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영원할 수 없는 거야. 단조롭게 내뱉은 K는 제 옆 자리에 앉혀 두었던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는 유성우를 보러 가자고 말하려던 윤정한은 애꿎은 종이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K는 붙잡히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럼 윤정한은 잡지 않는다. 지구에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럼 우주에는 있을까. 어처구니 없는 생각에 저 스스로 자조하면서 윤정한은 담배를 피웠다. 겨우 일미리 주제에 끝맛이 제법 떫었다. 기분이 나빠서 조금 울었다.
그리고 그날 윤정한은 하늘을 날려다가 병원 신세를 졌다.
왜 그랬냐 묻기에 그냥 그런 기분이었다고 답했다. 의사는 입원을 추천했다. 윤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가 있다기에 바로 짐 싸서 다음날 병원에 들어왔다.
알아보고 온 게 아니라서 이것저것 금지 물품을 한가득 반환당했다. 텀블러, 반지, 비닐봉지, 정말 별의 별 물건을 다 반환당하고 남긴 건 정말 몇 없는 생필품들뿐이었다. 그리고 특별한 건 일기 정도. 가서 할 일도 없을 텐데 일기나 써야겠거니 싶었다. 휴대폰도 못 만진다는데 이제 무슨 재미로 지내나 싶어서 조금은 후회도 됐다. 하늘 한 번 날아 보려 한 게 뭐 그리 큰 잘못이라고.
우여곡절 끝에 앞으로 최소 2주, 길면 몇 달도 지낼 병실에 입성했다. 사람 많으면 영 못 지낼 것 같아서 2인실로 부탁드렸더니 취업 준비하는 자취생이 견디기엔 좀 버거운 금액이 나왔지만 집이 꽤 살아서 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윤정한이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짐 다 풀고 침대에 앉아 링거 맞을 때까지 병실 동기는 꽤 조용했다. 가만히 윤정한을 바라보기만 했다. 뭐라고 말이라도 걸어야 하나 하는 참에 그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난 조슈아라고 해."
"......."
"넌 이름이 뭐야?"
"윤정한."
대뜸 말을 까면서 말갛게 웃은 조슈아가 고갤 끄덕이고선 저의 베드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추후에 되짚어 보자면 역사적인 첫만남. 뭐 대충 그런 순간이었다. 병원에서 단체로 세탁해 주는 밋밋한 환자복을 입고도 달달한 체향이 나는. 들어오며 상상했던 병실 동기의 모습은 확실히 아니었다. 하얗게 뺀 머리카락도. 피어싱을 뺀 건지 귀에 듬성듬성 붙여 둔 종이 반창고도.
공백이 길어지면 어색할까 싶어 느릿하게 손을 맞잡고 말간 얼굴을 마주보았다. 여기저기 모난 데밖엔 없는 K와 너무 달라서 K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물론 지금 윤정한은 손톱만 봐도 K가 떠오르는 중증 환자였지만. 그런 이유는 제쳐 두고.
"잘 지내자."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그렇게 말했다. 윤정한은 이미 딱지가 앉은 입술을 물어뜯으면서 고갤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화성에서 온 소년
윤정한 조슈아
"비밀인데, 난 화성에서 왔어."
"화성? 지구 바깥에?"
"응."
장난일 줄 알고 던진 말에 조슈아는 어떻게 알았냐며 방긋 웃었다. 꽤 진심인 듯 보여 화성에서 여기까진 어떻게 왔냐는 물음은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병명이 뭐라 했더라. 함부로 넘겨 짚으면 안 될 사항인 동시에 함부로 물어봐서도 안 될 부분이었지만 애매하게 두느니 묻기로 결심했다.
"너는 왜 입원했어?"
"화성에서 왔거든."
생각한 대로여서 놀라울 건 없었다. 그래서 비싼 돈 내고 이인실을 쓰는구나 싶기도 했다. 조슈아는 덧붙여 가끔 친구들과 대화할 때가 있으니 놀라지 말라고 했다. 윤정한은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간결하게 응, 그러고 말았다.
조슈아는 윤정한의 입원 사유를 묻지 않았다. 묻거든 우울증이라고 할지 죽으려 했다고 할지 하늘을 날아 보고 싶었다고 할지 고민이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냥 가만히 베드에 앉아서 낮이지만 벌써 일기를 폈다. 조슈아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일기랬더니 대충 프라이버시는 존중한다고 영어로 중얼거리고선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화성인은 원래 영어를 쓰나. 한국어보다 영어가 자연스러워 보여서 조금 궁금해졌다. 그래, 앞으로 한참 같이 지낼 건데 좀 알아 갈 필요도 있고. 괜히 자기합리화 했다.
"영어가 제1 언어야?"
"응. 처음 지구에 왔을 때 미국에서 지냈어."
"아아......."
생각보다 반응이 미적지근해서 다행이었다. 고개 끄덕인 윤정한은 다시 일기나 쓰기 시작했다. 며칠인지 까먹어서 날짜 대신에 입원 2일차라고 적었다. 입원한 지 꼴랑 24시간 조금 지난 지금 시점에 쓰는 일기다. 생각보다 덜 외롭지만 상상보다 더 외롭다. K의 생각은 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화성에서 온 병실 동기. 지내는 동안 재미는 있을 것 같다. 뭐 그런 내용들로 답지 않게 한 장을 꽉 채웠다.
일기를 다 쓰고 나니까 또 조슈아에게로 시선이 갔다. 조슈아는 어느새 창밖을 쳐다보기를 그만두고 자신의 손톱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뜯기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진짜로 입가로 가져다 대더니 그대로 손톱 끄트머리를 물어 뜯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 왠지 본능적으로 윤정한은 조슈아의 손을 멈췄다.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조슈아가 윤정한을 응시했다.
그니까 마치
"아니, 그,"
너도 뜯으면서 왜 이러냐는 표정이었다.
"피 날 거 같아서."
"아......."
"바디밖에 안 남았잖아."
수긍한 조슈아는 순순히 손을 내렸다. 안 그래도 충분히 어색했지만 급속도로 더 어색해져서 멋쩍게 베드에 다시 앉았다. 나가서 다른 병실 친구라도 사귀어 봐야 하나 싶어졌다. 그치만 곧 돌아오는 전화 시간에 어디 전화 걸 데가 있는 사람들과는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고집이 생겨서 기준이 꽤 까다로울 터였다. 그에 비해 제 옆에 앉아 있는 조슈아는 우연히 걸린 것 치고 너무 기준 적합 최상형이라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결심했다. 언젠간 친해지겠지. 대화 주제나 곰곰이 생각했다.
"너 노래 좋아해?"
"어. 지구에선 Gabe Bondoc이 내 롤모델이야."
"롤모델?"
"응. 화성에서는 노래를 했거든."
"나는 지구에서 밴드 했는데."
생각도 못한 공통점이라서 괜히 기분이 들떴다. 비록 윤정한은 밴드라고 명함 내밀기엔 공연 보러 오는 제대로 된 관객 하나 없고 길거리 버스킹이라도 하면 지나가던 사람 댓 명이나 볼까 말까 한 무명 밴드였지만, 뭐...... 밴드를 한 건 맞으니 걸릴 건 없었다. 그치만 조슈아가 노래를 했다는 게 조금 의외였다. 목소리가 맑고 청아하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들 노래하는 건 아니니까.
"너는 밴드 할 생각 없어?"
"당연히 있지. 언젠가 꼭 기타 치는 보컬이 돼서 센터에 설 거야."
"너 꿈 되게 크다."
"당연하지."
실없는 핑퐁에 괜한 웃음이 섞여 났다. 무반주에 노래를 얹을 만한 아티스트들은 아니라서 음악 이야기를 계속 했다. 나는 웨이크미업웬셉텐버엔즈가 입문 곡이었어. 난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부터 듣고 있었어. 기타 치다가 손에 굳은살 박히는 감각이 좋았어. 프론트맨으로 무대에 서면 너무 멋질 거 같애. 화성의 노래는 지구랑 조금 달라. 비슷할 줄 알았는데. 아냐, 화성은 다른 악기를 쓰거든. 이를테면. 여기의 언어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 그렇구나.
"우리 되게 비슷하네."
지구의 우울증 기타리스트와 화성의 프론트맨 지망생은 은근히 공유하는 구석들이 많았다. 엠피쓰리조차도 반입 금지라서 둘은 서로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 줄 수 없었지만 대신에 나가기 전에 한 번씩 서로에게 불러 주기로 약속했다. 조금 딱딱한 병원 베드에 누워서 이십대 초반에나 하던 공상 같은 이야기들을 하자니 윤정한은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들어오길 잘했나 싶기도 하고. 은근 병실 동기 잘 만난 것도 같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는데 조슈아는 다 안다는 듯한 눈으로 윤정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화성인은 생각을 읽을 줄 아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사실 나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들어왔어."
윤정한은 평화롭게 텔레비전 시청하며 손톱 물어뜯다가 제 나름의 폭탄 발언을 던졌다.
"그래?"
"안 놀라네."
"화성은 같잖게 사랑에 성별을 가리지 않거든."
화성에서 정말 살다 온 듯 말하는 조슈아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조슈아는 정말로 화성에서 온 걸지도 몰랐다. 미확인 비행체를 타고 몰래 불시착해서 지구인들에게 멸시받은 화성인. 그치만 불쌍하지는 않은. 화성과 음악을 사랑하는 조슈아. 가끔 보이지 않는 것들과 대화하는 모양이었지만 아무렴 좋았다. 조슈아는. 조슈아는.
"그렇구나."
윤정한은 뭐라고 꺼낼 말이 없어서 손톱 뜯는 것도 그만두고 살짝 비껴 뜯어 피가 맺힌 손가락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화를 진전시킬 자신이 없어서 생각을 돌렸다. 손톱도 그만 물어뜯어야 하는데. 습관 고쳐 주는 약은 없나. 먹고 나면 갑자기 모든 게 깨끗이 낫는 그런 약. 똑같은 습관을 가졌지만 잘못 뜯긴 거스러미 하나 없이 깔끔한 조슈아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고갤 올려 마주친 시선은 지구의 언어로 말하기 어려운 화성인 같았다. 윤정한은 다시 피하고 리모컨을 잡았다. 돌리다 보니 어디선가 본 적 있었던 멜로 영화들이 몇 보였다.
조슈아의 허락은 없었으나 리모컨을 달라 하지 않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를 보고 철 지난 멜로 영화를 틀었다. 조슈아는 어떨지 몰라도 윤정한은 이미 결말이며 유명한 장면들까지도 훤히 알고 있었다. 운명적 만남에서 쉽게 연인까지 된 둘은 이러쿵저러쿵 길고 긴 시간을 겪으며 즐거웠던 일주년 데이트 끝에 문득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영화가 흑백으로 뒤덮인다. 분명한 사랑을 연출해 놓고도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수법은 조금 유치했지만 흑백이 된 세상에서 먹먹하게 살아 가는 둘의 모습이 꽤나 낭만적인 결을 띄어서 영화는 그런 대로 흥행했다.
우린 사랑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애. 주인공이 내뱉자 윤정한의 기억대로 화면은 꺼지기라도 한 듯 완전한 암전을 거쳤다가 결국 흑백으로 전환되었다. 조슈아는 알고 있었던 건지 놀라지도 않은 눈으로 영화를 꿈뻑꿈뻑 바라만 보았다. 윤정한은 춥다는 핑계로 조슈아의 침대 위로 올라갔다. 조슈아는 밀어내지도 당기지도 않았다.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화면을 응시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사랑엔 언제나 끝이 있을까."
영화가 천천히 끝을 향해 달려 갔고 의문문처럼 내던져진 평서문은 영화의 이런저런 소음 사이로 부유했다. 조슈아는 듣지 못한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도 없이 영화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엔딩 크레딧이 내려와도 채널을 넘기지 않았다. 입에 씹을 것이 없어 다시 손톱을 씹으려다가 아까 피를 봤던 게 떠올라서 말았다. 사랑엔 언제나 끝이 있을까. 오랜만에 K가 떠올랐다. 사랑은 영원할 수 없는 건가.
"영원해야만 아름다운 건 아냐."
지정해 준 방향을 향한 대답은 아니었으나 윤정한은 제 옆의 화성인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바스라질 것 같이 어깨를 꼭 쥐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영원하면. 좋을 텐데. 왜냐면 나. 철 지난 영화들을 사랑하고. 조용한 것들과 세기말 영화 속 어색한 음향들과 지금과는 조금 다른 말투들도 담백하고 진솔된 고백들도 다. 사랑하니깐. 내뱉지 못할 말을 머금고 가만히 숨을 골랐다. 화성에서의 사랑을 읽을 줄 모르는 윤정한은 조슈아의 시선을 읽어낼 수 없었다. 지구의 사랑을 아는 조슈아가 윤정한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 담배 피워?"
조슈아는 엄지 손가락으로 검지 손톱을 뜯어내다가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어조가 단조로워서 언뜻 들으면 평서문 같을 정도였다. 그걸 못 알아듣지야 않았으나, 윤정한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생 때는 피우던 담배를 대학생 되어서 끊은 케이스라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끊었어."
"......그래?"
조금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조슈아는 병실 바깥으로 나섰다. 윤정한은 하루에 세 번 있는 전화 시간에 어디 전화 걸 데가 없는 사람이라서 화장실 따위의 용무를 제외하고는 바깥에 나간 적이 없었다. 문 닫히는 걸 목도하고서도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조슈아 따라서 일어섰다. 이유는 글쎄. 혼자 있으면 외로웠다.
벽이며 바닥이며 천장에 드문드문 있는 가이드 라인들을 따라서 가다 보니 금세 흡연실이 나왔다. 이런 데서 피워 본 적은 없어서 몰랐는데 생각보다는 냄새가 덜 독했다. 가오에 지배당한 고등학생들이 골목에 몰려서 6미리 짜리 줄담배 피워대던 거랑 비교해서 그랬다. 다 똑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조슈아는 눈에 띄었다. 몇 없는 사람들 헤쳐 조슈아 앞에 섰다.
"나도 줘."
"끊었다며."
"그니까. 나도 줘."
마음에 들기라도 한다는 듯이 아하하, 하고 소리 내어 웃은 조슈아는 들고 있던 담배의 재를 두어 번 털고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담배 하나를 건넸다. 라이터는 왜 안 주냐는 뜻으로 계속 손을 내밀고 있었더니 조슈아가 제 옆을 가리켰다. 생각해 보니 병원에 라이터 반입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 버튼이 있길래 꾹 눌렀더니 옆에 있는 쇳덩이 비슷한 것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거기 담배를 대면 되는 모양이었는데 영 그럴 마음이 안 나서 윤정한은 조슈아를 쳐다봤다. 저의를 읽지 못한 시선들이 교차했다. 조슈아 옆에 자리 잡은 윤정한은 조슈아가 들고 있는 담배에 자기 걸 가져다 대고선 숨을 들이마셨다. 불이 옮겨 붙은 걸 보고서야 윤정한은 담배를 떼어냈다.
"뭐 해, 정한아."
"그냥 피우는 건 심심하잖아."
어이없는 답변에 조슈아는 별다른 대답 대신에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씹었다. 윤정한은 오랜만에 무는 것이기는 했지만 조슈아가 준 담배가 독한 게 아니라서 추한 꼴 보이지 않고 잘 피웠다. 부러 가까이 붙어 앉아서 연기를 불었더니 조슈아는 독하다며 슬쩍 밀어냈다. 물론 윤정한이 밀릴 사람은 아니라서 되레 어깨에 기대기나 했다. 이번엔 조슈아도 밀어내지 않았다. 딱히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우리 사귈까."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수많은 환자들을 앞에 두고 입을 섞었다. 아. 이제 병원에 게이라고 소문 쫙 깔리겠다. 생각하면서도 혼자만의 일 아니고 우리 일이라 괜찮았다. 누가 꼴아 보든 뭔 상관. 어차피 우린 사랑하는데. 입 떼어내고 나서는 담뱃재 미련 없이 털어내고 병실로 직행해서 하던 짓 마저 했다. 나 언제부터 너 사랑했지. 입 밖으로 꺼내기 껄끄러울 만한 대사도 손쉽게 내뱉어졌다. 몰라. 응 나도. 좋니. 응 나도. K가 끼어들 자리가 없을 만큼 꼭 끌어안고 누웠다. 어쩌면 정신 착란일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사랑이지만. 그래도. 이마 아이러브유.* 그게 무슨 뜻이야. 조슈아는 모르는 거. 나도 이마 아이러브유.
있잖아, 백 년에 한 번씩......
"화성으로 돌아갈 수 있대."
"돌아간다고?"
"응. 예지가 말해 줬어."
조슈아가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은 예지였다. 그려지지 않는 인영을 애써 떠올리고 제 옆에 앉아 저를 바라보는 남자친구에게 무슨 답을 건네야 할지 생각했다. 화성으로 돌아간다는 건 무슨 뜻일지 뻔했다. 가지 말라고 해도 되는 걸까. 오히려 방아쇠를 당길까 싶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가지 않았으면 했다. 윤정한은 조슈아를 사랑하니까.
"우리 같이 갈까?"
이건 생각지 못한 물음이었다. 문득 요즘따라 예지의 얘기를 많이 했다는 게 떠올랐다. 예지가 혹시 조슈아를 이끌고 있는 걸까. 그럼 안 되는데. 병실에 처박혀서 봤던 드라마가 생각났다. 정신분열증을 앓던 주인공은 행복해지면 행복해질수록 더 많은 환시에 시달렸다. 환시를 빌린 자학 행위는 점점 심해졌고. 결국. 둘은 잠깐의 시간을 두기로 했다. 조슈아도 지금 그런 걸까. 예지를 만나지 말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 드라마에서의 다른 주인공과는 달리 윤정한은 의사가 아니었다.
대답을 고르지 못한 채로 그냥 시선을 피했다. 슈아야 너 마션 봤어? 물었더니 화제 돌리려는 거 빤히 알면서도 조슈아는 속아 넘어갔다. 응. 어때? 별로야. 왜? 화성은 저렇지 않아. 화성은 말야. 화성만의 꽃이 피고 지는 곳이야. 잡은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구나. 나도 보고 싶어. 같이 갈까냐는 물음에 대한 일종의 대답이었다. 조슈아는 알아챈 듯이 말갛게 웃었다. 그렇구나.
"사랑해."
"갑자기?"
"응. 아주아주 부담스럽겠지만, 미치게."**
푸스스 웃는 조슈아를 껴안고서 윤정한은 생각했다. 음. 지구에서 단 하나뿐일 이 화성인만을 위해 살아 왔던 걸지도 모르겠구나. 사랑스러운 외계인. 평생을 탐구하고픈 미지의 대상. 조슈아의 눈은 우주 어드메의 것처럼 반짝였다. 가끔 울적한 듯 내리깐 눈두덩이마저도 사랑했다. 울고 있을 땐 내가 꼭 안아 줘야지. 생각을 했다. 그치만. 그치만. 영원하진 않겠지. 그래도 울고 있을 땐 내가 꼭 안아 주고 싶다. 급격히 우울감이 전신을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윤정한은 무거운 숨을 푹 내쉬고 조슈아로부터 잠깐 떨어졌다.
"사랑해?"
"응."
"영원히?"
"되도록이면 길게."
어떻게 믿지. 말하지 않고 꼭꼭 씹어 삼켰지만 역시 지구인들의 생각을 읽을 줄 알고 지구의 사랑을 아는 조슈아는 하루 한 번씩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끌어안고 그다음엔 키스를 해 주겠다고 말했다. 하나라도 달라지면 그땐 내 사랑이 변한 거니까 날 가차없이 버려도 좋아. 장난 서린 말에 윤정한은 그게 뭐냐고 타박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슈아야. 나도 화성에서 온 니가 너무 좋아. 그치만 말야. 아름답지 않아도 좋으니 영원했으면 좋겠어.
윤정한은 의사로부터 개방 병동으로 옮길 것을 추천받았다. 증세가 꽤 나아진 것과 병원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안 된다는 점이 이유였다. 물론 싫다고 잘라 말했지만 소식을 들은 조슈아는 당연히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래도 윤정한은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도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끌어안고 그다음엔 키스를 했다. 로맨틱한 화성인 남자친구. 조슈아는 너무 최고여서 최악이었다.
"오늘은 예지가 말야. 예지가...... 아프대."
조슈아는 윤정한과 달리 여전히 화성의 생각을 했고. 자기 전에는 한 번씩 화성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길 했다. 그치만 예지가 아픈 건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냥 그렇구나 많이 아프겠다 말하고 말았다. 상상 속에만 있는 예지가 아프다는 건 조슈아가 아프다는 뜻일까. 괜한 걱정에 이마를 짚어 봤지만 조슈아는 푸스스 웃으며 손을 내렸다. 난 안 아파. 그래. 대답하고 또 키스했다.
괜찮다고 말한 것 치고 조슈아의 안색은 딱히 좋지 않았다. 또 그와는 별개로 유난히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조슈아의 기분을 하나도 헤아릴 수가 없어서 아무런 말 없이 꼭 끌어안고 우리 산책이나 할까 그랬다. 조슈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텔레비전을 켜고 어제 방영한 드라마를 보았다. 너무나도 뻔하고 흔한 삼류 드라마였지만 조슈아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아무런 감정도 없이 드라마를 보기만 했다.
너무나도 조용해서 불안했다. 윤정한은 적막함을 지우고 싶어서 드라마 소리를 키웠다. 살짝 귀가 아플 정도였다. 조슈아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손톱을 뜯고 있지도 않았고 어딘가를 병적으로 긁고 있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차분했다. 폭풍전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득 조슈아는 담배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윤정한은 혼자 가기는 싫어서 같이 가자고 손을 내밀었는데 조슈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니가 사 와 줘. 방싯 웃으며 말하길래 윤정한은 터덜터덜 병실을 떠났다. 항상 조슈아가 주는 것만 받아 봤어서 어디 가서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님 사는 건가. 이곳저곳 돌아다녀 봐도 영 감이 잡히지 않아서 아무런 소득 없이 병실로 돌아갔다. 문득 아까와 그림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
조슈아는 자리에 없었다.
아니, 조슈아의 자리는 없었다.
병실에는 베드가 없었다. 분명너는. 마치 거기 있지도 않았던 사람처럼 텅 비었다. 방금전까지담배를가져다달라고말하고. 나름의 미니멀리스트라면서 짐을 별로 쟁여 두지 않던 조슈아의 자리에는 윤정한이 어제 쓰다 만 일기밖엔 놓여 있지 않았다. 키스를했으면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왜? 하지만 불안감의 실체가 드러나는 게 두려워서 병실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다. 혹시내가너무질리게했나? 지구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사랑은영원할수없는거야. K와의 이별이 문득 떠올랐고. 그럼어딜가야사랑이영원한지말해줘.
윤정한은 베드에 웅크려 앉아 있다가. 잡히는 모든 걸 던졌다. 되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형체 있는 언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병실은 적막했다. 윤정한은 되는 만큼 소리를 질렀다. 간호사가 몇 명씩 들어와서 윤정한을 붙잡으며 진정하라는 말을 했지만 윤정한은 그럴 수 없었다. 어디가지마너만큼은. 하루에 열 번씩 말해 둘걸 그랬다. 예지에게가지마. 너도날사랑하잖아.......
억지로 진정제를 투여받은 윤정한은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가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지내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불안감에 손 힘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손에 세게 힘을 주고 쥐었다 폈다 손톱을 뜯었다 튕기다 계속해서 반복하다가 일순 힘이 탁 풀리는 감각을 경험했다. 일어나려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베드는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조슈아는 없었고 시트는 말끔한 새 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이불은 가지런히 접혀 있었고 윤정한의 일기는 윤정한의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조슈아는 사라졌다. 붙잡을 수 없게 됐다. 그 애는. 완전히 사라졌다. 고작 몇 분 만에.
정한아보고싶을거야지수가.
띄어쓰기 없이 쓰인 편지였다. 탁상 위에 놓인. 지수가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조슈아가 아니라 지수였구나. 그렇다면 넌. 도망친 걸까. 간호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수가 도망쳤다고도, 퇴원했다고도, 정말 그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윤정한도 묻지 않았다. 지수는 아마도. 정말로. 갈 수만 있고 올 수는 없는 우주선을 타고.
조금 우습게도 사람 하나 사라진다고 전부 무너질 것 같던 윤정한은 금세 안정기를 되찾았다. 개방 병동으로 옮기자는 말은 물론 유보되었으나 한 달 꼬박 지내고서 정말로 개방 병동으로 옮기고 또 한 달 후에는 퇴원 수속을 밟았다. 지수는 정말 정신 착란이었던 것처럼 너무나도 쉽게 윤정한을 사랑에 빠트리고 사라졌다. 그 어디에도 지수의 흔적은 없었다. 화성에서 온 프론트맨 지망생이 사라졌으므로 윤정한은 더이상 그 어느 밴드에도 꿈을 가질 수 없게 됐다. 그 밴드의 중심에 지수가 서 있지 않은 이상. 더는 의미가 없었다.
정말 우스운 건 윤정한의 삶이 정말로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하늘을 날고 싶은 충동도 무언가를 내던지고 싶은 충동도 더는 들지 않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에도 조금 무뎌졌다. 지수를 따라 화성까지 내달리는 꿈조차 꾸지 않았고 마치 근 몇 달이 정말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살 수 있게 됐다. 물론 지수의 자리는 여전히 유효했으나 그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가끔씩 예지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알바 끝나고 집 가는 길에 문득 서서 유독 검게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온통 홍지수만 떠올라서 조금은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로. 이제는. 뛰어내리거나 하는 무모한 짓을 벌이지는 않았다. 홍지수는 분명 화성에 갔을 테니. 그 애를 만나는 날까지 아프지 않도록 밥 한 알도 꼭꼭 씹어 삼켜야 했다. 완전히 사랑할 수 있도록. 눈을 꾹 감았다 뜨고 크게 입을 벌렸다. 가능한 한의 최대한을 끌어모아 목에서 비릿한 맛이 날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그러니까 지수야.
안녕
나의 화성인 남자친구.
영원히 사랑해.
*今アイラブユー 지금, 사랑해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中, "사랑해. 아주아주 부담스럽겠지만, 미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