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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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와 만난 시간

익명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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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공전 궤도, 마을은 여느 어촌 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배를 타고 저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했다. 이 마을에 보기 드문 청년이 하나 왔다. 미국인 Joshua, 한국 이름은 홍지수였나. 수상한 사람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 미국인도 특이한데 아는 게 하나 없었다. 집에서 나오는 시간은 해가 다 진 저녁이었고 들어오는 시간은 배가 뜨는 시간이었다. 그 사람이 마을에 온 지도 한 달이 넘었는데 여전하니 마을엔 소문이 나돌 수밖에 없었다. 빚을 져서 쫓긴다. 혹은 조폭이라 경찰에 쫓긴다. 어느 것이든 쫓긴다는 공통적이었다. 홍지수는 빚쟁이한테 쫓기는 것도 경찰한테 쫓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경찰이 모르는 조폭일 뿐. 뒷골목에선 꽤 유명하다. 여호수아란 성스러운 이름을 달고 사람 여럿, 예수 곁으로 보내는 것으로. 하지만 홍지수도 원해서 조폭이 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조실부모하고 갱단에 들어가 보호받다가 한국으로 와 자신의 조직을 세운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나가 배 뜰 시간에 들어오던 홍지수가 대뜸 낮에 마을을 나왔다. 다들 그 청년을 보고 신기한 듯 바라보다 복부에 난 혈흔을 보고 기겁을 하며 병원을 가자며 설득했다. 홍지수도 약국을 가려 나오긴 하였으나 병원은 위험하여 극구 반대하였다. 주민들이 의아해할 때즘 그는 바닷냄새 나는 돌바닥에 쓰러졌다. 눈을 뜨니 소독약 냄새가 풍기고 어딘가 허름해 보이는 곳에 누워있었다. 복부가 조이는 걸 보니 치료도 다 해놨다 싶어 일어나니 누가 뛰어와서 누워라 하였다. 홍지수의 첫마디는 왜요. 도 아닌 이쁘다였다. 그러나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남자였다. 얼핏 봐도 마르고 머리도 길었지만, 키도 체격도 남자였다. 그렇다. 홍지수는 게이였다. 다들 이런 그를 모순적이라 여겼다. Joshua, 여호수아란 이름에 맞지 않는 피 튀기는 일과 동성애. 그의 조직원들은 이름에 대한 반감과 반항이 아닐까라고 장난스레 말을 한다. 다시 돌아와 홍지수 앞에 있는 남자는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하긴 처음 본 외국인 청년이 이쁘다가 첫마디였으니. 홍지수 앞에 있는 남자는 그저 조심하라, 약 챙겨 먹고 한동안은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 조심하란 말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그렇게 홍지수는 그 남자를 찾았다. 마을에 오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몇몇 이웃분들께 수소문하고 뒷조사도 하라 명령도 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다들 모른다는 말뿐이었고 헛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그런 말을 계속 들으니 이젠 자신이 정말 헛것을 봤나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이때까지 봐온 남자 중에 제일 이뻤고 그와 동시에 어딘가 모를 오묘한 분위기가, 그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시려왔고 찾는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엔 자꾸만 그가 자신을 찾는 걸 멈추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찾았을까 한참을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할머니 한 분이 홍지수의 집으로 찾아갔다. 홍지수는 할머님이 들어온 것보다 찾아온 걸 더 신기하게 여겼다. 꽤 구석진 곳인 데다 마을이 크진 않았으나 작은 곳도 아닌데. 그래도 예의 바른 청년인 홍지수는 자리를 내어주고 곁에 앉았다. 홍지수가 앉자마자 할머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마을엔 어느 곳에든 있는 전설이 있다네. 공전 궤도라고 아는가, 100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것인데 우리 마을 앞바다엔 공전 궤도가 돌아올 때마다 인어가 나타난다네. 꽤 많은 사람이 목격했고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을 거쳐 내려왔지. 물론 나도 말이야 유독 자네가 사는 곳에선 남자 인어들이 많이 나온다네. 나도 여기서 남편을 만났지. 자네도 찾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 찾아보게 7일이 남았구나. 혹시 몰라 자네도 여기서 짝을 찾을지”

 

 

 

홍지수는 그 할머니가 가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그날 일도 못 가고 온종일 그 얘기가 머릿속을 파헤쳐 놓았다. 처음엔 반신반의했고 나중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조사하고 다녔다. 그 남자를 찾을 때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 전설에 대하여 수소문하고 다녔다. 꽤 많은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는걸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별 소득 없이 7일이나 지났다. 허무하게 시간이 지나고 공전 궤도가 돌아온 그 날도 일을 하러 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람 하나 담그고 정장에 피 튀긴 흔적을 잔뜩 묻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대문을 열 때쯤에 집 앞 바다에서 누군가 앉아있는게 보였다. 익숙한 실루엣, 그리고 분위기. 자신의 정장에 뭐가 묻은지도 어떤 꼴인지도 모르고 달려갔다. 캄캄한 바다에서 그 사람만 빛났다. 첫인상과는 또 달랐다. 한국에서 본 사람 중에 가장 이뻤다. 캄캄한 바다에 빛나는 긴 금발머리와 체격 좋은 몸. 그와 1m, 그가 돌아봤다. 시간이 멈췄다. 옆

 

엔 잔잔한 파도소리와 다시본 그. 홍지수는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다. 용기를 내 한발짝 씩 다가가니 그가 웃는다. 홍지수는 생각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구나’. 홍지수가 처음 입을 뗐다. 뻔한 인사였다. 상황과 그의 정체가 뻔하지 않았을 뿐.

 

 

“안녕”

 

“안녕, 그때 그 병원 맞죠? 배 찢어져서 오고. 오랜만이에요 슈아씨.”

 

 

 

홍지수는 당황했다. 여기서는 내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을텐데. 뭘까. 도대체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체가 뭐길래 제 이름을 알고 있나요.”

 

 

 

돌아온 대답은 더 이상했다.

 

 

 

“전 다 보고 있었거든여ㅎㅎ. 당신이 Joshua라는 것도, 피 묻히고 다니는 일을 하는 것도, 내가 인어라는걸 아는 것도. 당신을 볼 날을 기다렸어요. 인어들은 100년 마다 합법적으로 나와 인간을 꼬실 수 있거든여.”

 

“그래서 그 말은..”

 

“나는 당신을 꼬시러 나왔고 당신은 이미 넘어왔네요.”

 

 

 

이상한 사람. 속과 내면도 알 수 없는 사람. 그래서 더 좋다. 내가 이때까지 봐온 사람들은 앞뒤가 다르고 더러웠다. 돈과 명예라면 뭐든 하는 더러운 사람들과는 다른.

 

 

 

“나는 지금 프로포즈를 할거에요. 난 이 순간 인간도 인어도 아니지만 당신을 좋아해요.”

 

 

 

잔잔한 파도소리, 바닷내음, 달콤한 목소리.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걸 알았던걸까, 그가 입을 맞춰왔다. 입안에 바다맛이 퍼진다. 세상 어디에도 이런 첫키스를 한 사람은 없겠지, 그리고 이런 사람과도. 얼마나 입을 맞댔을까, 천천히 입을 떼고나니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윤정한. 이게 내 이름이에요.”

 

“인간도 인어도 아닌 윤정한, 당신을 좋아해요. 처음 만났을 땐 이뻤고 두 번째인 지금은 내 사람이 되어 좋습니다. 저는 위험한 일을 하고 부족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부족하지 않아요.”

 

 

 

어스름한 새벽, 보는 사람 하나 없고 보이는 거라곤 배의 불빛과 서로의 눈이지만 둘은 모자람 하나 없었다. 이 마을에서 새로운 인어와 인간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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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는 또 다시 전설로 그 마을에 새겨졌고, 100년마다 새로운 인어와 인간이 만날 것이다. 윤정한과 홍지수가 만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