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엔딩은
1.
열이 펄펄 끓었다. 끔찍한 격통과 함께 의식이 날아갔다. 그렇게 이틀을 꼬박 앓고 나서야 눈을 뜬 정한은 무거운 눈을 가물거렸다. 손가락을 느리게 구부려 봐도 감각이 영 희미했다. 나 죽는 건가. 뭉개지는 시야에 맥없이 중얼거리던 정한은 마치 생명줄을 붙잡듯 이불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급속도로 하강하는 체온에 뻣뻣한 손끝이 얼어붙은 건.
정한의 나이 열여덟, 센티넬로의 각성이었다.
검사소에 들어선 정한은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손으로 긴 소매를 쥐었다. 열을 맞춰 늘어선 군인들, 하얀 보호복을 입은 연구원들. 강압적인 분위기에 뒷골이 서늘했다. 언론을 통해 봐 왔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달라서, 위압감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정한은 관리자가 안내하는 대로 걸어가 채혈대 의자에 앉았다. 정부로부터 온 검사 권고 통지서를 내미니 보호복을 착용한 연구원이 무심하게 팔을 끌어당겼다. 드러난 하얀 팔에 토니켓이 감겼을 땐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 덮쳐 왔다.
통지서가 집안에 날아든 건 딱 이틀 뒤였다. [ S급 센티넬의 등장, 자연계 능력 보유, 영웅 탄생 예고. ] 이례적인 통보 속도에 걸맞게 이미 각 언론들이 앞다퉈 그를 추앙하고 있었다. 정한이 통지서를 펼쳐 보기도 전의 일이었다. 함께 서류를 펼쳐 본 어머니는 정한의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한참 울음을 참지 못하던 그녀는 끝내 종이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희게 질린 손이 떨리고 있었다. 경황없는 상황 속 시야에 담긴 것은 단지 그런 장면들뿐이었다. 희와 비, 생과 사. 정한은 비로소 제 인생을 선택할 수 없음을 알았다. 수라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과 함께 일말의 희망이 뚝 끊어졌다. 인생이 참 드라마틱했다. 거지같게도.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2년도 안 돼 자퇴서를 냈다. 이른 나이에 각성한 센티넬이나 가이드는 센터 내의 교육 시설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규정 때문이었다. 교문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피해 학교에 도착한 정한은 교무실에서도 박수갈채를 받았다. 제 가족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좆같네 진짜. 정한은 가라앉는 기분을 숨긴 채 조용히 자리를 떴다. 허무했다. 자퇴서 한 장으로 끝나버린 고등학생 신분이.
수업이 한창인 교실들을 지나치자니 기분이 영 이상했다. 복도에 서 있기를 잠깐,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앞문으로 교사가 빠져나오자마자 교실 문을 연 정한은 비어 있는 자리를 바라보다 뒤에 서 있던 애를 불렀다.
“야.”
“윤정한?”
정한은 대답도 없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홍지수는?”
“지수 오늘 결석인데. 아프다나 봐.”
뭐? 놀라 되묻다 말고 급히 폰을 꺼냈다. 쏟아지는 연락에 잠시 전원을 꺼버린 게 퍼뜩 생각난 탓이다. 아 씨발. 미끄러져 떨어진 폰을 주워 드는데 손이 떨렸다. 설마 너도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아니어야 하는데. 전원이 켜지는 내내 엄습하는 불안에 입안을 잘근잘근 씹어 물었다. 피가 새고 있는 것도 모른 채였다.
[ 부재중 전화 6통 홍지수 ]
정한은 복도를 내달리며 바로 전화를 걸었다. 오래도록 이어지는 발신음이 마치 고장 난 테이프의 잡음처럼 불쾌했다. 제발. 지수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가 되어서야 뚝 끊긴 발신음 사이로 제 이름이 들려왔다. 푹 잠겨버린 홍지수의 목소리였다.
“정한아.”
“집으로 갈게. 기다려.”
심장이 발밑까지 추락하다 돌아온 것 같았다. 각성이었다면 꼬박 며칠은 말도 못 하게 아플 텐데. 묘한 안도감과 불안이 뒤섞여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전화를 끊지 못한 채 내달린 정한은 뒷문으로 빠져나가 택시를 잡았다. 익숙한 집 주소를 말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자 조그만 목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천천히 와. 기다릴게.”
무거운 눈이 내리 감겼다.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에 전신을 장악하던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정한은 전화가 끊긴 폰을 붙들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 도착했어 ]
정한은 택시에서 채 내리기도 전에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도착해 몇 걸음을 내딛기 무섭게 발이 굳었다. 언제부터 기다린 건지 이미 나와 서 있던 지수를 마주한 탓이었다. 이미 붉게 물러 있는 눈가, 이가 악물렸다.
“아프다며.”
“너 왜 전화 안 받아.”
원망이 담긴 말에 정한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울먹이는 말투가 날카롭게 박혀 어떤 대답도 꺼낼 수가 없었다.
“문자도 안 보고.”
“미안.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조심스러운 대답에 지수가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치아에 짓이겨져 희게 질리는 꼴을 보다 못한 정한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제야 괴롭힘을 당하던 입술이 혈색을 찾았다.
“센터로 가?”
“응.”
“언제?”
“... 내일.”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지수의 동공에 눈물이 차오른 탓이었다. 재차 숨을 몰아쉬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이런 입장이기에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었다. 그건 절절 끓던 열이 각성임을 깨달았을 때부터 몇 번이고 기도했던 말이었다.
“지수야.”
지수는 대답을 하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마치 무슨 말을 할지 아는 사람처럼 가만히 시선을 내릴 뿐이었다.
“너는 꼭 평범하게 살아.”
그 말에 발개진 눈가에서 눈물 한 줄기가 툭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수없이 추락하는 눈물에 고운 얼굴이 허물어졌다. 지수는 소리 내어 우는 법을 모르는지 정한의 소매를 틀어쥐며 고개를 숙였다. 안 가면 안 돼? 울먹이며 중얼거리는 말에 눈이 질끈 감겼다. 차오르는 감정을 참아내느라 목구멍이 작열하는 것처럼 뜨거웠다. 가이드로 살다가 목숨을 잃었던 지수의 아버지, 그 말을 할 때도 울지 않았던 열일곱의 홍지수. 그랬던 홍지수가 울고 있다. 정한은 끝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세상이 좆같았다.
“미안.”
정한은 잘못한 것도 없는 주제에 쉽게 사과했다. 전부 다 후회가 되는 탓이었다. 뭐든 평범한 게 제일이라 했던 자신의 과거가 지수의 발목을 잡을까 봐. 자신이 홍지수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까 봐. 흘러가는 대로 살자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던 정한은 이제 과거의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무의미한 사과를 중얼거리자 지수는 품을 파고들며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손을 뻗어 끌어안았다.
품에 안겨 우는 홍지수. 가지 말라고 답지 않게 떼를 쓰는 홍지수. 그래서 윤정한은 울지 못했다. 대신 울어 주는 이가 있어서. 그저 덜덜 떨리는 몸이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고 등을 다독일 뿐이었다.
“울지 마.”
위로를 받아야 할 입장의 정한은 담담히 지수를 위로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지수는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꾹 물었다. 눈물이 참아지지 않는 듯 자꾸만 코를 훌쩍이면서도 꿋꿋하게 그랬다. 정한이 방울져 흐르던 눈물을 닦아 줬을 때, 지수는 별안간 손을 잡아채 새끼손가락을 걸어왔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약속의 방식이었다. 엄지를 마주 대며 울음을 삼키던 지수는 한참이 지나서야 힘겹게 말을 꺼냈다.
“죽지 마.”
지수를 온몸 가득 끌어안았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등을 토닥이는 다정한 손길에 목이 끓었다. 그제야 무서워졌다. 더 이상 홍지수를 볼 수 없게 될까 봐. 정말 죽게 될까 봐. 정한은 기어이 참아냈던 눈물을 쏟아냈다. 삽시간에 터져버린 감정이 주체가 안 돼 그 애의 어깨가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떨림이 멎고 나서야 품에서 빠져나온 지수는 힘겹게 웃어 보였다. 울지 말아 달라는 말을 기어이 지켜 주는 모습에 결국 눈물 자국 가득한 낯으로 마주 웃었다.
“좋아해.”
늦은 고백과 맞물렸던 입술.
우리의 첫 키스는 곧 마지막이 됐다.
2.
훈련이 끝나면 몸은 늘 만신창이였다. 18 게이지 주삿바늘이 박혔던 팔뚝 위의 지혈대를 바라보던 정한은 멍하니 창밖을 내다봤다. 별다를 게 없는 풍경은 구 년이 지나도 여전했다. 아 진짜 지겹다. 소파에 지친 몸을 파묻자 어디선가 혀를 차며 다가온 승관이 물었다.
“이번에도 진짜 가이드 매칭 안 할 거야?”
“안 해.”
“형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괜찮아. 안정제도 있구.”
승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러다 부작용 생기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안정제의 위험성을 모를 리 없을 텐데도 기를 쓰고 버티는 게 답답했다. 정한이 가이드 없이 버틴 게 벌써 칠 년이다. 남들이면 진작 몸이 산화돼 죽었을지도 모를 기간인데. 그래도 용케 살아남아 있는 게 다행이라 해야 할지, 저 허한 꼴을 보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이기적인 건지 승관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제 그냥 받아들여. 언제까지 몸 혹사시킬 거야.”
“아직 괜찮아. 별 이상도 없고.”
“그러다 큰일 난 거 내가 한두 번 봐?”
“아 승관아아. 형 지금 힘들다아.”
승관의 한숨이 길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정한에게 굳이 말을 더하고 싶진 않아 입을 다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박박 긁으며 잔소리를 했을 텐데 이젠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정한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버릴까 봐, 내일은커녕 오늘조차 없는 사람처럼 굴어버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승관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센터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센티넬이나 가이드는 유전 인자로 인해 각성한다는 연구 결과대로 승관은 그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승관이 가이드로서 센터에 처음 들어왔던 날, 안타까운 표정으로 맞아 주었던 정한은 어딘가 공허해 보였다. 사랑도 많고, 장난기도 많고, 자주 개구지게 웃곤 했던 그는 어째선지 텅 비어버려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굴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조심스레 안부를 물어오는 정한의 어머니에게는 괜찮다는 말밖에 건넬 수 없었다. 정한이 형 잘 지내요. 이모도 건강 잘 챙기세요. 별수 없는 거짓말을 하면서는 입술이 잔뜩 씹혔다. 그도 그럴게 며칠이 지나도록 봐 온 윤정한은 괜찮지 않았다. 전혀 안 괜찮아서 속이 쓰릴 정도였다.
가이드도 없는 그가 작전에 투입되던 어느 날, 정한은 별안간 승관을 찾아와 의미 모를 말을 건넸다. 현장에 오지 마. 혹시 오게 되더라도 대기소에서 절대 나오지 마. 드물게 단호한 모습에 승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굳힌 채 단숨에 멀어지는 뒷모습이 꼭 다른 사람 같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난생처음으로 무서웠다. 윤정한이.
그날 정한은 폭주 직전의 몸을 이끌고 작전 내내 최전선을 지켰다. 자폭 테러가 이어지는 곳에서 민간인을 구해내는 표정은 영웅이라기엔 처절했고, 옆구리에서 쏟아지는 피를 대충 막아내는 모습은 꼭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승관은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경고였고, 보호였다. 전투 현장에 진입할 수 없는 승관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모니터 화면을 바라봤다. 모니터 너머로 보고 있을 뿐인데도 제가 다 고통스러웠다. 삶에 미련 따위 없이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처럼 구는 윤정한. 승관은 이제야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공포를 느꼈다. 센티넬은, 가이드는 그런 거였다. 목숨을 걸고 최전방에서 싸우는 사람들. 언제 생이 다할지 모르는 사람들.
“윤정한 센티넬 복귀하라.”
상부의 명령에 굴하지 않은 정한이 인이어를 내던졌을 땐 마이크를 들고 비명처럼 이름을 불러댔다. 캠의 사각지대로 벗어나며 하는 행동은 아무리 봐도 제정신인 사람이 할 만한 짓이 아니었다.
“형 진짜 왜 그래. 미쳤어?”
가까스로 구조되어 돌아온 정한의 상태는 처참했다. 안정제를 투여했음에도 얼어가는 몸을 보고 울던 승관이 소리를 빽 질렀다. 상성이 맞지 않는 탓에 가이딩이 듣질 않아 정한의 팔에 주삿바늘을 박아 넣으면서 눈물을 쏟았다. 센터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겁이 났다. 정말 죽을까 봐. 윤정한이 죽어버릴까 봐. 그 와중에 방울져 떨어지는 눈물을 본 윤정한은 건조한 목소리로 그랬다. 울지 마, 하고. 새빨개진 눈깔을 하고도 저를 달래던 윤정한이 정말 미친 사람 같아서, 승관은 펑펑 울며 얼어붙은 손을 잡고 기도했다.
윤정한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승관은 치료실에서 눈을 뜬 정한에게 득달같이 화를 냈다. 어찌 됐든 환자니 참아 보려 해도 도저히 참아지질 않았다. 죽고 싶어 환장했냐 묻는 승관에게 웃어 보이기만 하던 정한은 치료가 끝나자마자 제 방에 틀어박혔다. 보다 못한 승관이 문짝을 뜯어내려 씩씩거렸을 때, 관리팀장은 가까스로 그를 끌어내 지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윤정한이 가이드를 찾지 않는 연유. 승관은 그 계기가 된 사건을 듣는 내내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질 못했다. 상상조차 못할 만큼 너절하고 기구한 이야기였다. 그 밤 승관은 결국 정한의 방문 앞에 주저앉아 울었다. 형. 형 미안해. 그래도 죽지 마. 의미 없는 사과만 줄줄 늘어놓으면서. 그게 승관이 스무 살, 정한이 스물셋일 때의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사람 사는 꼴이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이지. 승관은 뒷덜미를 다 덮은 버석버석한 금발을 바라보다 숨을 삼켰다. 비슷한 처지에도 동정심이 이는 건 별수 없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던 승관이 별안간 무언가 깨달은 듯 신음했다. 아 맞다. 형. 곧이어 정한을 불렀다. 유달리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상반기 가이드 명단 봤어?”
“아니. 뭐하러.”
“아...”
웬일로 망설이듯 어미를 흐리기에 의문을 담고 올려다봤다. 무슨 일인지 순한 얼굴이 난처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눈매를 가늘게 좁힌 정한이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왜. 뭐 거물이라도 있대?”
승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 말고 숨을 들이쉬었다.
“형. 혹시 지수 형이랑 연락하고 있어?”
정한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어두워지는 낯빛을 본 승관은 난처함에 아랫입술을 깨물다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들은 거긴 한데, 미군에서 파견 오는 사람이 있대.”
“......”
“이름이 조슈아래서.”
“......”
“계속 연락 안 됐어?”
낯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다급하게 소파에서 일어나 지혈대를 뜯어낸 정한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로 내달렸다. 형! 뒤통수로 울리는 외침을 무시한 정한이 엘리베이터에 타 닫힘 버튼을 연타했다. 손끝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4층. 보통 발 들일 일 없던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급했다. 자동문을 뜯어낼 것처럼 다급하게 열어젖히니 저절로 시선이 모였다. 어쩐 일이세요? 당황한 낯으로 묻는 직원에게 다가간 정한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상반기 신입 가이드 명단 볼 수 있어요?”
“아, 잠시만요.”
입안이 바싹 말라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불안정한 파장에 움켜쥔 손이 저려왔다. 잠시 뒤 캐비닛에서 파일을 꺼내 온 직원이 서류철을 내밀었다. 신입 가이드들의 개인정보가 빼곡한 파일철을 받아든 정한이 정신없이 종이를 넘겼다.
성 명 Joshua Jisoo Hong
생년월일 1995. 12. 30
국 적 United States of America
씨발. 본능적으로 뇌까린 욕에 직원이 놀란 듯 몸을 움츠렸다. 놓쳐버린 서류를 가까스로 집어든 정한은 직원에게 파일을 건네주며 비틀거렸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이 아득했다. 온 장기가 다 내려앉는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정한은 제게 꽂히는 시선들을 무시한 채 발을 뗐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피해를 일으킬까 본능이 되어버린 행동을 자각하면 새삼 속이 쓰렸다. 참 빌어먹을 인생이다. 얼마 가지도 못해 대리석 복도 벽에 기대 선 정한은 불현듯 지원서에 붙어 있던 사진을 떠올렸다. 그 애를 눈앞에서 봤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사그라질 줄도 모르고 커지던 그리움, 죽을 줄도 모르고 되살아나던 해묵은 감정. 정한은 먼 예전 사랑을 알려 주었던 지수를 떠올리며 차가운 손에 얼굴을 묻었다. 7년 만에 나타난 스물일곱의 홍지수. 도저히 볼 자신이 없었다. 가슴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따가웠다.
평범하게 살아 달랬잖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정한은 차디찬 벽에 등을 묻었다. 빠르게 내리는 체온이 더없이 익숙해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좆같다. 인생에 대한 자조를 반복하는 순간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상과도 같은 음성이었다.
“정한아.”
네가 왜 여기 있어.
“오랜만이야.”
홍지수.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다.
스물일곱의 너는.
3.
꿈을 꿨다.
날이 선 얼음, 차게 얼어붙는 몸, 순식간에 덮쳐오는 고통에 몸서리치는 사람들. 한계치까지 끌어올려진 능력 탓에 몸이 뜨거웠다. 주변의 기온은 영하로 내려갔을 텐데도 온몸이 산화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결국 고통에 찬 비명이 터졌다. 동시에 휘청거리는 무릎이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날이 선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 조각들이 어른거리는 시야가 서서히 점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윤정한!”
폭주하는 자신에게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홍지수.
시야가 새카맣게 질렸다. 이번엔 멸망이라 부를 법한 도시의 잔해가 보였다. 모든 게 얼어붙은 사위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지옥이나 다름없는 7년 전 사건이 고장 난 테이프처럼 반복되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버려. 살려 줘. 죽어.
정한은 그제야 눈을 번쩍 뜨며 숨을 몰아쉬었다. 거칠어진 호흡에 머리맡에 풀어 두었던 제어 장치를 움켜쥐었다. 오감이 예민해진 채라 어딘가에 닿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느껴졌다. 체온이 오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통은 배가 됐다. 그 순간 비상벨이 울렸다. 손목의 센서가 이상 반응을 감지했는지 벽 위의 붉은 조명등이 번쩍거렸다. 손목에 제어 장치를 착용한 정한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 안 돼 열린 문틈으로 복도의 빛이 쏟아져 내렸다.
“정한아.”
어느새 방 안으로 뛰어든 지수가 손을 덥석 쥐었다. 순식간에 가라앉는 두통에 가슴이 선득해졌다. 반사적으로 손을 내친 정한이 다급하게 몸을 물렸다.
“하지 마.”
지수의 얼굴이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가이딩도 없이 진정시키려는 듯, 심호흡을 하면서 손을 틀어쥐는 모습이 지나치게 익숙해 보여 애가 탔다. 감정을 참지 못한 채 입술을 짓씹은 지수가 불안정한 정한의 앞에 꿇어앉았다.
“손만 잡자.”
“......”
“윤정한, 제발.”
정한은 실핏줄이 다 터진 눈으로 지수를 내려다봤다. 시끄럽게 울리는 경고음으로 머리통이 부서질 것 같아 어금니를 꽉 깨문 채였다. 지나친 압력에 덜덜 떨리는 턱으로 느리게 온기가 닿았다. 얼어붙고 있는 손끝에도 어느새 미지근한 열이 닿아 있었다. 순식간에 정상을 찾는 체온에 날이 섰던 의식이 흐려진다. 편안한 감각 위로 은연히 남은 이명이 울렸다. 괜찮아. 괜찮아 정한아. 속삭임을 끝으로 무거운 눈이 내리 감겼다. 새카만 시야엔 여전히 홍지수가 남아 있었다. 꿈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매칭 테스트는 반강제적으로 진행됐다. 그날 밤의 유의미한 가이딩 효과와 지수의 완강한 요구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한의 의견은 완전히 묵살됐다.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최고 등급의 센티넬,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검사실에서 정한을 마주한 지수는 침묵을 유지하는 마른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말이라도 하면 답답하지나 않을 텐데, 어째선지 매칭 얘기만 나오면 발작을 할 것처럼 구는 통에 속이 영 갑갑했다. 연락이 끊긴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정한은 변했다. 지수는 그 생각만 하면 열여덟의 이별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각성이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당시 정한을 붙잡지 못한 걸 생각하면 여전히 속이 쓰렸다.
96%. 결과지를 틀어쥔 정한이 미간을 구겼다.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가이딩 효과를 기억하면 당연한 수치였으나 새삼스레 기가 찼다.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너고. 헛웃음을 터뜨리는 정한의 앞에서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던 지수는 말없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갈색 봉투에서 매칭 확인서를 꺼내 든 정한이 가이드란 속의 싸인을 보곤 한숨을 뱉었다.
“너만 하면 돼.”
“싫어. 안 한다고 했어.”
“위조당하기 싫으면 그냥 네가 해.”
이쯤 되면 열이 올랐다. 센터의 강압 정도야 대수롭지 않았지만 막무가내로 구는 홍지수에게는 대책이 안 서는 탓이었다. 어쩌자고. 평범하게 살아도 될 걸 왜 이렇게까지 해.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 정한이 입안의 여린 살을 씹어댔다.
“바로 훈련 진행해도 되겠대.”
“야 홍지수!”
감정을 잠재우지 못한 정한이 서류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시끄러워. 정한은 들은 척도 안 하고 타박하는 지수를 일으켜 세웠다. 거친 손길을 털어내는 행위에 참다못한 정한이 악을 썼다. 눈가로는 이미 붉게 열이 오른 채였다.
“너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그냥 살면 될 걸 왜 여길 기어 들어와. 내가 죽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인데.”
이를 악다문 지수가 뺨을 갈겼을 때에서야 마구잡이로 쏟아지던 말이 멈췄다. 주먹이 지나간 턱이 얼얼해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었다. 눈가가 새빨개진 지수가 비틀거리는 정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개새끼...”
지수는 바닥에 떨어져 버린 서류를 주워 들어 정한의 가슴팍에 던졌다. 팔락거리며 떨어진 종이가 힘없이 발치에 굴렀다.
“죽어도 내 앞에서 죽어.”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말한 지수가 몸을 돌렸다. 정한은 사라지는 뒷모습을 맥없이 바라보다 소파 위로 몸을 묻었다. 눈을 떠도 환영처럼 떠다니는 기억에 손끝이 떨려 왔다. 내리감은 눈이 뜨거워진다.
그래. 차라리 원망해.
미움을 받는 게 나았다. 제가 영영 내쳐지더라도, 우리가 영영 볼 수 없게 되더라도, 부디 그 애가 그만두길 바랐다. 윤정한은 여전히 홍지수의 불행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싸인은 형식적인 절차일 뿐 최종 결정권은 센터에 있었다. 파장이 불안정한 S급 센티넬과의 매칭을 자원한 가이드라니 센터 입장에선 눈이 뒤집힐 만도 했다. 매칭률을 떠나 윤정한을 제어할 수 있다면 센터는 그 누구든 괜찮다는 입장일 게 뻔했다. 물론 십 년 가까이 이곳에 몸담은 정한이 그 기막힌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싸인을 하지 않은 것은 들어 먹히지도 않을 반항 같은 거였다. 센터를 향한 게 아닌, 홍지수를 향한 반항.
그러나 일말의 기대는 얼마 가지 못했다. 매칭이 확정되었다는 공고가 이틀을 채 지나지 못해 내려온 탓이었다. 정한은 지수의 디바이스와 연결되었을 손목의 센서를 바라보다 눈을 내리감았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훈련 첫날이 되어서야 마주친 지수는 싸늘했다. 정한은 차갑게 굳어버린 낯을 바라보다가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훈련에 집중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척한 것과 달리 어이없는 실수가 반복됐다. 생채기가 날수록 회복은 느려지고 출력도 제어가 안 됐다. 지나치게 방출되는 능력에 제어 장치를 확인한 정한이 잠시 손을 들었다. 이대로면 주변이 위험해질 게 분명했다. 곧바로 휴게실로 이동하려던 정한은 삽시간에 들이닥치는 두통과 현기증에 머리를 움켜쥐고 신음했다. 윤정한이 아무리 능력 좋고 날고 기는 놈이라 해도 별수 없었다. 능력의 과용이 몸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고, 센티넬인 이상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건 이 세상의 불문율이기에. 한숨을 삼키고 다가간 지수가 손을 뻗었다. 맞닿자마자 내쳐진 손을 내려다본 지수가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필요 없댔잖아.”
“너 미쳤어?”
날 선 태도에 지수마저도 날카롭게 반응했다. 주먹을 꾹 쥐고 노려보는 시선에 정한은 대답 없이 재킷을 뒤적거렸다. 하얀 케이스에서 두 알의 알약을 꺼내 곧장 입속으로 털어 넣는 꼴이 제법 익숙해 보였다. 안정제인 게 분명했다. 지수는 꽤 묵직한 케이스를 잡아채며 정한을 노려봤다. 정신 나간 새끼. 무던하게 받아내는 시선이 공허한 탓에 괜히 입술을 짓씹었다.
“너 진짜 짜증나.”
지수의 예민한 반응에 놀란 관리팀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둘만 남은 훈련장이 적막했다. 균열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아슬아슬했다.
4.
신체 일부가 나가떨어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컨디션은 참작 대상이 아니었다. 특히 최고 등급의 센티넬은 파장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작전에 차출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 좆같은 규정 탓에 정한도 여태 매년 십수 번 이상의 기밀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물론 모든 순간 가이드는 없었다. 탁월한 제어 능력이 없었더라면, 윤정한은 어딘가의 전장에서 진작 얼어붙어 죽었을 것이다.
그랬던 윤정한에게 S급 가이드가 페어로 붙었다는 것. 그건 위험성이 높은 기밀 작전에 최전선으로 투입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덕분에 지수는 미서부센터에 있을 때보다 더 바빠졌고, 마주할 날도 자연히 늘어났다. 그러나 지수는 이제 정한의 말에는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저를 만류할 게 뻔한 말이니 아예 무시로 일관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속이 답답했다. 이런 재회는 단 한 번도 바란 적 없는데. 지수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한이 한숨을 삼키며 몸을 돌렸다. 세월의 간극을 줄이는 방법 따위 알 리가 없었다.
정한은 인이어를 착용하며 지수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제 센서의 모니터를 유심히 확인하는 시선이 시릴 만큼 날카로웠다. 깊은 한숨을 뱉어낸 정한이 테크웨어를 고쳐 입고 대기소를 나섰다. 작전에 참여하며 자신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 건 참 오랜만이었다. 정한은 마음을 다잡으려 숨을 삼켰다. 이번엔 반드시 무사해야 했다. 홍지수를 현장에 부르지 않기 위함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러나 다짐이 무색하게도 건물에 진입하자마자 기습을 당한 팔뚝이 화끈거렸다. 선명한 절창에 핏줄기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이가 까득 씹혔다. 빙결 능력 자체가 세밀한 조절을 요하는 탓에 감각이 무뎌질수록 능력을 제어하기가 어려워 온 정신이 곤두섰다. 일 층의 상황을 정리하고 제 위치에 잠복한 정한은 천을 꺼내 들어 피가 새는 팔뚝에 감았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선명했다. 습관적으로 손목 밑의 센서를 매만진 정한이 잠시 꺼 두었던 마이크를 켰다.
“옥상 진입 준비됐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고막을 찢을 듯한 폭발음 때문이었다. 삽시간에 주위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왔다. 귀를 틀어막으며 주저앉은 대원들을 살핀 정한이 상황을 파악하려 고개를 들었다.
“무슨 상황이야!”
“모르겠습니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화면에도 잡히지 않는 것 같았다. 폭발음으로 인한 이명 탓에 인이어로 새어드는 목소리마저 선명하지 않았다. 이를 까득 씹은 정한이 몸을 숙인 대원들을 뒤로하고 앞서 나갔다. 피해가 광범위해지기 전에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윤정한 뒤에!”
인이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지수의 목소리에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삽시간에 옆구리를 스치는 통증에 몸의 균형이 무너져 비틀거렸다. 뒤늦게 사격 지점을 발견한 대원이 라이플을 들어올렸다. 총성이 울렸다. 전방에서 공격해오는 이도 센티넬인지 순식간에 불이 붙는 몸에 제작 수트마저도 녹아내렸다. 하필 부상을 입은 왼팔을 당해버려 극심한 통증이 일었다. 불길이 건물 전체를 삼킬 듯 거칠어졌다. 파장이 벌써 불안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으나 어금니를 꽉 물었다.
버텨야 한다. 조금만 버티면 끝난다.
끊임없이 되뇌던 정한은 맹렬하게 공격해오는 이의 얼굴을 확인하고 평정을 무너뜨렸다. 센터에 몸을 담고 있던 A급 센티넬. 심지어 같은 조를 이룬 적도 있는 사람이었다. 종종 있는 일이라지만 견딜 수 없는 기분에 가슴이 죄어들었다. 차마 나오지 못하는 욕을 씹어 삼킨 채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뻗어나간 얼음 조각이 상대의 가슴에 박혔을 때에야 치솟던 불길이 가라앉았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럿의 총성이 울렸다. 폭탄을 해체했다는 보고가 인이어를 통해 들려왔다.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한 정한이 숨을 몰아쉬었다.
“센티넬 2인 포함 잔당 소탕 완료. 진압 작전 종료합니다.”
“A팀 윤정한 포함 이상 무. 복귀하겠습니다.”
비틀거리며 뜨여 있는 눈을 감겨 준 정한이 느리게 일어섰다. 그 순간 사지의 끝이 얼어붙는 감각이 생생히 느껴졌다. 대처할 새도 없었다. 가까스로 대피하라 외친 정한이 손을 꾹 쥐었다. 파장이 불안정하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안정제도 없는 탓에 능력을 제어하려고 해도 쉽지 않아 속이 탔다.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잡음에 정한은 인이어를 집어던지며 비틀거렸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전신의 감각과 귀를 찢는 듯한 이명이 반복되니 두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속이 울렁거리다 못해 토기가 치밀 정도였다. 씨발... 정한은 욕을 뇌까리며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새삼스레 인생이 좆같아 눈가가 다 뜨거웠다. 제 몸에서 위협적으로 뻗친 얼음 조각이 툭툭 떨어져 나갔다. 얼음이 바닥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안 돼, 피해야 돼. 위험을 감지하자마자 이성과 본능이 어지럽게 얽혔다. 귀를 막은 손이 대책 없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윤정한.”
순식간에 긴장이 누그러졌다. 귀를 감싼 윤정한의 손, 그리고 윤정한의 손등을 감싼 홍지수의 온기. 정한은 불현듯 밀려드는 안도감에 입술을 씹었다. 왜 여기까지 와. 어떻게 될 줄 알고. 정한은 눈앞의 지수를 바라보다 힘겨운 몸짓으로 밀어냈다.
“하지 말라고.”
단정한 얼굴에 균열이 생긴다. 아랫입술을 꾹 문 채 벌겋게 물든 눈가를 바라보던 지수가 힘을 잃은 손을 잡아 내렸다.
“내가 가이드인 이상 너 못 죽어.”
동시에 무드 없게 입술이 맞물렸다. 부딪혀 찢어지기라도 한 건지 피 맛이 날 정도로 과격한 키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한은 밀려드는 안정감과 잦아드는 이명에 눈을 감았다. 체온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불규칙적이던 박동이 정상의 범주에 들어서고, 온몸을 자극하던 아릿한 격통이 잦아들었다. 감긴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인생이 좆같았다. 정한은 지수를 밀어내며 푹 젖은 옷을 털었다. 아물어버린 입술 위의 상처를 핥고 떨어져 나간 지수가 말없이 씩씩거렸다.
“손만 잡아 줘. 그거면 돼.”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 건조한 낯빛을 한 정한에 지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위태로운 적막이 흘렀다.
5.
그날 지수는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방에 틀어박혔다. 복잡한 기분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처음엔 윤정한의 날 선 태도에 화가 났고, 다음은 왜 이런 취급을 당하는지 서러웠다. 정한의 가이드가 없다는 소식에 안도했던 제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스물두 살에 가이드로 발현한 이후 미국에서 훈련을 받았던 지수는 어떻게든 한국에 넘어오기 위해 애를 썼다. 연락이 끊겨버린 윤정한의 생사 여부를 찾아보면서, 간혹 소식이 전해지지 않을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던 적이 몇 번인지 셀 수조차 없었다. 지독하게 살아남아 간신히 만날 수 있게 됐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기어이 마른 입술 새로 한숨이 터졌다.
별안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 문을 바라봤다. 형. 저 승관이요. 대답하는 목소리와 이름을 가만 생각하던 지수가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승관아.”
“오랜만이에요.”
“너...”
“가이드요. 작전 때문에 나가 있느라 계속 인사 못 했어요.”
지수는 제법 어른 티가 나는 승관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새삼 지나버린 시간이 온전히 느껴진 탓이었다.
“형은 여전히 잘생겼네요.”
“당연하지.”
“와... 진짜 짜증 난다.”
맥없이 웃은 지수가 승관을 방안으로 안내했다. 지수는 소파에 앉는 승관을 바라보며 예전처럼 편하게 하라 말하려다 말아버렸다. 마지막 연락으로부터 자그마치 7년이 지났고, 정한처럼 친척인 것도 아닌데 오히려 더 불편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잠시 침묵하며 할 말을 고르던 지수는 돌연 승관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몸을 굳혔다.
“사실 정한이 형 일로 왔어요.”
“... 정한이?”
“그 형은 죽어도 말 안 할 테니까.”
단호한 표정과는 달리 긴장이 되는 듯 손을 쥐었다 펴는 게 보였다. 덩달아 긴장이 일었다. 점차 맥박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혹시 7년 전에 연락 끊긴 이유, 물어봐도 돼요?”
“... 연락이 안 됐어.”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지수가 마저 말을 이었다. 정한이가 거부한다 그러더라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굳어 있던 승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에요. 정한이 형이 거부한 거. 떨리는 목소리에 지수의 시선이 순식간에 균형을 잃었다.
“사고가 있었어요.”
승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지리멸렬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보통 초심자들은 차출되지 않는 기밀 작전. 주어진 등급만큼 내내 우수한 성적을 보였던 정한은 공식 센티넬이 된 지 일 년도 못 돼 현장에 내던져졌다. 불행은 거기서 시작됐다. 작전의 규모만큼 그날의 현장은 끔찍했다. 사상자는 많았고, 두 명의 센티넬이 현장에서 폭주했다. 한 명은 자의였고, 다른 한 명은 타의였다. 페어가 없던 정한은 급하게 붙인 A급 가이드의 손에 붙들린 채 능력을 쏟아내야 했다. 제어가 불가능한 건 처음이었고, 온몸의 작열하는 고통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었다. 순식간에 얼어붙는 사위에 붉어진 눈을 깜박거렸다. 의식이 흐려지는 중에도 고통스러워하는 가이드의 얼굴이 뿌연 시야에 아른거렸다. 그 순간 정한은 아득한 정신 속에서 제 능력의 위험을 깨달았다. 공포였다. 정한은 결국 얼어붙는 도시를 바라보며 의식을 죽였다. 차디찬 얼음 속에 갇힌 채 감겨버린 눈이 축축했다. 그렇게 눈을 뜬 건 날짜조차 알 수 없는 어느 밤이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말을 거는 의료진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정한은 도로 눈을 감았다. 마치 세상과 단절할 것처럼. 삶에 미련 따위 없는 사람처럼.
그 이후로 정한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부상이 심한 탓에 작전에도 훈련에도 참여할 수 없었고, 가이딩은 커녕 치료마저 거부해 회복이 한참 더뎠다. 그 시기쯤 정한은 안정제를 병적으로 복용하기 시작했다. 부작용의 위험성을 들으면서도 기어이 처방을 받아가면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선득한 경고에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 정한은 차분한 낯으로 약을 털어 넣었다고 했다. 승관이 그를 만난 건 그로부터 삼 년이 지난 후였다. 괜찮은 척을 하던 윤정한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속이 곪아 썩어 문드러진 채, 그저 살아내고 있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생사의 경계로 저를 몰아넣으면서, 그저 살아내기 위해 살아가면서.
신파 영화가 따로 없는 과거를 이야기하던 승관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눈가가 발갛게 물든 채였다. 이어지는 침묵에 지수는 달아오른 눈가를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 명치에 무언가 걸려버린 듯 갑갑했다.
“저는 당시에 여기 없었지만...”
“......”
“제가 들어오고 나서도 많이 힘들어했어요.”
말끝마다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숨을 내쉬는 것조차 벅차 주먹을 꾹 쥐어내면서 애를 썼다. 제 행동을 좇는 시선을 알면서도 지수는 차마 괜찮은 척하지 못했다. 지난 윤정한의 삶이 너무 고단해서, 그런 그 애의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고통스러웠다. 견딜 수 없이 미안했다.
“정한이 형이 매칭 거부하는 거, 아마 그래서일 거예요.”
승관이 말을 덧붙이려다 말고 지수를 빤히 바라봤다. 말해. 애써 담담히 말하자 아랫입술을 꾹 짓씹으며 숨을 골랐다. 기어이 눈가가 붉어져 어룽거리는데도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윤정한 때문일까. 어느새 어엿한 어른이 되어버린 승관을 바라보며 입안을 물었다. 잠시 숨을 몰아쉬던 승관은 지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안정제 더 먹으면 안 돼요.”
“... 언제부터 먹은 거야.”
“그때부터 계속, 7년 내내요.”
기어이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덜덜 떨리는 손끝엔 분노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감정이 복잡하게 실려 있었다. 정한이 복용하던 안정제는 지수도 익히 봐 와 아는 것이었다. 무수한 부작용들까지도. 끝내 가이드를 찾지 못한 채 안정제에 의존하던 센티넬들의 최후. 지수는 감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애라면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기도인지 세뇌인지 모를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무섭게 몸집을 키워가는 불안에 주먹을 쥔 손이 떨려왔다.
6.
작전이 구체화된 순간부터 센터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규모가 규모이니 만큼 살벌한 공기였다. S급, A급 센티넬 전원 집합 및 페어 가이드 항시 대기. 명령은 빠르게 내려왔다. 센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은 이 유난에 꽤나 당황스럽단 반응이었으나, 오래 몸담은 이들은 외려 담담했다. 아니, 착잡한 낯이었다. 7년 전 그날과 같은 장소, 동일한 기밀 작전. 도시의 잔해와 나뒹굴던 시체들, 챙기지 못한 동료들, 구하지 못한 시민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 작전에 성공이란 없다는 것을. 득과 실을 구분 짓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윤정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의 기억은 그에게 가장 잊고 싶은,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날이었기에.
불행은 언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법이다.
현장으로 진입하기도 전에 테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총성과 폭발음으로 고막이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웅웅거렸다. 통신도 불안정해 모니터마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C구역 화재 발생!”
이따금씩 인이어를 통해 들려오는 상황에 이가 까득 씹혔다. 얼려 잠재웠던 불길마저도 잠시 눈을 떼면 다시 끓어올랐다. 화마가 온 도시를 집어삼킬 기세로 퍼져 진영은 모두 흐트러진 지 오래였다. 생존자의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어 능력을 마구잡이로 쓰기도 곤란했다. 화염과 얼음과 다 녹아 새어버린 물. 자폭을 서슴지 않는 행위에 이동조차 쉽지 않아 시간이 지연되고 있었다. 정한은 중심지로 들어서다 건물 잔해에 갇힌 시민들을 발견하곤 발을 돌렸다.
“B구역 생존자 3인 구조 완료. 지원 바랍니다.”
곧이어 다급한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정한은 간절하게 손목을 틀어쥐는 이들을 뒤의 대원들에게 맡기고 발을 뗐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자신이 파괴했던 이 도시, 민간인들이 다시 자리를 잡고 선 이 터를 지켜야만 했다.
정한은 망설임 없이 A구역으로 향했다. 적진의 중심지로 향하는 걸음엔 여전히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예정된 포인트에 다다랐을 무렵 별안간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시내의 중심부가 예상외로 더 조용한 탓이었다. 간간이 치솟는 불길과 총성이 귓가를 어지럽혔지만 이상한 고요였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쉽사리 진입하지 못하고 몸을 숨기고 있을 때 인이어를 통해 여러 명의 무전이 전해졌다. A구역에 진입한 센티넬들과 제 팀 대원들의 소식이었다. 무사하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도 잠시, 묘한 불안감이 온몸을 기어올랐다.
“A구역 센티넬 먼저 진입합니다.”
중앙제어실에서 사태를 확인하고 있을 센터장의 무전에 정한이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여러 명의 발소리가 울렸다. 눈앞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도 그 순간이었다. 정한은 반동에 나가떨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폭발음이 지나자 이명이 가득 찼다.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와중에 파편이 날아들었는지 옆구리가 화끈거렸다.
“아 씨발...”
지독한 통증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질 수 없었다. 살점이 뜯겨 나가는 것 같은 고통에 신음하던 정한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 날아온 건지 총알이 귀 옆을 지나는 게 느껴졌다. 섬뜩한 기분에 다시 몸을 낮추자 비명이 들려왔다. 이번엔 눈앞에서 화재가 일었다. 기어이 화염 센티넬이 폭주한 것인지 화마가 삽시간에 주위를 덮치고 있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불길을 얼리던 정한이 신음했다. 탕. 총성이 울리기 무섭게 손목에 욱신거리는 고통이 기어올랐다. 날아가지 않은 손목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위태롭게 감겨 있던 출력 제어 장치가 뜯겨 나가는 게 보였다. 순식간에 일렁이는 파장을 잠재우려 할 새도 없이 온 도로가 얼어붙었다.
지나친 출력으로 인해 착용하게 된 유일한 제어 장치. 7년 전 만들어졌던 이 장치는 정한의 유일한 부적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을 통제해 남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 그러나 지금은.
삽시간에 공포가 밀려왔다. 정한은 우두커니 서 얼어붙은 땅을 내려다보았다. 옆구리의 상처는 여전히 시뻘건 선혈을 뱉어내고 있었고, 감각이 희미한 발끝이 빠르게 얼어갔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급속도로 내려가는 체온에 온몸이 다 타올라 재가 될 것 같았다.
“정한아! 윤정한!”
인이어를 통한 목소리인지 이명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지수의 목소리가 고막을 울려도 정한은 우두커니 서 숨만 집어삼켰다. 제어하지 못한 채 능력을 쏟아내는 정한으로 인해 사위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여기저기 치솟던 불길은 멈춘 지 오래였다. 이 구역에 더 있을지 모를 민간인. 남아 있을 동료들. 힘겹게 손을 틀어쥐어도 제 몸을 시작으로 얼어 가는 세상을 맥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폭주였다.
살려 줘.
정신이 아득했다. 아스라한 시야가 조각조각 부서져 떠다니는 것 같았다. 통제할 수 없이 얼어붙는 몸. 삽시간에 화마를 잠재운 채 얼어가는 도시. 수없이 마주한 상황에도 두려움은 별수 없었다. 이제야 선명해지는 청각에 여러 소음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비명, 고통에 찬 신음 소리, 다급한 명령. 모든 것들이 뇌리에 박혔다. 7년 전 그날과 같은 장소, 같은 광경, 같은 소음이었다.
눈이 가물거렸다. 상황을 파악할 수도, 날카롭게 얼어붙은 길바닥을 내다볼 새도 없었다. 손끝과 발끝을 타고 오른 얼음이 목덜미에 닿을 때쯤 기어이 느리게 깜박거리던 눈이 감겼다. 목을 조여 오는 한기가 남의 일인 양 아득했다. 이대로 죽는 건가.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정한은 소리 내어 웃지도 못한 채 미소를 지었다. 별안간 한 사람이 떠오른 탓이었다.
제발 내게 오지 않기를.
“윤정한!”
말라 있던 시야에 눈물이 어린 것도 그때였다. 살고 싶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거리는 시야에 그 애의 간절한 얼굴이 차올랐을 때, 사방으로 튀는 얼음 조각에 그 애의 몸이 베였을 때, 정한은 죽고 싶었고, 또 살고 싶기도 했다. 지켜 줄 수 없음을 괴로워하다가도, 지나치게 위험한 자신의 능력을 탓하다가도, 간절했다. 홍지수의 손길이.
곧바로 맞물리는 입술에 체온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몸이 녹아내릴수록 화끈거리는 통증이 일어 숨을 가쁘게 쉬었다. 단단하게 굳은 몸 위로 다급한 손길이 느껴졌다. 이러다간 손이 다 얼어 터질 텐데, 네가 다칠 텐데. 기어이 닿은 생각에 몸을 물리려 하니 얼굴이 도로 끌어당겨졌다. 눈을 뜨니 푹 젖은 속눈썹이 파들거리는 게 보였다. 다시 눈을 내리 감았다.
파장이 안정된 뒤에도 지수는 입술을 떼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손을 잡아챈 정한이 얼굴을 물리며 제 앞의 지수를 바라봤다.
“너 안 죽을 거라고 했잖아.”
그러더니 지수는 맥없이 정신을 잃었다. 낯이 창백했다. 감각 없는 팔로 늘어진 몸을 받아 든 정한이 힘겹게 목을 울렸다.
“지수야.”
정신이 다시 아득해졌다. 시리도록 투명한 얼음 위에 고인 웅덩이를 본 탓이었다. 정한은 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손을 끌어당겼다. 붉은 선혈이 묻은 손가락은 다 얼어 터져 있었다. 깊게 베인 목덜미를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상처를 틀어막으며 내지지도 않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눈물이 흘렀다. 씨발, 왜. 왜 나는 또... 여전히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런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더라면, 센티넬이 되지 않았더라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 채 사랑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울고 있던 열여덟의 지수와 제 가이드를 자원한 스물일곱의 지수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삶이 끔찍했다. 기어이 의식이 멀어지는지 온 감각이 까마득해졌다. 곧이어 울리는 수십 개의 발소리를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눈가는 여전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규칙적인 기계음에 가물거리는 눈이 뜨였다. 홍지수. 정신이 채 돌아오기도 전에 닿은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얼음 파편에 목덜미를 베였던 모습, 창백했던 낯빛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어디 있어 홍지수. 몸에 붙어 있던 장치들을 떼어낸 정한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의사가 문을 열고 들어온 것도 그 순간이었다.
“깨어나셨네요.”
“홍지수는요.”
한숨을 뱉은 의사가 건너편의 병실을 가리키며 답했다.
“출혈이 꽤 심하긴 했는데 상태는 안정적이에요.”
“......”
“안심하셔도 됩니다.”
정한은 그제야 가쁜 숨을 골랐다. 그러곤 제게 다가오는 의사의 손길을 뿌리친 채 발을 옮겼다. 누워 있을 여유가 없었다. 지나치게 양호한 몸 상태가 의식될수록 죄책감이 인 탓이었다. 정한은 복도까지 나와 저를 부르는 의사를 무시한 채 통제되어 있는 문을 열었다.
병실에는 두 눈을 내리 감은 채 잠든 지수가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고른 심박을 나타내는 모니터, 규칙적으로 울리는 기계음, 팔에 감긴 깁스, 창백한 얼굴, 가느다란 숨소리. 무사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온 장기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모두 무사했지만, 눈이 뜨거워지는 것도 별수 없었다. 언제나 가이드의 목숨을 담보로 살아남아야 하는 센티넬. 정한은 베드 끄트머리를 틀어쥔 채 주저앉아 끓는 목소리를 냈다.
“미안해.”
바닥이 눈물로 일렁였다.
7.
회복실에 잠들어 있던 내내 병실을 지켰다던 정한은 한참이나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불안했다. 센터의 호출에도 무응답으로 반응하며 방에만 틀어 박혀 있다는 소식은 승관이 이야기해 주었던 지난날들의 정한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회복이 다 되지 않아 무거운 몸을 일으킨 지수는 의사의 만류에도 애써 웃으며 병실을 나섰다.
방문 앞에 선 지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수없이 경험한 부상, 수없이 목격해 온 센티넬의 폭주. 그럼에도 평정을 잃었던 자신과 끝내 무너지고 말았을 정한의 젖은 얼굴이 아른거렸다. 조금만 더 침착했다면 괜찮았을까. 의미 없는 후회였다. 평정을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윤정한의 파장이 거칠게 흔들리는 순간, 자신은 제 목숨마저 내던지고 달렸으니까. 지수는 이제야 정한이 간절하게 만류했던 마음을 이해했다. 그 애는 죽고 싶은 것도, 살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살아내고 있었던 윤정한. 죽지 말라던 약속을 어떻게든 홀로 지켜 왔던 윤정한. 자신의 몸이 산화되더라도 홍지수를 지키려 했던 윤정한. 눈이 뜨거웠다. 목구멍이 타오르는 기분에 입술을 짓씹었다.
지수는 젖은 숨을 몰아쉬며 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에도 반응은 없었다. 굳게 잠긴 방문을 가만히 바라보던 지수는 결국 나지막한 목소리를 울렸다.
“정한아.”
“......”
“나 괜찮아.”
“.....”
“다 나았어.”
여전히 답은 없었다. 침묵 속에 지수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미약한 소음이 들려왔다. 곧이어 문 앞에 다가온 인기척에 퍼뜩 얼굴을 치켜들었다.
“그만하자.”
“윤정한.”
“넌 알잖아. 얼마나 위험한지.”
모를 리가 없다. 가이드로 살다 생을 마감한 아버지. 가이드가 된 이후 몇 번이고 경험했던 죽음의 공포. 지수는 잠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알고 있다. 다 알면서도 기어이 여기까지 온 거다. 매달 피를 뽑아가며 형질 검사를 받고, 혹독한 훈련을 겪고, 한국 파견 명단에 이름이 오를 때까지, 지수는 수없이 끔찍한 지옥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수는 그 모든 시간들보다 더 두려운 게 있었다. 윤정한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던 순간들.
“알아.”
두터운 문 너머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부탁했잖아. 평범하게 살아달라고.”
가이드는 각성에도 앓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형질 검사를 받지 않는 이상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지수가 가이드로 발현한 건 남들보다 늦은 스물두 살. 그냥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음에도 기어이 미국 센터를 거쳐 한국까지 넘어온 홍지수. 정한은 그 지리멸렬한 시간 속에서 그가 버텨 왔을 무수한 위기들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상상만으로도 괴로운 탓이었다.
“그냥 살아도 됐잖아.”
“내가 선택한 거야.”
“그러니까 왜. 안전하게 잘 살아도 되잖아.”
지수가 입술을 꽉 물었다. 터진 상처로 피가 새는 게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차분함을 잃은 채 떨리기 시작한 목소리가 형편없이 늘어졌다.
“내가 어떻게 그래. 매일 너 죽었나, 살았나 확인하면서 버텼는데. 네 소식 없을 때마다 연락도 안 되고 센터는 묵묵부답이고... 그때마다 너 그렇게 보낸 거 후회돼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내가 어떻게 잘 살아.”
대답은 없었다. 조용한 문 너머로 참아온 말을 뱉어낸 지수는 가까스로 다리에 힘을 줬다. 더 이상 무너지면 안 됐다. 윤정한이 세상을 지킨다면, 자신은 윤정한을 지켜내야 하기에. 기어이 눈가가 달아올라 눈두덩을 꾹 누르며 숨을 골랐다.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려 입을 열 때,
“죽지 말라며.”
정한이 침묵을 깨며 대답해 왔다. 지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문고리를 잡아챘다. 기력이 없어 비틀거리는 몸에 힘을 주며 버텼다.
“정한아.”
“......”
“문 열어 주면 안 돼?”
“......”
“보고 싶어.”
기어이 울먹임이 차오른 목소리에 덜컥거리는 소음이 울렸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동시에 문고리에 의지하던 지수의 몸이 방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너 진짜. 코앞에 선 지수의 얼굴을 마주한 정한이 하던 말을 멈춘 채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새어 나오는 말엔 일말의 힘조차도 없었다.
“왜 목숨을 걸어.”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지수의 말에는 망설임이 없다. 기어이 얼굴을 무너뜨린 정한은 지수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울음을 삼켰다. 젖어드는 눈가를 견딜 수 없어 가만히 지수의 손목을 틀어쥔 채 얕은 숨을 내쉬었다. 너 진짜 왜 그래. 끝내 차분함을 잃은 목소리가 형편없이 튀어나왔다.
“내가 뭐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지수가 사랑을 고백한 건 처음이었다. 정한은 얼굴을 무너뜨리다 못해 아랫입술을 터지도록 깨물었다. 기어이 홍지수의 인생을 저당 잡아 살아남는 기분이 들어 괴로웠다. 울음이 새는 소리에 지수는 가만히 잡힌 팔을 빼냈다. 떨리는 몸을 끌어안는 온기가 느껴졌다. 가이딩이 아닌 온전한 홍지수의 마음. 정한은 결국 그 품 안에서 한참이나 눈물을 쏟았다. 마치 열여덟의 마지막 순간처럼.
8.
삶이 순조로운 것도 잠시였다. 애석하게도 정한의 몸은 삽시간에 나빠지기 시작했다. 7년간 투여했던 안정제가 몸속에서 탈을 일으키기 시작했는지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몸이 걸레짝처럼 너덜거렸다. 내성이 생긴 탓에 직접적인 가이딩이 없으면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복약 안내문에 가득 적혀 있던 부작용이 이제야 실감이 됐다. 죽는 거 생각보다 무섭구나. 지수의 가이딩이 없었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뒷덜미가 서늘했다.
그래서 웃겼다. 걔가 없을 땐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나 싶을 때가 많았는데, 이젠 정말 살고 싶어져서. 멍이 연해진 팔뚝을 내려다보던 정한이 허탈하게 웃었다. 이제 더는 죽고 싶지 않았다. 홍지수가 있는 세상을 살고 싶었다. 처음으로 삶이 간절했다.
그러나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 내리는 살에 태가 가늘어지는 걸 느꼈을 때, 체중이 대책 없이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 정한은 조금 무서워졌다. 아무리 잘났대도 센티넬의 마지막은 다 똑같은 건가. 이젠 자꾸만 먼저 떠난 그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정한은 언제부턴가 꼭 긴팔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늘 품이 큰 실내복을 입었고, 불편한 것을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제작 수트 위엔 꼭 테크웨어를 챙겨 입었다. 제 검사 결과야 센터 내의 모두가 공공연하게 알고 있겠지만 굳이 내색하고 싶진 않았다. 특히 지수에게는 더더욱.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테지만 정한은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다. 그리고 정한의 예상대로 지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아마도 정한을 위한 배려이자, 자신을 위한 자기방어일 터였다.
갑작스레 방송이 울렸다. 긴급 보수로 인한 훈련 취소 소식이었다. 곧바로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정한은 노크 소리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곧이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의 얼굴에 입매가 곱게 휘었다.
“방송 들었지?”
“응.”
“누가 깨 먹었나 봐.”
“나 같은 애들인가 보지.”
“예전엔 많이 깨 먹었나 보네.”
정한이 맥없이 웃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지수에게 냅다 코를 박으니 익숙한 향기가 퍼졌다. 난 네 냄새가 더 좋았는데. 너 교복에서 나던 그 섬유유연제 냄새. 불만이 가득한 말투에 지수가 웃으며 물었다.
“그걸 기억해?”
“당연하지.”
“나 엄청 보고 싶었나 보네.”
장난기 어린 말에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멈칫 굳는 게 느껴졌다. 지수는 아직도 이렇게 함께 있어 주지 못했던 시간들을 미안해하곤 했다. 하여튼 착해서 탈이지. 제 잘못이 아닌데도 그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한은 가슴 한 구석이 죄어와 도리어 그를 달래게 됐다.
“딴생각할 여유도 있고.”
드러난 쇄골 근처를 깨물자 지수가 약하게 신음하며 얼굴을 밀어냈다. 단호한 몸짓과 달리 얼굴은 다 풀린 채였다.
“요즘 스케줄 안 잡히네.”
“빙결 센티넬 더 들어왔잖아.”
지수의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정한은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흥미롭게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언제는 내가 안 나갔으면 좋겠다며.”
“그렇긴 한데...”
가는 손목을 만지작거리던 지수가 입술을 앙 물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센티넬이 작전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늘 같았으니 마음이 복잡할 법도 했다. 눈가가 금세 발개지는 게 보여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얘가 이렇게 눈물이 많았나. 정한은 모른 척 지수의 손을 겹쳐 잡았다. 스물일곱이 돼도 홍지수가 울면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그 서툰 위로에 지수는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정한아.”
“응.”
“우리 도망칠까?”
“그럴까.”
지수가 순순히 대답하는 정한을 돌아봤다. 흔들림 없는 검은 동공에 서로가 담겼다.
“여기 다 박살내버리고.”
농담이라기엔 살벌한데. 지수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 정한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아른히 비치는 햇빛에 두 눈이 느릿느릿 깜박거렸다. 곧이어 평화로운 정적을 지수의 음성이 지우기 시작했다. 칩이 심어진 손목을 쓰다듬으며 부르는 노랫소리는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정한은 지수의 손을 끌어다 손등 위에 입을 맞췄다. 익숙한 음계에 한참 발을 까닥거리던 정한은 노랫소리가 멎고서야 지수의 머리에 입술을 맞댄 채 물었다.
“후회돼?”
“아니.”
“근데 갑자기 왜?”
“세상이 좆같잖아.”
상스러운 욕지거리에 정한이 박장대소했다. 와 진짜 안 어울린다. 그랬더니 지수가 옆구리를 꼬집으며 몸을 붙여 왔다. 악 소리를 지른 정한이 허리를 끌어안으며 어깨 위로 얼굴을 묻었다. 홍지수 완전 욕쟁이 다 됐네. 진짜 무서워. 장난스러운 투에 지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조슈아 예수님 아들 아니었어? 이래도 돼?”
“There's nothing wrong with falling in love.”
“뭐라고?”
“비밀.”
지수가 개구진 표정으로 웃었다. 너 자꾸 영어 쓴다. 기다려. 나 진짜 독하게 배울 거니까. 입술을 꾹 물며 옆구리를 간질이자 지수가 몸을 비틀며 나자빠졌다. 푹신한 이불이 푹 꺼지자 주변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곧이어 깜박거리던 지수의 큰 눈이 접혔다. 두툼히 올라오는 애교살에 심장이 간지러워져 조용히 숨을 골랐다.
“정한아.”
“응.”
“우리 미국으로 갈까?”
“거기서 살고 싶어?”
“결혼하게. 여기서는 못하잖아.”
정한은 지수의 얼굴 여기저기 입을 맞췄다. 예쁜 이마, 고운 곡선을 그린 눈두덩, 여전히 둥그런 볼에 차례차례 입술을 찍자 지수가 낮게 웃었다. 벅차오르는 기분에 정한은 두툼한 입술 위로 숨을 묻었다. 뒷목에 손을 두르며 응해오는 지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같은 꿈을 꾸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건 분명,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꿈일 터였다.
9.
이곳에서 능력이 사라진 센티넬이란 무가치한 존재였다. 그들은 센터를 떠난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하기도, 써먹을 만큼 써먹고 버려버리는 센터를 증오하기도 했다. 개중에는 증오심을 못 이겨 테러를 일으키는 반란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자멸로 끝나고 말았던 그들의 삶. 대다수의 센티넬은 떠나기도 전에 죽어버리곤 했지만 정한이 봐 온 그들의 은퇴는 그랬다. 아마 얼마 남지 않았을 명을 붙들고 평범한 세상으로 나갔을 때, 나는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을까. 아득한 미래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상은 늘 오래가지 못했다. 삶에 애정이 없던 정한에겐 그저 허상일 뿐이었으니 별수 없는 일이다.
“반응이 잘 안 잡히네요.”
연구원의 탄식 어린 목소리에도 정한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담담한 태도였다. 능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건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운 결과도 아니었다. 눈치를 보는 듯 힐끔거리는 연구원에게 작게 웃어 보인 정한이 알콜솜을 꾹 누르며 일어섰다.
“괜찮아요.”
놀랍게도 정말 괜찮았다. 매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게 해 주는 홍지수가 있어서. 자신을 죽게 두지 않을 애인이 있어서. 능력이 사라지는 것 따위는 이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한은 제 침대에 엎드려 비즈를 꿰고 있는 지수를 바라봤다. 아니 쟤는 눈도 안 아픈가. 커다란 손으로 조막만 한 구슬 조각들을 집어 드는 꼴이 제법 웃기고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별안간 실실 웃어버리자 고개를 돌린 지수가 의문을 담은 눈빛을 보냈다.
“지수야.”
“응.”
“나 이거 때려 치면 뭐하지?”
생뚱맞은 질문에도 지수는 진심으로 미간을 좁힌 채 고민했다. 진지한 낯빛에 입꼬리를 끌어올린 정한이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 여태 한 게 이거밖에 없는데 이거 때려 치면 뭐 해서 먹고살아? 다시 물으니 지수는 그러게 하고 동조했다. 정한은 기가 차다가도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저 안은 팔에 힘을 더 준 채로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지수는 등을 덮쳐오는 압박감에 푸스스 웃으며 정한을 돌아봤다.
“가정주부 어때?”
“나 백수 남친 되는 거야?”
“응. 나 돈 많아.”
정한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와 홍지수 멋있네. 나 지금 반한 것 같애.”
“이미 반했잖아. 십 년 전에.”
정한은 말없이 지수의 입술을 쪼았다. 자연스레 맞물리는 입술이 뜨거웠다.
10.
스물여덟. 정한은 드디어 손목의 칩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됐다. 힘을 잃은 능력 때문이었다. 정한이 공인 센티넬로서 사는 마지막 날, 수술실에 들어가던 정한을 보고 승관은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 꼭 백 살까지 살라는 말을 하면서 우는 승관에게 정한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 그렇게까지 오래 살고 싶지는 않은데. 그랬다가 팔뚝을 잔뜩 꼬집혀서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승관아.”
승관은 눈물이 가득 찬 눈을 훔치며 정한을 바라봤다.
“고마워.”
“... 뭐가.”
애써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모습이 제법 어린아이 같아 말갛게 웃어버렸다. 너 아니었으면 나 홍지수 못 잡았을 것 같아서. 그리고... 지금까지 살지 못했을 것 같아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꺼내지는 않았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이 애는 알고 있을 것이다. 정한은 그저 울먹거리는 승관의 손을 잡은 채 태연히 대답했다.
“딱 홍지수 죽을 때까지만 살게.”
“형 진짜 미친놈이야.”
“걔 죽을 때 같이 죽을 거야.”
옆에 서 있던 지수가 맥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신뢰가 가득 담긴 두 눈을 바라보던 정한이 도로 베드 위에 누웠다. 그럼 나 갔다 온다! 밝은 목소리를 남긴 채 베드가 수술실 안으로 미끄러졌다. 내내 평온한 낯으로 웃고 있던 지수가 주저앉은 것도 그 순간이었다.
딱 홍지수 죽을 때까지만 살게.
걔 죽을 때 같이 죽을 거야.
지수는 그의 말이 진심이길 바랐다. 현실이기를 더 바랐고. 차게 식은 손바닥 위로 얼굴을 파묻은 지수가 잊고 살던 성경 구절을 외웠다. 간절한 기도였다.
정한아. 꼭 내가 죽을 때까지 살아.
11.
하늘은 푸르렀고 날은 따뜻했다. 일주일 만에 다시 센터 건물 앞에 선 정한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꼭 물감 칠을 해 놓은 것 같은 배경에 시선을 고정한 지 한참이 지났을 때, 별안간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지수로부터 온 문자였다. 이미지로 첨부된 파일을 읽는 도중에 전화가 걸려 왔다. 하여튼 성질 급해. 웃으며 받은 정한이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읽을 시간은 좀 주지?”
“내 목소리로 들어.”
“네에.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수는 정한의 장난스러운 대답에도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깨고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땐 스피커가 아닌 뒤통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윤정한!”
서류 봉투를 흔들려 달려오는 모습에 급하게 폰을 집어넣었다. 정한은 저 멀리서 달려온 지수를 온몸 가득 끌어안았다. 거친 숨결이 귓가로 쏟아졌다. 고생했어. 정한이 지수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저를 지탱하는 단단한 힘에 지수가 말갛게 웃으며 물었다.
“안 힘들어?”
“응. 괜찮아.”
“몸은 어때.”
“괜찮아. 오히려 더 좋아지는 것 같은데.”
정한은 능력이 사라짐과 동시에 회복이 되어가는 몸을 의아해하다가도, 매 순간 제 상태를 체크하는 지수를 떠올리며 몰래 안도했다. 매일 체중을 확인하고, 수술 자국과 다 아문 흉터를 더듬으면서 끝내는 입을 맞춰 왔던 홍지수. 이젠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 이 애 곁에 남아 있고 싶었다.
정한은 신난 기색이 가득한 지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남은 날을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몸의 변화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와 나눴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두 번의 폭주를 겪고도, 위험한 안정제를 7년 내내 복용하고도 살아남아 있는 윤정한. 원체 타고나길 운 하나는 끝내주지 않았는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십 년 동안 생의 모든 불행을 다 겪은 거라면, 그건 그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미국에도 내야 하는 거 아냐?”
“응. 거기가 본 소속이니까.”
“같이 가자.”
“괜찮겠어?”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힘들까 봐 그러지.”
정한이 피식 웃으며 지수의 손을 잡아챘다.
“나 진짜 괜찮아. 네가 더 잘 알잖아. 체중도 늘었고, 얼굴 이 정도면 오케이고, 체온 조절도 잘되고 있고, 가끔 손 좀 떨리거나 숨찬 거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거. 나도 좀 신기하긴 한데 뭐 내가 운이 끝장나게 좋은가 보지. 니 가이딩 능력이 너무 좋았거나.”
순식간에 뱉어내는 말들을 가만히 듣던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이 담긴 눈, 정한은 결국 부드러운 손등 위로 입술을 문댔다. 손을 바르작거리는 게 온전히 느껴졌다. 입술을 떼어낸 정한이 두 눈을 마주하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가서 결혼하자더니?”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둥그렇게 뜨던 지수가 급히 얼굴을 붉혔다. 그냥 해 본 말이었어? 볼멘소리를 하자 팔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이끌려가며 지수의 옆얼굴을 내다본 정한이 푸스스 웃었다. 앙 다문 입술과 발간 귀 끝에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왜 자꾸 웃어.”
“귀여워서.”
팔뚝을 아프지 않게 내려치면서도 얼굴은 여전히 빨갰다. 정한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잡아챘다. 그러곤 그대로 끌어당겨 지수의 입술을 삼켰다. 익숙하게 받아내면서도 손을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고마워. 살게 해 줘서.
건네지 않은 말은 조용히 묻은 채 웃었다. 마주 잡은 손에 깍지를 끼니 단단히 잡아오는 힘이 느껴진다. 어느새 닮아있는 우리의 체온. 아마도 우리는 이 세상이 끝나는 순간까지 함께할 것이다. 마주 잡은 손처럼 함께 살아내며, 영원히.
結





