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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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

울로

대지 1+02.jpg

 

 

 

“윤정한이랑 홍지수랑 무슨 사이냐?”

 

“친구겠지. 그거 말고 더 있냐?”

 

“걔네 분위기 개이상함. 윤정한은 중딩 때 2주였나? 여친 한번이 끝이고, 홍지수는 아예 모쏠이잖아ㅋㅋ”

 

“엥 씨발? 그럼 걔네 게이임? 미친 거 아냐?”

 

“애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던데. 맨날 같이 밥 처먹고 영화 보고 야구 보잖아”

 

“아... 나 지금 진짜냐고 윤정한한테 물어볼까?”

 

 

 

익숙하게 정한이를 찾으러 3반으로 가는 복도에서, 저런 말을 들었다. 솔직히 쟤네들이 뭐라고 입을 털든지 상관없는데, 윤정한이 과연 뭐라고 대답할지가 너무 궁금해졌다. 뒷문을 지나쳐서 앞문을 살짝 열고 복도에 기대는 순간, 물어본다던 애가 윤정한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너 6반 홍지수......”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제대로 안 들렸다. 아, 윤정한도 목소리 작은데 안 들리겠네.

 

 

 

 

 

“나 홍지수랑 그냥 친구야. 그리고 나 안채진이랑 사귀는데 몰랐나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윤정한 목소리는 너무 컸다. 여친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저 목소리가 나한테 너무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나한테 그런 이야기 한 적 없었는데. 여자 이야기는 일절 안 했는데. 밤마다 나랑 전화하다가 잤는데. 동아리도 나랑 같은 동아리잖아. 언제 여자를 만났지? 안채진은 또 누구야. 윤정한이 여자친구가 있다고?

 

 

 

수없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멋쩍게 웃으며 돌아가는 저 아이와 그를 흘겨보는 윤정한을 문틈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올라오는 두통을 느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종소리에 본능적으로 반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윤정한이 내 친구. 친구??? 우리가 친구인가? 나는 윤정한을 친구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윤정한은 나에게 친구라는 말에 맞지 않는 존재였다. 근데 윤정한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다.

 

 

 

수학 선생님은 매시간 수업 태도가 수행평가에 들어간다면서 수업을 제대로 들으라고 협박하지만, 나는 지금 수행평가나 학습 태도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윤정한이 나를 친구로 정의해버린다는 사실이 너무 소름 끼치게 싫었다.

 

 

 

어.? 그럼 난 윤정한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지? 다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리 둘을 다른 사람들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윤정한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다. 근데 나는 윤정한의 친구이고 싶지 않다.

 

 

 

 -

 

 

 

바지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눈치를 보면서 슬쩍 꺼내 보니 윤정한이었다.

 

 

 

‘우리 오늘 야자 째는 거지?’

 

 

 

목요일마다 야자를 째고 놀러 다니는 우리의 암묵적인 규칙을 확인해주는 문자였다. 나는 지금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윤정한이랑 둘이서 놀고 싶지 않았다.

 

 

 

‘미안 다음에 나 지금 할 일이 너무 많아’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나를 휘감았다. 나는 스스로 윤정한과 나 사이에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어버렸다. 나 혼자만의 믿음은 깨졌고, 나는 내가 사랑했던 윤정한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

 

 

 

2012년 6월의 어느 화창한 목요일이었다.

 

 

 

-

 

 

 

지수는 윤정한과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어내려 미친 듯이 노력했다. 윤정한과 함께했던 모든 추억을 지워냈다. 같이 바다에 갔을 때 주워온 돌멩이도 버리고, 같이 갔던 식당은 최대한 가지 않고, 같았던 동아리도 선생님께 싹싹 빌어서 바꿨다. 

 

 

 

아침에 홍지수네 집 앞에서 식빵 뜯는 윤정한은 청룡고의 상징이었지만, (홍지수는 모두가 '저기 살면 등교 개꿀이겠지?'라고 생각하는 교문 바로 앞 빌라 1층에 살았다) 지수가 정한에게 ‘아침에 같이 못 가겠다’라고 통보한 이래로 딱 3일만 모습을 더 보이더니 하나의 전설로서 모습을 감추었다.

 

 

 

지수와 윤정한이 같이 다녔던 영어 학원에서 지수네 집까지 가는 방법은 50개쯤 있었는데, 지수는 그중에서 윤정한과 다니지 않은 2개의 길로만 다니기 시작했다. 윤정한을 마주칠까 봐. 

 

 

 

윤정한은 이런 지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주 동안은 지수를 찾아왔지만, 그 이후로는 지수에게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지수는 '윤정한'을 지워내는 데 성공했다.

 

 

 

-

 

 

 

 

 

가끔가다 윤정한을 마주할 때면 윤정한의 품에 안겨있는 긴 생머리 여자애들도 함께 마주했다. 지수는 날마다 바뀌는 그 여자애들이 꼴사나웠지만, 윤정한이 저를 더 사납게 쳐다보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이고 지나쳐갔다.

 

 

 

여름 이후로 지수는 말도 안 되게 공부에 몰입했다. 사실 그때까지 지수는 좋은 수업 태도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나오지 않는 기이한 모범생이라서 교무실에서

 

 

 

"6반 홍지수는 태도도 좋고 대답도 잘하는데 등급이…."

 

 

 

 등의 내용으로 언급되곤 했었는데, 윤정한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자, 성적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1학년 때 거나하게 말아먹은 등급을 2학년 중반부터 끌어올리자 학업 상담 때 거론되는 대학의 이름이 달라졌다. 지수는 정말 코피 터지는 것이 일상이 될 정도로 학업에 열중했고, 상상도 못 하던 대학에 추가합격을 하는 그 순간 세상이 떠나갈 듯 울었다. 그렇게 홍지수는 청룡고를 떠나 상경했다.

 

 

 

-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에 치이고 치였지만, 묘한 경상도 사투리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기반으로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 대학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자고 마음먹은 지수는 장학금을 시작으로 교환학생과 복수전공까지 했다.

 

 

 

졸업 이후로는 취준의 연속이었다. 빵빵하다고 생각했던 지수의 스펙은 얇은 종잇장에 불과했고, 정장을 갖춰 입고 가식적인 미소를 드러내며 2분의 짧은 시간 안에 본인 어필을 다 하는데 익숙해질 때쯤 지수는 취업에 성공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큰 발전을 한 모 회사의 첫 공채에 합격한 지수는 최종 입사 확정 통보를 받고 주어진 3주간의 시간 속에 본가로 내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대의 백수 인생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기차를 타고 집까지 가는 길에 노트북을 정리하려 사진 클라우드를 켰다. 수십 장의 이력서들과 떨어질 때마다 탓하며 다시 찍은 증명사진. 동아리 후배들과 함께한 마지막 축제, 교환학생으로 갔던 LA에서의 추억들을 한 번씩 훑고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생수병을 따는 그 순간 지수의 눈에 들어온 사진이 한 장 있었다.

 

 

 

벤치에 앉아있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윤정한과 그의 무릎에서 눈 감고 자고 있는 저를 발견한 지수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윤정한의 표정은 너무나도 즐거워 보였고, 의도적으로 잊어버렸던 그와 관련된 모든 추억들이 지수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치기 어린 마음이라고 지수 자신도 모르게 우겨놓았던 그 마음이. 다시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린 역에서 지수는 집으로 바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지수의 본가는 윤정한과의 추억으로 들어차 있는 청룡고의 바로 앞에 아직 있었으니까.

 

 

 

역 바로 앞에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집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킨 다음 자리를 잡아 앉았다. 클라우드 저 언저리에는 지수가 미처 지우지 못한 윤정한과의 추억들이 대여섯 장 정도 더 있었다. 지운다고 다 지웠었는데. 사진 속에서 지수와 상대방의 표정은 정말 세상 다 산 듯 즐거워 보였다. 10년이 지났지만, 저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저 날 뭘 먹었는지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A-33번 손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드리겠습니다~

 

 

 

애타게 외치는 저 서버가 들고 있는 음료가 제 음료인지도 모른 채 지수는 깊은 생각과 고뇌에 빠졌다. 그날 하루의 충격으로 본인의 평생 갈 친구였던 윤정한에 대한 마음을 버리고 멀어진 것이 본인만의 잘못 여겨졌다.

 

 

 

윤정한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친구로라도 남고 싶은 존재였다. 그때는 내가 잠깐 착각해서 친구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여겼지만. 그리고 아직 윤정한을 사랑하지만 그건 내 사랑이고, 윤정한은 나한테 친구라는 존재로라도 남아줬으면 하는 사람이었다. 윤정한을 찾아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도달하자 지수는 A-33번 커피를 매정히 버려둔 채 택시를 잡았다.

 

 

 

'청룡고 앞으로 가주세요.'

 

 

 

-

 

 

 

정한은 원래부터 공부에 뜻이 없었다. 사실, 눈치로 대충 문제 풀이는 할 줄 알지만, 굳이 그 능력을 더 발전시킬 생각을 안 했다. 정한은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독서실을 물려받기로 마음먹고 고등학교 생활은 재미로 가득 채우자고 다짐하며 고입 원서를 썼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배정받은 고등학교의 예비 소집일 날, 정한이 교과서를 받아 가려 챙겨온 부실한 에코백이 복도 한가운데서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찢어졌다. 배치고사를 치고 힘들어하는 수백 명의 예비 고등학생들은 그런 정한을 ‘길막하는 돌덩이’로 여기고 스쳐 지나갔다. 열권이 넘는 교과서를 겨우 품에 안고 일어나는 순간, 어떤 아이가 눈앞에 가방을 들이밀었다.

 

 

 

‘이거 나 하나 더 가져왔는데, 너 쓸래?’

 

 

 

따뜻한 눈웃음과 마주한 윤정한은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에 교과서 더미를 쑤셔 넣었다.

 

 

 

‘고마워. 이게 이렇게 찢어질 줄은 몰라서….’

 

‘챙긴 줄 모르고 하나 더 챙겼는데, 그래도 챙기길 잘했네’

 

 

 

이렇게 시작된 정한과 지수의 인연은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더 진하게 이어졌다. 서로가 약속한 적은 없지만, 매일 아침 등교를 같이했고, 같은 학원에 다녔으며 (일방적으로 윤정한이 홍지수가 다니는 학원에 등록한 거다), 학급 번호 ㅇ과 ㅎ 사이의 열댓 명을 항상 무시하고 대부분의 모둠 활동을 같이했다.

 

 

 

2학년이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정한의 누나가 결혼을 하면서 부모님의 불화가 잦아졌고, 결국 부모님은 갈라서게 되셨다. 학업 때문에 정한을 이 동네에 남겨야 한다는데는 의견이 일치하셔서, 정한은 독서실 위층의 작은 사무실에 침대와 책상을 갖다 놓고 독서실 총무 일을 하며 2년을 혼자 살게 되었다.

 

 

 

정한은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에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수에게도 예전만큼 연락을 못 했다. 독서실에서 일하며 형들에게 얻어 피는 담배가 일상이 되었고, 여학생들이 총무실로 가지고 오는 쪽지를 거절하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 전화를 거는 일이 잦아졌다.

 

 

 

학원을 마치고 지나가는 지수를 데려와 치킨을 시켜 먹고 집으로 돌려보낸 다음, 담배를 피우며 여학생들에게 연락하던 정한은 그렇게 홍지수와 다른 반이 되며 2학년을 마주했다.

 

 

 

윤정한은 홍지수를 너무 소중한 친구라고 여겼다. 본인에게 먼저 손을 뻗어준 지수가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본인의 혼란스러움과 그로 인한 일들을 숨기기로 했다. 여자친구가 생겼고, 담배를 습관처럼 피웠지만, 지수에게는 독서실 총무 일로 바빠졌고, 다니는 형들이 담배를 피워서 냄새가 난다고 둘러댔다.

 

 

 

정한이 평생 남겨놓고 싶었던,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친구 지수가 본인에게 점점 멀어졌고, 삶에서 자취를 감췄다. 왜 멀어졌는지도 모르지만, 정한은 본인을 막아놓았던 지수라는 방패가 사라지자 두려울 것이 사라졌다.

 

 

 

학교에서도 대놓고 여학생들과 붙어 다녔고, 독서실 위층에 드나드는 여자친구의 얼굴은 자주 바뀌었다. 총무 일도 대충 하다가 아버지한테 혼났다. 학교에서 지나가는 지수를 볼 때, 그의 손이 다시 자기에게 내밀어지기를 바랬지만 여자친구를 안고 있는 저에게 그럴 일은 없다는 걸 잘 알았다.

 

 

 

볼품없는 성적과 쓰레기 같은 생기부를 들고 졸업하는 정한은 대학교에 가는 친구들을 보며 약간 후회했지만, 총무 자리에 앉아서 노가리를 까는 본인의 삶에 만족했다. 지수의 이름이 서울의 학교에 합격했다고 학교 앞에 걸리는 것을 보고 지수를 축하했고, 교문 앞 지수의 집을 지나며 지수를 원망했다.

 

 

 

곁에 있던 친구들은 모두 정한을 떠났다. 정한은 예비 소집일 날 본인에게 뻗어진 그 손을 생각하며 총무실에 앉아서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이 싫어졌다. 정기권을 끊어놓고 오지 않는 사람들이 남겨두고 간 문제집들을 훑어봤다. 시험의 종류는 많았지만 딴에 수학을 좋아해서 이과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지수와 함께 학원에 다녔던 1학년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 기초부터 공부했다. 한해에 끝날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정한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했다. 다리에 피가 안 통할 때쯤 옥상에 가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독서실 마감을 하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그렇게 윤정한은 2년을 죽은 듯이 살았다.

 

 

 

수능을 치고 결과도 확인하지 않고 냅다 입대했다. 군에 사정을 다 설명하고 아버지와 연락해보니, 지거국 공대에 합격했다고 했다. 더는 성적표 숫자들의 합을 줄일 자신이 없었던 정한은 충실히 군 복무를 했고, 복학생으로서. 본인보다 어린 동기들과 학교생활을 했다. 마지막 학기에는 학교에서 공지가 뜨는 족족 얕은 스펙의 서류를 넣었던 정한은 운 좋게 서류 통과를 하고, 면접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합격했다. 졸업장을 받아들며 떠오른 지수의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졸업하고 다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었기에 정한은 가을 졸업 이후 바로 회사에 들어갔다. 개발부서에서의 막내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정한은 특유의 시크한 싹싹함으로 적응해냈다.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처럼 정한은 업무를 계속해서 처리했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회사에서의 일을 집에까지 끌고 오고 싶지 않았기에 노트북을 챙겨 일찍 집에 오는 것보다는 회사에 남아 오랫동안 앉아있는 방법을 택했다. 지나가는 여직원들의 눈빛이 독서실 여학생들의 눈빛과 같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모른척했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했지만 나름대로 즐거웠다. 늦게나마 공부를 시작한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늦게라도 취직을 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받았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정한의 회사는 청룡고와 정한의 집(이자 독서실)에서 가까웠다. 집으로 걸어가는 한 걸음걸음에 지수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걸었다.

 

 

 

정한과 지수의 추억은 사실 1년 6개월이 채 되지 않지만, 둘에게는 너무나 강렬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었기에 생각보다 그 시간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고등학생 때 잘못 배운 담배는 결국은 끊어내지 못해서 아직도 피우고 있었다. 끊지 못하는 이유가 피울 때 마다하는 지수 생각을 계속하고 싶어선지, 니코틴의 영향인 건지 정한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

 

 

 

회식이 있었지만,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어렵게 빠져나왔다. 멀쩡했는데 연기한다고 용을 썼더니 실제로 머리가 좀 아픈 거 같았다. 집에 가는 길이 힘들었다. 힘이 드니까, 지수가, 너무 그리웠다. 못 본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지수가 소중했다. 아껴주고 싶었다. 다시 만난다면 더는 잃지 않을 거라고, 내 앞에 꼭 붙들고 있으리라고 마음먹었다.

 

 

 

집에 가는 주된 길을 내버려 두고 빙 돌아 걸었다. 언덕 위로 청룡고가 보였다. 신입생 환영 현수막이 아직 걸려있다. 그리고 그 앞엔 지수의 집이 있겠지. 내심 언덕을 따라 올라가서 청룡고를 한 바퀴 걷고 싶었다. 식빵을 먹던 지수의 집 앞에 다시 지수를 기다리며 서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지수는 오지 않을 거다. 홍지수는 이미 이 지역을 떠난 지 오래였으니까.

 

 

 

무거운 발걸음과 떼지 못하는 시선으로 미련을 선명히 드러냈다.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르막길에 들어서는 그 순간, 멀리서 택시 한 대가 멈췄다. 누가 학교 가나 보네. 생각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택시는 떠났지만, 그 사람은 계속 내린 자리에 서서 청룡고를 바라봤다. 정한은 ‘뭐 하는 사람이지?’ 생각하다가 본인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그만뒀다.

 

 

 

그 사람이 뒤를 돌아봤다. 눈이 마주쳤다.

 

 

 

“윤정한?”

 

 

 

너무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지수였다. 내가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홍지수. 내가 그렇게 아끼던 홍지수. 내가 사랑하는, 홍지수.

 

 

 

걸음이 빨라졌다. 마지막엔 뛰었다. 그에게 팔을 뻗었다. 팔 안에 딱 채였다. 속에 있던 말을 내뱉어 버렸다.

 

 

 

“보고 싶었어, 정말”

 

 

 

-

 

 

 

안긴 상태로 움직일 수 없었다. 지수의 눈에선 눈물이 떨어졌다. 택시를 타고 오는 시간 동안 정한을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다. 독서실에 찾아가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바로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눈 앞에 윤정한이 있다. 그리고 그가 나를 꽉 안아주고 있다. 교복을 대충 입었다고 선도 지도를 받던 윤정한이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고 어른의 향수와 고등학생 때부터 나던 담배 냄새를 조화롭게 풍기고 있다.

 

 

 

“정한아. 윤정한.”

 

 

 

이름을 부르자 정한은 팔에 힘을 꽉 한번 주더니 스윽 풀었다.

 

 

 

“다짜고짜 안아서 미안. 기분 나빴겠다. 진짜 미안. 아 우네.”

 

 

 

가방 속에서 휴지를 찾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정한을 보고 지수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휴지를 받아들고 눈물을 닦는 지수에게 정한은 정말 미안했다. 지수가 애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안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실컷 다 안고 난 후 떠올랐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함부로 내뱉을 수 없었다.

 

 

 

“정한아, 내가 더 미안해.”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너를 너무 좋아해서, 그래서 너 옆에 있기가 힘들었어.”

 

 

 

-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나도 너를 좋아했는데.

 

눈물이 그렁한 눈을 바라봤다. 지수의 눈에서 눈물이 얼굴을 따라 흘렀다.

 

나는 그 눈물에 손을 뻗어서 닦아 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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