아래로 처졌는데도 절대 만만하지 않은 인상을 주는 눈, 이마부터 쭉 내려오는 잘 빠진 골격, 긴 속눈썹과 투명한 피부가 이뤄내는 어딘가 생기 없는 아름다운 얼굴. 한순간 홍지수의 삶에서 증발한, 홍지수가 가장 사랑하던 시절의 모습. 그 모든 게 홍지수가 마지막으로 마주한 윤정한 그대로였다. 아무렇지 않게 휙휙 바꿔대던 모발의 색이 단정해지고 몇 년이 흘러 부드럽게 흐르는 머릿결. 깔끔하게 정리한 갈색빛의 머리카락마저. 그래서 홍지수는 벌떡 일어났다. 집에서 그 얼굴을, 홍지수가 가장 사랑하던 때의 얼굴을 하고 다시 돌아온 윤정한을 보고 있으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은 자명해서.
만나자는 연락에 제일 빨리 답장 온 아무나와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시끄럽게 부어라 마셔라 하니 기분이 좀 달라지는 것도 같았다. 아니, 실은 거짓말.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자기를 쳐다보던 윤정한만 생각났다. 이유가 뭘까. 왜 하필 걔가 보이는 걸까. 울적한 기분에 태운 담배에 정신은 더 알딸딸했다. 그래서 평소의 홍지수라면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을 소리가 여과되지 않고 튀어나왔다.
“우리 집에 지금 정한이가 있어.”
“응?”
“취했니? 집에 정한이가 있다고. 오늘 아침부터 그렇더라. 너도 정한이 못 본 지 오래됐지. 만나러 갈래?”
그래 이 생각을 왜 못 했을까. 너도 보이면 내가 제정신인 거잖아. 그러네. 아르키메데스라도 된 기분이다. 당장이라도 집으로 끌고 갈 생각에 벌떡 일어서는데 덥석, 팔이 잡혔다.
“형, 힘들면 언제든 말해. 언제나 형 편인 거 알지?”
홍지수보다 훨씬 큰 덩치가 잔뜩 눈썹을 내린 얼굴로 올려다본다. 목소리도, 표정도 지나치게 숙연했다. 홍지수는 걷다 대고 아니 윤정한이 죽은 거 나도 잘 아는데, 말을 뗄 기분이 아니라 늘 남에게 보이는 사회적 얼굴을 뒤집어썼다. 형 밥 잘 챙겨 먹고. 얼굴이 이게 뭐냐. 연락도 좀 자주 해! 하는 말에 어른스럽게 웃으며 자리를 파했다. 그러고는 생각 정리가 필요해 싸늘한 새벽바람을 쐬며 걷다가 든 생각은:
아 이 새끼 뒤졌다는 게 구라였구나.
2단계 분노.
야 이 미친 새끼야. 개새끼. 넌 죽어도 싸. 이거 보험 사기였지. 애초에 그래, 네가 그렇게 죽을 리가 없잖아. 내가 하필 한국에 없을 때 죽었다고 한 것부터 믿으면 안 됐어. 너 나 몰래 사채라도 썼니? 이거 다 보험 사기 노리고 한 거지? 도박이라도 했어? 아니면 네가 돈 필요할 일이 어딨어?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냔 말이야. 개새끼야. 어디서 염치도 없게 얼굴 들고 여길 들어와? 윤정한,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니? 진짜 사람이라면 그러면 안 돼. 이 년을 그렇게 살았어. 너 때문에 살아도 산 게 아니고, 후회 때문에 눈도 못 붙이면서. 왜 하필 나는 여행을 갔던 걸까. 내가 그때 무슨 생각으로 갑자기 모로코에 갔던 걸까. 내가 그때 한국에 있었으면 달라졌을까. 그 생각만 하면서. 그러곤 밤낮이고 할 것 없이 기도했어. 제발 출국 전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아니면 정말 어쩔 수 없다면 마지막이라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매일을 빌었어. 내가 웃으면서 즐기고 있을 때 너는 죽어가고 있었다는 게 너무 죄스러워서 그냥 나도 죽고 싶었는데 너는 잘 살아있었네? 친구가 갑자기 사고가 났대도 힘들었을 건데, 네가 나한테 꼭 그래야 했어? 그래서 네가 얻는 게 뭐야? 나한테라도 귀띔해줄 순 없었니? 너 처음부터 노린 거였지. 네가 장례식을 치른대도 어차피 나는 네 시신도 볼 수 없고, 화장이니 뭐니 하나도 볼 수 없는 거 다 아니까. 갑자기 아들 잃은 너네 부모님 앞에 애인이랍시고 나타나서 제발 정한이 좀 보여주세요. 우는소리 할 수 없단 걸 잘 아니까. 그래, 출국 전부터 뭔가 찝찝했어. 평소에는 왜 두고 가냐느니, 왜 걔랑 가냐느니 귀찮게 굴던 애가 흔쾌히 갔다 오라고 할 때 알아봤어야 했어. 얼씨구나 싶었지? 사고 났다는 날짜도 네가 정했잖아. 말해봐. 너 그때 거기서 한국 오는 티켓은커녕 경유도 없던 거 다 찾아보고 정한 거잖아. 다 알아. 네가 사람들 전부를 속여도 나는 못 속여. 아니 내가 안 속아. 대체 너한테 나는 뭐였니. 정한아. 다 됐다. 이 미친 짓거리 다 지긋지긋해서 네 얼굴 보고 싶지 않아. 다시는 꼴도 보기 싫어. 당장 꺼져 시발새끼야.
그런데 지수야, 나 지박령이 된 것 같아. 집 밖으로 못 나가겠어.
맥이 빠진다. 평생 쓸 욕지거리를 다 뱉어낸 홍지수에게 돌아온 말은 그거였다. 핏대 세워 소리 지르느라 진이 다 빠진 홍지수는 그래서 그냥 털썩 주저앉았다. 더는 아무런 대꾸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허탈했다. 윤정한은 가만히 소파에 기댄 홍지수 옆으로 다가가 마찬가지로 소파에 기댈 뿐이었다. 우와 지수야. 너 말 엄청 빨라졌다. 너랑 십 년을 넘게 봤는데 이렇게 말 빨리하는 건 처음 봐. 그러고는 이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지수야, 나 너한테 거짓말 안 했어.
한바탕 악다구니가 몰아치고 고요가 찾아온 공간 속, 홍지수는 무언가 부서져 조각나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고막을 채우는 것이라곤 쿵쾅거리는 제 심장 박동뿐인 것이 쓸쓸했다.
3단계 공포.
진짜 유령인 걸까? 아니면 내가 드디어 미쳐버린 걸까? 하루종일 이어지는 생각에 지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죽은 애인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서 말을 걸고 밥을 먹고 짜증을 내다가 웃다가 산 사람 마냥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는데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며칠은 방에 처박혀있는 홍지수를 눈치만 살피며 가만히 두던 윤정한도 그 말도 안 되는 칩거 생활이 일주일에 가까워지자 입을 열었다.
“야 지수야. 나와서 밥 먹어.”
말을 해도 답이 없자 방문을 노크한다. 별생각 없다가도 그게 죽은 남자친구가 내는 소리라는 것을 떠올리면 홍지수는 갑자기 무서워지고는 했다. 그러고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다시 혼자만의 밸런스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Q. 다음 중 더 공포스러운 상황은?
A. 죽은 남자친구의 유령과 동거.
B. 정신질환으로 인한 환각.
레디, 파이트!
아직 팽팽하게 접전 중이라 홍지수는 배도 고프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식사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전자가 사실이라면 유령이 시뻘건 대낮에 돌아다니는 것이고, 후자가 사실이라면 자신의 삶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니까. 더 무서운 것은 둘 다 사실이 아닌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50 퍼센트의 확률도 미쳐버리겠는데 이게 아닐 수도 있다니. 확률의 확률에 대해 또 생각한다. 홍지수는 단 한 번도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 적 없었다. 식은땀마저 나는 것 같은 상황에서 방문이 덜컥 열렸다.
“배 안 고프냐고. 밥 먹어.”
“오지 마!”
윤정한의 미간이 가감 없이 찌푸려진다. 아니 나 아무것도 안 했거든. 밥 먹으라고. 불퉁한 말투가 일상적이라 더욱 구분이 힘들었다. 내가 미친 건지 귀신을 보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무슨 밥을 먹니…. 며칠을 제대로 먹은 게 없어 기운이 없는 목소리였다. 그래도 당 떨어지는 건 꼬박꼬박 챙긴 건지 그냥 먹고 싶었던 건지 베드 테이블 위에 다 먹은 트윅스 봉지가 몇 개 올라와 있었다. 저거 바로 안 버리고 위에 올려둔 거 보니까 홍지수도 제정신이 아니긴 한가 보다. 그리고 다람쥐 같아.
“너 멀쩡해. 제정신이야.”
그 말에 벽을 보고 돌아누웠던 이불 더미가 방향을 튼다.
“나 환각 같은 거 아니라고.”
“이 말마저 내가 만들어낸 거면 어떡하지, 정한아.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피사체가 해주는 그런 거일 수도 있잖아.”
“아니야. 며칠 전에 나 2주기 챙겼잖아. 그러고 정신 차려보니까 그냥 여기 있었어. 지수 네가 나를 보고 싶어 해서 나타나게 된 거 아냐?”
그게 더 무서워. 내가 왜 너를 소환해? 신내림이라도 받은 걸까? 일단 내 쪽으로 오지 말아봐 정한아. 난 아직 네가 원귀가 아니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
아 나 원귀 아니라고, 원한 없다고! 뭐하냐, 성경 소용없어!!
4단계 흥정.
알겠어 정한아. 뭐가 문제니. 내가 굿이라도 해줘야 할까? 굿 말고 Good으로는 힘들겠지? 근데 둘이 많이 다른가.
여기까지 단계가 진행된 것은 홍지수가 부적, 성수, 십자가, 찬송 온갖 수단을 통해 윤정한이 악귀가 아님을 나름대로 확신한 후의 일이다. 그런데 묫자리 문제면 내가 해결 못 해줘. 알잖아 우리는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아니고 또 너희 가족이 다 정한 거여서. 나는 너 죽었을 때 한국 돌아오는 비행기가 없어서 마지막 날에야 왔어. 부랴부랴 왔더니 이미 다 끝났다더라. 가족들이 제대로 못 쳐다볼 정도로 성한 곳이 없어서 바로 화장했대. 너는 이미 납골당에 들어가 있었어. 어떻게 하면 갈래? 뭐 때문에 온 거야?
기묘한 대화. 연인 간의 대화에서는 턱없이 벗어나 오히려 북한산 선녀 보살 신당에서 들리는 게 익숙할 무언가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망령과 자기도 자신을 모르는 엘에이 박수무당-윤정한 주장- 사이에선 제대로 된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선녀 보살은 아니지만 선녀처럼 생기긴 한 게이 커플. 관계의 지속만 십 년이 더 됐고, 이 년 전까지의 동거 햇수 반올림해서 십 년, 한쪽의 국적 덕에 결혼 생각은 물론이고 계획까지 존재했던. 그러나 이제는 다 소용없이 한쪽은 귀신이고 다른 한쪽은 신경 쇠약에 골머리를 싸매는 둘의 대화는 도무지 실마리가 풀리지를 않는다. 살아있을 때도 그랬지만, 죽어서도 그러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죽어서도 안 변하는구나. 사람을 잘 가려 사귀어야지. 때아닌 인간관계 고찰만 발생한다. 그 와중에 윤정한이 입을 연다. 오늘의 컨셉에 맞게 숭고한 얼굴로 진지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지수야 실은 난 천사야. 원래도 천사였잖아. 그래서 천사로 차출된 거지. 사후세계에 대해 어디까지 생각해봤니. 나 이제 너네 하느님 직속에서 일해. 어때 땡겨? 그러면 너도 오면 돼. 대신 나처럼 착하게 살아야지. 너는 지금까지 나한테 너무 못되게 굴어서 지금부터 잘해야 해. 천사를 부적으로 퇴치하려고 하고, 그거 다 신성모독이야. 지수야 알지? 신성모독. 또 내 제사상에 와인은 별로라고 했는데 또 와인 올리고. 물론 아구찜이랑 강된장우렁쌈밥은 너무 좋았어. 그 가게 잘하더라. 앞으로도 계속 거기서 부탁해. 그리고 물론 앞으로 수절도 해야 나처럼 천국에 올 수 있어. 응응. 안 그러면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고통받을 거야. 지옥 가기 싫으면 꼬옥 수절해, 알겠지?
종일 무슨 말을 할지만 고민하는지, 청산유수 같은 말이 쏟아졌다. 어이없다는 표정에 윤정한은 곧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조슈지가 수절 안 해주면 내가 진짜 원귀가 될 수도 있잖아. 천사가 그러면 사천왕이 잡으러 온다더라. 아니면 시바신한테 잡아먹힐 수도 있고. 그러면 나는 다음 생에 바퀴벌레 같은 걸로 윤회하겠지? 슈지의 수절만이 그걸 막을 수 있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예쁘게 깜빡인다. 안 그래도 큰 눈 크게 떴더니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 모습에 홍지수는 그냥 버릇대로 자기 옆에서 종알종알 말을 늘어놓는 애의 턱이나 쓸었다. 종교가 몇 개 뒤섞이는지 신경도 안 쓰며 이어가던 말이 잠깐 멈춘다. 우리 정한이는 조용할 때 제일 예뻐. 그 말에 얼굴을 쓰다듬는 손가락을 물 것처럼 앙, 입을 벌렸다.
그런데 지수 네가 죽으면 미국으로 가는 걸까? 너는 미국 사람이잖아. 귀신은 물을 못 건넌대 지수야. 그거 아니? 그러면 우리는 다시 못 만나는 건가?
우리 천사님이 하느님한테 물어보면 되겠네.
아 하느님은 영어 써갖고 나는 말을 잘 못햄. 너한테 영어를 배워놓을 걸 그랬다 그치. 근데 요즘은 비행기가 있으니까 괜찮을지도?
비행기는 물 안 건너니.
아니 그래도 다르잖아. 혹시 죽은 다음에 미국에서 눈을 뜨면 꼭 나 보러 와야 해. 알겠지. 약속이야. 안 그러면 그 무슨 인형 미니쉘? 그거처럼 찾아갈 거야.
애나벨.
아 맞다, 그거.
5단계 수긍.
그래 내가 뭘 하겠니. 그냥 이러고 살자. 로스앤젤레스 출신 미국인의 패배 선언이었다. 이 샤머니즘에 잡아먹힌 나라에서 내가 뭘 하겠니. 정치하겠다는 사람들도 무당 데리고 다니는데 애인 출신 천사인지 유령인지를 못 데리고 다닐 이유도 없었다. 지박령이라면 지박령이라는 대로, 천사라면 천사라는 대로 그냥 살자. 그렇게 결심한 삶의 첫 번째 스텝은 귀신 밥 멕이기.
“그래 정한아. 먹고 싶은 거 있니?”
“강된장우렁쌈밥.”
뭘 물어보냐는 듯 말이 끝나자마자 답이 돌아온다. 그래서 홍지수는 군 말없이 배달 어플을 켰다. 우리 정한이 살았을 때나, 뒤졌을 때나 다른 거 하나 없네. 그 말에 고개를 홱 돌리며 시선을 맞춘다.
“내가 변했으면 좋겠단 소리야?”
일부러 짓는 새침한 표정은 덤이다. 그렇게 한참이나 눈을 마주하다 동시에 입이 벌어진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꼭 보여줄게 훨씬 더 예뻐진 나. 그러고는 한참을 얼굴 보며 낄낄거렸다. 지인들이 봤다면 여전하다고, 둘이 죽을 때까지 그러고 살라고 할 터였다. 이미 하나가 죽었고, 죽은 후에도 그러고 있단 게 문제였지만. 한 번 웃음이 터지자 대화는 원활하게 흘렀다. 애초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살 부비고 산 게 몇 년인데.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어떤 기분이야. 뭐가. 죽은 거 말이야. 말한다고 아냐. 그건 그래. 그냥 이상해. 살아있을 때나 별다를 건 없는데 죽었으니까. 이도 저도 아닌 기분. 그닥 좋진 않아. 그래 보여. 야 그래도 좋아 보인다고 해줘야지. 그게 뭐야. 살아있는 주제에 죽은 애인 위로는 못 해 줄망정. 너는 다음 생에나 젠틀맨이 될 거야.
그러고 쌈밥을 열심히 먹는다. 밥이나 먹자여, 흥얼흥얼 노래도 부르면서. 그런 유령이 된 윤정한이, 홍지수는 그 사실이 그렇게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유령이라고 해봤자 살아있을 때랑 그렇게 다른 것도 없었기도 하고. 살이 맞닿았고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도 그닥 높지 않은 온도였기에 딱히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 것도 있었다. 살아있을 때도 똑같은 노래 부르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했었는데 뭐. 그때도 다를 것 없이 굴면서 우리 할아버지 돼서도 이러겠지? 하며 웃고는 했다. 다른 것이라고는, 윤정한이 죽어서, 같은 해에 태어나 늘 함께 나이를 먹어가던 둘은 다시는 그럴 수 없게 된 것뿐이다. 함께 나이 들어가며 늙지 못한다. 홍지수는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이한 감상이었다. 너무 늦었지만. 정한아 너 죽었네. 그제야 홍지수는 모든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윤정한이 나타나고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굴어 가볍지만 마침내 안정감이 드는 분위기 속에서 예전처럼 티격태격 말다툼하는 재미에 모든 걸 잊고 있다가, 또다시 깨달았다. 오래전에 다 마른 것 같던 눈물이 흐른다. 볼이 뜨거웠다.
“왜 울어. 울지마. 네가 울면 난 애인 울리는 죽일 놈이 되잖아.”
“이미 죽었잖아.”
“아픈 데를 건드네.”
또 죽이지 뭐.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 윤정한은 다정하게 볼을 닦으며 뜨끈한 애인을 껴안았다. 원래도 따끈따끈한 사람이었는데 유독 뜨끈한 것 같았다. 내가 귀신이어서 그런가. 그럴지도. 홍지수의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어 내려가다 말한다.
“내가 살아있을 때 너한테 나중에 제사상에 아구찜이랑 쌈밥 올려달라고 했잖아. 기억해줘서 기뻤어.”
“그걸 어떻게 잊니, 정한아. 주구장창 그것만 먹었는데. 너 가고 애들이랑 밥 먹는데 다들 아구찜이랑 쌈밥 얘기 나오자마자 울다가 웃고 난리도 아니었어.”
“헐 어떡해. 엉덩이에 털 났겠다. 왁싱해야겠네 홍지수.”
확인해보자. 하며 파자마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댄다. 홍지수는 코를 삼키며 죽은 남자친구의 등을 내려쳤다. 퍼억. 동시에 아아악! 하며 산통 깨는 소리가 들렸다. 유령이어도 아파? 네 손을 봐 지수야. 안 아프겠니? 의미 없는 말이 이어진다. 진짜 죽은 거 맞아? 못 믿겠어. 믿지 말든가.
근데 우리 섹스하면 귀접인가. 그게 뭐야. 귀신이랑 사람이랑 섹스하는 거. 으… 지옥 갈 것 같아. 야 너는 이미 죽은 사람 앞에서 그런 얘길 하니. 여전히 꼭 끌어안고 있는 형태라 말할 때 꼭 사람 눈 마주쳐야 하는 홍지수는 고개를 이리저리 뻗느라 바빴다. 그러다 곧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서로의 어깨 한쪽이 젖어 들어갔지만 그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랜만에 홍지수는 이른 시간에 깊게 잠들었다. 오랜만에 힘을 써 잠든 애를 들어다 침실에 두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플라네타리움까지 켠 후에 거실로 돌아온 윤정한의 귀에 뉴스 소리가 들린다.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백 년만의 혜성 이야기였다. 한 세기의 주기를 가진 혜성은 유난히 밝을 것이라고, 경쾌한 목소리가 그렇게 전했다. 홍지수는 오랜만에 깊게 잠들어 며칠간 제게 들이닥친 수많은 정보 값을 처리하느라 알아채지 못했으나, 반쯤 감겨 아래로 쳐진 윤정한의 눈에 반짝 안광이 돌았다.
*
혜성을 보는데 꼭 강원도까지 가야 해?
에이, 거기가 공기가 맑잖아. 밤에 불빛도 별로 없고. 훨씬 잘 보일 거야.
너는 애가 낭만이 없냐. 어딘가 뒤바뀐 대화였다. 보통 감성이든 분위기든 찾는 것은 홍지수였으니까. 그렇지만 추억 쌓기에 집착하는 윤정한 또한 알아주는 추억 전문 컬렉터여서 의외는 아니었다. 장단 안 맞추고 꺼려하는 홍지수가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다. 와중에 윤정한은 싱글벙글 기분 좋아 보인다. 분명 죽은 게 분명한,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 유령이 얼굴빛이 좋다. 깐 달걀 마냥 매끈하고 윤기가 도는 것이 살아있는 저보다 생기 넘쳤다. 귀신이 산 사람 기 빨아 먹는다는 생각 중이지 너. 유령이 되더니 독심술에 통달하기라도 했는지 홍지수의 공상을 방해한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지 바지가 아니라 홍지수 바지에. 뭐하냐. 충전. 진짜 홍지수의 기운을 빨아먹는지 보통 반쯤 감겨있는 눈이 반짝이며 원래 크기를 찾았다. 아무에게도 보일 일 없는데도 괜히 주변을 살피며 손을 털어낸다. 다른 사람 눈에 보일 일은 없어도 기차역에 보는 눈은 많긴 해서.
턱, 달걀 들고 휘두르는 팔을 막는다. 에이 뭐야 조슈지 재미없게. 하는 소리에 손에 힘을 주자 아악! 앵무새 소리를 냈다. 지수야 원래 한국에선 기차 타면 삶은 달걀이랑 사이다를 먹는 거야. 그걸 모르겠니 하는 얼굴에 다시 한번 달걀이 다가온다. 이번에는 성공. 아싸. 실실 쪼개며 이미 깨진 감동란 껍질을 까는 애 머리에 냅다 달걀을 쳤다. 달걀이 돌아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웃는 얼굴로 화답한다. 늘 그랬다. 홍지수가 반응하길 기대하면서 슬슬 긁으며 장난치기. 반응이 돌아오면 눈에 생기를 띄며 반짝거리게 좋아했다. 그게 좋았지. 홍지수 또한 별다른 거 없는 인간이기도 했고. 그래서 둘은 평일 아침 끝 칸이라 사람이 없는 기차에서 나이 먹은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장난을 쳤다. 홍지수가 그냥 달걀은 목 막힌다고 사 온 감동란이 동날 때까지 머리가 남아나질 않았다.
예매한 좌석은 두 개였다. 윤정한은 어차피 보이지도 않으니 한 자리만 예매하라 했으나 홍지수의 선택이었다. 마주 보는 자리인데 한 좌석만 예매하면 이상해 보여. 말은 그랬지만 실상 그런 마음이 아니란 것은 둘 다 알았다. 둘 모두 말을 얹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함께임을 인지하고 증거를 남기고 싶어 한단 건 모두에게 민망했으니까. 오 홍지수 돈 많은데, 하는 가벼운 소리를 해 윤정한이나 등짝 한 대 얻어맞았을 뿐이다. 한참을 세게 내려쳐 으깨진 달걀만 먹다가 홍지수가 입을 연다.
“달걀은 머리에 맞고 깨지는데 왜 사진은 안 찍힐까.”
“그게 신비라는 거야. 그리고 귀신 사진 막 찍으면 안 돼. 내 영혼이 카메라에 갇힐 수도 있어.”
“조용히 해, 정한아.”
“그런데 우리 한국에서 이렇게 기차 타본 적이 없다 그치. 일본에서는 타봤는데.”
“기차 타고 갈 만한 거리면 네가 안 간 건 잊었니.”
“아니 부산이라도 갈 만한데 그걸 안 가봤네. 좀 아쉽다.”
“지금 하고 있잖아.”
“그러게. 살아서 못한 걸 죽어서 하네.”
좀 신기한가. 그러고는 홍지수 어깨에 기대 말할 때마다 생기는 울림을 느꼈다. 잔잔한 진동이 안정감을 준다. 살았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애틋함이었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는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에 다다른다. 곧장 바다가 잘 보이는 숙소로 향했다. 성수기가 아닌지라 호텔 측에서 기꺼이 이른 체크인을 허락해서 다행이었다. 어차피 혜성은 새벽에야 볼 수 있는데 윤정한의 고집으로 예매한 이른 기차 편이었다. 한국에서는 다 그래. 한국에서 산 것이 고향에서의 시간보다 길어진 지 오래인 홍지수에게 괜히 그랬다. 짐을 풀고는 식사를 했다. 이제 유명 맛집도 배달을 한다. 어플만 열면 음식이 대령 되는 시대였다. 세상 너무 좋아졌어. 윤정한이 [상상초월 한국 배달 문화 첫 경험!!!] 같은 제목의 비디오에 출연하는 것처럼 감탄했다. 그러나 초당 두부를 입에 대고는 국뽕 유튜버처럼 굴던 게 언제냐는 듯 인상을 쓴다. 아 식었잖아. 그냥 식당에서 먹으면 되는걸. 홍지수가 눈을 흘겼다. 둘 다 여행까지 왔으면 현지를 즐기자 주의였지만 홍지수는 흔쾌히 그 즐거움을 포기했다. 주변 시선 신경 많이 쓰는 홍지수는 아무리 타지라지만 허공에다 혼잣말하는 또라이 취급받긴 싫어서.
정한아 조용히 하고 그냥 먹어.
내가 말 안 시키겠다고 했는데도 너는 그런다.
퍽이나 그러겠다. 너 저번에도 그래놓고 네가 이상한 짓 해서 직원한테 귀신 본다는 구라쳐야 했잖아.
그게 왜 구라야. 내가 귀신이고 네가 나를 보는데.
그렇긴 하지. 그냥 조용히 하고 밥이나 먹어.
웅.
식었다면서 되게 잘 먹네. 제사상 필요 없어? 향은 없어도 인센스는 있는데. 상에 올려줄까.
웅. 해주라.
정한아 너는 어떻게 그렇게 수치를 모르니.
*
밥을 먹고는, 피곤했다. 이른 기상에 지친 홍지수가 좀 쉬어보려 하니 방해가 잇따랐다. 얘가 왜 이래. 베개에 얼굴을 묻어도 옆에서 홍지수의 팔을 가만두지 않으며 칭얼댔다. 홍지수야 호텔에서만 있으면 무슨 재미가 있니. 애가 못 본 사이에 응큼해져 갖곤. 내려가자 응응? 몸을 세운 홍지수가 쳐다보는 시선에 판판하기만 한 가슴팍을 팔을 가로질러 엑스자로 가린다. 다를 땐 그렇게 누워있는 애가 왜 이래. 어디 떠나는 사람마냥. 거기까지 사고가 닿고는 멈췄다. 떠나려고 하는구나. 그러고는 입술을 감쳐물었다. 꺼림칙함 뒤에는 언제나 원인이 존재한다. 육감을 믿을 것을. 집을 떠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몇 번째일지 모를 심장이 내려앉는 후회였다. 회로가 차단되듯 암전이었다.
홍지수는 그제서야 인정한다. 잠깐의 달콤함에 취해 사고를 멈추고 안일하게 굴었다. 무슨 사유로든 어떻게든 기적처럼 제게 돌아온 윤정한이 제 곁에 머무르리라 생각했다. 스스로도 오답임을 알아 누구보다 간절히 생각을 지워내고 눈을 가렸다. 이런 삶이라면 이어질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기울어진 바닥의 불균형도 자신만 적응하면 그것이 균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마주 보고 식사를 하고 끌어안은 채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삶은 사실 이미 오래전 박탈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착각 속에 빠져있던 홍지수를 윤정한이 끌어낸다. 끌어올려 단단한 바닥에 패대기치는 것 같다고 느꼈다. 혼미했다. 제정신이 들지 않는다. 따라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집을 비우는 것이 아니었는데, 다시 집에 들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받아들이는 것이, 길들여지는 것이, 서로를 길들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후회 끝에 홍지수가 마주한 것은 또 한 번의 이별이다.
바닷가를 산책했다.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해 보인다. 평소라면 조잘조잘 재미없는 말을 하며 신났을 홍지수는 말이 없었다. 맨발로 걷자고 하면 처음에는 싫다고 빼다가도 나중에는 신나서 맨발로 뛰어다닐 걸 알아 말을 꺼냈는데 그저 군 말없이 신발을 벗어든다. 윤정한이 제 쪽으로 모래를 차며 장난을 걸어도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한참을 말없이 한적한 바닷가만 걸었다. 머리 위에 떠 있던 해가 위치를 옮길 만큼의 시간이었다. 깍지를 끼고 쥔 손의 감각이 모호해져 둘 다 제 손인가 싶을 때쯤 윤정한은 모래 위에 풀썩 앉았다. 이제 꽤 어둑해진 하늘 아래에서 저 멀리 수평선만 응시했다. 철썩철썩 파도가 치는 소리만이 들린다. 이미 다 아는 거 빙빙 돌릴 것도 없었다.
지수야 너를 두고 가려고 해도 이제 걱정도 안 된다. 가슴 빵빵하지, 얼굴 잘생겼지, 손은 솥뚜껑만 해서 맞으면 죽은 사람도 또 죽을 것 같지. 이젠 욕도 잘해서 걱정도 안 돼. 내가 널 너무 잘 키웠나 봐.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걸까? 어릴 때 씨몽키 말곤 아무것도 안 키워봤는데 내가 너는 엄청 잘 키운 것 같아. 이래도 안 봐주네. 지수야 제발 미안해하지 마. 그냥 사고였어. 내가 재수가 너무 없었을 뿐이야. 운을 전부 땡겨썼나 봐. 그러니까 너도 만난 걸까? 하하. 아니 야아. 고개 좀 들어봐. 정하니 부탁. 에휴 알겠다. 됐어, 똥고집아.
네 탓 좀 하지 마. 너는 너무 땅을 파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어. 이제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너도 그러면 안 돼. 이제 너도 아저씨야. 밥도 많이 먹고 잠도 잘 자고.
근데 꼭 수절은 해야 돼. 알았지. 말했잖아. 안 그러면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 수가 있어. 벌레 같은 것도 효과 만점이겠다 그치. 알-겠어. 또 삐졌네. 그러면 그냥 나 따라오면 안 되나아. 그러면 수절 안 하고 바로 가면 되는데.
초상과 다를 것이 없는 상황에서 능청을 떨었다. 윤정한의 특기였다.
홍지수가 낭만을 찾아 모로코로 떠난 것은 3월이었다. 떠나고 열흘 정도 흘렀을 즈음 한국에서 부고가 날아왔다. 윤정한이 다시 홍지수의 삶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의 3월.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벌써 5월이었다. 꽃피는 춘삼월에 꽃처럼 흩어져서는 다시 꽃이 피는 계절에 돌아오고 모두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기에 다시 사라지려 하는 윤정한. 항상 어디로든 떠날 것 같아 불안한 남자였으면서도, 정작 떠나는 것은 홍지수였다. 홍지수가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돌아오면 윤정한은 그곳에서 한결같이 홍지수를 맞이했다. 다녀왔어. 어서 와. 둘만의 대화. 생각해보면 항상 남겨지는 쪽에 질렸던 윤정한의 복수일 지도 몰랐다. 그러니 홍지수의 뒤통수를 그렇게 내려쳤지. 아직 혼수상태에서 회복하지 못한, 제대로 된 치명타였다. 복수라기엔 의도도, 통쾌함도 없었지만.
이제 저가 떠나는 쪽이 된 것을 굳히려는 듯 다시 윤정한이 떠난다. 홍지수를 남기고. 다시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홍지수는 그제야 커다란 캐리어를 가지고 떠나던 저를 바라보던 윤정한의 자리에 서게 된다. 남겨진 자의 시선을 갖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깨닫는 것은 너무 늦었을 때다. 지금까지 당했던 것이 얼마나 서운했는지라도 보여주려는 듯 윤정한은 가볍게 떠나려 했다.
또다시 물속에 가라앉는다. 누구도 그러지 않는데, 꼭 누군가 힘을 주어 앞의 바다에 홍지수의 머리를 밀어 넣는 것 같았다. 홍지수는 줄곧 잠겨있었다. 누군가 위에서 눌러대고 아래에서 잡아당겼다. 윤정한이 떠나고 홍지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숨 쉬지 못했다. 윤정한의 매끈한 피부 아래로 피가 오가고, 그에게 숨을 내쉬었다 들이마시는 과정이 필요하던 때, 둘은 항상 하나를 가지고 다퉜다. 떠나는 것. 넌 항상 어딜 그렇게 떠나는 거야. 사랑하는데 왜 그것도 이해 못 해줘. 사랑하니까 같이 있고 싶은 거란 건 왜 몰라주는데. 그러면 너도 같이 가면 되는 거잖아. 하 됐다. 그냥 말을 말자. 제대로 마무리 지은 적 없는 끝없는 다툼.
윤정한에게 홍지수가 져주지 않던 단 한 가지. 방랑벽이라 할 정도로 어딘가로 곧잘 떠나곤 하던 홍지수는 사고 이후로 그 어디에도 가지 못했다. 죄책감이었다. 모두 힘들어하는 홍지수에게 잠깐 미국이라도 다녀오라고,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편을 들어줬음에도 떠날 수 없었다. 문밖으로 발을 내딛는 것조차 힘들어서. 다리에 닻이라도 매단 듯 침재해서 스스로를 벌했다. 고행의 삶에 적응했다 생각했는데 잠깐 내쉰 숨에 어느새 익숙해져 처음처럼 고통스러웠다. 앞으로의 삶의 무게라 생각했음에도 버거운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자기 자신만 존재하는 고요한 수중에서 홍지수는 떠나는 데 이유가 있었나, 물었다. 아무리 살펴도 까닭이 없었다. 그저 떠나고 싶기에 떠났다. 간절한 목표도, 특별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홍지수는 몸소 자신을 가라앉혔다. 간절하지도 않았음에 자리를 비웠다는 생각이 홍지수를 좀먹었다. 제 빈자리가 만약 채워져 있었다면 바뀔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고뇌했다. 무엇이 더 중요했는지, 보잘것없는 낭만과 윤정한의 목숨을 저울에 올렸다. 적막하던 공간에 제 외침이 가득 찼다. 다 네 잘못이야. 모두 네 탓이야. 선택의 결과가 어떻든 책임을 지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격이 없어.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마비되어 제대로 기능하지도 못하는 뇌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한쪽으로 기운 저울을 바라보며 뿌리라도 내린 듯 가만히 있었더니 윤정한이 돌아왔다. 홍지수는 그렇게 자신을 찾아온, 두 번째 기회를 준 윤정한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속죄에 가까운 감정일 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부채감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애가 탔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홍지수의 연인. 저도 모르는 제 모습을 끌어내고, 제 안에서 그토록 오랜 기간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해온. 누구보다 그럴 가치가 있는, 제가 사랑해 마지않아 무엇과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윤정한을 붙잡고 싶었다. 옷깃을 붙잡고, 바짓자락에 매달리고, 그것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멱살을 틀어쥐어서라도 어떻게든 붙잡아 곁에 앉혀두고 싶었다. 잡는다고 잡히는 남자가 아닌데. 그래서 마침내 윤정한을 이해했다. 결국에는 피곤한 눈으로도 꼬박꼬박 떠나는 자신을 배웅하던 윤정한의 마음을. 잡힌다고 잡혀주지 않을 것을 알아서 미소를 지으며 홍지수를 보내고, 떠난 얼굴을 잠깐이라도 보기 위해 뜬눈으로 새벽까지 휴대전화를 붙들고 기다리던 윤정한을 이해했다. 역지사지의 마음이란 힘들다. 모든 앎이 그렇듯 버거웠다.
제 감정에만 사무쳐 여태껏 묻지 못한 것을 떠올린다. 아프고 무섭지 않았는지. 외로움을 많이 타는 네가 외롭지는 않았는지. 꿈도 아닌 낭만이나 좇느라 곁에 없던 내가 원망스럽지 않았는지. 이마저도 지금에서야 묻는 본인이 이기적이었다. 홍지수를 한참이나 가만히 쳐다보던 윤정한이 마침내 입을 뗐다. 전혀 다른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발화자가 더욱 명확해지는.
지수야 있잖아 내가 자가를 원하긴 했지만 좁은 데 갇혀만 있으니까 마음에 안 들더라고.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뿌려진 거야. 네가 날 뿌려준 거야. 갇혀있던 날 네가 풀어서 구해준 거야. 기차 탄 왕자님이네.
다른 가족들이 들으면 섭섭할 소리를 잘도 했다. 홍지수는 윤정한의 말속에서 진정으로 전하려는 말을 찾는다. 간단했다. 너는 자유야. 네가 나를 속박에서 풀어냈다 말하지만 누가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지는 명료했다. 물음에 대한 답으로 홍지수에게 윤정한이 자유를 줬다. 스스로 지운 죄의식으로 가라앉아 침전하는 홍지수를 다시 끌어올려 짐을 덜고 숨 쉬게 했다. 그러면서도 장난스럽게 그래도 수절 쫌만 해주라. 하는 말을 덧붙인다. 석양 아래에서 주홍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윤정한을 보는 것만으로도 홍지수는 아직 꿈만 같았다.
한 가지 윤정한이 몰랐던 것은 이제 홍지수도 윤정한의 세계로 편입되었다는 것. 그래서 윤정한이 끌어올린 곳마저도 여전히 물속이라는 점. 그렇지만 홍지수는 다시 숨 쉴 수 있었다. 그것이 윤정한이 달아준 날개였고, 홍지수가 스스로 뚫어낸 아가미였다.
어느새 찾아온 어둠 속에서 말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내가 지박령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집에서 못 나올 것 같았거든? 근데 너랑 있으면 어디든 갈 수가 있더라고. 역시 네가 내 집인가 봐 지수야. 눈물에 엉망인 홍지수의 얼굴을 소매로 닦으며 그랬다. 진위를 알 수 없는 말에도 유의미한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윤정한은 불편한 자세임에도 홍지수의 어깨 위에 머리를 올린다. 미온하지만 존재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무게. 그 무게가 사라져도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깨우쳐야 할 것이었다. 저 멀리 하늘에서 혜성이 보인다. 운 좋게 육안으로도 보인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댔다. 관측 시간은 길지 않다. 홍지수는 차마 혜성을 바라보지 못하고 겹쳐온 손에 힘을 줬다. 꼭 잡고 있던 손에서 점차 온기가 사라진다. 아무리 5월이라 해도 바닷바람은 차가워 그 속에서 사라지는 온기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마지막까지 소원을 들어주려는 연인의 다정함이 홍지수의 목을 조였다.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 다감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비정한 순간이었다. 가장 커다란 소원은 무시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다시 만날 것 같아. 그런 예감이 들어. 너도 알지 내가 감이 좋잖아. 옛날에 너를 처음 봤을 때도 난 바로 알았어. 아 우리는 뜨거운 사랑을 하겠구나. 어쨌든, 우리 둘 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거란 말이야. 이건 네가 교회를 다녀서 하는 말이 아니고, 진짜야. 맹세. 그런데 그게 빠르면 안 돼. 빨리 오기만 해봐. 다시는 안 만나줄 거야. 물론 보고 싶겠지. 그래서 몰래 훔쳐볼 수도 있지. 그치만 숨어다녀서 절대 안 만나줄 거야. 그러니까 너는 내가 빨리 간만큼 오래오래 살아야 해.
지수야 잘 살아.
홍지수는 아침 산책을 하러 온 관광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무릎에 묻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은 것. 혹은 차마 보지 못했던 것. 그리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사라진 연인. 그 무엇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차가운 모래는 찰나의 온기도 남기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그 무엇도 존재했던 흔적이 없는 제 옆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모래사장에 윤정한이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라도 만들어 어떻게든 고집하고 싶었으나, 모래에 무엇을 새겨도 파도는 그를 씻어낸다. 나쁜 새끼. 끝까지 없었던 것처럼 만들어버리네. 장소 선정이 기가 막혔다. 가당찮게 천체관측을 산도 아닌 바닷가에서 하겠다는 것부터 그랬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생각만 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남지 않는 것이 아닌데도.
마침내 홍지수는 차가운 바닷바람에 굳어 봉인된 것 같은 자세를 푼다. 고개를 들어 마주한 바닷바람은 눅눅한 무릎 사이의 공간과 달리 뺨을 훑어온다. 옆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가 잠깐이라도 존재했다는 자국도, 흔적도, 그 무언가도. 곁의 인영 대신 홍지수는 앞으로의 삶에 찍힌 낙인을 보았다. 헤스터의 A보다 깊고 짙어 주홍 글자라기보단 이마에 새겨진 화인에 가까운 그것을. 모호하지 않아 좋았다. 그 확실성이 어둠 속 불안함을 밝혀 없애고 있어서. 그래서 홍지수는 생각보다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시간 동안 미동도 없이 땅을 파고 들어갈 듯 앉아있던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듯.
혜성과 함께 사라진 윤정한을 생각한다. 비싸게 굴며 백 년 만에 모습을 보여준 천체와 함께 윤정한은 떠났지만 홍지수는 남았다. 제 중심이 윤정한인 채로. 주기를 갖고 하는 회전이 그들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중심으로 주위를 돈다. 홍지수는 앞으로도 윤정한의 주위를 공전할 것이다. 어느 순간 중심이 되어버린 그로부터 진정한 의미로 벗어나지 못하고, 겨우 어디론가 나아간대도 머지않아 끌려 돌아올 것이다. 앞으로도 주위를 회전하겠지만 살아생전 다시 끌어안지는 못할 거리. 홍지수에게는 앞으로의 궤도를 달리는 일만이 남았다. 홍지수는 잘 살 것이다. 누가 간절히 바란 대로 따뜻한 집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운이 좋다면 체온을 나눌 품을 가진 누군가와 함께. 그렇지만 그는 어디 한 군데 정착해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이고, 해류를 따라 옮겨 다니게 될 것이다. 어디를 가든 존재하는 누군가의 흔적 속에서 위로받다가도 결코 진정으로 함께할 수 없음에 가슴 시려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보낼 것이다. 세상 온갖 곳으로 흩어진 가장 사랑한 것에 얽매여, 그를 쫓는 운명을 선고받았기에. 주어진 자유에도 홍지수가 그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무슨 지박령이 이래. 지박령 윤정한이 매여있던 곳이 홍지수였듯 홍지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얽매인 대상이 땅이 아닌, 제 연인인 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연인 사이에도 병이 전이될 수 있나. 그건 질병도 아니고 전이도 아니건만 홍지수는 그랬다. 홍지수가 매여있는 남자가 마지막 숨을 내뱉었던 공간, 그곳에서 숨을 삼켰다.
그러고 나서 홍지수는 잠깐 억울하단 생각을 하다, 한숨을 쉬고, 유령의 저주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홍지수는 제 곁에 다시 생겨났다 또다시 사라진 윤정한이 진짜 윤정한인지, 유령인지, 기억의 파편인지, 제 정신이상의 증거인지 알지 못한 채 살게 된다. 그러나 그 윤정한이 선물한 자유 속에서, 꽤나 길게, 제법 행복하게,
살았다.
윤정한이 다시 홍지수를 찾은 지 49일 되는 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